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80화>
아침 식사를 끝내고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천문석은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신 임옥분 여사님께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전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 여사님 항상 건강하세요."
"문석아. 조심해서 올라가라. 그리고 언제든 쉬고 싶을 때면 내려와. 이 집이랑 농장 모두 ‘내 거다!’ 생각하면 된다. 내 마음 알지?"
흐흐흐-
작고 거친 손으로 손을 꽉 움켜잡으며 음흉하게 웃으시는 임옥분 여사님.
역시, 임옥분 여사님!
마지막까지 빈틈을 노리신다!
하, 하하하-
천문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슬그머니 손을 빼냈다.
그리고 바로 고개를 돌려 임옥분 여사님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철수형 잘 해보세요. 흐흐흐-"
"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특급 헌터 재밌게 놀아라."
"열심히 할게! 알바. 로봇 주우면 연락줘. 내가 매일매일 열심히 기도할 거니까! 금방 주울 거야!"
"당연하지! 바로 연락할게!"
"세연. 먼저 올라간다. 조심해서 놀아. 다치지 말고."
"하, 내가 앤가? '오빠'나 조심해. 의뢰 중에 다치지 말고! 알았지 '오빠'?"
류세연은 임옥분 여사님을 힐끗 보며 도발하듯 미소 지었다.
하, 이 정신연령 꼬맹이 녀석!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재빨리 다가가 류세연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파바바밧-
"으앗! 이게 뭐야!?"
엉클어진 머리로 보복하러 달려드는 류세연을 밀어낸 천문석은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여사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잘 쉬다가 올라와. 세연아 내 짐 좀 부탁할게. 바로 사무실로 갈 거라."
"뭐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부탁하지 마!"
분통을 터트리는 류세연.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특급 헌터를 봤다.
"알바. 걱정하지 마! 나만 믿어!"
"앗, 앗! 특급 헌터 그러면 안 돼!"
"문석아 조심하고. 혹시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라."
"네 철수형 걱정마세요."
정신없는 작별이 끝나고 천문석은 배낭만 하나 메고 경호원이 운전하는 장갑 SUV를 탔다.
임옥분 여사님, 류세연, 특급 헌터, 철수형.
네 사람을 뒤로하고 천문석이 탄 장갑 SUV는 제주 국제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으로 가는 도로.
조수석의 보안요원이 뒷좌석의 천문석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곧 대표님 전화가 올 예정입니다."
기이이잉-
그리고 앞 좌석에서 올라오는 방음벽.
쿵-
방음벽이 좌석을 차단했을 때 전화기가 진동했다.
"대표님?"
=네. 장민이에요. 올라가신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려고 했는데···. 하아- 이 미친놈들이 갑자기 서버를 내려서···. 얼굴도 뵙지 못하게 됐네요.
얼핏 어제저녁에 본 뉴스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역대급 변동성을 보인 KOSPI, 뒤이어 개장한 세계 증시의 변동성.
구체적인 사정은 몰라도 장민 대표가 밤새 정신없이 움직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 대표님. 잘 쉬고 올라가고 있습니다. 차도 보내주시고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드려요. 전해주신 정보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반드시 보답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전에 위탁한 물품 오늘 밤 경매를 한다고 하네요.
이세계 쿠팡맨 때 마스터 급 오크와 싸워 얻은 뼈 도끼와 상급 마석 경매 이야기다!
=경매 끝나면 관련 서류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뭘요. 당연한 건데요. 오히려 제가 받은 도움이 너무나 많네요. 조만간 다시 찾아서 정식으로 감사드릴게요. 그리고 서울행 비행기 표 제가 준비했어요. 제 호의니 거절하지 말아 주세요. 그럼 일 잘 처리하세요.
"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천문석은 전화 통화를 끝내고 방음벽을 전화기로 두들겼다.
톡, 톡-
위이이잉-
곧 방음벽이 내려가고 전화기를 받은 경호원이 비행기 티켓을 내밀었다.
"대표님이 준비하신 서울행 항공권입니다."
"감사합니다."
건네진 항공권은 일등석 표였다.
그리고 경호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포 공항에 내리시면 본사 직원이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마치 대기업 임원이라도 된듯한 대접이지만, 이 또한 장민 대표의 호의.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장갑 SUV는 곧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천문석은 VIP 라운지를 거쳐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잠시 후 비행기는 이륙했고,
일등석 창밖에 비치는 제주도의 모습은 빠르게 멀어졌다.
천문석은 감회에 젖어 들었다.
제주도 휴가는 처음 올 때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감귤 따기로 시작해.
거대 괴수, 마신의 강림체와 싸우고.
카지노 나이트에서는 하이라이트를 찍었다.
이세영 선생님, 이태성 길드장, 거대 거북이, 용용이.
수많은 마수, 갑자기 도끼를 던진 놈들, 무장간첩선과 간첩 수백 명.
이 모두가 뒤섞인 난장판에서 구르고 굴렀다.
기대했던 보상을 얻지는 못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화로, 열기와 냉기를 뿜어내는 사령 화로를 얻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아니 썩 괜찮은 결말이다.
피식 웃은 천문석은 넓은 일등석 좌석에 몸을 기대며 팔다리를 쭉 뻗었다.
다음 일은 이세계 쿠팡맨 때 만난 재금 연구소 추이린의 의뢰.
아마도 이세계 '쿠팡맨 2'를 찍게 될 거다.
하지만 자신은 '쿠팡맨 1' 때의 초짜 헌터 천문석이 아니었다.
문득 손을 들어 내력을 일으킨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폭풍처럼 일어나는 내력!
저릿저릿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터질듯한 긴장감이 주위에 감돌았다.
폭풍 전야라도 된 듯,
공간을 장악하는 일기일원공!
일기일원공은 어느새 입문의 단계를 넘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주도의 난장판을 헤쳐나오며,
하늘의 저울이 확 기울 정도의 업이 쌓였다!
늪지 트롤과 마스터 급 오크,
수백의 마수와 몬스터 무리!
지금의 자신이라면 쿠팡맨 때 만난 적들 정도는 무인지경으로 뚫을 수 있었다!
한 방에 건물주 대박은 실패했지만,
무공은 난장판에서 빡세게 구르며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반대였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짙은 아쉬움에 탄식하는 순간.
스튜어디스가 미소지으며 다가왔다.
"고객님. 스팀 타월입니다."
테이블에 놓이는 뜨거운 타월과 메모지.
"....!?"
메모지를 본 천문석이 깜짝 놀라 번쩍 고개를 드는 순간.
스튜어디스는 미소 띤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설마!? 드디어 나에게도?!'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메모지를 뒤집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기내에서는 각성력 사용 자제를 부탁드릴게요. 다른 고객님들의 불편하시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왔네요. 다시 한번 정중히 부탁드려요.]
"...."
천문석은 조용히 메모지를 내려놓고 끌어올렸던 내력을 슬그머니 감췄다.
그리고 파묻히듯 일등석 좌석에 몸을 누이며 기척을 지웠다.
다행이었다.
일등석 좌석은 쪽팔린 얼굴을 모두 가려줄 정도로 크고 넓고 깊었으니까.
천문석을 태운 비행기가 서울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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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석이 제주도를 떠나는 순간.
제주도에선 수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거대 거북이는 기운을 차리고 제주도로 돌아오고 있었고.
제주 함대는 진교은과 삼합회, 공작원들을 모두 실은 채 그 뒤를 따라왔다.
이세영은 벌꿀 가면에 완전히 적응해 학생들을 즐겁게 인솔했고.
이태성과 비서는 500원 동전을 주고 간 꼬맹이를 찾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용용이는 제주도 바다를 빙빙 돌며 자신을 도와준 꼬맹이가 좋아했던 깡통을 모았고.
장민은 서버를 내린 증권사와 여론전을 시작한 헤지펀드를 마찬가지의 방법, 깡패 기업 재금 그룹의 이름으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특급 헌터와 류세연은 연애 코치를 하고.
김철수는 평생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하고.
허세인은 어떻게 다가갈지 고심하고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시계바늘이 돌아가고,
잠들어 있어도 시간은 가고 해가 뜨고 지듯이.
천문석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동안에도,
제주도의 사람들은 움직이고 사건은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제주도만이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W.S. 인더스트리의 본사에선 로롤로 이사를 대표로 하는 200명이 넘는 협상단이 꾸려지고 있었다.
협상단의 표면적인 방한 이유는 장강 유통의 협조 요청으로 발표한 제주도 투자 계획 실사였다.
하지만 로롤로 이사와 협상단이 방한하는 실제 이유는 달랐다.
재금 그룹과의 신동대문 게이트 소멸 사건 공동조사.
그리고 오너가 이사들을 긴급 소집해서 내린 지시 때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W. S. 인더스트리 본사 회의실.
세계 각지에서 급하게 날아온 십여 명의 이사들이 회의실에 모두 모였다.
바짝 긴장한 이사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너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건가?!’
그러나 오너는 나타나지 않았고,
로롤로 이사가 오너의 지시를 전달했다.
“레이 실트.”
로롤로 이사는 한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이사들 앞에 놓인 태블릿에 한국을 중심으로 중국 동부와 일본 서부까지 표시한 지도가 표시됐다.
로롤로 이사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너의 지시다.”
“이 지도상 어딘가에 ‘레이 실트’가 있다!”
“레이 실트를 찾아서 이곳 본사로 은밀히 데려오라는 오너의 지시다.”
이름만으로 사람을 찾으라는 어이없는 명령.
황당해하는 이사들이 서로를 볼 때.
로롤로 이사가 테이블 위로 상자를 밀었다.
쓰으으윽-
“겉모습은 위장했을 수 있으니까. 이걸로 확인하면 된다!”
이사들 앞에 밀려온 명함 지갑 크기의 봉인된 보안 상자!
“오너의 말에 따르면 이 보안 상자 건네면, 레이 실트가 알아서 열고 따라올 거라고 한다.”
봉인된 상자를 살피던 한 이사가 문득 고개를 들고 물었다.
“혹시 저항하면? 강제로 데려와도 되나?”
로롤로 이사가 대답하려는 순간.
회의실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레이를 강제로 데려온다고?]
[카카카카카카-]
스피커에서 미친 듯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이사들은 직감했다.
‘오너다!’
사실상 혼자서 나이트 아머를 만들어낸 마도 공학자 오너!
오너의 등장에 이사들 모두가 바짝 긴장할 때.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웃음이 뚝 그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전해지는 명령!
[이번 일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 어떤 방법을 써도 된다! 레이 실트만 내 앞으로 데려와! 그러면!]
팍-
순간 회의실의 대형 모니터에 전원이 들어오고 나이트 아머 생산 공장이 나타났다.
[내년에 생산하는 마이너 타이탄 전체의 처분 권한을 그 이사한테 준다!]
이사들은 눈을 빛냈다.
마이너 타이탄은 나이트 아머의 별명!
나이트 아머는 완전한 생산자 우위의 시장이다.
1년 동안 생산한 나이트 아머의 처분 권한은 가지게 된다는 건 엄청난 영향력과 이권을 손에 쥔다는 것과 같은 말!
[움직여라!]
오너의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십여 명의 이사들은 바로 움직였다.
초거대 기업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들은 자신의 힘과 인맥, 영향력을 총동원해 한·중·일 삼국에 있는 ‘레이 실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사들이 레이 실트를 찾기 시작했을 때는, ‘레이 실트’가 이미 부산 던전에 들어간 후였다.
그리고 지금 부산 던전으로 향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재금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 추이린.
추이린은 서울역 광장 공중전화에서 익명 배송 대행업체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잔금은 바로 결제될 겁니다. 수신인에게는 1시간쯤 후에 연락해주세요."
전화를 끊은 추이린은 미소지었다.
자신이 준비한 미끼, 금속 상자 전달이 끝났다!
이제 어장에 미리 가서 어부가 자신이 만든 미끼로 ‘거물’을 낚아 올리는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거물!’
재금 그룹의 숨겨진 실세의 정체를 파악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추이린은 바로 서울역으로 들어가 어장이 있는 곳, 부산행 KTX 열차를 탔다.
그리고 1시간 후.
재금 빌딩 13층, 김철수 사무실의 최설 사원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광화문 게이트 지역의 물품보관 창고에서 걸려온,
김철수 사무실로 발송된 택배를 보관하고 있다는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