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63화>
“간첩선!”
천문석이 벌떡 일어나 수직으로 꽂혀 있는 고속선을 가리키며 외쳤다.
“간첩선? 그게 무슨 소리야?”
“어!? 저놈들 간첩이었어!? 어쩐지 장비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이세영과 이태성이 놀라는 순간.
촤아아아아아-
바닷물 가오리는 부드럽게 제주도 앞바다에 착륙했다.
거대 거북이가 물 위에 뜨고 바닷물이 비처럼 쏟아질 때 생각지도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부아아아앙-
고속 구명정 모터 소리!
십여 척의 고속 구명정이 거대 거북이를 향해서 달려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십여 척의 고속 구명정 선두에는 천문석이 아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카지노 딜러 옷 위에 방검방탄복을 입은 사람, 진교은!
삼합 카지노 총괄 매니저 진교은이 거대 거북이 위의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확성기로 외쳤다.
[한참 찾았어요! 모두 무사하세요!?]
“여기는 모두 무사해요! 유람선 승객들은 어떻게 됐어요!?”
이세영의 외침에 진교은의 웃음기 어린 대답이 돌아왔다.
[걱정하지 마세요! 유람선 제주 함대 고속정과 함께 항구로 갔어요! 여기에도 헌터 부대 헬기가 올 거예요!]
헌터 부대가 온다고!?
포상금을 받으려면 헌터 부대에서 오기 전에 간첩 놈들을 확실히 구속해놔야 한다!
“용 형님! 선생님! 전 간첩 잡으러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천문석이 한달음에 달려가자, 이태성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 간첩을 잡는다고?”
하하하하-
이태성은 한동안 웃다가 다가오는 고속 구명정을 훑었다.
“삼합회 놈들이 있을 텐데…….”
이태성의 생각대로였다.
몰려 오는 고속 구명정에는 헌터 부대를 피한 삼합회 조직원 전원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원숭이 가면을 쓴 원기륭이 거대 거북이 갑각에 꽂혀 있는 공작선을 입을 떡 벌리고 보고 있었다.
원기륭은 한눈에 알아봤다.
북중국에서 온 고속 공작선!
“저게 왜 저기에 꽂혀 있어!?”
어이없어 외치는 순간 돌연 들려온 목소리!
“거기 원숭이 가면!”
갑자기 들려온 외침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눈이 마주쳤다.
인간 재해, 이태성 길드장!
이태성은 원기륭에게 명령했다.
“너희들! 저기 내 동생 도와줘라!”
“네? 동생이요?”
원기륭은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뭐, 동생?
지금 누가 뭘 하는 걸 도와주라고?
이때 이태성이 손을 들어 갑각에 꽂혀 있는 고속선을 가리켰다.
“저 배 안에 간첩 타고 있다. 저기 달려가는 내 동생이 그놈들 잡아서 구속하는 거 도와주라고!”
삼합회 중간보스 원기륭의 시선이 이태성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달려가는 타겟 이세기.
갑각에 꽂힌 북중국의 고속 공작선.
고속 공작선 안에 타고 있을 북중국의 정예 요원들.
……
“……!”
이태성의 말을 이해한 원기륭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타겟 이세기가 이태성 길드장 동생이라고!?
아니 그보다 이세기가 북중국 정예 요원들을 구속하는 걸 도우라고!?
삼합회에서 정보를 줘서 온 정예 요원들을 삼합회인 우리가!?
이 순간 제주 함대 군인들을 피해서 진교은의 실종자 수색대에 참가한 삼합회 조직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봤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서로의 얼굴이 어떨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재빨리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뭐가 이따위야!”
“이런 빌어먹을! 젠장!”
“원기륭. 우리 어떻게 해야 하냐?”
……
원기륭은 빠개질 듯한 머리를 미친 듯이 굴렸다.
-의아한 얼굴의 이태성 길드장.
-어느새 공작선에 도착해 널브러진 공작원을 단숨에 제압하는 이번 일의 타겟 이세기 새끼.
-거대 거북이 갑각에 수직으로 꽂힌 북중국 공작선과 그 안에 있을 수백 명의 정예 공작원들.
멍청한 새끼들!
타겟을 확보하러 와서는 오히려 당하고 배까지 나포당하다니!
이제 곧 제주 헌터 부대 군인들까지 몰려 온다!
어쩔 수 없었다.
이 중에 가장 만만한 놈들을 제물로 바칠 수밖에!
원기륭은 원숭이 가면을 깊게 눌러 쓰고 삼합회 조직원들에게 광역 텔레파시를 보냈다.
[이세기 새끼를 도와서 공작원들을 구속한다!]
[절대로 우리가 삼합회라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젠장.”
“시바…….”
“이세기…….”
짧은 침묵 후 삼합회 중간 보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아아아아앙-
삼합회 조직원들이 탄 5대의 고속 구명정이 거대 거북이 갑각에 꽂힌 공작선 방향에 구명정을 댔다.
이 모습을 본 이세기가 갑판 문에서 줄사다리를 던지며 외쳤다.
“바로 들어와! 이 간첩 놈들 전부 무력화됐다! 바로 꺼내서 구속하면 된다!”
“…….”
삼합회 조직원들은 말없이 가면을 다시 한 번 깊게 눌러쓰고, 갑각 위로 올라가 고속 공작선에서 기절하고 다친 공작원들을 빼냈다.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공작원들이 입고 있는 강화 전투복을 벗기고, 공작선에 실려 있던 각성자용 구속 장비로 팔다리를 단단히 묶었다.
삼합회 조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그리고 꼼꼼하게 움직였다.
이때 비교적 상태가 좋은 공작원이 소리 죽여 은밀히 말했다.
“야, 너. 내가 빠져나가는 거 도와주면 추적이 안 되는 마석 10억원…….”
콰아앙-
다 듣기도 전에 삼합회 중간보스는 주먹을 날려 입을 연 공작원을 기절시켰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말없이 주위를 봤다.
“…….”
순간 가면을 쓴 삼합회 조직원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무언의 동의를 표했다.
10억이 아닌 100억이라도 도와줄 수 없었다.
이 공작원 놈 중 한 사람이라도 새어 나가서 자신들에게 연락하는 순간.
자신들도 이놈들과 똑같은 신세가 될 테니까!
삼합회 조직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 일의 리더 원기륭은 알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주먹은 피했지만, 이세기 확보 작전은 완전히 망했다.
게다가 북중국의 고속 공작선과 정예 공작원들이 모조리 잡혔다.
조만간 북중국 국가안전부의 분노가 폭발할 거고 자신들이 그러했듯 그 분노는 가장 만만한 이에게 쏟아질 확률이 아주 높았다.
삼합회.
“……젠장.”
* * *
텅-
고속 구명정이 거대 거북이 갑각이 바짝 붙는 순간.
진교은이 널빤지 다리를 내리고 보안 요원들과 갑각 위로 올라왔다.
“이곳은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이태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세영과 고속 구명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갑각 위에 박힌 고속선을 향해 외쳤다.
“야, 넌 어떡할 거야?”
공작원을 꺼내던 천문석은 이태성의 외침에 크게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용 형님! 선생님! 먼저 가세요!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내 휴대폰 번호 여기 총괄 매니저한테 말해둘게! 너 진짜 잊지 말고 꼭 연락해라! 연락 안 하면 내가 찾아간다!”
이태성은 몇 번이나 외치더니 진교은을 봤다.
진교은은 상기된 얼굴로 바로 허리를 숙였다.
“길드장님.”
“난장판이긴 했지만, 끝이 좋았다. 명함 가지고 있냐?”
이태성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즉시 내밀어지는 빈 명함과 펜!
이태성은 연락처가 적혀 있지 않은 빈 명함에 펜으로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진교은의 손에 내려놓았다.
툭-
가벼운 명함이 손에 닿는 순간.
진교은은 격동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침내 빈 명함에 적힌 이태성의 개인 연락처!
이 명함은 이태성 길드장이 뒤를 봐주겠다는 약속이나 다름없었다!
어젯밤 난장판에서 구른 모든 것이 이 명함을 받는 순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진교은이 감동에 젖어 있을 때.
부아아아아앙-
이태성과 이세영이 탄 고속 구명정이 제주도를 향해 출발했다.
휘이이잉-
고속 구명정이 점점 속도를 높일 때 운전대를 잡은 이태성이 이세영을 보며 씨익 웃었다.
“야, 이세영. 이제 약속 지킬 때다.”
“하아- 불길한데…… 시킬 게 뭐야?”
약속은 약속.
이세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이태성은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길고 긴 지난밤의 개고생을 마침내 보상받을 순간이 왔다!
이태성은 밤새 개같이 구르면서도 잠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배낭을 열었다.
그리고 찌그러진 ‘솔의 눈’ 엘릭서를 꺼냈다!
“내 조건은 간단해. 이거 원샷해라! 지금 당장! 여기서!”
“어, 솔의 눈? 그거 룰렛 테이블 벌칙 음료 아냐? 그거 마시는 게 조건이라고? 진짜로?”
이세영이 의아해하는 순간.
“야, 내가 설마 친구한테 레이드라도 시킬 줄 알았냐? 나, 그런 사람 아냐.”
이태성은 터질듯한 내심과 달리 대수롭지 않은 듯 솔의 눈을 가볍게 던지며 말했다.
“야, 빨리빨리 먹고 끝내자. 하하하-.”
휘이이익-
이태성의 손을 떠난 솔의 눈이 고속 구명정 좌석을 지나 이세영에게 천천히 날아갔다.
그리고 이세영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받으려는 순간.
찌이익, 찌이이익-
바다에서 돌연 튀어나온 물줄기가 솔의 눈을 때렸다.
깡-
물줄기에 맞는 순간 옆으로 밀려나는 솔의 눈!
이태성은 탱커다운 반사신경으로 번개같이 뛰면서 손을 뻗었다.
이 순간 바다에서 촉수가 솟구치고, 이태성의 몸을 범고래 형태의 파도가 때렸다.
촤아아아아-
파도에 맞은 이태성이 1초 늦어진 이 타이밍!
이태성의 손보다 한발 먼저 촉수가 솔의 눈을 때렸다.
깡-
솔의 눈은 빙글빙글 회전하며 멀리 바다 위로 날아갔다.
“안 돼!”
경악한 이태성이 외치는 순간.
솔의 눈은 떨어지지 않고 다시 한 번 공중으로 튕겨 올랐다.
통-
그리고 연속해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
통통, 통통통-
새하얀 흰돌고래, 용용이.
용용이의 이마 위에서 솔의 눈이 공처럼 퉁겨지고 있었다!
“어, 어어어!?”
이태성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이 굳어 있는 순간.
휘히, 휘히힣히-
용용이의 신나는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찌익, 찌이익-
용용이가 발사한 바닷물이 변화구처럼 회전해서 이태성의 얼굴에 꽂혔다!
얼굴에서 주르륵- 흐르는 바닷물!
이 순간 이태성의 분노가 폭발했다.
“미친 용용이 새끼!”
전신에서 표상 오러 가 끓어오르고, 거대 괴수를 단독으로 탱킹하는 레이드 메인 탱커의 위압감이 주위를 내리눌렀다!
그러나 상대는 용용이었다.
미 7함대조차 상대할 방법이 없어 위성으로 미리 보고 피하는 바다의 제왕이자, 재앙!
용용이는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찍, 찌익, 찌이익-
놀리듯 바닷물을 연사하고.
휘힣- 휘히히힣-
즐거워하는 울음소리를 터트리더니.
통통, 통통통-
솔의 눈을 공처럼 튕기며 번개같이 도망쳤다!
파앗, 파앗, 파앗-
묘기 하듯 상체는 파도 위로 세우고, 꼬리지느러미만 바닷속에 넣어 헤엄치면서!
으아아아악-
이 순간 이성이 끊긴 이태성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아-
표상 오러를 폭발시켜 로켓이 미끄러지듯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이태성!
“용용이! 미친 고래 새끼! 오늘 뒤질 때까지 패주마! 시바! 내 솔의 눈! 당장 내놔!”
“…….”
이세영은 말없이 운전대를 잡고 고속선을 이태성을 향해 몰았다.
돌연변이 흰돌고래, 벨루가 용용이.
몸길이 30cm 남짓한 초소형 고래 용용이는 잡을 수도 없지만, 잡아서도 안 된다.
용용이의 각성력은 바닷물에 형상과 생명을 부여하는 것.
하늘로 날아오른 거대한 바닷물 가오리, 수면으로 뛰어올라 헤엄치던 바닷물 범고래 떼.
소용돌이치던 와류와 벽처럼 솟아오른 바닷물까지.
대한민국 서해는 용용이의 각성력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용용이가 일으킨 온갖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용용이가 서해를 지켜 주지 않았다면, 서울 수복 작전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지금 활발하게 이뤄지는 서해 어업과 해상 교통로도 단숨에 마비된다.
너무나 귀엽게 생긴 외모 탓에 부작용을 우려한 정부에선 용용이에 대한 정보 통제를 하고 있지만, 용용이에 대한 정보 접근 권한이 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용용이는 바다의 재앙이 아닌 바다의 축복이었다.
부아아-
이세영은 고속 구명정 속도를 올리며 용용이를 쫓고 있는 이태성에게 외쳤다.
“야, 그만해! 용용이한테 물건 스틸당한 사람 중에 되찾은 사람 아무도 없어! 그냥 저 캔 포기해!”
“안 돼! 내 솔의 눈! 저건 절대 안 돼!”
“고래 새끼! 야, 너 사람 말 알아듣지!”
“다른 것 줄게! 내 솔의 눈은 돌려줘!”
이태성은 피 끓는 절규를 터트리며 미친 듯이 용용이를 쫓았다.
그러나 용용이는 어쩐지 아주 기분 좋은 느낌이 전해지는 장난감, 솔의 눈을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통통, 통통통-
솔의 눈을 공처럼 이마로 튕기고.
파앗, 파앗, 파앗-
일부러 꼬리지느러미로만 헤엄쳐 잡힐 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속도를 조절했다.
으아아악-
괴성을 지르며 쫓아오는 사람이 힘을 내도록!
휘히, 휘히히힣-
용용이의 즐거운 울음소리가 바다에 울려 퍼졌다.
이 모습을 푸른 눈의 거대 거북이와 수직으로 꽂힌 고속선에 서 있는 천문석이 보고 있었다.
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렸다.
솔의 눈, 벌칙 음료를 던지다가 용용이에게 스틸을 당한 어이없는 상황.
이런 마무리도 나쁘지 않았다.
카지노 나이트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천문석은 내력을 담아 소리쳤다.
“용 형님! 우리 대박 났어요! 돌아가면 제가 솔의 눈 한 트럭 쏘겠습니다!”
천문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야! 이 솔의 눈 그런 거 아냐!”
이태성이 분통을 터트리고.
“그래, 그만해라. 한 트럭 쏜다잖아! 그거 내가 다 마셔 줄게! 하하-.”
이세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천문석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용용이가 우뚝 멈춰 서서 고마움을 담아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휘힣, 휘히히히힣-
카지노 나이트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까마득히 높은 하늘에서 회심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킥, 키키키킼-!
복수를 노래하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람쥐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