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79화>
“뭐야!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이태성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비서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처음 태성 길드에 입사하고 비서실로 발령받아,
헌터 업계의 전설 이태성 길드장의 수행비서가 됐을 때 얼마나 가슴 뛰었던가?
하지만 이태성 길드장은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고,
자신이 하는 일도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하루종일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 SNS를 훑다니!
더 두려운 것은 이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점점 동화되어간다는 것이다.
‘난 절대 길드장님처럼 되지 말아야지!’
비서는 다시 한번 다짐하고 오늘 하루 알아낸 사실을 보고했다.
"타겟. 어제 카지노에서 대박을 내고 꿀벌 가면이 귀엽다고 학생들에게 인기 폭발 중입니다."
"뭐? 꿀벌 가면이 귀엽다고? 카지노 대박 났다고? 아니, 학생들은 그렇다고 해도. 다른 교사들은?! 동료 교사가 하루종일 가면을 쓰고 다니는데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어제저녁에 같이 카지노에 갔다가. 마수 경보 떳을 때 타겟만 버려두고 돌아온 일 때문에 지금 타겟은 언터처블 상태입니다. 다른 교사들은 알아서 타겟을 피하고 있습니다."
이태성은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움켜잡으며 괴로워했다.
"뭐가 이따위야?! 내가 어제 어떤 개고생을 했는데?! 으아악-"
비서는 괴로워하는 이태성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어차피 시간문제입니다. 길드장님. 지금이야 수학여행 중이니까 용인해도 결국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노화 역전을 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교사들의 시선 때문에라도 곧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겠지?”
이태성이 희망 어린 얼굴로 묻는 순간.
비서는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교육계는 보수적입니다. 각성자. 그것도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각성자가 교단에 서는 걸 용인 할 리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태블릿에 현대고 홈페이지를 띄워 한 사람의 사진을 짚었다.
현대고등학교 교장.
"현대고 교장이 빡쳤습니다."
"교장이? 왜?"
생각도 하지 못한 이름에 이태성이 의아해하는 순간.
비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크루즈선을 섭외하면서 항구 시설 문제로 완도에서 멈추지 않고 바로 제주도로 왔습니다."
제주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얼핏 들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교장이 완도 게이트에서 학생들을 이틀 동안 기다렸다고 하네요."
"어, 설마?"
이태성이 상황을 짐작하고 기대 어린 표정을 짓는 순간.
비서는 상관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줬다.
"완전히 빡친 현대고 교장. 지금 제주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숙박하는 이곳 삼합 호텔로 교장을 데려올 차도 공항에 대기 시켜뒀습니다."
순간 이태성과 비서의 눈이 마주치고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흐하하-
흐흐흣-
"가뜩이나 빡친 교장이 숙소에 왔는데!"
이태성이 말하는 순간.
비서가 바로 말을 받았다.
"자신을 물 먹인 교사 중 한 명이 꿀벌 가면을 쓰고 있으면!"
"당연히 박살이 나겠군!"
"당연히 박살이 날 겁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외치고 다시 한번 동시에 웃었다.
흐하하하-
흐흐흐흣-
그리고 웃음을 뚝 그친 순간 이태성은 눈을 번뜩였다.
"좋아! 이건 기다리기만 하면 해결되겠고. 그 꼬맹이는 어떻게 됐어? 찾았어?"
길드장이 해변에서 만났다는 이상한 꼬맹이 이야기다.
비서는 태블릿에 제주도 지도를 띄웠다.
"해변에 나타난 시간. 세발자전거 이동 범위. 깡통을 수거하는 소매점 위치. 주변 CCTV를 확인해서 범위를 여기까지 줄였습니다."
태블릿에 띄워진 지도에 그려지는 푸른 원.
"그 꼬맹이는 이 푸른 원 안에 있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이미 현지 업체와 계약을 끝냈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현지 경호 업체 인력이 이 원 안을 훑을 예정입니다. 저녁이 되기 전에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중간에 타겟한테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혹시라도 꼬리가 잡히면 여기까지 털리는 건 시간문제야."
‘아니, 그러니까 타겟이 있는 호텔에 왜 방을 잡아서는···.’
어이없었지만 직위가 깡패였다.
비서는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수학여행 동선은 이미 확보를 끝냈습니다. 타겟의 동선과 얽히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이태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빼낸 손을 펼치는 순간 손에 가득한 500원 동전들!
이 500원 동전들은 해변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만난 꼬맹이가 준 동전이다.
이 500원 동전은 그냥 동전이 아니다.
꼬맹이가 해변에서 깡통을 하나둘 주워 모아 바꾼 500원 동전이었다!
이 동전 하나하나에는 꼬맹이의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었다.
꼬맹이는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동전을 국밥 사 먹으라고 자신에게 쥐여주고는 번개같이 도망쳐 버렸다!
“하, 이 꼬맹이 녀석!”
이태성은 각성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은원을 수천 배로 갚아 줬다.
당연히 이번 일도 원칙대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장난감을 원하면 트럭 단위로!
먹을 걸 원하면 과자의 산, 음료수의 강을!
혹시나 직장을 원하면 태성 길드에 꽂아주겠다!
꼬맹이 소원이 무엇이든 수백, 수천 배로 이뤄준다!
이태성은 결심을 굳히고 선언했다.
"꼬맹이 녀석. 상상도 하지 못할 금융치료를 해주마!"
이태성이 눈을 번뜩이며 선언하는 순간.
비서는 이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꼬맹이가 부러웠다.
이태성 길드장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꼬맹이가 건넨 500원짜리 동전 몇 개의 대가로,
이태성 길드장은 꼬맹이의 소원은 무엇이든 들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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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가지고 싶은 거 뭐 없냐?"
"가지고 싶은 거?"
저녁을 먹고 수박까지 잔뜩 먹은 후 대청마루에서 뒹굴뒹굴 구르던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천문석의 돌연한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소원?! 알바. 내 소원 들어주려고!?"
천문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받은 VIP 초대장. 그거 내가 썼잖아. 소원이라면 거창하고 뭐 가지고 싶은 거 없냐?"
"삼촌. 나는 졸업 겸 입학 선물로 토드 백을 사주면 좋을 것 같아!"
인자기처럼 불쑥 튀어나와 낼름 주워 먹으려는 류세연.
"야 넌 빨리 자동이체부터 해놔. 그리고 다음 달 전기료 기대해. 24시간 에어컨을 틀어줄 테니까. 카캬카-"
으으윽-
바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류세연.
류세연을 간단히 제압한 천문석은 깊은 고심 중인 특급 헌터에게 물었다.
"야, 뭘 그리 생각해? 딱 머리에 떠오르는 거 없어?"
특급 헌터는 번쩍 고개를 들더니 자동차 열쇠를 내밀며 외쳤다.
"로봇!"
"어, 너 이거 특급 쌩쌩이 열쇠 아냐? 그런데 로봇이라고?"
"맞아. 로봇!"
특급 헌터는 자동차 열쇠를 흔들며 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특급 쌩쌩이를 다시 찾아도 로봇 누나, 형, 삼촌, 이모가 다시 와서 번쩍 들고 가면 끝이잖아?"
"...."
"그러니까 난 로봇이 필요해! 엄청 엄청 커다란 로봇! 나쁜 로봇이 나타나는 순간 때려눕힐 수 있는 커다란 로봇!"
천문석은 두 팔을 펼치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엄청 크다는 로봇 이 정도 크기?"
"당연히 아니지!"
특급 헌터는 벌떡 일어나 퐁퐁검을 휘두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퐁, 퐁, 퐁, 퐁-
"여기서 시작해서!"
대청마루에서 출발해 넓은 마당을 지나 문밖으로 이어지는 외침.
"여어어어. 기이이이. 까아아아. 지이이이···."
대문 밖에서 외침이 들려오고 한참 후에 돌아온 특급 헌터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헉, 헉, 헉- 이 정도 크기는 돼야 해!"
수십 미터 크기의 로봇,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나이트 아머]
가지고 싶은 게 없냐니까?
바로 '나이트 아머'를 말하다니!
와- 이 상상을 초월하는 꼬맹이 녀석 같으니라고!
나이트 아머면 기체 가격만 수십, 수백억은 할 거다.
아니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나이트 아머는 미국의 세계패권을 상징하는 전술 병기!
태성 길드 이태성이라고 해도 나이트 아머는 구입이 불가능할 거다.
"알바. 언제 사줄 거야? 내가 재촉하는 건 절대 아닌데. 미리미리 로봇 놔둘 곳 생각해 두려고."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묻는 특급 헌터.
하하하하하-
천문석은 웃음부터 터트렸다.
“알았어. 어디서 파는지 찾아볼게.”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네이버 쇼핑을 검색한 후 말했다.
“이런! 이걸 어쩌냐?”
“왜, 알바? 너무 비싸!? 내가 돈 좀 보탤까?!”
“그게 아니라. 검색해 보니까. 로봇 파는 데가 없네? 봐봐. 네이버 쇼핑에 네가 말한 커다란 로봇은 없는 거 보이지?”
쪼그려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는 특급 헌터.
“진짜네. 작은 거만 파네. 왜 안 팔지? 그럼 내 특급 쌩쌩이 들고 간 로봇은 어떻게 산 거지?”
실망한 특급 헌터의 어깨가 축 처질 때,
천문석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힘내라 특급 헌터! 혹시라도 내가 로봇 주우면 꼭 너 줄게."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번쩍 고개를 들었다.
"진짜?? 진짜?! 진짜!!"
"당연하지! 내가 꼭! 로봇 주워서 줄게!"
"우아아앗! 알바는 역시 특급 알바야! 알바 태풍 구슬 진짜 필요 없어? 앙꼬 대장 구슬 빌려줄까? 앗! 나 훌륭한 돌이랑 예쁜 조개껍데기 많이 주웠는데! 잠깐만!"
환호성을 지른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대청마루를 뛰어내려 돌과 조개껍데기를 말리는 마당 구석 평상으로 달려갔다.
다다다다닥-
그리고 어이없어하는 시선이 천문석에게 쏟아졌다.
"뭐, 나이트 아머를 줍는다고? 와! 완전 사기꾼!"
류세연.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김철수.
"세연아. 철수형. 세상일은 모르는 겁니다. 혹시 알아요? 진짜로 내가 나이트 아머를 주울지?"
그러나 이 말을 하는 천문석도 그럴 가능성은 '0'이라고 생각했다.
크기 수십 미터,
무게도 수십 톤.
연료는 최고등급 정제 마석.
엔진에 시동을 걸 때는 코어를 사용하는.
전술 등급 마도구, 나이트 아머!
이번 제주도 사건 때 나타난 나이트 아머는 순간적이지만, 혼자서 마신의 강림체를 압도하기까지 했다.
나이트 아머가 도로를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아니고 자신이 주울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웠다.
천문석은 약간 아주 약간 가슴이 찔렸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했다.
"진짜로 나이트 아머 주우면 특급 헌터 줄 겁니다! 하늘에 맹세코!"
제주도 마지막 날 저녁은 이렇게 공허한 약속과 함께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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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깊은 탄식이 실린 한숨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탁-
끝까지 읽은 서류를 내려놓은 허세인은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성큼성큼 걸어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펼쳐진 제주도의 화려한 야경을 보며 허세인은 내심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허세인이 방금 읽은 서류는 김철수에 관한 보고서였다.
그룹 비서실은 마치 업무처럼 오너 일가가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마력 각성자 레이 실트에게서 생명의 은인이 있는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경호 팀장에게 정보를 받은 비서실은 순식간에 그 위치에 있는 생명의 은인, 김철수를 찾아내고 조사했다.
하지만 허세인은 처음 생명의 은인을 만나러 갈 때 이름조차 확인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 사람이 자신의 배경을 보고 구해준 게 아닌 것처럼 자신도 아무 선입견 없이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학교에 다닐 때 입었던 옷을 입고 화장과 장신구도 하지 않은 부담을 느끼지 않을 가벼운 모습으로 찾아갔다.
그렇게 만난 생명의 은인 김철수는 기억에 남은 인상과는 달랐다.
단호하던 목소리, 과감한 행동은 사라지고.
자신이 감사를 받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나 민망해하던 그 모습.
김철수는 목숨을 걸고 타인을 도운 행동을 자랑하지도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허세인은 김철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깨달았다.
김철수는 자신을 금성 그룹의 허세인이 아닌 호텔에서 구해준 그냥 '사람 1'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지금까지 만났던 재벌, 정치인, 예술가, 각성자 누구와도 다른 모습.
허세인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김철수는 어떤 사람일까?’
돌아오는 길 허세인은 바로 제주도에 있는 그룹 지사로 찾아가 조사 보고서를 펼쳤다.
그리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 지나도록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철수.
김철수 헌터 사무실의 사장.
천호 그룹 김호천 회장의 양손.
천호 유통 김제철 사장의 양자.
게이트 전쟁고아 출신.
성인의 문턱을 넘는 순간 이뤄진 파양.
수많은 알바를 전전했던 힘겨운 학창시절.
보고서에는 건조한 문장으로 한 사람의 수십 년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사람의 삶은 소설, 드라마, 영화에서 본듯한 고난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김철수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닌 자신 앞에 선 진짜 사람이었다.
김철수의 삶을 읽던 어느 순간 허세인은 문득 깨달았다.
'할 만하다.'
김철수가 무너진 천장이 뒤덮인 침대를 들어 올리며 했던 그 말에 담긴 감정을.
허세인은 재벌가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변호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봤다.
아픔과 고난은 사람을 단련시키지도 강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긴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아픔과 고난은 사람의 마음과 성품을 메마르고 갈라지게 만든다.
하지만 간혹 그런 사람이 있었다.
가슴에 쌓인 수많은 아픔과 상처에도 웃고,
고난과 좌절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는 사람.
김철수가 그런 사람이었다.
'할 만하다.'
이 외침에는 그의 삶이 담겨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든 순간에도 웃으며 타인에게 손을 내밀었던 김철수의 삶이.
그리고 김철수의 삶을 알게 된 허세인은 심장 소리가 북처럼 몸을 울리는 것을 느꼈다.
두근, 두근, 두근-
커진 심장 소리를 따라 전신에 아릿한 아픔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질문이 끝없이 떠올랐다.
얼마나 슬펐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
대답 없는 질문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순간.
허세인은 결심했다.
이 사람 옆에 자신이 서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