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97화>
부산 던전 7층,
거대한 분지에 자리한 공방 도시.
레이 실트의 마도구 제작 공방은 이 공방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있었다.
공방을 연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금성 길드의 도움을 받은 레이 실트는 이미 마력 무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짧은 비녀를 쥔 채로 창밖에 펼쳐진 거대한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 지붕 위, 가로등, 하수구 뚜껑, 도시 곳곳에서 솟구치는 하얀 증기!
치이익, 치이이익-
너무나 익숙한 증기압 새는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레이 실트는 부산 던전을 내려오는 동안 몇 번이나 익숙한 기시감을 느꼈다.
소금 평원, 지하 미로, 자연 동굴···.
던전 층마다 완전히 달라지는 환경!
게다가 5층, 6층, 7층을 흐르는 강은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흘렀다!
이곳 부산 던전은 자신이 수십 년 동안 헤매던 그곳과 너무나 닮았다.
천공탑!
부산 던전은 수많은 차원과 시공을 가로질러 자라나는 천공탑을 뚝 떼어 작게 축소한 것 같은 던전이었다!
처음에는 어이없어 웃었다.
'수십 년 동안 극한의 냉기 지대를 헤매더니 내가 정신이 나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천공탑은 마탑의 머릿돌에 이름을 새긴 마도왕조차도 원리 파악을 할수 없던 마도 황제 폐하의 이적!
설령 마도왕 10명이 힘을 모은다고 하여도 천공탑을 축소한 던전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7층 공방 도시에 도착하는 순간 레이 실트의 생각은 완전히 변했다.
레이 실트는 문득 고개를 들어 도시의 건물 사이에 솟은 거대한 탑들을 봤다.
새하얀 증기를 흩날리는 탑, 증기탑!
저 증기탑은 도시 지하 깊은 곳에 있는 열점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도시를 관통하는 강에서 공급되는 물을 막대한 증기로 변화시킨다.
이 막대한 증기는 도시 지하의 증기관을 통해 공방 도시 전체에 공급돼 마력 무구를 제작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열점, 증기탑, 강, 증기관!
이 모든 것이 레이 실트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이 공방 도시는 오래전 자신의 마도구 공방이 있던 도시와 구조가 똑같았다.
마도 황제와 노움들이 함께 건설한 마도 제국의 병참 도시.
강철 도시!
마도 제국의 강철 도시와 똑같은 구조의 도시가 이세계 던전 속에 있다!
이 도시를 보는 순간 레이 실트는 깨달았다.
온갖 자원이 쏟아지고,
마도 제국의 강철 도시가 있는 던전!
이렇게 '작위적인' 던전이 게이트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의 최후방 지역에 '우연히' 나타났을 리 없었다!
이 모든 것에서 너무나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누군가 이 던전을 여기에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한 단 한 명뿐이다.
타대륙에 문명의 빛을 가져온 위대한 마도의 신.
마도 황제 폐하!
부산 던전, 무한의 미궁이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에 마도 황제 폐하가 있다!
"마도 황제 탐색법을 써볼까?!"
문득 말하는 순간 파르르 떨리는 몸.
마법은 마음으로 현상에 이미지를 구현하는 게 시작이자 끝이다.
마도 황제 폐하가 이 세계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 탐색법을 쓰는 것과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탐색법을 쓰는 것은 천지 차이다.
고대신과 악신이 들끓던 타대륙을 평정한 마도 황제 폐하의 힘을 생각하면,
마도 황제 탐색법을 쓰는 순간 그 힘의 반동만으로도 이 세계에서 튕겨 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지?"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레이 실트는 미소 지으며 빙글 몸을 돌렸다.
이미 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마도구 제작 공방 안쪽,
마력화로 위에서 빛을 뿜어내는 강철봉!
아직 제대로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강철봉을 단조해서 롱소드 형태를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만든 롱소드는 겉모습은 평범하게 보일 거다.
하지만 이 롱소드야말로 마도 제국을 뒤흔든 자신의 역작이다.
무게가 변하는 롱소드!
이 롱소드에는 마법도 이적도 걸려있지 않다.
이 롱소드의 기능은 단 하나,
미세한 그립 변화와 사용자의 경지에 따라 무게가 변한다는 것!
그러나 이 간단한 기능의 롱소드가 경지에 달한 기사의 손에 쥐어지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임팩트 순간 무게를 늘리면 충격량은 폭증한다!
마법도 이적도 아니기에 막을 수 없는 이 충격량에,
경지에 달한 기사의 오러가 실리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이 생겨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롱소드를 이 세계에선 나이트 아머라 불리는 타이탄과 동기화시키면!
타대륙에 들끓던 고대신과 악신마저 파멸시킨 강철의 폭풍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하하하하-
레이 실트는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 롱소드가 세상에 나타나는 순간.
이 나라 대한민국에 계실 마도 황제 폐하는 자신의 제국을 뒤흔들었던 무기를 바로 알아보시리라!
그리고 롱소드에 새겨진 이름을 마도 황제 폐하가 보는 순간.
자신의 비원은 이뤄진다!
레이 실트는 성큼성큼 마력화로로 걸어가 강철봉에 새겨진 이름을 봤다.
[레이 실트]
천둥벼락과 우레 폭풍의 마도왕, 마스터 메이지의 이름, 레이 실트.
마도 황제 폐하는 이 이름을 결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칭한 ‘레이 실트’는 마도 황제의 직계 열두 제자 중 일인이었으니까!
물론 레이 실트를 찾아왔는데 자신이 나타나면 엄청나게 쥐어박힐 거다.
그래도 괜찮다!
마도 황제 폐하라면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의 차원 수배는 풀어주실 테니까!
으하하하하-
레이 실트를 사칭한 마법사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에 쥔 비녀에 보호 마법을 중첩해서 걸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마스터 메이지의 풀꽃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 외의 다른 손가락에도 실드, 점멸, 위기감지, 회피의 반지가 끼워져 있고 로브도 위상 전환 로브를 입었다.
마법사는 전신에 보호, 회피, 방어 마법이 걸린 마도구를 겹겹이 장비하고 있었다.
미리미리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쥐어박힐 준비를 해둬야 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안 하는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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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오오-
강대한 마력이 실린 하울링이 울려 퍼지자, 숲과 초원이 요동쳤다.
깊은 숲에 자리한 상급 마수와 몬스터가 몸을 돌려 도망치고 산천초목마저 파르르 요동치다가 숨을 죽였다.
이때 거센 냉기 폭풍을 휘감은 늑대 무리가 나타났다.
휘이이이잉-
전신에 화염을 삼키는 냉기 불꽃을 두르고.
나무와 풀, 바위마저 꽁꽁 얼리는 냉기 폭풍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
서리 늑대 무리의 푸른 눈은 남쪽에 고정됐다!
쿵, 쿵, 쿵-
마치 조롱하듯 밀려오는 마력 파장!
누군가 서리 늑대 일족이 만들어둔 영역 표시, 얼음 기둥에 조롱하듯 흔적을 남겨놨다!
도토리 숲의 악마와 하늘의 제왕.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 강적을 찾기 위해 서리 늑대 일족이 사방으로 흩어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우오오오오오-
서리 늑대 무리는 강적을 찾기 위해 흩어진 일족을 불러 모으며, 엄청난 속도로 마력 파장을 향해 달려갔다.
김철수 발명가가 준비한 덫으로!
....
이렇게 인과역전,
결과를 만들기 위한 원인이 모두 준비됐다.
-로롤로 이사, 박혁 이사.
-추이린 수석 연구원.
-김철수 발명가.
-레이 실트를 사칭한 마법사.
-서리 늑대 무리.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손님.
케인 이사와 암살검 한경석.
7명의 사람과 한 무리의 늑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방 도시로 움직이고 있을 때.
천문석과 최설이 탄 운송선은 7층 공방 도시로 향하는 지름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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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선 전방 거대한 강이 나뉘어 흐르는 지류가 보였다.
수백 미터 높이로 솟은 절벽 사이, 계곡으로 밀려가는 지류!
이 지류가 공방 도시로 들어가는 지름길,
천문석이 이 운송선에 얻어탄 이유였다!
운송선이 절벽 사이로 다가갈수록 물살이 점점 빨라져,
잔잔하게 흐르던 강물은 어느새 거친 급류로 변해가고 있었다.
쿵, 쿵-
운송선이 요동치자 선장이 크게 외쳤다.
"잘 잡아! 저기 절벽 사이가 7층으로 내려가는 지름길이다!"
천문석은 이미 밧줄로 하네스를 만들어 단단히 몸을 고정한 상태.
"최설 준비 끝났어?"
"어! 준비 끝났어!"
천문석은 외쳤다.
"준비됐습니다! 선장님!"
“알았다! 속도 올린다!”
선장은 대답과 동시에 운송선이 속도를 올렸다.
부아아아앙-
선박용 마력 엔진이 터질 듯 엔진음을 쏟아내고 잠시 후,
붕 뜨는듯한 느낌과 함께,
거친 급류에 실린 운송선이 절벽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좌우 모두 깎아지른 듯 수백 미터 높이의 절벽!
앞에는 ‘S’자로 구불구불한 휘어지는 계곡을 흐르는 급류가 보였다!
"꽉 잡아라! 바로 들어간다!"
선장의 외침과 함께 급류를 탄 운송선은 계곡으로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귀가 터질듯한 굉음과 함께 구불구불한 계곡으로 쏟아진 엄청난 양의 강물이 산산이 부서진다!
쏴아아아-
쿵, 쿵, 쿵, 쿵-
부서진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폭우가 되어 쏟아진다.
운송선은 마치 폭풍우 속을 헤쳐 나가듯 무섭게 요동치며 거친 급류에 실려 계곡을 질주했다.
계곡에 들어가자 강폭이 확 좁아졌지만, 여전히 배 수십 척이 동시에 지날까를 정도로 넓었기에 충돌할 염려는 없다.
하지만 거친 물살이 망치질하듯 배를 때리고,
비처럼 쏟아지는 파도가 갑판 위를 몇 번이나 휩쓸었다.
휙, 휙- 지나가는 절벽과 점점 빠르게 가속하는 물살!
쿵쿵, 쿵쿵쿵-
운송선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무섭게 요동쳤다.
쿠르르르릉-
이때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선장이 외쳤다.
"급류 완전히 탔다! 곧 요동이 가라앉을 거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7층에 도착한다!"
선장의 말대로였다.
요동이 순식간에 잦아들고 높게 치솟아 갑판에 쏟아지던 파도도 금세 가라앉았다.
휘이이이잉-
계곡을 흐르는 급류를 완전히 탄 운송선은 바람을 가르고 빠르게 나아갔다.
으으으윽-
이때 최설이 난간을 잡고 쓴 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천문석은 몸을 일으켜 헛구역질하는 최설에게 다가갔다.
"야, 너 괜찮냐?"
"괜찮아! 물을 좀 먹어서 그래!"
“알았어.”
가볍게 등을 치고 일어서니 엄청난 장관이 펼쳐져 있었다.
좌우에는 새하얀 만년설과 빙하를 품은 산이 겹겹이 이어지고,
앞에는 거대한 용이 누운 듯 구불구불한 급류 흐르는 계곡이 있었다.
콰르르르릉-
거친 급류가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산산이 부서지며 천둥 치는 소리를 내고.
쏴아아아아-
부서진 강물이 새하얀 거품을 일으키는 곳마다 빛을 반사하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마치 신화 속 이무기가 용이 되어 비구름을 타고 승천하는듯한 모습!
천문석은 앞으로 나아가 선수 갑판 위에 섰다.
선수 갑판에 서자 속도감이 몇 배로 올라갔다.
쿠르르르릉-
강물은 태산을 무너트릴 듯 거칠고.
휘이이이잉-
바람은 구만리 장천을 날아갈 듯 빠르다.
호쾌하게 쏟아지는 강물과 바람을 보는 순간 치솟는 호연지기에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하하하-
이때 바람이 변했다.
휘이이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실린 엄청난 냉기!
갑자기 북극에 떨어진 듯 한겨울 칼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계곡을 흐르는 급류에서 열기를 품은 증기가 피어올랐다.
강물에서 피어오른 증기가 칼바람을 맞고 흩어져 낮게 안개가 되어 깔렸다.
던전 지도에서 읽었던 그대로다.
하나의 강이 흐르는데도 6층과 7층을 구분하는 이유 중 하나!
6층이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이 변화하는 것과 달리.
7층 산맥 속 분지는 언제나 하늘에선 한겨울 칼바람이 몰아치고, 땅속에는 엄청난 지열이 들끓는다.
이 매서운 한겨울 칼바람, 강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품은 증기는 목적지가 멀지 않다는 뜻!
이때 선장이 외쳤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저 앞에 입구 바위만 지나면 된다! 급회전할 거니 조심해라!"
멀리 강을 반으로 가르는 거대한 바위가 빠르게 가까워지자,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울었다.
콰르르르르-
운송선은 급류를 타고 단숨에 바위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이 순간 석양에 물든 거대한 분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늘을 받치는 벽 같은 산맥 한가운데, 강이 관통하는 거대한 분지.
이 거대한 분지에 도시가 있었다.
직접 오는 건 처음이었지만,
몇 번이나 사진과 영상으로 봐서 익숙했다.
바람은 한겨울 냉기를 품었는데,
이 분지에선 녹색 잎을 머금은 나무가 자라고 뿌연 증기가 솟는 호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 곳곳에 던전에 들어온 후로는 보지 못한 문명의 빛이 밝혀져 있었다.
전등.
이 모든 게 가능한 건 두 가지 덕분이었다.
분지 곳곳에 세워진 지열을 끌어올리는 증기탑.
분지 가장자리 산등성이에 설치된 마력 통신 안테나.
증기탑과 마력 통신 안테나가 서 있는 곳,
부산 던전 7층, 공방 도시!
마침내 배송의뢰의 목적지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