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76화>
믿을 수가 없었다.
철수형에게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미팅, 소개팅 주선의 신이면서도 본인은 정작 솔로인 철수형에게 마침내 봄날이 온 것이다!
천문석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철수형이 지금 일생일대, 아주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도!
"철수형. 이번 의뢰는 제가 할 테니까. 아까 그분이랑 식사하고 천천히 올라오세요."
"아니, 그래도 너 휴가 중인데···."
김철수는 주저했으나,
천문석의 다음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구해주고, 상대의 작은 호의마저 거절해선 안 되죠. 생명의 은인이 그러면 얼마나 부담되겠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렇긴 하네. 미안하다. 너 먼저 올라가라. 나도 가능한 한 빨리 올라갈게."
"아뇨. 철수형. 느긋하게 휴가 꽉 채우고 커플로 올라오세요."
“뭐, 커플? 무슨 말이야?”
김철수가 의아해하는 순간 들려오는 천문석의 음흉한 웃음소리.
흐흐흫흐흐-
"야, 진짜 그런 거 아냐!"
김철수가 어이없어할 때.
특급 헌터가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자동차! 멋진 차가 꼭 있어야 해. 철수형. 우선 차부터 빌려! 앗 내 쌩쌩이 빌려줄까?"
"차? 그건 무슨 소리야? 그리고 쌩쌩이라고?"
"내가 러브 시그널 맨날 봐서 잘 아는데. 차가 있으면 할수 있는 게 엄청 많아! 아까 누나 만날 때 꼭 차 가지고 가."
"맞아. 차가 있는 게 아주 중요해!"
특급 헌터가 진지하게 말하는 순간.
류세연이 바로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애 팁이 이어졌다.
"국밥이 뜨끈하고 맛있다고, 처음에 국밥집 가면 절대 안 돼!"
"맞아. 처음에 국밥집은 절대 안 돼!"
"미리 데이트 코스를 꼭 생각해야 해. 길에서 우왕좌왕하면 안 돼!"
"맞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길에서 배회하는 건 최악이야!"
....
"아, 그렇구나! 그때 그래서 표정이 안 좋았구나!?"
어느새 김철수는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세 사람을 봤다.
모솔 김철수가.
마찬가지로 모솔이자 연애를 방송으로 배운 특급 헌터, 류세연에게 연애 코치를 받고 있었다.
특급 헌터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맹이고,
류세연은 지금 아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천문석이 류세연이 잊고 있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는 순간.
특급 헌터가 탄성을 터트렸다.
"앗! 중요한 걸 빼먹을 뻔했네! 두 사람이랑 동시에 썸을 타려면. 꼭 러브 시그널 이시언처럼···."
"뭐, 썸!? 절대 그런 거 아냐!"
김철수가 깜짝 놀라 외치는 순간.
특급 헌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철수형도 러브 시그널 본 거야? 맞아. 그렇게 반응하는 게 제일 중요하데! 절대, 절대로! 인정하면 안 돼! 인정하는 순간 끝장이야! 완전 난장판 되고 방송 폐지되는 거야!”
“....”
김철수의 말문이 턱 막힌 순간.
"맞아. 맞아. 특급 헌터 네가 제대로 알고···. 어, 잠깐만 썸?!"
고개를 끄덕이던 류세연은 곧 경악했다.
"아- 앗! 아앗!?"
류세연은 다급히 외쳤다.
"철수 오빠! 방금 내가 한 말 다 취소야! 전부 취소!"
"첫 만남은 당연히 대중교통이야! 차 가지고 나가면 자랑하는 것 같아서 재수 없어!"
"음식은 당연히 뜨끈한 국밥 아니면 중국집이 최고야! 파스타 스테이크 이런 건 안 돼!"
"그리고 여자들은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보다 의외성을 아주 좋아해! 계획은 절대 세우지 마!"
"앗, 세연! 그러면 안 돼! 큰일 난단 말야! 난장판 되는 거야!"
"아냐! 특급 헌터! 이게 맞는 거야!"
어느새 티격태격 특급 헌터와 싸우는 류세연을 보며 천문석은 웃었다.
류세연도 마침내 상황을 파악했다.
사촌 언니 강화영에게 '허세인'이라는 강력한 적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야, 데이트 아니라니까. 그냥 밥만 같이 먹는 거야!"
아직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김철수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천문석은 결정했다.
내일 아침 비행기 편으로 혼자 서울로 올라가기로.
경영학과 화석 철수형의 흥미진진한 연애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모솔 철수형에게는 러브 시그널로 연애를 배운 특급 헌터와 류세연의 도움이라도 필요하다는 감이 왔다.
어차피 서울에 올라가면 자신은 바로 의뢰를 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옥탑방에 있는 것보다는,
임옥분 여사님과 장민 대표가 있는 제주도에서 쉬는 게 두 사람에게도 좋을 거다.
마음의 결정을 하는 순간.
가슴속에서 의욕이 솟아올랐다.
괴수 코어, 간첩 포상금을 날렸다고 널브러져 있는 건 오늘로 끝이다!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보며 다짐했다.
불가능한 백만 번의 심부름을 근면, 성실함으로 달성한 특급 헌터처럼.
나도 하나하나 티끌을 모아 건물주의 꿈을 이루는 거다!
이번 티끌은 추이린 수석 연구원의 의뢰다!
이렇게 다음 일거리를 결정하는 순간.
김철수의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니까···. 만나면 저 앞에 하우스로 데려와서 감귤을 같이 따라고?"
"맞아! 감뀰 엄청 맛있어!"
"같이 일하면 식사가 더 맛있을 거야!"
"그리고 식사는 내가 직접 요리하라고? 아니 그쪽에서 사겠다는 것 같던데···?"
"신사는 요리를 잘해야 해! 감뀰 화채 추천해!"
"철수 오빠가 직접 요리해주면 엄청 감동할 거야!"
....
어느새 세 사람의 대화는 산으로 가고 있었다.
하-
천문석은 깊은 탄식을 했다.
아쉬웠다.
너무나 아쉬웠다!
언제나 현실은 상상 이상!
막장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한 철수형의 연애 이야기가 펼쳐질 텐데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니!
그래서 특급 헌터에게 말했다.
"나중에 어떻게 진행됐는지 꼭 말해줘라."
특급 헌터는 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며 외쳤다.
"걱정하지 마! 내가 여기다가 철수형이 어떻게 했는지 전부 기록할게! 나 기록 엄청 잘해!"
이어지는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
"알바 미안. 철수형한테 내 힘이 꼭 필요해서. 서울에 못 올라갈 것 같아. 이거 받아."
그리고 불쑥 내밀어지는 화로.
"화로는 왜? 이거 네가 땄잖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는 특급 헌터.
"내가 오늘 아침에 해변에 깡통 주우러 갔다가 엄청 불쌍한 사람 봤거든!"
"드래곤 형인데 신문지 살 돈이 없는지 몸에 다시마를 둘둘 감고 모래 속에서 자는 거야!"
"배가 너무 고파서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길래 니케 시켜서 깨우고. 내가 뜨끈한 국밥 사 먹으라고 동전 줬어!"
특급 헌터는 말하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로를 천문석의 손에 쥐여줬다.
"그러니까 알바가 이 화로 가져가. 알겠지?"
‘알겠지?’란 말과는 달리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특급 헌터와 같이 지낸 천문석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냥 노숙하면 추우니까 화로를 가져가서 따뜻하게 자라는 이야기였다.
이번에 하게 될 의뢰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아직 모르지만,
냉기와 열기를 뿜어내는 화로는 어떤 상황에서든 도움이 될 거다.
"고맙다. 잘 쓰고 돌려줄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번쩍 내미는 손.
"앗! 알바 이거도 가져갈래? 태풍 구슬! 혹시 뽀글뽀글! 필요할지도 모르잖아!"
"응 아냐. 뽀글뽀글은 없어도 돼."
"이 태풍 구슬. 엄청 훌륭한 구슬이라니까!"
"앙꼬 대장 구슬 다음으로 좋은 2등 구슬이야! 내가 장점을 자세히 설명해줄게."
....
열띤 설명이 들려올 때.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특급 헌터는 태풍 구슬을 설명하고,
류세연이 엉망진창 연애 코치를 할 때.
철수형은 자동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시간은 오후 3:30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여름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 여유와 한가로움.
휴가지 제주도의 마지막 날로 딱 좋았다!
“...그래서 이걸로 뭘 할 수 있냐면···.”
천문석은 열심히 설명 중인 특급 헌터를 번쩍 들어 올리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물놀이 콜?"
"출발!"
즉시 설명을 멈추고 두 팔을 번쩍 들고 외치는 특급 헌터.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번쩍 머리 위로 든 채로 번개같이 마당을 달려 단숨에 호수로 뛰어들었다.
촤아아아아-
커다란 물보라가 일어나는 순간 두 사람은 외쳤다.
"카캬카- 엄청난 파도를 받아랏!"
"끼요옷- 이 정도 파도는 아무것도 아냐! 나는 특급 헌터다!"
곧 류세연과 김철수도 호수로 뛰어들었다.
"흐흐흐- 내가 왔다! 특급 헌터!"
"나도 왔다. 하하하-"
아직 햇살이 뜨거운 늦은 오후 네 사람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
대청마루에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선 속보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 푸젠성 해안 접근 중.]
[KOSPI 역대 최고 변동성 기록. 급락으로 출발해 역대급 상승으로 마감.]
---
해가 기울어가는 늦은 오후.
소리를 질러야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셌던 바람이 빠르게 잦아들고 있었다.
진교은은 깨달았다.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곧 거대 거북이가 질주를 멈출 것이다!
진교은은 주위를 돌아봤다.
바짝 긴장한 보안 요원들.
안절부절못하는 삼합회 조직원들.
몸이 구속됐는데도 점차 기세가 살아나는 공작원들!
멀리 거리가 벌어진 제주 함대는 빠르게 거리를 좁히고 있고,
갑각 위 하늘에는 헌터 부대의 고속 드론이 날고 있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
거대 거북이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
거대한 강과 섬, 항구와 해안선이 펼쳐져 있었다.
남중국 푸젠성!
제주도 근해에서 출발한 거대 거북이는 마침내 남중국 푸젠성에 도착했다.
북중국 공작원들을 가득 실은 채로!
이때 얼핏 들려오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
"...너희들 기대해라···."
고개를 돌리자 구속된 채로 꿇어앉은 공작원들이 살벌한 눈으로 가면을 쓴 삼합회 조직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진 선생님. 정말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바다로···."
원기륭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진교은은 손을 들어 말을 끊고 단호히 말했다.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중국 영해에요. 그쪽 분들은 한마디 말도 하지 마시고. 저를 믿고 제 지시대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진 선생님."
원기륭이 불안해하는 삼합회 조직원들에게 달려갈 때.
진교은은 몇 번이나 생각하고 생각한 계획을 다시 검토했다.
보안 요원들은 한국국적이니 조용히 있으면 문제 될 게 없다.
북중국 공작원들은 남중국 정부에서 신병을 인수할 것이다.
문제는 삼합회 조직원들!
이들 대다수가 중국 국적자라는 거다.
공작원들은 삼합회의 정체를 모르는 지금도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을 구속한 이들이 중국 삼합회라는 걸 아는 순간 상상을 초월하는 날벼락이 떨어질 거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진교은은 고개를 뒤로 돌려 빠르게 가까워지는 제주 함대를 바라봤다.
한 시간 전 제주 함대에서 푸젠 군벌과 협상 중이라는 통신을 받았다.
협상 결과는 아직 듣지 못했지만,
협상이 잘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주 함대, 타국의 군함이 자국 해안선에 접근하는 걸 용인한다는 것 자체가 원만한 협상 중이라는 증거였으니까.
이제 거대 거북이 등 위에서 퇴거하는 순서만 잘 조정하면 이 난장판을 쉽게 벗어 날 수 있었다.
보안 요원들이 공작원들과 삼합회 조직원을 분리한 사이.
삼합회 조직원들을 제일 먼저 제주 함대로 빼낸다!
다음은 보안 요원들.
마지막으로 자신이 내리며 북중국 공작원들은 거대 거북이 위에 남겨두고 떠나는 거다.
북중국 공작원들이 남중국 정부에 넘겨져 신원 확인을 끝냈을 때는,
삼합회 조직원들은 제주 함대의 군함을 타고 제주도로 향하고 있을 거다.
다행히 가면을 쓰고 몸을 사려 얼굴과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은 상황.
이대로 진행되면 삼합회와 삼합 그룹 모두 갑자기 떨어질 날벼락에서 안전했다!
이 모든 건 거대 거북이 진행 방향에서 갑자기 제주 함대가 나타나고, 이 제주 함대가 재빨리 푸젠 군벌과 협상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
진교은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보안 요원이 통신기를 들고 달려왔다.
"제주 함대에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