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70화>
북중국 국가안전부, 8국 상황실.
이세기 확보 임무를 받아 출발한 8국의 정예 공작원들과의 연락이 끊긴 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위성으로 공작선이 향한 해역을 훑었지만, 마력장 폭풍으로 위성은 무용지물.
마력장 폭풍이 사라지고 몇 번이나 해당 해역을 다시 훑었지만, 고속 공작선은 발견되지 않았다.
작전 중 무선 침묵을 유지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한 8국의 상황실 요원들은 당황했다.
비상회선으로 몇 번이나 연락해도 먹통.
고속 공작선의 위치 신호도 누군가 꺼둔 것처럼 전혀 잡히지 않는다.
“하, 시바 새끼들! 또 신호 꺼놓고 딴짓하는 거 아냐?!”
상황실장이 분통을 터트릴 때, 한 모니터링 요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실장님! 뉴스, 한국 뉴스에! 공작선이 나오고 있습니다!”
곧 상황실의 대형 스크린에 한국 뉴스가 재생됐다.
갑각에 수직으로 꽂힌 배와 그 아래 구속된 100여 명의 사람.
영상을 보는 순간 상황실의 모두는 알아봤다.
‘이세기‘관련자를 확보하러 상해 근해에서 출발한 8국의 고속 공작선과 정예 공작원들이다!
타국 영해에서 작전 중에 한두 명도 아닌 100명의 공작원과 고속 공작선까지 나포된 비상 상황!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바로 상황 파악해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황 실장이 외치고, 곧 국가안전부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국가안전부는 한국에 뻗어 있는 정보계통을 총동원했고 곧 정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제주도에 발령된 마수 경보.
카지노 유람선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
거대 거북이 위에서 일어난 긴박한 전투.
……
중간 연결 고리가 비어 정확한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타겟 자칭 ‘이세기‘확보에 실패했고, 공작선과 정예 요원 전원이 잡혔다!
다행히 공작선과 정예 요원들이 구속된 거대 거북이는 제주도가 아닌 남중국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공작선과 정예 요원들이 제주도의 헌터 부대에 넘어가 던전 노역장에 처박히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이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거대 거북이가 도착할 남중국의 헌터 군벌을 포섭해 , 공작선과 정예 요원들의 신병을 바로 넘겨받으면 된다!
그리고 이 일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거대 거북이가 이동 경로를 추정했을 때 도착지는 푸젠성!
지금 푸젠성은 이세기가 군벌 수장 리웨이 사령관을 날려 버려 난장판인 상황이다.
해안 부대 지휘관 한 명만 매수해도 공작선과 정예 요원들을 넘겨받는 건 간단했다.
곧 상해 앞바다에 대기 중이던 함대가 움직이고, 인맥을 총동원해 푸젠성 해안 부대 지휘관과 접촉했다.
이렇게 북중국 국가안전부가 다급히 움직이고 있을 때.
푸젠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리웨이 사령관의 저택이 있던 폐허에 수십 명의 군벌이 은밀히 모여 있었다.
* * *
수십 명의 군벌이 모인 언덕 위 폐허에는 아찔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리웨이 사령관이 일으킨 마력 폭탄 테러로 폭사한 푸젠 군벌의 후계자들.
푸젠성을 둘러싼 저장, 장시, 광둥 세 성에서 온 주요 군벌의 대리인들.
이들 모두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폐허가 된 리웨이 사령관의 저택 앞에 놓인 테이블.
검은 그슬음이 가득한 테이블 위에 펼쳐진 남중국 지도에 누군가 펜을 들어 거침없이 선을 긋고 있었다.
쓱, 쓱, 쓱-
선이 휙휙 그어지고 있는 남중국 지도를 사이에 두고 네 사람이 서 있었다.
저장, 장시, 광둥 세 성의 헌터 군벌 수장.
그리고 방금 푸젠 군벌의 수장이 되어 얼떨떨한 표정인 해안 부대 지휘관.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는 왕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는 군벌 수장들은, 자신들의 후계자와 마찬가지로 바짝 긴장한 채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뚝-
이때 남중국 지도에 그어지던 선이 멈추고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계는 이렇게 확정한다. 이의 있나?”
“…….”
“…….”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 없이 침만 삼키는 군벌 수장들!
이들의 시선이 힐끗 펜을 든 사람의 뒤로 향했다.
폐허가 된 리웨이 사령관의 저택 앞, 수십 개의 목이 뒹굴고 있었다.
하나같이 수천수만의 부하를 두고 있던 쟁쟁한 헌터 군벌들의 목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이들이 죽은 이유는 하나였다.
‘남들보다 부지런했다는 것!’
푸젠의 주요 군벌이 리웨이 사령관의 테러로 폭사하고, 리웨이 사령관마저 천검에게 박살 난 순간 푸젠성은 무주공산이 됐다.
푸젠성의 게이트 도시들이 주인 없는 땅, 먹음직한 먹잇감이 된 거다.
눈앞에 먹잇감이 있다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내가 먹지 않으면 적이 강해지고, 그건 결국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이게 게이트가 열리고 20년 동안 난장판이 이어진 남중국의 규칙이었다.
당연히 저장, 장시, 광둥의 모든 헌터 군벌들이 푸젠성으로 달려들었다.
이때 갑자기 대만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이 일어났고, 대다수의 헌터 군벌들은 깜짝 놀라 부대의 움직임을 멈췄다.
이때 멈추지 않고 무주공산이 된 푸젠성의 게이트 도시를 접수하기 위해서 움직인 부지런한 헌터 군벌들.
이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에 의해 모조리 목이 떨어져 나갔다.
천검 이세기.
그리고 경고조차 없이 군벌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 헌터 군벌들은 자신들이 이세기를 완전히 오판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름을 알리고 세력을 모으려는 조금의 노력도 없이, 마수와 괴수를 잡고 마경을 정리하는 데만 온 힘을 쏟았던 이세기.
이세기를 마경을 처리하기 위한 좋은 정, 부러질 때까지 마음껏 휘두를 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세기의 검이 방향을 달리해서 겨눠진 순간.
리웨이 사령관은 목이 날아가고, 수십 명의 헌터 군벌이 박살 나더니 그 휘하의 부대마저 순식간에 장악됐다.
이세기는 단숨에 주도권을 잡고, 저장, 장시, 광둥의 헌터 군벌 수장에게 통보했다.
리웨이 사령관의 저택으로 오라고.
이 통보는 집무실 책상, 침실 천장, 비밀 금고 벽 같은 가장 은밀한 곳에 새겨졌다.
헌터 군벌 수장들은 이 통보의 의미를 깨달았다.
언제든 목을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경고!
간담이 서늘해진 헌터 군벌 수장들은 이세기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세력 경계가 그어지고, 푸젠 군벌의 새로운 수장이 결정됐다.
마치 황제처럼 움직이는 천검 이세기에 의해서!
저장, 장시, 광둥의 헌터 군벌 수장들은 서로를 보며 이세기의 눈치를 살폈다.
이세기가 황제처럼 명령한 일이 그대로 이뤄지는 순간.
휘하의 군벌들은 이세기에게 그런 권력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든 일에는 관성이 있고 그건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세기에게 황제와 같은 권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세기는 진짜 남중국의 황제 절대 권력자가 될 것이다.
이들이 망설이는 순간.
휘이이이잉-
계절에 맞지 않는 한겨울 칼바람이 불어왔다.
쏴아아아아-
이 소름 끼치는 칼바람이 군벌 수장의 목을 훑고 지나가 언덕 주위 숲을 지나치는 순간.
후득, 후드득-
생생한 나뭇가지들이 소리도 없이 뚝, 뚝- 떨어졌다.
어떻게 했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 아득한 무위에, 헌터 군벌 수장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장 장시 광둥의 헌터 군벌이 사라진 후.
새롭게 푸젠 군벌의 수장이 된 해안 부대 사령관은 이세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몇 척 안 되는 고속정과 오래된 군함으로 이뤄진 푸젠성의 해안 부대는 그동안 찬밥 대우를 받았다.
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주요 군벌들이 리웨이 사령관에게 폭사하고 천검의 손에 죽어 나가는 동안.
모두에게 찬밥 대우를 받은 해안 부대 사령관은 무사히 살아남아 푸젠 군벌 수장에 임명된 것이다.
푸젠성 군벌 수장이 된 해안 부대 사령관, 장웨이는 자신의 위치와 해야 할 일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각하. 저 장웨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푸젠성의 모든 것은 각하의 것입니다! 리웨이 사령관의 재산은 이미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무엇이든 명령해 주십시오!”
이세기는 가볍게 손을 저어 충성맹세를 하는 장웨이를 뒤로 물렸다.
장웨이는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물러나 부하들에게 지시를 시작했다.
폐허가 된 저택 앞에 홀로 남은 이세기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떨어진 이 세계는 무림과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군벌 수장들은 지금 당장은 대의에 고개를 숙이는 것 같지만, 빈틈을 보이는 순간 단숨에 그 틈을 파고들어 자신의 멱을 잡으려 할 것이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권력자들이 탐하는 것은 언제나 권력 그 자체!
수천수만의 힘과 뜻이 하나로 모인 대의는 그저 보이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익숙한 일.
대의에 거치적거리는 이가 있다면 치워 버리면 될 뿐이다!
이세기는 문득 고개를 돌려 폐허가 된 저택 앞에 뒹구는 수십 개의 머리를 봤다.
권력자들이 권력보다 탐하는 단 한 가지, 권력을 누릴 자신의 목숨!
자신은 헌터 군벌들의 목숨을 언제든 취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이 검.
오랜 친우가 건네준 검혼이 담긴 창천검으로!
창천검을 보는 순간 이세기는 친우가 떠올랐다.
초절정의 경지에 턱없이 부족했던 내력은 친우가 준 ‘대환단’과 연이은 요마괴이와의 격전으로 거대한 강처럼 불어났다.
내력의 급격한 상승이 이뤄지는 순간 친우가 전해 준 창천검에 담긴 ‘검혼’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무의 길을 인도해 줬다.
자신이 완전한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모두 친우의 도움 때문이었다.
대환단.
창천검의 검혼.
그리고 품에 들어 있는 잘 접힌 편지까지.
이세기는 잘 접힌 편지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이 편지는 돌멩이가 천마, 무림의 절대자에게 도전하기 전에 펼쳐 보라고 전해 준 금낭묘계였다.
이세기는 문득 고개를 들어 언덕 너머 북동쪽에 펼쳐진 바다를 봤다.
이 순간 돌멩이의 사기꾼 점쟁이 같던 마지막 모습이 바다 위에 그려졌다.
무림의 무가지보 대환단과 세상에 다시없을 검을 주고 농담하듯 금낭묘계까지 건넨 후.
그냥 한번 씨익- 웃더니 손을 흔들며 떠나간 친우.
돌멩이 천문석.
무의 경지가 급격히 상승하여 완전한 초절정, 초인경의 벽을 넘는 찰나의 순간.
하늘을 가린 장막이 사라지고 천기가 읽혔다.
그때 이세기는 깨달았다.
저 북동쪽 바다 너머에 돌멩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세기는 이 순간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는 무림과 달랐다.
돌멩이의 이름만 말한다면 친우가 어디 있는지 순식간에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돌멩이의 이름 ‘천문석‘이 알려지는 순간.
자신의 틈을 노리는 승냥이 떼 같은 군벌, 기업, 정보국…… 모든 이들이 돌멩이에 몰려갈 거다.
문득 이세기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그렇게 찾아볼까?’
어쩐지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기대가 들었다.
천문석 자신의 친우는 무공에 입문하기 전부터 도망치고 입으로 싸우는 데는 절정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누군가 천문석을 잡으려 하거나 얽히는 순간, 그 사람은 상상을 초월하는 난장판에 떨어져 개 같이 구를 것이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하하하-
이세기는 통쾌한 마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푸젠 군벌의 수장이 된 장웨이가 이세기의 눈치를 살피다가 재빨리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각하! 한국 헌터 부대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한국 헌터 부대?”
“네, 각하! 그리고 북중국 국가안전부에서도 제 휘하 부대장에게 접근했습니다!”
이세기가 말하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자, 장웨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푸젠 군벌의 수장이 된 후 첫 사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 했다!
장웨이는 조심스레 말을 골라서 설명했다.
“지금 푸젠성으로 접근 중인 한국의 각성 동물 거대 거북이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대장에게 접근한 놈은 북중국에 포섭된 정보원인데.”
“북중국에선 거대 거북이가 아닌 그 위에 있는 사람들과 배에 관심을 더 두고 있습니다.”
“그 배와 사람들을 바로 넘겨주는 대가로 ‘엄청난 양’의 정제 마석 제공을 약속했습니다. 통상적인 대가의 3배 이상입니다.”
이세기는 장웨이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물건의 가치보다 더한 대가를 치르겠다는 말은 그 물건의 가치가 생각보다 높다는 뜻!
장웨이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놈들 북중국의 공작원들과 공작선 같습니다! 제게 맡겨 주시면 모든 정보를 뽑아내고! 뼛속까지 우려내도록 하겠습니다!”
이세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든 생각에 물었다.
“한국 헌터 부대에서 협조 요청이 왔다고?”
“네! 각하!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와 자국민을 데려가려는 것 같습니다! 한국 국적자들은 결국 인도해야겠지만, 각성 동물 거대 거북이는 푸젠성에 주저앉힐 수 있게 최대한 진을 빼겠습니다!”
장웨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세기의 머릿속에 한국의 위치가 그려졌다.
푸젠성에서 북동쪽.
공교롭게도 친우가 있을 방향이었다.
게다가 대만에서 군사훈련을 해 주고, 천만 발의 마탄을 제공한 장민 대표도 한국 사람이었다.
선의에는 선의로.
이세기는 바로 명령했다.
“됐다. 그럴 필요 없다. 전면적으로 협조하고 거대 거북이도 돌려보내라. 그보다 거대 거북이 위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라.”
“오늘 밤 도착 즉시 보실 수 있도록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장웨이는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고 바짝 군기든 신병처럼 달려갔다.
이세기는 고개를 돌려 바다를 봤다.
저 바다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거대 거북이와 그 위의 사람들.
하늘의 인과는 알 수 없는 법이니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들의 입에서 자신의 오랜 친우, 돌멩이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이세기는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