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87화>
'레이 실트.'
의뢰인이 찾는 이름이 현대 정보컨설팅 그룹에 전해졌다.
현대 정보컨설팅그룹은 말이 정보컨설팅그룹이지 실상은 사람 찾기, 뒷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심부름센터였다.
직원이라고 해봐야 유희명 대표와 임제원 실장 단 두 명뿐.
현대 정보컨설팅그룹이란 이름만 거창할 뿐 광화문 뒷골목에 흔한 헌터업 심부름센터, 소규모 정보상과 하는 일은 똑같았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의 약력이었다.
다른 광화문 정보상 대부분이 헌터 업계 출신인 데 비해서.
유희명 대표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 출신,
임제원 실장은 방첩 부대를 걸친 검찰 조사관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의욕적으로 ‘현대 정보컨설팅그룹’을 창업했지만, 일거리는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때 유희명 대표가 전직을 살려 포탈 지식인에 바이럴 마케팅을 했고 이게 대박이 터졌다.
포탈의 실린 바이럴 마케팅을 보고 남미에서 온 4인조 헌터들이 임제원 실장에게 의뢰한 것이다.
그리고 이 4인조 헌터들에게 암살검 한경석이 수배를 걸었다!
게다가 어이없게도 이 4인조 헌터들은 암살검의 안전 호텔에서 숙박하고 있었다!
4인조 헌터가 암살검에게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이들이 걸리면 현대 정보컨설팅그룹도 같이 박살이 날 상황!
이때 유희명 대표는 승부수를 띄웠다.
유희명 대표는 걸리기 전에 먼저 암살검을 찾아가 4인조 헌터의 정보를 넘겼고.
암살검은 그 대가로 자신의 안전 호텔에 현대 정보컨설팅그룹 사무실을 내줬다.
암살검의 안전 호텔에 사무실이 있다는 것은, 현대 정보컨설팅그룹이 암살검의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
그리고 광화문 뒷골목에서 암살검을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보상에게 가장 중요한 뒷배를 해결한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승승장구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았지만, 현대 정보컨설팅 그룹은 직원 10명의 잘나가는 정보상이 됐다.
그리고 지금 유희명 대표와 임제원 실장, 대학 선후배인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머리를 모았다.
한층 강화한 지식인 바이럴 마케팅에 낚인 의뢰인이 보내온 이름.
'레이 실트'를 앞에 두고!
유희명 대표는 정보상 사이트를 띄운 태블릿을 가리키며 외쳤다.
"제원아! 촉이 온다! 이게 우리에게 엄청난 기회가 될 거라는 촉이!"
임제원 실장은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 아니 희명 누나. 이 정보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몰라요? 이거 잘못 건들면 우리 박살 나요!"
임제원 실장은 태블릿을 스크롤 해 게시판의 아이디를 하나하나 짚으며 말했다.
"이탈리아, 모로코, 터키 대사관."
"스페인, 이란 공기업."
"이거랑 이거는 정보기관 위장기업"
"얘랑 얘는 군수업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여기까지는 이 아이디들은 전부 정보상입니다."
임제원 실장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겠죠?"
"나야 당연히 모르지? 하하하-"
해맑게 웃는 대학 선배 유희명 대표에게 임제원 실장은 다시 한번 설명했다.
"지금 해외 외교관, 공기업, 정보기관 군수업체, 정보상까지 동시에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체는 세계에 20개도 안 될 겁니다. 이거 우리가 끼기에는 너무 큰 판이에요. 게다가 한국에 있는 '레이 실트'는 모조리 파악을 끝냈을 겁니다. 이거 지금 의뢰받고 들어가 봐야 헛물만 켜다 끝나요."
“제원아.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냐?”
“네?”
반문하는 순간 유희명 대표는 씨익 웃으며 태블릿 화면을 휙- 스크롤 했다.
주르륵- 화면을 스쳐 지나가는 끝없는 게시물들!
"그런데 왜 게시물들은 더 늘어나고 있을까? 그리고 왜 제보 현상금은 더 오를까? 타겟을 특정했다면 둘 다 줄어야 하잖아?"
"어, 그러고 보니···. 설마!? 선배 뭔가 알아낸 겁니까?!"
임제원이 기대 어린 표정을 짓는 순간.
유희명 대표는 책상을 쾅- 내려치며 외쳤다.
"이 모든 게 가리키는 건 하나야! ‘레이 실트’가 한국에 없다!"
"...."
유희명 대표를 한심한 표정으로 보는 임제원 실장.
"아니, 한국에 없으면 어차피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없는데. 뭐 그걸 대단한 것처럼 말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한국인데 한국이 아닌 곳 있잖아! 거기에 있다는 거지!"
“....!”
순간 임제원 실장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장소들.
던전, 균열, 마경!
한국인데 한국이 아닌.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게이트 너머 이세계의 거점 도시들!
이런 곳으로 스며 들어갔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임제원 실장은 의기양양한 유희명 대표에게 물었다.
“아니 선배. 이세계나 외국이나 어차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똑같잖아요? 어떻게 찾으려고요?”
"아니지! 소문을 낼 수 있잖아!"
"네, 소문이요? 그게 잘될 리가···."
유희명 대표는 후배의 말을 끊었다.
"바이럴 마케팅의 시작이자 끝!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뽑아낼 자극적인 워딩!"
위험한 빛이 감도는 눈을 번뜩이며 말을 잇는 유희명 대표.
"게이트, 던전, 마경에 들어가는 헌터들에게 소문을 내는 거다! '레이 실트'를 애타게 찾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제보해달라고!"
"의뢰인의 사정을 팔자고요? 바쁜 헌터들이 제보해달라고 해줄 리가 없는데···."
“여기서 핵심이 나온다! 이렇게 말하는 거지!”
유희명 대표는 목소리를 깔고 비밀을 말해주는 사람을 연기했다.
“이건 비밀인데 말야 사실 '레이 실트'를 찾고 있는 사람이 어마어마한 거물이야! 엄청난 사례를 받을 수 있으니 꼭! 이 번호로 연락해줘!”
"거물이요? 우리 의뢰인이? 아니 제가 보기에는 의뢰비 깎는 게 개털 같던데···."
임제원 실장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유희명 대표는 창밖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연히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지.”
임제원 실장은 대표가 무슨 말을 할지 이제야 감을 잡았다.
의뢰인이 거물이라고 구라를 치겠다는 이야기!
"왜? 이태성 길드장 잃어버린 동생이란 소문이라도 내려고요?"
임제원 실장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야, 그건 너무 갔다!"
"역시 그렇죠? 이태성, 레이 실트 이름도 너무 다르고 말이죠? 하하하-"
"그렇지! 흐흐흐- 그래서 재금 그룹 오너의 숨겨진 후계자라고 했어."
“하하하- 아, 그건 먹히겠···. 어!?”
순간 웃음을 뚝 그친 임제원 실장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레이 실트가 재금 그룹 ‘오너’의 숨겨진 후계자라고 했다고."
"어, 어어어어어?!"
벌떡 일어선 임제원 실장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재금 그룹 오너의 숨겨진 후계자, 레이 실트!]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모든 생각이 사라져 버린다!
"어때 워딩이 완전 자극적이지? 듣는 순간 머리에 확 박혀 들어서! 절대 잊혀지지 않지?!"
"선배!! 재금 그룹을 팔겠다니 미쳤습니까?! 걔네들 완전···!!"
임제원 실장은 말하던 도중 깨달았다.
'...후계자라고 했어.'
'...후계자라고 했다고.'
[했어].
[했다고].
"선배 설마 벌써···!!"
유희명 대표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책상 서랍을 열고,
보통 스마트폰 2배 크기의 보안 스마트폰을 꺼내 임제원 실장에게 건넸다.
"보안 스마트폰이다. 곧 헌터들한테 연락 쏟아질 테니까. 우리 힘내자 제원아!"
"암살검 찾아가는 미친 짓을 했을 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으아악!"
임제원 실장이 괴로워할 때.
유희명 대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잇달아 말했다.
"어허, 미친 짓이라니!"
“난 철저한 분석 끝에 움직이고 있는 거야!”
“헌터 게시판 봤지?! 어차피 지금 난장판이라 소문 출처 아무도 못 찾아!”
"이건 승부수다! 저번에도 내 승부수로 이 사무실 얻는 대박 났잖아?!"
"조금만 기다려라! 곧 대한민국 전체가 뒤집힐 테니까!"
“그때 우리는 재빨리 정보를 받아서 의뢰인에게 넘기고 빠지면 되는 거야!”
유희명 대표의 말대로였다.
바이럴 마케팅의 시작이자 끝은 자극적인 워딩.
정계, 재계, 뒷골목 정보상까지 은밀히 '레이 실트'를 찾던 움직임은.
누가 퍼트렸는지 모를 하나의 ‘워딩’에 모조리 집어 삼켜져 버렸다.
[재금 그룹 오너의 숨겨진 후계자, 레이 실트!]
재금 그룹은 수많은 사고를 친 초거대기업,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과 나라가 눈치를 봤다.
당연히 공중파뿐만 아니라 인터넷 언론사, 뒷골목 찌라시, 대형 정보상까지 모두가 재금 그룹 앞에선 몸을 사렸다.
하지만, 고대의 절대 권력자라도 사람들의 입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했다.
재금 그룹 오너의 숨겨진 후계자 레이 실트 이야기는,
순식간에 한국 전체와 게이트, 던전 너머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이럴(viral) 마케팅이라는 말대로,
바이러스(virus)처럼 엄청난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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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50분,
서울에서 출발한 KTX 고속 열차가 부산역에 도착했다.
천문석은 최설과 부산역 밖으로 나와 주위를 돌아봤다.
몇 년 전 수학여행을 왔을 때보다 더 커진 부산역 광장!
넓은 광장 너머 부산 지하철 1호선 부산역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부사장님! 제가 콜택시를 바로 부르···."
"저기 1호선 지하철로 이동하면 던전까지 금방이야."
천문석은 최설의 말을 끊고 앞장서 광장을 가로질렀다.
마침 수학여행 시즌.
부산역 광장에는 밝은 얼굴의 학생들과 어두운 얼굴의 학생들이 교차했다.
천문석은 얼굴만 봐도 학생들의 수학여행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밝은 얼굴의 학생들은 제주도, 북중국, 일본등.
어두운 얼굴의 학생들이 가는 곳은 '부산 던전'!
그리고 어두운 얼굴의 학생들도 두 무리로 나뉘었다.
"우리도 제주도나 가지!"
"최악의 수학여행이었어···."
"으으윽- 팔다리 안 아픈 데가 없어!"
....
초췌해진 얼굴로 광장 바닥에 주저앉은 학생들.
"부산 던전 생각보다 재밌지 않을까?"
"우리 엄마도 피난 왔을 때 했었는데 할 만하다던데?"
"맞아. 우리 할머니는 몇 년을 날랐는데. 뭐, 하루쯤이야···."
....
어두운 표정으로도 호기롭게 외치는 학생들.
이때 호기롭게 외치는 학생 앞을 지나가던 헌터가 피식 웃으며 지갑을 꺼내는 게 보였다.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학생 앞에 불쑥 내밀어지는 5만원권 지폐.
"....네?"
"헌터 아저씨? 이건 갑자기 왜?"
학생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헌터는 학생 손에 돈을 쥐여주고 어깨를 툭- 치고 걸어갔다.
"걍 받아라."
갑자기 돈을 받고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학생들은 곧 환호성을 지르며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우와아아-
"웬일이니! 꺄-"
"우리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이들의 모습을 광장 바닥에 주저앉은 학생들이 불쌍하게 바라봤다.
"....하, 불쌍한 녀석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문득 고개를 들어 광장 주위를 살피자,
넓은 부산역 광장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돈을 쥐여주는 헌터와 일반인들.
-쥐여준 돈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환호성을 지르며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학생들.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들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는 초췌한 얼굴의 학생들.
천문석은 내심 웃음이 나는 걸 느꼈다.
저 학생들의 모습에서 예전에 부산으로 수학여행 온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자신도 이곳에서 처음 보는 헌터가 쥐여주는 돈을 받고 환호성을 지르면 편의점으로 달려갔었다.
부산 던전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헌터와 일반인들이,
부산 던전으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용돈을 주는 건 십 년이 훌쩍 넘은 관습이었다.
이 관습을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르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부산 던전에 들어가는 걸 '게이트 전쟁 체험'이라고 한다.
최후의 만찬.
게이트 전쟁 체험.
경험에서 배운다는 수학여행의 말대로 학생들은 게이트 전쟁 당시 부산에 모인 피난민들이 했던 것처럼 부산 던전 1층에서 광석, 원유, 석탄 같은 천연자원을 나르는 체험을 하게 된다.
지게로!
슬쩍 고개를 돌리자 메고 있는 커다란 배낭 아래 단단히 고정한 철봉 무더기가 보였다.
[조립식 지게.]
이 조립식 지게가 그때 당시 부산 던전에서 천연자원을 나르던 지게였다!
천문석은 문득 든 생각에 옆에서 캐리어를 끌고 있는 최설에게 말했다.
"최설. 이거 받아라."
"네?"
반문하는 최설의 눈앞,
천문석이 내민 만원 지폐 한 장이 있었다.
"부사장님. 이건 왜?"
"이거 부산 던전 들어가기 전에 하는 일종의 관습 같은 거야. 저기 편의점 가서 먹고 싶은 거 사 오면 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부사장님!"
최설은 관습이란 말에 만원 지폐를 공손히 받아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다다다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최설에게 학생들의 측은 해하는 시선이 쏟아졌다.
"저 언니도 지게 짊어지러 가나 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