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88화>
지하철을 탄 천문석과 최설은 1시간 후 부산대역에서 내렸다.
“이곳에 부산 던전이 있어. 3번 출구였던 것 같은데···.”
부산대역 3번 출구에서 나오는 순간.
서쪽으로 쭉 뻗은 8차선 도로가 보였다.
이 8차선 도로를 따라 건물과 빌딩들, 가파른 경사지에 지어진 대학 캠퍼스, 높게 솟은 바위산이 줄줄이 이어졌다.
‘빌딩’은 부산 던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길드와 헌터 업체, 기업들.
‘대학 캠퍼스’는 부산대 부산 캠퍼스.
‘바위산’은 금정산이다
그리고 도로 끝에 있는 금정산이 이번 의뢰의 목적지, 부산 던전이 있는 장소였다!
금정산.
높이 801.5미터, 면적 51.7km^2의 부산에서 가장 높은 바위산!
하지만 지금의 금정산은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이트 전쟁 당시 금정산에서 던전이 발견되고 그 던전 안에서 엄청난 자원이 쏟아지면서.
금정산 전체를 평평하게 깎아내고 골을 메워 거대한 전진기지를 만들어냈다.
수백 미터의 절벽 위에 있는 금정산 전진기지.
이곳에 부산 던전의 출입구가 있었다!
천문석은 납작한 금정산을 가리키며 최설에게 말했다.
"저기 금정산이 우리 목적지! 부산 던전, 무한의 미궁이 있는 곳이다!"
"넵. 사장님!"
"우선 장비랑 보존 식품을 사자! 최설 사원!"
"넵! 알겠습니다!"
천문석은 씩씩하게 대답하는 최설 사원과 함께 빌딩이 늘어선 곳으로 이동했다.
부산대역에서 금정산까지 이어진 이 거리를 부산 던전 대로라고 부른다.
이 부산 던전 대로에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헌터 길드 대부분이 모여 있었다.
헌터 길드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헌터 업체들이 모여드는 법!
수많은 헌터 용품점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천문석과 최설은 한 헌터 용품점으로 들어가 배낭과 부산 던전 지도, 던전 나침반, 보존 식량과 자잘한 잡화를 샀다.
"7층까지 내려간다고?"
헌터 용품점 상인은 던전 지도를 건네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천문석과 최설을 봤다.
"5층 아래는 보통 팀으로 움직여서. 둘이서 6층 길 뚫기 쉽지 않을 텐데?"
이미 확인한 사항.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5층 거점 도시에서 다른 헌터들에게 끼어 갈 예정입니다."
상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함을 한 장 건넸다.
[형제 헌터 주점]
"5층 거점 도시에 있는 주점 명함이야. 나한테 소개받고 왔다고 말하면, 숙박비 좀 깎아주고 6층 내려가는 헌터들 소개해 줄 거야."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형제 헌터 용품'이란 간판이 보였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상점 주인.
"거기 내 동생이 하는 주점이야."
"감사합니다."
이제 준비는 끝.
바로 던전 지역으로 올라가면 된다!
명함을 받은 천문석은 바로 상점에서 나와 최설에게 확인했다.
"바로 던전 지역 들어갈 건데 괜찮나? 최설 사원."
"넵!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커다란 헌터용 배낭에 캐리어에 담겼던 의류와 장비를 모두 챙겨 넣은 최설이 각 잡힌 신병처럼 대답했다.
"그럼 바로 올라가자."
천문석과 최설은 버스를 타고 금정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부산 던전 대로와 부산대 캠퍼스를 지나 도착한 금정산 터널.
넓은 터널로 들어가고 잠시 후,
버스는 우회전해서 잠시 나아가더니 멈춰섰다.
덜컹-
버스와 장갑 SUV 5대가 멈춰선 곳에는 거대한 승강기가 자리했다.
천문석은 승강기와 하늘을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일종의 화물용 엘리베이터야. 광화문 게이트 지역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부산 던전이 있는 금정산 위는 이런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올라갈 수 있어."
이때 안전 요원이 엘리베이터 진입로를 난간으로 막고 경보 사이렌을 울렸다.
삐이이이이-
그리고 버스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안내 방송.
[이 버스는 금정산 정상, 부산 던전 지역으로 올라갑니다. 손님 여러분은 움직이지 마시고 손잡이를 잡고 있으시길 바랍니다.]
위이이이잉-
거대한 모터 구동음과 함께 6대의 차량이 서 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몸을 누르는 감각과 함께 수직 통로에 박혀있는 안전등이 빠르게 지나갔다.
잠시 후 환한 자연광이 쏟아지고, 네모난 천장 너머로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그리고 도착한 금정산 정상!
수백 미터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부산 던전 지역이 펼쳐져 있었다.
바둑판처럼 깔린 도로 주위 줄줄이 늘어선 상점과 파티원을 구하는 헌터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걷는 학생들과 일반인까지 광화문 게이트 지역과 비슷했다.
그러나 광화문 게이트 지역과 부산 던전 지역은 다른 점이 있었다.
천문석은 앞장서 걸어가며 주위를 훑어봤다.
거리를 걷는 헌터 반 이상이 비무장 비각성 헌터,
줄줄이 늘어선 헌터업 상점에 놓인 간판도 특이했다.
[오크 늪지 '원유' 최고가 매입!]
[초보 '광부' 환영. 장비 일체 제공!]
[고블린 광산 '철광석', '구리 광석' 고가 매입!]
....
이때 짐이 가득 실린 지게와 수레를 내려놓은 헌터들이 상점 주인과 협상하는 게 보였다.
"...아니, 기름값이 왜 이리 떨어졌어?! 예전 가격 1/3도 안 되잖아!"
"어, 3배나 차이 날 리가 없는데? 언제 거래했는데?"
"내가 똑똑히 기억해! 우리 막내 중학교 졸업식 날!"
"...야! 그때는 게이트 전쟁 끝나기 전이고! 해상 물류가 살아났는데 어떻게 그때 가격을 주냐! 이 미친놈아!"
"이거 코볼트 광산에서 캔 거라니까요! 여기 광석 노란 거 보이시죠?! 구리 함유량이 많으니까 더 쳐줘야죠!"
"코볼트 광산은 던전 1층에는 광맥 남아있는 게 없어! 이게 어디서 구라를!"
....
마수와 몬스터 부산물, 마석을 주로 거래하는 광화문 게이트 지역과 달리.
이곳 부산 던전 지역은 원유, 광석, 석탄 같은 천연자원이 주 거래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런 천연자원을 거래하는 헌터 대다수가 비무장, 비각성 헌터였다.
강화 전투복과 냉병기, 마탄총을 가지고 다니는 헌터보다.
커다란 수레와 지게에 천연자원을 산처럼 쌓아 끌고 지고 다니는 헌터들이 더 많았다.
이 헌터들이 게이트 전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부산 던전의 헌터들.
마수와 몬스터와 싸우는 전투 헌터가 아닌,
광석과 원유, 원자재를 캐서 나르는 헌터 일명 ‘생활 헌터’였다.
---
게이트 전쟁 초기.
한반도 곳곳에 게이트 마력장으로 인한 EMP 폭풍이 몰아치고,
주요 대도시에서 시차를 두고 열린 게이트에선 엄청난 규모의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졌다.
1차로 서울에서 밀려나고,
2차로 경기도 방어선이 깨지고,
3차로 평택-안성-충주 방어선까지 무너졌다.
국군이 전선을 만들고 마수와 몬스터들에게 화력을 투사해 밀어붙이려 할 때마다, 전선 뒤 후방 도시에서 시차를 두고 열리는 게이트와 그곳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들이 문제였다.
국군은 게이트가 열리지 않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났다.
다행히 국군이 전열을 유지해 후퇴하며 도로 거점을 끝까지 유지했기에, 국민 대다수는 낙동강 전선까지 무사히 피난할 수 있었다.
결국, 최종 전선은 낙동강 전선과 노령산맥에 걸쳐 만들어졌고.
국군은 이 전선에서 쏟아지는 마수와 몬스터를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국토 대다수를 상실한 암울한 상황.
당시 가장 큰 문제는 '식량'과 '원자재' 였다.
식량은 호남평야, 나주평야에 군사 작전하듯 파종하고 수확해 바닷길로 부산으로 수송해서 해결했다.
그때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용용이가 서해와 남해의 바다를 지켜줘서 식량 수송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노령산맥 위 호남평야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서해와 남해의 섬, 노령산맥 뒤로 밀려난 충청과 전라도의 주민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호남평야의 식량이 없으면 백만 단위로 아사자가 나올 상황이었다.
충청과 전라도의 주민과 군인들은 피해를 감수하고 어떻게든 쌀을 생산해 부산으로 보냈다.
여기에 더해 용용이로 근해 어업이 가능해 어떻게든 식량은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문제는 마수와 몬스터와 싸울 무기와 생필품을 만들 원유와 광석, 석탄, 종이 같은 ‘원자재’였다.
전 세계에 게이트가 열리며 원자재 가격은 폭등했고,
이마저 해양 마수와 몬스터로 해양 물류가 막히면서 수입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하늘길은 아직 열려 있었으나,
항공 물류만으로 대한민국이 필요한 원자재를 모두 수급하는 건 불가능했다.
정부 비축 물자가 있었으나, 한국은 전형적인 자원 수입국.
해외원자재 수입 없이 소모만 하는 상태로 해양 물류가 뚫릴 때까지 몇 년이나 버틸 수는 없었다.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든 원자재를 구하려 온갖 방법을 사용했으나 해양 물류가 막힌 상태에서는 소모속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비축된 원자재는 바닥을 드러내고 공장은 하나둘 가동을 중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민간에 풀리던 생필품이 바닥나고,
뒤이어 군에 보급되던 생필품과 전차와 차량을 돌릴 기름, 포탄과 화약마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검은 폭풍과 국군은 사력을 다해 낙동강 전선을 지켰지만.
탄환과 포탄이 모두 소모되면 검은 폭풍이라는 천외천의 각성자가 있어도 낙동강 전선은 붕괴한다.
낙동강 전선이 붕괴하면 노령산맥 이남, 남해와 서해의 섬, 서울에 거점을 유지 중이던 사람들까지 줄줄이 무너진다.
이렇게 한반도의 거점을 모두 잃게 되면 끝장이었다.
안전지대 제주도가 있었지만, 모든 국민을 제주도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고.
만약에 옮긴다고 하여도 제주도만으로는 수천만의 국민을 부양할 수 없었다.
대안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피난시키는 것.
하지만 중국의 경우 남중국은 한국보다 더한 난장판이고, 북중국으로 가는 서해 길은 정체불명의 장벽으로 막혀 있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부산에서 쓰시마를 거쳐 일본 규슈 지방으로 국민을 피신시키는 것.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가능성을 확인했고 곧 논의가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북 규슈 지방을 피난처로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원하는 대가가 황당했다.
검은 폭풍과 1세대 헌터들!
일본은 이상할 정도로 각성자가 많이 나타난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각성자들을 일본 게이트 전쟁에 동원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들을 내어준다는 것은 한반도 수복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낙동강 전선과 노령산맥을 피로 지키고.
호남평야에서 목숨을 걸고 식량을 수확하고.
마수와 몬스터와 싸워 보급로와 거점을 지켜온 국민.
대한민국 국민은 이 제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난 여론이 폭발하려 할 때.
부산 금정산에서 던전이 발견됐다.
수천만의 시민이 피신한 낙동강 전선 최후방 부산에 나타난 던전.
까닥 잘못해서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지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낙동강 전선에 모든 역량을 투입한 군은 민간 각성 헌터들을 이 던전 조사에 파견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은 이 던전 안에서 엄청난 양의 광석과 석탄, 석유와 희귀금속, 원자재가 쏟아져 나왔다.
층마다 다른 환경이 나타나는 거대한 개방형 던전, 부산 던전이 발견된 것이다!
10대에서 80대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수백만의 피난민들이 움직였다!
군인들이 낙동강 전선과 노령산맥에서 버티는 사이에.
헌터와 일반인들이 이 개방형 던전으로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해 거점을 만들고 총과 탄환, 무기와 생필품을 만들 원자재를 캐내고 날랐다.
게이트 전쟁 초기 부산 던전 1층은 몬스터 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도로도 없었고 정제 마석으로 움직이는 마력 엔진도 개발되기 전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된 화물차 사용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광석이 가득 들린 바구니, 원유가 담긴 드럼통을 '지게'로 실어 날랐다.
천문석은 무공에 다시 입문하기 전, 자원입대를 위한 체력 훈련으로 완전 군장 행군 연습을 했던 적이 있었다.
수많은 노가다로 단련됐는데도 메는 순간 어깨가 끊어질 듯 조여드는 배낭의 무게!
어이가 없어 배낭의 무게를 몇 번이나 재봤다.
그때 멘 배낭의 무게가 불과 40kg!
건장한 성인 남자가 보통 지게로 60kg 정도를 나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낙동강 전선이 무너질 위기 상황, 던전에서 원자재를 나른 사람들은 상상 이상의 일을 해냈다.
100kg 드럼통을 지게를 짊어지고 옮기는 아주머니.
철광석 가마니를 수백 개를 하루 18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나른 장년인.
....
마력 엔진 화물차도 없고, 수레도 쓸 수 없는 던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지게 끈으로 어깨가 쏠려 터지도록 원자재를 실어 날랐다.
이곳 금정산 정상에는 끝없이 이어진 지게 행렬이 생겨났었다고 한다.
이렇게 지게로 던전에서 실어 나른 원자재는 지금 천문석이 걷고 있는 이 평평한 금정산 정상, 부산 던전 지역에 쌓였다.
그리고 공장으로 이동해 무기와 탄약, 생필품이 됐고, 낙동강과 철도를 이용 낙동강 전선과 피난민들에게 보급됐다.
부산 던전에서 지게를 짊어지고 원자재를 나른 수많은 사람 한 명 한 명의 힘이 모여, 공장이 가동 중지되고 전선이 무너질 뻔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때 지게를 짊어진 사람들은 ‘생활 헌터’라고 불리게 됐다.
전투 헌터가 마수와 몬스터와 싸워 나라를 지켰다면,
생활 헌터는 지게로 원자재를 옮겨 나라를 지켰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수많은 생활 헌터, 학생들, 일반인들이 들어가는 계단이 보였다.
이 거대한 계단이 부산 던전, 무한의 미궁 입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