<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10화>
천문석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냈고, 그건 이번 고스트와의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수백의 고스트에 당황한 것은 처음뿐!
곰 고스트를 단숨에 박살 낸 후, 전투는 천문석의 계획대로 진행됐다.
-극음도의 냉기가 담긴 강화 해머로 달아오른 숯과 잿가루로 만들어진 고스트의 영체를 박살 내고!
-생사팔문의 보법으로 스스로 사문(死門), 고스트의 본질로 들어가!
-전법륜인의 수인으로 혼백을 태우는 화로의 열기를 구현해 고스트의 백을 태워 버린다!
고스트, 사령체는 어차피 땅에 남겨진 영(靈)과 백(魄)의 흔적들!
영체를 이루는 숯과 잿가루를 박살 내고.
본질 백을 칠정 화로의 열기로 태워 버리면 절규하다가 곧 하늘로 날아가 마력 폭풍에 흡수돼 버렸다!
문제는 나타난 고스트의 수가 예상과는 달리 ‘수백 개체’라는 것.
처음 나타난 ‘재의 거인’이 다른 놈들을 달고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것도 해결 방법을 찾았다.
재의 숲에서 불타오르는 수많은 나무!
이게 해결책이었다.
이 나무들이 자신에게 장애물인 것처럼, 숯과 잿가루로 영체를 이룬 고스트한테도 장애물이었다.
수백 개체의 고스트는 재의 숲에 가득한 나무 때문에 군집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강대한 힘을 지닌 재의 거인의 해결 방법은 더 간단했다!
10미터가 넘는 크기의 재인 거인은 느리고 육중했다.
즉, 그냥 싸우지 않으면 됐다!
재의 거인을 잡는 게 아니라, 중앙 지열봉을 냉각시키는 게 목적이니까!
그리고 도망치는 건 무공을 배우기 전부터 자신의 특기였다!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강화 해머를 휘둘렀다.
파아아앙-
극음도의 냉기와 달아오른 숯이 만나 폭발하는 순간.
크아아아-
흠칫 놀라 도망치려는 오크 고스트!
천문석은 단숨에 생사팔문의 보법을 밟아 고스트의 본질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법륜인으로 수인으로 칠정 화로의 열기를 구현하는 순간.
크아아아아아-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절규!
오크 고스트는 미친 듯이 고통스러워하다가 숯과 잿가루로 이뤄진 영체는 와르르 무너지고. 본질 백은 상승 기류에 휩쓸려 마력 폭풍으로 돌아갔다.
순간 하늘에서 저릿저릿한 마력과 열기가 쏟아졌다!
콰아아아-
끓어오르는 숯과 불꽃이 몰아치는 무시무시한 주먹이 떨어진다!
재의 거인의 주먹!
맞는 순간 단숨에 전신이 재가 될 듯 엄청난 공격이다!
그러나 이곳은 숲이다!
탁, 탁, 타탁-
천문석은 가볍게 몇 번 뛰어 타오르는 거대한 나무 뒤로 데굴 굴렀다.
콰아아앙-
재의 거인의 주먹에 단숨에 폭발하듯 으스러지는 거목!
뒤이어 폭풍 같은 발길질이 거목이 있던 부위를 쓸어간다.
콰카카카카-
숯과 잿가루가 쏟아지고 수천수만의 불꽃이 비산해 숲을 갈아엎었다!
그러나 거목이 폭발했을 때, 천문석은 이미 그 뒤를 벗어나 다른 고스트 무리로 돌진하고 있었다.
뒤엉켜 다가오는 고블린과 코볼트 고스트 무리!
빠아아앙-
냉기를 품은 강철의 폭풍이 몰아쳐, 고블린과 코볼트의 영체를 단숨에 으깨버리고.
파스스슥-
전법륜인의 수인으로 혼백을 태우는 화로의 열기를 구현한다!
끼에에에에-
영혼을 울리는 절규와 함께 와르르- 무너지는 고블린과 코볼트 고스트!
이때 뒤늦게 다가온 재의 거인이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
콰아아, 쾅, 쾅-
폭음이 터질 때마다 불꽃과 잿가루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그러나 천문석은 좁은 골렘 어깨 위에서 쏟아지는 주먹도 피했다!
이곳은 사방에 방패로 삼기 좋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가득한 숲.
게다가 지금 펼치는 보법은 절정의 경지에 달한 생사팔문의 보법이다!
사방에는 시야를 가리는 불꽃과 잿가루의 폭풍이 몰아치고, 발아래선 달아오른 숯과 깊게 쌓인 재, 타다만 나무가 장애물처럼 흩뿌려져 있다.
그러나 천문석의 발걸음에 거침은 없었다!
압도적인 승리로 고양된 정신과 기세!
무인의 직감은 점점 더 예리해져 예지에 가깝게 변하고.
절정의 일기일원공이 실린 생사팔문의 보법은 스스로 생문을 찾아 나아갔다!
달리고, 멈추고, 걷고, 구른다!
마치 합을 맞춰 대련하듯.
천문석이 움직인 후에야 뒤늦게 공격을 쏟아붓는 재의 거인!
재의 거인의 공격은 천문석에게 스치지도 않았다!
재의 숲에 선 천문석은 재의 거인을 꼬리에 달고 달리면서도 수백의 고스트를 압도했다!
카캬카카카-
웃음이 터질 때마다.
크아아, 끼에에-
고스트의 절규가 터지고 숯과 잿가루로 만들어진 영체가 와르르- 무너졌다.
결국, 수백의 고스트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고스트를 쫓는 천문석은 만감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이런 날이 오다니!’
처음 삼겹살 먹다가 서울 사태가 터진 후 자신은 대부분 도망치는 쪽이었다.
-키즈 카페 앞, 랩터 무리.
-산에서 만난, 탱탱볼 늑대.
-균열이 생긴 고등학교, 냉기 포자와 백곰 마수.
-배송 경주 중, 마수와 몬스터 무리, 하늘 고래.
-고블린 평야, 몬스터 웨이브.
-초거대 사슴벌레 위, 조폭 마혁진과 김태우 중령.
-카지노 유람선, 조폭 헌터, 이태성 길드장.
……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휘이이이잉-
겁먹은 양 떼처럼 우르르 도망치는 수백의 고스트!
탁, 탁, 타탁-
가볍게 숯과 재를 박차고 달려 그 뒤를 쫓는 자신!
등 뒤에 쿵, 쿵- 육중한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재의 거인이 있었지만, 이놈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이곳 재의 숲에선 자신은 예전처럼 미친 듯이 도망치는 게 아니라 미친 듯이 쫓고 있었다!
마치 무저갱의 마굴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르던 전생에서처럼!
카캬카카카-
천문석은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웃음과 함께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탁, 탁, 탁-
바닥을 밟고, 나무를 밟고, 곰 고스트 영체를 밟고 뛰어 등에 찰싹 달라붙은 천문석.
크아, 크아아아-
곰 고스트가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기겁하는 순간.
천문석은 극음도의 냉기가 실린 강화 해머를 곰 고스트 머리에 때려 박았다!
파아아아앙-
곰 고스트의 머리가 박살 나는 순간.
수인을 짚은 손을 박살 난 곰 머릿속으로 집어넣고 화로의 열기를 구현한다!
후드드득-
결집력을 잃고 와르르 무너지는 곰 고스트의 영체!
“카캬카카컼- 컥!? 이거!?”
천문석은 다시 한 번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다가 기겁했다.
강화 해머가 미세하게 휘었다!
“설마!”
경악한 천문석은 재빨리 장비를 확인했다.
헬멧, 장갑, 장화, 강화 전투복, 강화 해머…….
모든 장비가 손상되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육체는 마력 폭풍을 버티는데!
입고 있는 장비는 마력 폭풍의 마력과 열기, 극음도의 극한의 냉기에 번갈아 노출되며 빠르게 손상되고 있었다!
다른 장비는 소모성 장비고 가격이 싸서 괜찮다.
문제는 너무 비싸서 대여해서 사용하는 강화 전투복과 강화 해머!
강화 전투복은 충전한 마력량이 반도 안 남았고, 강화 해머는 극음도의 냉기와 마력 폭풍의 열기에 번갈아 노출되며 미세하게 휘고 있다!
이대로라면 강화 전투복은 마력이 모두 소진된 순간 기능을 잃고 불타고, 강화 해머는 곧 크랙이 가고 깨져나갈 거다!
순간 머리에 열이 확 끓어올랐다.
이런 미친 고스트 놈들!
마석, 부산물도 안 나오는 거지 놈들이 빌린 강화 전투복, 강화 해머를 손상시켜!?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천문석은 맨주먹으로 고스트를 때려잡기 시작했다!
강화 해머는 지켰으나, 강화 전투복에 충전된 마력이 더 빨리 소모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고스트들을 때려잡는 속도가 확연히 늦어졌다.
어느 순간 고스트들은 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자잘한 놈들은 위협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재의 거인!
콰아앙, 콰아아앙-
자잘한 놈들에게 발이 잡히자 재의 거인의 공격을 전처럼 쉽게 피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버티기도 쉽지 않았다!
강화 전투복의 마력이 모두 소진되고 열기 보호 마법까지 깨지면, 그때는 장비가 문제가 아니라 목숨걱정을 해야 했다!
해결책은?
이 마력 폭풍을 버틸 무기가 필요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기억!
절정의 경력이 실린 강화 해머를 맞고도 흠집조차 생기지 않은 무기!
레이 실트의 강철봉!
겉모습은 헬스장 강철봉이지만, 그 강도 하나만큼은 엄청났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중앙 지열봉을 향해 숲을 달렸다.
그리고 은폐 마력장이 느껴지는 순간 내력을 담아 외쳤다.
“레이님! 무기! 그 강철봉 좀 빌려 주세요!”
* * *
파앙, 파아앙-
쿵쿵, 쿵쿵쿵-
재의 숲에서 불꽃과 잿가루가 치솟고 거친 진동과 굉음이 들려왔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숲 위로 솟구치는 불꽃과 잿가루, 들려오는 외침만으로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천문석이 수백의 고스트를 끌고 재의 숲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굉음과 폭음 사이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님…… 무기!”
순간 중앙 지열봉에 냉기 마법을 쏟아붓던 추이린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외쳤다.
“그거 좀 빌려 줘! 쟤 죽으려고 하잖아!?”
“……이거 미완성이야! 아직 무기가 아니라고! 그리고 쟤는 지금 무기를 빌려 달라는 거잖아!”
레이 실트가 외치는 순간 다시 한 번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님! 강철봉, 그 강철봉 좀. 아작나게!”
마력회로를 구성하던 김철수와 냉기 마법을 뿌리던 추이린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레이 실트의 손에 들린 강철봉.
“…….”
“…….”
순간 당황한 레이 실트가 횡설수설했다.
“내 강철봉? 이걸 빌려 달라고!?”
“여기 내 전 재산! 바닥까지 긁어서 전부 들어갔어!”
“게다가 이제 재료 없어서 더는 만들지도 못한단 말야!”
“이 롱소드에 문제 생기면 진짜로 큰일 나!”
“그놈들! 그놈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른단 말야!”
추이린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어차피 쟤 쓰러지고 고스트 몰려 와서 마그마 터지면. 전 재산이고 뭐고 쓰지도 못해! 살아야 뭐든 되지!”
“아…….”
레이 실트가 멍한 얼굴로 탄성을 지를 때.
김철수가 재빨리 협상안을 내놓았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레이님이 필요한 재료 제가 무엇이든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레이 실트는 손에 꼭 쥐고 있는 강철봉을 내려다봤다.
천공탑을 오르며 개고생을 하면서도 끝까지 지킨 마법 재료들.
그 마법 재료를 마지막 먼지 한 톨까지 긁어 내 만든 강철봉.
레이 실트의 롱소드!
이제 롱소드 형태를 잡아 단조하고, 이름을 새기고 마무리만 하면 끝인데…….
갑자기 빌려 달라니!
불안했다!
너무나 불안했다!
미궁 도시의 사기꾼 엘프와 엮였을 때도 이런 식으로 사고가 터졌었다!
하지만 두 사람 말이 맞았다.
중앙 지열봉이 과열돼 공방 도시가 박살 나면 어차피 끝장이다!
이때 다시금 들려오는 추이린의 목소리.
“결심했으면! 빨리 가서 던져 주고 와!”
“알았어!”
레이 실트는 바로 외침이 들려오는 재의 숲으로 달려갔다.
* * *
크아아아-
끼에에엑-
영혼을 울리는 고스트의 절규가 터질 때마다 훅훅 솟구치는 열기와 쏟아지는 불티!
화르르륵-
천문석은 재빨리 상체를 숙여 등 뒤에서 쏟아진 불티를 피했다!
강화 전투복에 충전된 마력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강화 전투복에 남은 마력은 33%뿐!
항온기능은 끈 지 오래고, 열기 보호 마법도 슬슬 맛이 가고 있다!
아직은 내력으로 버틸 만하지만, 이것도 결국엔 한계가 온다.
이곳은 땀조차 나지 않는 마력의 열풍이 몰아치는 재의 숲이니까!
계속 도망 다니다가 내력이 바닥나는 순간, 고스트에게 발목이 잡혀 재의 거인과 싸우게 되면 끝장이다!
전생의 경지를 훔치면, 고스트에게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도 재인 거인을 압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번 겪은 대로 대가가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도 모르게 안전 헬멧을 만지는 손.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진 이름, 적예.
강철 와이번과 싸울 때와 같은 일이, 아니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하늘이 저울은 언제나 상상하지도 못한 것을 대가로 가져갔으니까.
천문석은 나무 사이를 달리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레이를 몇 번이나 불렀으나 반응은 여전히 없는 상태.
아무래도 중앙 지열봉 쪽도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없나?’
문득 생각하는 순간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사령 화로!
마안을 삼킨 사령 화로가 있었다!
무기는 아니지만, 사령 화로로 쥐어패면 뭔가 되지 않을까!?
재빨리 사령 화로를 찾으려는 순간 나무 사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어디야!?”
타오르는 나무 사이, 강철봉을 든 레이 실트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