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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84화 (385/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84화>

하하하하하-

참을 수 없는 희열에 웃음이 터지는 순간.

스마트폰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흠, 흠···.

“뭐야, 아직 있었냐? 김과장 너 안 바빠? 왜?”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기어들어 가는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 3명이 새벽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사들? 걔네들 동대문 게이트 협상단 아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정보 컨설팅 업체, 헌터 정보상, 뒷골목 거물들과 접촉해서 누군가를 찾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

재빨리 수첩을 꺼내 다시 확인했지만, 관련 사항은 전혀 기록되어있지 않았다.

이건 큰 변수가 아니라는 건가?

W. S. 인더스트리 이사들은 미국과 유럽의 유력 가문 출신들.

W. S. 인더스트리의 오너가 나이트 아머라는 먹음직한 떡을 나눠주고 귀찮은 일을 막기 위한 방파제로 세운 사람들이다.

몇몇 이사를 제외하곤 가진 영향력에 비해 실력은 대단하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던전에 넣어둘까?

문득 생각했지만, 부산 던전 협상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괜한 일을 벌였다가 협상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탁, 탁, 탁-

핸들을 두들기며 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그냥 이번 변수는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됐다. 걔네들은 신경 쓸 거 없다. 그냥 냅둬."

=......

명령이 떨어졌는데도 끊기지 않는 전화.

"왜? 또 뭐?"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아직 천호 그룹을 어떻게 할지 지시를 안 하셨습니다.

“하, 그렇지. 천호 그룹이 있었지! 뭔 사고를 이렇게 쳐! 아니, 재벌도 됐겠다. 적당히 먹고 살면 되지! 뭔 맞선이야! 걔네가 항상 골치네. 하, 시바! 그냥 밀어 버릴까? 아니지, 여파가 이상한 방향으로 미칠지도 모르는데···.”

남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명령했다.

“우선 천호 그룹은 액션 취하지 말고 그냥 정보만 모아둬라. 이번 일 끝내고 날려버릴지 결정한다.”

=네, 알겠습니다. 정보 수집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끊은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계속 북쪽으로 화물차를 운전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넓은 벌판에 솟은 백여 개의 얼음 기둥이 나타났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도 조금도 녹지 않은 얼음 기둥들!

“여기구나!”

남자는 화물차를 얼음 기둥 한가운데로 운전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냉기!

얼음 기둥에 가까이 갈수록 냉기는 점점 강해졌고, 수정처럼 투명한 얼음 기둥 안에 갇힌 존재들이 보였다.

붉은 송곳니 검치호.

바위처럼 거대한 백곰 마수.

전신에 이끼가 낀 늪지 트롤.

....

하나같이 강대한 마수와 몬스터 백여 마리가 각각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이 투명한 얼음 위를 흐르는 마력광!

남자는 이 마력광을 한눈에 알아봤다.

열을 삼키는 냉기 불꽃,

서리혼의 마력광이다!

---

서리혼으로 만들어낸 얼음 기둥.

이 얼음 기둥은 서리 늑대가 만든 영역 표시다!

“생각보다 서리 늑대 영역이 남쪽까지 내려왔는데?”

휘이이-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주위를 확인했다.

엄청난 냉기를 쏟아내는 얼음 기둥이 서 있는 들판!

이곳 주위에선 마수와 몬스터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리혼의 마력이 흐르는 이 백여 개의 얼음 기둥은 재앙급 마수, 서리 늑대의 상징!

이 들판에선 뜨거워야 할 여름 햇볕조차 서늘하고 바람 소리, 새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거대 괴수, 재앙급 몬스터가 아닌 이상 서리혼의 마력이 흐르는 이곳에는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리고 느껴졌다!

북쪽 까마득히 멀리 있는 산맥에서 몰아치는 극저온의 냉기 폭풍이!

"음···. 마력 파동이 전해지고 도착하는데 5일 정도 걸리려나?"

타이밍이 2, 3일 정도 빠르겠지만, 늦는 것보다는 낫다.

남자는 바로 움직였다.

화물차 짐칸을 열고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금속 상자’를 꺼내 수많은 얼음 기둥 중간에 놓았다.

탁-

파스스슥-

얼음 기둥 중간에 놓이는 순간.

엄청난 냉기에 벌써 하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금속 상자.

남자는 바로 화물차 보닛을 열고 ‘복합 엔진’의 보호 덮개를 벗겨냈다.

그리고 왼손을 드러난 복합 엔진에 올리고 오른손에는 품에서 꺼낸 회중시계를 잡았다.

[11:58]

정확히 시간을 맞췄다!

초침이 한 바퀴 회전하여 시간은 [11:59].

그리고 초침이 정오를 향해 움직인다.

틱, 틱, 틱-

이 순간 남자는 마력장을 끌어올리며 집중했다.

그리고 [12:00] 이 되는 순간.

복합 엔진에 올린 왼손으로 마력장을 쏟아부었다!

파아아아아-

엄청난 마력장이 쏟아지는 순간.

쿵쿵, 쿵쿵쿵-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하는 복합 엔진!

이 순간 쏟아부은 마력장이 몇 배로 강해진 파동이 되어 돌아온다!

왼손을 타고 들어와 몸을 흘러 오른손의 회중시계에 집중되는 마력 파동!

쿵쿵, 쿵쿵쿵-

회중시계에 임계점을 넘은 마력 파동이 집중되는 순간.

파스슥-

회중시계에서 푸른 마력광이 쏟아지고.

시계바늘이 빙글빙글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틱, 틱, 틱틱틱-

시계 판 아래에 나타난 숫자와 문자가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시계 판 위에 새겨진 성좌(星座)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던 어느 순간.

남자의 눈에서 섬광이 쏟아졌다.

찰칵-

번개같이 회중시계의 용두를 누르는 동시에.

시계 판에 나타난 숫자와 문자, 성좌가 고정된다!

남자는 즉시 설정이 완료된 회중시계를 던졌다!

휙-

푸른 마력광을 품은 채 허공을 날아간 회중시계가 얼음 기둥 중간에 놓인 금속 상자를 때렸다.

파스스슥-

과전류가 흐르듯 금속 상자 전체에서 치솟는 마력 스파크!

철컥, 철컥, 철컥-

금속 상자가 순식간에 분해되고 가느다란 막대기가 하늘로 뻗어 올랐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

막대기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직선으로 까마득한 높이까지 솟았다!

곧 얼음 기둥 한가운데 수백 미터 길이의 막대기가 생겨났다.

쿵, 쿵, 쿵, 쿵, 쿵-

이 막대기에서 손에 잡힐 듯 강력한 마력 파동이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분해된 금속 상자에서 느껴지는 진동!

윙, 윙, 위이잉-

이 순간 남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금속 상자와 마력 파동.

‘덫과 미끼’ 모두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주위의 마력 농도가 임계치를 넘으면 금속 상자,

마력 파동 발생장치는 예전처럼 '게이트'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하늘 고래를 돌려보낼 때 엄청난 념(念)이 필요했듯, 어지간한 마력 농도로는 게이트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없다.

남자는 까마득히 먼 북쪽, 이 덫과 미끼로 잡으려는 타겟이 있는 산맥을 바라봤다.

서리 늑대 무리!

서리 늑대 무리가 품고 있는 서리혼!

그 서리혼이라면 게이트를 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이트는 자신이 설정한 대로 서리 늑대 무리를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낼 것이다!

하하하하하-

남자는 통쾌한 웃음을 터트린 후.

재빨리 회중시계를 줍고 복합 엔진 보호 덮개를 씌우고 보닛을 닫았다.

그리고 바로 화물차 운전석에 앉아 달려온 방향으로 도망쳤다.

부으으으으으응-

엄청난 속도로 벌판을 질주하는 복합 엔진 화물차!

남자는 쉴 새 없이 주위를 확인하며 화물차를 몰았다.

화물차는 강력한 은폐 마력장을 흘려보내고 있지만,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서 또 다른 사건이 터져 구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마무리 직전에는 더 조심해야 하는 법!

특히 미끼에 낚인 서리 늑대에게 재수 없게 뒤를 잡혀 이 화물차가 부서지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W. S. 인더스트리의 비밀 연구소에서 빼돌린 복합 엔진, 아니 파동 엔진은 이 화물차에 달린 게 유일하니까!

순간 파동 엔진 도난 사실에 스패너를 집어 던지며 분통을 터트렸을 W. S. 인더스트리 오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 내가 그 모습을 직접 봐야 했는데!"

흐흐흐-

남자는 웃음을 터트리며 품에서 오래된 가죽 수첩을 꺼내 뒷부분을 펼쳤다.

수첩 안, 색 바랜 종이에는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러나 이 일들은 부산 던전에 도착한 후에나 할 일들이었다.

즉, 2, 3일 정도는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간만의!

정말 간만의 휴식!

"서울로 돌아가면 늘어지게 자야지!"

환호성을 지르며 수첩을 탁- 접는 타이밍!

부르르르르-

스마트폰이 다시금 진동했다.

"뭐야? 이 타이밍에?!"

어이없어하며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화면에 떠오른 이름.

[김제철 - 천호 유통 사장]

몇 시간 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천호 그룹에서 온 전화였다.

"하- 항상 얘네들이 문제네! 이번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분통을 터트리던 남자는 곧 목소리를 가다듬고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김철수입니다."

---

부산행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최설은 스마트폰을 내밀며 의욕적으로 외쳤다.

"부사장님. 이번 의뢰에 필요한 대여금고, 길잡이, 짐꾼···. 리스트를 뽑았습니다! 부사장님이 선택하시면 바로 고용 가능합니다! 부산역에 도착하는 즉시 같이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천문석은 의욕적인 최설을 보며 새삼 감탄했다.

역시, 거대 조직 삼합회의 비서 출신!

최설에게는 VIP가 잠시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 처리를 하도록 치밀하게 보좌하던 비서 시절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김철수 사무실은 삼합회와 달랐다.

그래서 천문석은 최설이 잊고 있던 사실을 말해줬다.

"최설 사원."

"네 부사장님!"

"우리는 몸으로 때울 거야."

"네?"

동그랗게 눈을 뜬 최설.

천문석은 최설의 스마트폰을 짚으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대여금고?"

배낭을 툭 치는 천문석.

"그냥 이 배낭에 넣어서 들고 갔다고 돌아오면 되고."

"...."

"길잡이?"

의뢰서에 붙어 있던 지도를 흔드는 천문석.

"이 지도랑 던전 입구에서 지도책 사서 직접 찾아가면 되고."

"...."

"짐꾼?"

튼튼한 방수천에 들어있는 철봉 무더기를 툭 치는 천문석.

"우리에겐 이 조립식 지게가 있잖아! 하하하-"

천문석이 웃는 순간.

왠지 모를 싸한 느낌에 어깨를 떠는 최설.

이때 천문석이 툭, 툭- 최설의 어깨를 두들기며 씨익 웃었다.

"최설 사원. 지금은 편하게 쉬라고. 부산 던전에 가면 한동안 힘들 테니까 말야."

“네 부사장님···.”

천문석은 최설의 목소리를 들으며 좌석에 편하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에 빠져드는 순간 얼핏 뉴스 소리가 들려왔다.

[...로롤로 이사와 협상단이 인천공항에···.]

'로롤로? 어디선가 들은 이름 같은데···.'

생각이 이어지려는 찰나, 천문석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옆자리의 최설도 눈을 감았다.

그러나 최설은 왠지 모를 예감에 다시 눈을 뜨고 잠든 천문석과 배낭, 캐리어, 튼튼한 방수천에 싸인 조립식 지게를 번갈아 봤다.

뇌리가 간질간질하며 뭔가가 떠오를락 말락 하고 가슴이 콩닥, 콩닥 불안하게 뛰었다!

“뭔가, 뭔가 감이 안 좋아···.”

최설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할 때.

KTX 통로 위 텔레비전에서는 한 비행기가 인천 국제공항 활주로에 착륙하는 뉴스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비행기 동체에 새겨진 이름은 ‘W. S. 인더스트리’ 였다.

천문석과 최설이 부산행 KTX를 타고 부산 던전으로 향하고 있을 때.

로롤로 이사와 협상단 직원들을 실은 W. S. 인더스트리의 전용기가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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