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69화>
“이게 뭐야!?”
경악한 천문석은 텔레비전 화면에 집중했다.
거대 거북이 등 갑각에는 너무나 눈에 익은 간첩선이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줄줄이 구속된 백여 명의 사람들, 간첩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화면 아래 긴박함이 느껴지는 붉은 자막이 지나가고 있었다.
[제주도의 수호신. 남중국 방향으로 이동 중.]
[제주 함대 총력을 다해 거대 거북이를 지키겠다고 밝혀.]
[중국, 함대 각성 동물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야. 입장 표명.]
[UN. 각성 동물 거대 거북이에게 일체의 위력 행사 금지해야 한다고 밝혀.]
……
그리고 긴박한 음악과 함께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의 제주도 해역 이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잠시 후 부동산 전문가 서울대 한호석 교수님을 모시고 차후 제주도의 부동산…….]
이 순간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텔레비전을 잡고 외쳤다.
“어디 가는 거야?”
“너, 제주도의 수호신이잖아!”
“갈 때 가더라도 간첩선은 놓고 가!”
으아아아아-
* * *
거센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고, 수십 개의 용오름이 치솟던 바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바다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그리고 이 고요한 바다에 거대 거북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끼에에, 끼에에엑-
완전히 정신을 차린 거대 거북이는 힘차게 바다를 가로질렀다.
제주도 남서쪽 망망대해를!
그 어떤 배도 따라오지 못할 엄청난 속도로!
“텔레파시로 방향을 돌릴 수 없을까요!? 하다못해 속도라도 줄일 수 없나요?”
콰아아아아아-
진교은이 거센 바람을 맞으며 외치는 순간.
원숭이 가면을 깊게 눌러쓴 원기륭이 고개를 저었다.
“텔레파시로 표면 심리를 읽었는데. 지금 거대 거북이 무언가에 겁을 먹고 무작정 도망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텔레파시로 제주도의 이미지를 전해도 반응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제주도의 수호신이 겁을 먹다니! 거대 거북이 거대 괴수도 홀로 상대해요!”
진교은이 바로 반박했지만, 원기륭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무엇에 겁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겁을 먹었습니다. 저……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시만요! 우선 확인할 게 있어요!”
진교은은 바로 고개를 돌려보안요원에게 외쳤다.
“지금 물자는 어떤가요?”
“구명정이 떠내려가기 전에 구명정의 물과 식량은 모두 빼냈습니다!”
보안요원은 갑각 위에 수직으로 꽂힌 고속선과 그 아래 팔다리가 묶인 사람들을 슬쩍 가리켰다.
100여 명의 간첩 용의자들!
보안요원은 한껏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 배 수색이 끝나야 정확하겠지만, 지금 있는 물자만으로는 하루 버티는 게 고작입니다.”
“하루면 충분하다는 게 오히려 문제네요. 헌터 부대에 연락은 됐나요?”
짧은 한숨을 내쉰 진교은은 하늘의 고속 드론에 시선을 뒀다.
“네! 통신 연결됐고 헬기와 함대 모두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교은은 보안요원이 말끝을 흐리는 이유를 바로 짐작했다.
콰아아아아아-
몸을 타고 흐르는 엄청난 바람!
고속 드론만 간신히 따라붙고 있을 뿐.
거대 거북이는 그 어떤 배도 쫓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무리 제주 함대라도 이렇게 질주하는 거대 거북이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헬기와 비행기라면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거대 거북이 위에서 사람들을 빼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태성 길드장을 뒷배로 얻고 좋아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거대 거북이 위에 실려 망망대해를 가로지르고 있다니!
이 속도, 이 방향으로 계속 달리면 오늘 안에 남중국이나 대만, 혹시 중간에 방향을 바꾸면 필리핀에 도착하게 생겼다.
그리고 거대 거북이가 멈추는 순간.
남중국, 대만, 필리핀…….
멈춘 곳 주위의 모든 나라가 거대 거북이를 자국으로 데려가려 달라붙을 거다.
수십 년 동안 제주도의 바다를 안전하게 지킨 거대 거북이의 능력과 성품을 모르는 국가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 뭐가 이따위야!”
진교은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간첩 용의자를 감시하던 보안요원 한 명이 달려와 쭈뼛거리며 말했다.
“진 사장님. 저기 저 구속된 사람들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
“자기들이 간첩이 아니라. 제주도 근처를 지나가던 북중국 외교부 자문위원회 대표단이라고…….”
“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외교관이 저런 무장 고속선을 타고 움직였다고?
강화 전투복을 입고 완전무장한 채로, 개틀링 마탄까지 쏟아붓고?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진교은이 어이없어하자, 보안요원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네모난 카드를 내밀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장 해제 중 이런 걸 발견했습니다.”
보안요원이 내민 네모난 카드는 보안 ID 카드였다.
진교은은 피식 웃으며 보안 ID 카드를 받았다.
이름과 사진이 박혀 있고 그 아래 직책명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외교정책자문위원(外交政策諮問委員)]
공들여 위조했지만, 마력 각성자는 이런 보안 카드의 진위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하! 이 녀석들 준비를 철저히 했군요.”
진교은은 보안 ID 카드를 잡고 마력장을 일으켰다.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진 선생님! 잠시만 이야기 좀!”
원기륭이 다급히 달려와 진교은의 손을 잡아끌었다.
“네? 갑자기 왜?”
“정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원기륭은 보안요원들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후에야 손을 놓고 진교은을 봤다.
보안 ID 카드를 들고 의아한 얼굴을 자신을 보는 진교은.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이제는 모든 사실을 밝히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
그러나 원기륭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앞의 주먹, 이태성이 두려워 북중국 국가안전부의 공작원들을 제물로 삼았는데.
갑자기 폭풍이 몰아치더니 남중국 방향으로 거대 거북이가 나아가고 있다!
아무리 남북으로 갈렸어도 중국은 중국!
거대 거북이가 남중국에 도착하는 순간, 8국의 공작원들은 풀려날 테고 자신들은 끝장이 난다!
그리고 이 와중에 자신들이 삼합회 조직원이라는 게 밝혀지면!?
가뜩이나 철검장에 밀리는 삼합회는 완전히 끝장나고 그 불똥이 눈앞의 진교은에게까지 튀게 될 거다.
지금 상황은 진교은의 생각보다 더 위험했다.
모두를 실은 거대 거북이는 지옥문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진교은은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대외적인 리더다.
당연히 진교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대처 방안을 생각해야 했다.
“…….”
하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
이때 진교은의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거 진짜잖아!”
번쩍 고개를 드니 마력장에 반응한 보안 ID 카드 전체에 떠오른 홀로그램이 보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中華人民共和國 外交部)!]
순간 진교은과 원기륭의 시선이 마주쳤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할 말이 이거랑 관련된 거 맞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경악한 진교은이 보안 ID 카드와 간첩 용의자를 손가락질하며 외치는 순간.
원기륭은 이번 일을 겪은 자신의 기억을 담은 텔레파시를 손끝에 모았다.
그리고 말없이 내밀었다.
“…….”
진교은은 마력 각성자. 원기륭이 뭘 하는지 깨닫고 이 손을 잡았다.
찌르릇-
순간 표면 의식에 흘러들어오는 원기륭의 의식에 쌓여 있던 수많은 대화와 장면들!
빠져 있던 퍼즐이 순식간에 맞물리는 순간.
진교은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깨달았다.
저 간첩 용의자들은 공작원들이었다.
삼합회가 이세기를 찾았다고 연락해서, 이세기를 납치하기 위해 온 북중국 국가안전부 소속의 정예 공작원들!
그렇다.
저 공작원들은 북한이 아닌 중국 공작원이다!
진교은의 머릿속에서 폭풍이 몰아쳤다.
걸리는 것 문제가 되는 게 하나둘이 아니다!
이태성 길드장이 동생이라고 말한 사람을 납치하려 했다!
그것도 삼합회의 정보를 받고 온 공작원들이!
그런데 지금 거대 거북이에 실려 남중국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북중국 공작원들을 기절시키고 구속해놓은 채로!
이 순간 진교은의 머릿속에서 어젯밤의 난장판의 세력 구도가 그려졌다.
[북중국 - 삼합회 - 삼합 그룹]
[공작원 -> 이세기 <- 삼합회 <- 이태성]
[삼합회 -> 공작원 <- 이세기, 이태성]
몇 번이나 편을 바꾸며 카지노 유람선과 거대 거북이, 바다에서 난장판이 되도록 굴렀다.
그리고 이 난장판에서 구른 모두가 줄줄이 엮여 있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진교은은 방금 전 원기륭이 그러했듯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돌린 시선에 한곳에 모여 있는 삼합회 조직원들이 보였다.
깊게 가면을 눌러쓴 삼합회 조직원들이 공작원들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느껴졌다.
이 순간 진교은은 깨달았다.
제주도의 삼합 그룹이 삼합회에서 탈퇴해도, 삼합회에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걸.
당연한 일이었다.
삼합회에서 불러들인 북중국에서 보낸 공작선과 100여 명에 달하는 정예 공작원이, 삼합회 조직원들에게 두들겨 맞고 꽁꽁 묶여 있다.
이들을 제주도 헌터 부대에 넘겼으면 어떻게든 뭉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남중국에 넘어가는 순간.
삼합회는 발등, 아니 전신에 북중국 국가안전부라는 불이 붙는 거다!
당장 불에 타죽게 생겼는데, 제주도의 삼합 그룹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전신에 불이 붙기 일보 직전인 삼합회 조직원들과 함께, 자신도 남중국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진교은과 제주도의 삼합 그룹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같이 벼락 맞을 상황이었다!
진교은은 휘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얗게 변한 머리에서는 아무런 대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엄마 보고 싶다…….”
진교은이 엄마를 생각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는 이 순간.
거대 거북이 위의 모두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합 그룹의 보안요원들은 수호신 거대 거북이가 사라진 제주도를 걱정했고.
가면을 눌러쓴 삼합회 조직원 30여 명은 남중국에 도착하면 좆됀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갑각에 꽂힌 고속 공작선에서 끌려 나와 꽁꽁 묶인 100여 명의 정예 공작원들은 이를 갈고 있었다.
남북으로 갈렸지만, 중국은 중국.
공작원 신분을 밝히면 정치적 양보를 해야 하겠지만, 결국 풀려나는 건 기정사실이다.
남중국에 도착하면 즉시 저 가면을 쓴 놈들을 아작내주마!
그리고 다음은 이세기 그 새끼다!
이렇게 이세기와 엮여서 카지노 나이트 내내 개 같이 구른 모두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의 예상대로 거대 거북이는 남중국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거대 거북이 갑각 위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게 있었다.
남중국, 푸젠성(福建省).
거대 거북이가 향하는 이곳에는 남중국의 헌터 군벌들을 장악해 남중국의 절대 권력자로 올라서는 사람이 있었다.
천검 이세기.
삼합회와 정예 공작원들이 카지노 나이트 내내 수백 수천 번 이를 갈며 외쳤던 이름.
천검 이세기가 푸젠성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