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407화>
휘이이이잉-
엄청난 속도로 바람을 가르는 세 사람.
천문석, 김철수, 추이린.
셋은 방수천을 탄 채로 빠르게 나선 터널을 미끄러지고 있었다.
“이제 곧 도착한다!”
그리고 김철수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모두 준비하세요! 곧 나선 터널 끝! 잠겨 있는 엘리베이터에 도착하면 그놈이 있을 겁니다!”
“그놈이라고?”
“우리가 이 개고생을 하게 만든 놈! 골렘을 끌고 오고! 강철 벽에 구멍을 뚫어 놓은 그 미친놈!”
순간 추이린과 김철수의 두 눈에 분노가 서리고 성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잡히면 아작을 내 주마!”
“하, 도대체 왜 구멍을 뚫어서!!”
천문석도 주먹을 흔들며 외쳤다.
“잡는 즉시 폭풍 같은 전법륜인 딱밤을 먹여 주마!!”
분노한 세 사람은 곧 나선 터널의 끝, 엘리베이터에 도착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에는 구멍을 낸 범인이 없었다.
범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육중한 엘리베이터 입구.
김철수 발명가가 절대 뚫리지 않는다고 장담한 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으니까.
* * *
“…….”
“…….”
어이없어 하는 눈으로 구멍을 보는 천문석과 추이린.
“……뚫릴 리가 없는데! 어떻게 뚫은 거야?!”
황당해 하는 얼굴로 구멍을 살피는 김철수 발명가.
천문석은 애잔한 눈으로 김철수 발명가를 봤다.
김철수 발명가.
철수 형.
나이와 얼굴은 완전히 다르지만, 과연 친척이다.
안전할 거라던 나선 터널에는 보안 골렘이 깔려 있고,
절대 안 뚫린다는 엘리베이터 문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김철수 발명가, 이분!
재수 없는 게 철수 형이랑 완전 판박이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김철수 발명가 이분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쯧쯧쯧-‘
내심 혀를 찬 천문석은 내력이 실린 손으로 구멍 난 문을 두들겨 봤다.
툭-
내력이 안으로 거의 침투하지 못한다.
이능력 저항이 엄청난 금속이다!
“이걸 도대체 뭐로 뚫은 거야? 마력이 거의 먹히지 않는데!?”
어이없어 하는 추이린의 말이 천문석의 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의문을 푸는 건 나중 일이다.
우선 여기서 내려가야 했다.
천문석은 구멍 안을 확인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텅 빈 통로에 강철 와이어가 보였다.
다행히 천문석에겐 밧줄과 완강기가 있었다.
공방 도시행 배를 구하지 못했을 때, 6, 7층을 가로지르는 산맥을 넘기 위해서 준비한 물건이었다.
밧줄을 걸고 완강기를 타고 엘리베이터 통로를 내려가면 된다!
천문석은 배낭에 걸어 둔 밧줄을 풀어내며 패널을 조작 중인 김철수를 봤다.
“여기서 통제실까지 지하로 몇 미터나 이어졌죠?”
“일…….”
“백 미터면 밧줄 충분합니다. 바로 내려가죠!”
“킬로미터.”
“……네?”
“여기서 지하로 일 킬로미터 내려가야 한다.”
“……일 킬로면 1000미터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김철수.
“……엘리베이터 패널은?”
“여전히 먹통이야. 아무래도 아래 통제실에서 엘리베이터 잡아 놓고 있는 거 같다.”
“…….”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이번 일 진짜 왜 이래!?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이때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
설마 통로도 잘못 들어온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일이 너무 꼬이고 있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기 아래에 통제실이 있는 건 맞죠? 혹시 통로를 잘못 찾은 건 아니죠?”
“여기가 유일한 통로다. 중앙 지열봉으로 이어지는 다른 통로는 없어. 하- 일이 왜 이리 꼬여!”
김철수 발명가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때.
천문석은 추이린을 봤다.
“저속 낙하 뭐 그런 마법 없습니까?”
“나 하얀 번개 추이린이다.”
추이린은 없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김철수 발명가님…….”
“없어.”
“…….”
“…….”
“…….”
깊은 침묵이 흐를 때,
나선으로 휘어진 통로 위쪽에서 미약한 진동이 전해졌다.
쿵-
천문석은 직감했다.
‘골렘이 곧 구멍을 빠져나오겠구나!’
이제 진짜 시간이 없었다.
마지막 방법을 써야 했다.
몸으로 때우기!
천문석은 구멍 안쪽 강철 와이어를 가리켰다.
“서로 허리 엮고, 저 와이어 잡고 내려가죠. 방법이 없습니다.”
“1000미터나 와이어를 잡고 내려갈 자신이 없어.”
추이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마력 각성자는 일반인보다 육체 능력이 월등하지만,
1킬로미터나 줄을 타고 내려갈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버티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밧줄을 풀어 하네스를 만들었다.
탁, 탁-
그리고 순식간에 세 사람은 밧줄로 이어졌다.
추이린 - 천문석 - 김철수.
천문석을 중심으로 밧줄로 연결된 두 사람.
“이 안전 장갑 끼세요. 혹시 떨어져도 제가 버틸 수 있습니다! 당황하지만 마세요! 바로 들어갑니다!”
천문석은 안전 장갑을 건네고, 앞장서 뻥 뚫린 엘리베이터 구멍으로 들어가 외쳤다.
“들어오세요!”
추이린이 와이어를 잡고,
천문석이 그 위에서 와이어를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철수가 들어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 뚫린 구멍은 골렘이 통과하기에는 작았다.
그러나 시간을 끌어 출구가 완전히 막히면 끝장이다.
가능한 한 빨리 지열봉을 냉각시키고 탈출해야 한다!
천문석은 아래 추이린과 위 김철수에게 다시 한번 외쳤다.
“바로 출발합니다! 혹시 떨어져도 제가 버틸 수 있습니다! 당황하지만 마세요!”
세 사람은 강철 와이어를 잡고 1000미터 아래에 있는 통제실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200미터쯤 내려갔을 때 힘이 빠진 김철수를 등에 업고,
300미터를 내려갔을 때 와이어를 놓친 추이린을 끌어올려 어깨 위에 앉혔다.
성인 남녀 두 명에 배낭까지!
천문석은 150kg을 훌쩍 넘는 무게를 짊어진 채로 강철 와이어를 타고 내려갔다!
쓰으윽, 쓱, 쓱-
강철 와이어를 잡은 두 손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어깨에 걸린 배낭끈은 당장이라도 몸을 산산조각 낼 것만 같았다.
‘던전 7층까지 편하게 온 업보를 지금 모두 돌려받는 건가?!’
어이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헌터들이 사냥팀을 구성할 때,
마력 각성자의 수를 적게 잡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력 각성자는 준비된 상황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지만,
지금같이 변수가 발생하면 다른 팀원에게 부담이 가중됐다!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얼굴, 최설.
최설이 보고 싶었다.
산처럼 짐이 쌓인 지게를 짊어지고도 끄떡없던, 튼튼한 최설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머릿속에선 잡념이 끓어오르고,
육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지만,
천문석의 손과 발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쓰으윽, 쓱, 쓱-
먹고 살려고 쉴 새 없이 알바를 할 때처럼, 천문석은 쉬지 않고 내려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통로의 온도가 점점 오르던 어느 순간.
탁-
마침내 멈춰있는 엘리베이터 천장에 발이 닿았다!
김철수와 추이린이 내리는 순간.
천문석도 엘리베이터를 밟고 섰다.
강철 와이어에 의지해 1000미터를 내려온 몸이 단단한 바닥 위에 서는 순간.
빳빳하게 긴장한 전신의 근육이 풀리며 자신도 모르게 깊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흐어어어어-
“너 괜찮아?!”
천문석은 대답 없이 손을 흔들며 호흡을 골랐다.
이때 어렴풋한 소리와 진동이 발에서 느껴졌다.
까아앙, 까앙-
쇠몽둥이로 무언가를 내리치는 듯한 느낌!
“이게 뭔 소리야?”
“뭔가를 두들기는 소리 같은데요?”
김철수와 추이린이 말한 순간.
천문석은 섬전 같은 깨달음을 얼었다.
강철 터널, 엘리베이터에 구멍을 뚫어 놓은 미친놈!
그 미친놈이 또 무언가를 부수고 있구나!!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천문석은 번개같이 밧줄을 풀어 버리고,
엘리베이터 뚜껑을 열고 안으로 내려갔다.
의자로 잡아 놓은 엘리베이터 너머 복도,
복도 끝 뻥 뚫린 강철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깡, 까아앙-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려 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긴 복도를 지나 뻥 뚫린 강철문으로 몸을 던져 데굴 한 바퀴 굴러 일어난 순간.
보였다!
청바지에 로브를 걸친 여자!
머리에 비녀를 몇 개나 꽂은 여자가 헬스장에서 가져온 것 같은 강철봉을 내리치고 있었다!
“……!”
깡, 깡, 까아아앙-
마력회로가 새겨진 통제실 콘솔에!
와, 저 테러리스트 같은 새끼!
천문석은 미친놈을 향해 돌진하며 외쳤다!
“그만 부숴 이 미친놈아!!”
* * *
“앗! 누구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여자!
“너 때문에 빡친 사람이다!”
천문석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팟-
순간 여자는 바닥을 박차고 옆으로 몸을 날리며 헬스장 강철봉을 내려쳤다!
휘이이-
어설프게 날아오는 헬스장 강철봉!
천문석은 한 호흡에 강화 해머를 뽑아 내력을 담아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단순에 강철봉을 떨구게 하고 여자를 제압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강화 해머가 강철봉을 때리는 순간.
상상하지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꽈드드득-
강화 해머가 단숨에 휘어 버렸다!
“……!”
이 순간 천문석은 픽 쓰러져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악-
“어, 뭐야?! 맞은 거야? 진짜로?! 움직이는 걸 맞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야, 진짜 맞은 거야?! 포션! 포션이 어디 있지?!”
강철봉을 휘두른 여자가 급히 주머니를 뒤질 때,
어느새 뻥 뚫린 입구에서 김철수와 추이린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비명 지르는 천문석을 본 순간 경악했다.
이곳까지 몇 번이나 구르면서도 내려오는 동안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은 천문석이 비명을 지른다고!
“너 당한 거야?!”
“저 여자가 공격한 건가?!”
추이린이 전격 마법을 준비하고,
김철수가 천문석을 구하러 달려올 때.
여자가 억울한 듯 가슴을 두들기며 외쳤다.
“아니야! 안 맞았다니까! 스치지도 않았어!! 자해 공갈단 놈아! 빨리 일어나! 너 안 맞았잖아!!”
순간 바닥에 쓰러져 비명을 지르던 천문석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야, 이 미친놈아! 이거 빌린 거란 말이야! 이거 어떡할 거야!!”
벌떡 일어나 휘어진 강화 해머를 흔드는 천문석을 보는 순간.
이 자리의 모두는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또라이 녀석.”
“하아…….”
“와, 너 그러니까 지금! 그 해머 조금 휜 것 때문에 비명 지른 거야? 와! 와!! 와!!”
여자의 어이없어 하는 태도에 천문석은 열이 끓어올랐다.
이 강화 해머는 최후식 이사에게 빌린 장비다!
W. S. 인더스트리에서 만든 마력 무구!
이것과 비슷한 정글도 가격이 더럽게 비쌌다!
“야! 이 강화 해머가 얼마짜리인 줄 알아! 이거 주문 제작만 받는 명품…….”
“줘. 고쳐 줄게.”
“뭐!? 마력 무구가 그렇게 쉽게 고치…….”
여자는 가볍게 다가와 강화 해머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강철봉을 짧게 잡고 번개같이 내려쳤다.
깡-
우드득-
휘었던 강화 해머는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겉모양만 고친다고……!”
순간 강화 해머에 어리는 마력광.
“새겨진 마력회로가…… 임팩트 시 충격량 강화네. 배율을 7.8 정도. 마력회로가 약간 어긋났네. 뭐지? 이건 전투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던 여자가 질문했다.
“너 혹시 이걸로 망치질했니?”
“……!”
뭐지, 이 녀석 귀신인가?!
어떻게 아는 거지!?
천문석이 흠칫 놀라는 순간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이어지는 목소리.
“지금은 바쁘니까. 일 끝나고 정비해 줄게. 아니면 새 걸로 하나 만들어 줄까? 이 정도면 며칠 안 걸리겠네.”
“……!”
느껴진다.
여유로운 어투와 느긋한 분위기,
얼굴엔 마치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지금 눈앞의 여자에게서 헌터 왕족, 캐부자 중의 캐부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헌터 중의 귀족, 마력 각성자.
마력 각성자 중 귀족, 치유 능력자.
마력 각성자 중 왕족, 마법 마도구 제작자.
수가 많은 마도구 제작자가 아닌,
‘마법 마도구 제작자’는 캐부자 중의 캐부자!
금, 은, 보석!
귀금속을 이용해 마법 물품을 만들어 내는 현대의 연금술사들!
순간 여자가 들고 있는 강철봉에 시선이 끌렸다.
겉모습은 헬스장 벤치프레스 강철봉인데,
절정의 내력이 실린 강화 해머가 때렸는데도 흠 하나 가지 않았다!
오히려 강화 해머가 휘었다!
감이 왔다.
그냥 마도구 제작자가 아니다!
눈앞의 여자에게서 캐부자 중의 캐부자, ‘마법 마도구 제작자’의 품격이 느껴졌다!
천문석은 재빨리 강화 해머를 무장벨트에 걸고,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정중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헌터 천문석이라고 합니다.”
“여기 이분은 추이린 연구원님, 저기 콘솔 앞에 계신 분은 김철수 발명가님입니다.”
“혹시 마법 마도구 제작자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