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408화 (40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08화>

“레이 실트.”

고개를 치켜들며 이름을 말하고, 뒤이어 살짝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마법 마도구 제작자.”

이 모습에서 느껴지는 드높은 자부심!

천문석은 레이 실트의 표정만 봐도 명품 마도구를 만드는 캐부자 장인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마법 마도구 제작자셨군요!”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받아.”

레이 실트는 우아한 동작으로 품 안에서 명함 지갑을 꺼내더니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레이 실트]

[공방 도시 0001번 광장 101번지]

그리고 이어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목소리.

“언제든 찾아와. 무기 하나 줄게.”

“무기라면……?”

레이 실트의 손이 무장 벨트에 걸린 강화 해머를 가리켰다!

“……!”

강철 터널에 구멍을 뚫은 미친놈을 찾아 폭풍 같은 전법륜인 딱밤을 때려 주겠다는 생각이 봄볕에 눈 녹듯 사라진다.

절로 미소가 그려지고,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

“역시 마법 마도구 제작자! 어쩐지 보는 순간 하고 계신 비녀, 귀걸이, 반지 하나에서까지 품격이 느껴져서 놀라고 있었습니다!”

레이는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반지를 보였다.

“너 보는 눈이 있구나? 이거 다 내가 만든 거야. 전부 보호 마법이 겹겹이 걸린 마법 마도구지.”

“품격 높은 장신구! 게다가 품격을 넘어서는 실용성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레이님!”

“내가 좀 대단하긴 해.”

흐하하하-

카캬카카-

레이 실트가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천문석은 부장님 농담에 추임새 넣는 대리처럼 배를 잡고 같이 웃었다.

이 모습을 본 추이린이 고개를 저었다.

“이 천하의 간신 같은 놈. 태세전환이 이건 뭐…….”

이때 통제실 콘솔을 확인하던 김철수가 웃고 있는 레이에게 외쳤다.

“이 콘솔! 당신이 내려친 겁니까!”

“지열봉! 중앙 지열봉 냉각시켜야지!”

레이 실트가 깜짝 놀라 달려오는 순간.

김철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 허허허-

“설마, 지열봉 냉각시키려고 콘솔을 내려친 겁니까?”

“맞아! 어떤 놈이 냉각 장치에 락을 걸어 놨더라고! 지하에 보안 골렘도 깔아 놓고, 입구, 엘리베이터에도 락을 걸어서 간신이 뚫고 들어왔어! 비켜봐! 원래 이런 건 두들기면 풀리게 돼 있어!”

분통을 터트리며 강철봉을 치켜드는 레이 실트.

락을 걸어 놓은 장본인, 김철수 발명가는 허탈했다.

레이 실트는 선의로 행동했지만, 그 결과가 치명적이었다.

마탄을 갈겨도 멀쩡한 콘솔.

물리, 마력 저항이 엄청난 콘솔이 어떻게 했는지 아작이 났다!

처음부터 콘솔을 이용한 냉각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젠 진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때 레이 실트가 강철봉을 흔들며 외쳤다.

“빨리 비켜! 지금 당장 중앙 지열봉 냉각 안 하면 마그마 치솟아! 위에 도시 큰일 난단 말야!”

“이미 늦었습니다.”

“뭐?”

“지금 그 말!”

“네? 늦어요?”

깜짝 놀란 레이 실트, 추이린, 천문석의 시선이 모여들자, 김철수는 회중시계를 꺼내 용두를 눌렀다.

찰칵-

마력 파동이 통제 콘솔에 닿자 불길한 붉은 마력광이 감돌았다.

“……!”

레이 실트가 경악할 때.

김철수 발명가는 통제실 바닥을 가리켰다.

“곧 긴급 봉쇄 절차 시작한다. 이제 아래로 내려가서, 마력 폭풍이 몰아치는 곳에서 직접 중앙 지열봉을 냉각하는 방법밖에 없다.”

천문석은 힐끗 붉은 마력광이 맺힌 콘솔과 경악한 레이 실트를 봤다.

김철수 발명가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짐작됐다.

레이 실트가 콘솔을 내려친 게 문제를 일으켰을 거다.

하지만 김철수 발명가는 레이의 선의를 깨닫고 언급하지 않았다.

철수형이랑 비슷한 모습에 어쩐지 웃음이 그려진다.

어차피 이미 각오했던 일.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고스트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부탁한다.”

김철수 발명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지시했다.

“추이린. 정제 마석 준비하고 내 뒤로 바짝 붙어서 은폐 마력장 준비해라. 천문석이 고스트를 상대하는 동안 우리는 은폐 마력장을 펼치고 투영 공간을 지나 중앙 지열봉을 냉각시켜야 한다! 저기 보안 구역을 지나 바로 내려간다!”

“알겠습니다!”

추이린은 바로 정제 마석을 확인했고, 김철수 발명가는 레이 실트를 봤다.

귀신이라도 본 듯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레이 실트.

직접 언급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달은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결과가 나빴어도 레이 실트는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는 선의로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내려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은 레이 실트에게 뭐라 할 수 없었다.

재금 그룹의 숨겨진 실세, 오너의 대리인으로 살아온 20년.

자신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수많은 차악을 선택했으니까…….

그래서 김철수는 레이 실트에게 말했다.

“레이님은 당장 이곳을 벗어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올라가면, 시간 안에 대피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도망치세요.”

충격으로 굳어 있던 레이 실트는 문득 고개를 들어 김철수를 봤다.

“너 그 시계……!”

이때 천문석이 레이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레이님. 가능한 한 빨리 움직이세요. 이제 곧 위에 나선 통로 막힐 겁니다.”

“바로 움직이자! 이쪽이다! 저 문을 지나면 보안 구역이 나온다.”

김철수는 앞장서 달려갔고 천문석은 그 뒤를 따라 달리며 다시 한 번 외쳤다.

“그럼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꼭! 반드시 찾아가겠습니다!”

“더는 아무것도 부수지 말고 조용히 나가라!”

마지막 추이린이 경고를 끝으로 세 사람은 보안 구역으로 달려갔다.

* * *

“…….”

통제실 콘솔 앞에 홀로 남겨진 레이 실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달려가는 김철수와 그가 들고 있는 회중시계를 봤다.

한눈에 알아봤다.

시간 오류 수정자의 시계!

하지만 김철수는 자신이 아는 시간 오류 수정자, 마법사가 아니었다!

혹시 위장한 건가?

하지만 시간 오류 수정자라면, 자신 앞에서 이렇게 태연할 리가 없는데!?

레이 실트는 회중시계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력장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용두를 누르는 순간 주위의 마력패턴을 자유롭게 변화시킨다.

마력 적성이 마도 제작에 몰려 있어 마법 능력은 떨어지지만, 겉모습과 기능 모두 오래전 봤던 그 시계와 똑같았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마도 황제 폐하가 승천하시고, 마도왕 간의 대립이 점차 격화되던 그때.

가면을 겹쳐 쓴 마법사가 자신의 공방에서 알바로 일했었다.

마법사답지 않게 허술했던 그 남자는 어느 날 미완성인 차원 좌표를 자신에게 건넸다.

“이거 우연히 발견한 좌표인데……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이며 내미는 좌표 책, 자신은 아무 의심 없이 차원 좌표를 받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마도 전쟁이 시작된 후 우연히 그 차원 좌표를 완성했다.

이렇게 완성된 차원 좌표로 연결된 세계가 케페니안이었다.

자신이 파산한 이유!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이 사는 세계!

처음에는 이 모든 게 우연인 줄 알았다.

그러나 천공탑 안 극한의 냉기 지대를 헤매다가 노움 유물 발굴단을 만나 알게 됐다.

자신이 시간 오류 수정자의 ‘설계’에 당한 것을!

얼어붙은 곰고기를 뜯어먹으며 노움들과 나누던 대화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

“그 녀석 시간 오류 수정자네.”

“시간 오류 수정자요?”

“은근슬쩍 세계의 흐름을 유지하는 마법사. ‘샤’가 세계의 나무의 정원사라면 그놈은 복원력을 유지하는 거다.”

“네? 원대륙 샤요!? 걔 진짜 허술한 녀석이에요. 그런 거창한 거 아니에요. 하하-.”

“쯧쯧쯧- 자기가 당했는지도 모르는 피해자가 여기에도 있네.”

“그러게 말야. 아니 어떻게 가는 곳마다 피해자가 있어?”

“아무거나 준다고 덥석덥석 받으면 큰일 나는 거야!”

“하, 시바. 곰고기 먹다 혀에 동상 걸리겠네! 뜨거운 양꼬치 주면 덥석덥석 받고 싶다!”

“아직 모르지 않냐? 그냥 우연일 수도 있잖아?

“우연은! 시계가 똑같잖아. 시계가!”

“맞아. 그리고 겹쳐 쓴 가면! 허술한 모습! 그 녀석 분명 로브도 겹쳐 입었을 거야! 100%야, 100%!”

“그놈 그냥 거리 걸어 다니다가. 뭐 맞고 그러지 않았냐? 나무 열매, 화분, 새똥…….”

“존재감 없고. 숨고 도망치는 거 잘하고. 특히 냉기 마법 전문가지?”

“그놈 특기가 냉기 지뢰 깔고, 새 불러서 도망치는 건데 본 적 없어?”

……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설명하는 노움들!

유적 발굴단 노움들의 설명을 모두 들은 순간, 자신의 공방에서 일했던 가면 쓴 마법사의 진정한 정체를 깨달았다.

시간 오류 수정자!

그리고 알게 됐다.

자신이 파산하고, 차원 수배를 당하고, 천공탑을 헤매게 된 모든 게 그 마법사의 ‘설계’였음을!

레이 실트는 통제실 구석 문을 열고 있는 김철수를 살폈다.

체형, 목소리, 기질, 마력패턴 모든 게 자신에게 차원 좌표를 준 마법사와 다르다!

하지만 노움들의 말대로 시계가 똑같았다.

시간 오류 수정자의 상징인 시계가!

시간 오류 수정자가 한 명이 아닌건가!?

그러나 노움들이 말한 시간 오류 수정자는 자신이 겪은 허술한 마법사 한 명뿐이었다.

레이 실트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간 오류 수정자는 저 ‘시계’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으로 시간, 흐름에 생겨난 오류, 특이점을 바로 알 수 있다고 했다.

저 김철수가 진짜 시간 오류 수정자라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마도 황제 폐하가 계신 곳을 알고 있을 거다!

‘어떻게 하지!?’

잠시 고민했지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공방을 지키려면 중앙 지열봉을 냉각해야 한다!

레이 실트는 보안 구역으로 들어가는 김철수를 향해 달리며 외쳤다.

“같이 가! 나도 도울게!”

* * *

보안 구역으로 들어온 김철수는 바닥의 문을 바로 열었다.

쿠우우웅-

문이 열리자 열기가 확 올라오고 아래로 이어지는 사다리가 보였다.

“바로 내려가자. 두 번 더 내려가야 한다.”

천문석, 추이린, 레이 실트.

세 사람은 김철수를 따라 두 번 더 바닥 문을 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때마다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공기에서 산불 현장에 들어온 듯한 탄 냄새가 짙어졌다.

“이 탄내. 마력 폭풍 때문이다. 이제 격벽을 지나야 한다.”

김철수는 짧게 설명한 후 앞장서서 몇 개의 격벽을 지났다.

그리고 마지막 격벽 앞, 육중한 격벽이 막고 있는데도 이글거리는 열기와 매캐한 탄 냄새가 느껴졌다.

일행은 준비를 시작했다.

추이린이 은폐 마법을 준비하고, 김철수가 마지막 격벽의 락을 해제할 때, 레이 실트는 천문석에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너 진짜 보호 마법 더 필요 없어? 자동 점멸, 위상 전환 이런 게 내 전문인데?”

천문석은 강화 전투복에 걸린 마법을 확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보호 마법 중첩해서 걸리면 전투 감각이 어그러집니다. ‘열기 보호.’ 이거면 충분합니다.”

무인의 감각은 정교하게 조율된 시계와 같다.

중첩해서 보호 마법을 걸면 전투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조율해야 했다.

이때 이질적인 마력장이 느껴졌다.

궁, 궁, 궁-

추이린에게서 은폐 마력장이 파도치듯 퍼져 나오고 있었다.

“바로 마커 찍습니다.”

추이린은 김철수와 레이 실트에게 마커를 찍었고, 곧 두 사람의 몸에서도 은폐 마력장이 흘러나왔다.

세 사람에게 느껴지던 인기척이 점차 지워지고, 마치 그림 속 사람처럼 존재감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이때 마지막 격벽을 고정한 잠금장치가 풀렸다.

철컥, 철컥, 철컥-

“됐다. 락 풀렸다! 이제 중앙 레버 돌리면 바로 열 수 있다!”

락을 해제한 김철수는 천문석을 보며 지금까지 몇 번이나 확인한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이 격벽 안에는 마력 폭풍이 몰아치는 투영 공간이 있다. 그 투영 공간에 고스트가 있고. 우리가 지열봉을 냉각시킬 때까지 너 혼자 그 고스트를 상대해야 한다. 진짜 할 수 있겠어? 레이님이 도와주신다고 하니, 한 명 더 뺄 수 있을 거 같은데?”

뒤이어 말하는 추이린과 레이 실트.

“고스트 잡는 거 쉽지 않을 텐데. 하긴 검강 스킬도 쓸 수 있으니까.”

“고스트? 고스트가 뭔데.”

천문석은 김철수, 추이린, 레이 실트를 차례로 보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고스트는 제가 전문입니다! 고스트는 저한테 맡기고. 세 분은 지열봉 냉각해 주시면 됩니다!”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깨를 툭 쳤다.

“언제든 준비되면 들어가라. 우리는 뒤따라 움직이겠다.”

준비는 이미 끝났다.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격벽의 레버를 돌렸다.

기이이잉-

문이 열리는 순간 훅 날아오는 불티와 잿가루!

활짝 열린 격벽 너머, 재가 되어 타오르는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마력 폭풍이 만들어 낸 투영 공간, 재의 숲!

천문석은 주저 없이 재의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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