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56화>
고속 공작선 선체는 파도를 뚫고 달리기 위해 납작한 창날처럼 만들어졌다.
휘이이이잉-
이 납작한 창날 같은 선체가 하늘을 날아 거대 거북이 갑각 위로 떨어지는 순간.
콰앙, 콰르르르륵-
폭음이 터지고 엄청난 속도로 미끄러졌다!
서핑보드처럼 미끄러지는 선체와 하늘로 휙 날아올라 빙글빙글 회전하는 물체!
선체에 가해진 엄청난 충격에 마탄을 쏟아붓던 개틀링 건이 급탄 장치째로 떨어져 나와 공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타다다다다다-
사방으로 난사되는 고속 철갑 마탄!
경악한 공작원들이 깊게 패인 홈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가던 개틀링 건이 폭발했다.
콰아아, 쾅, 쾅, 쾅-
급탄 장치로 줄줄이 이어진 대형 마탄이 연쇄 폭발하며, 마탄에 새겨진 마력이 쏟아졌다!
오로라가 지상에 내려온 듯한 마력 폭풍이 일어나 엄청난 강도의 거대 거북이 갑각을 태우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중급 마수도 단숨에 불태울 엄청난 마력 폭풍이 일어났고.
이 마력 폭풍에 깊게 내부로 침잠했던 거대 거북이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때 깊게 패인 홈을 달리던 천문석은 연이은 폭발음에 깜짝 놀라 홈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봤다.
하늘로 치솟는 마력 폭풍과 서핑보드처럼 갑각 위를 빠르게 미끄러지는 고속선!
고속선에 달려 있던 개틀링 건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게 왜 여기에 올라와 있어!?”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콰르르르륵, 쿵-
갑각 위로 미끄러지던 고속 공작선이 멈춰 섰고.
파라라락, 탓, 탓, 탓-
공회전하던 고속 스크루 2개도 작동을 멈췄다.
팡, 파앙, 파아앙-
그리고 연쇄 폭발한 마탄이 만들어 낸 마력 폭풍이 치솟았다.
“…….”
거대 거북이 갑각 위, 전장에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용 가면을 생포하려던 공작원들은 멍하니 거대 거북이 등 위로 올라온 자신들의 배를 봤다.
상해에서 타고온 공작선이 바다 밖으로 올라와 멀리 거대 거북이 갑각 위에 놓여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카지노 유람선에 들이박혀서!
“……!?”
눈앞에서 벌어진 상상도 하지 못한 일에 공작팀 팀장은 입을 떡 벌렸다.
거대 거북 갑각 위에 올라와 기우뚱 기울어진 길이 50미터의 고속 공작선!
타겟인 이세기를 잡아서 남중국 함대로 돌아가야 할 고속 공작선이 거대 거북이 갑각 한가운데 기울어져 있다!
넋 나간 얼굴로 배를 보고 있던 공작원이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부대에 어떻게 돌아가냐?”
“……저거 놔두고 부대에 돌아가도 되나?”
“……!”
공작팀 팀장이 번쩍 정신을 차리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몸이 휘청 기울어졌다.
저 고속선은 타국 공작원의 체포와 제거 임무에 사용되던 8국의 무장 공작선이다!
-감청, 도청, 암호 통신 장비.
-기밀 자료가 가득한 보안 컴퓨터.
-납치한 타겟 구금용 감옥과 강압 심문실.
-공작 요원들이 사용하는 마력 장비와 개틀링 기관총까지.
무장 공작선 안에는 외부로 드러나는 순간 외교적 폭탄이 될 물건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남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에서 발견돼도 문제가 될 물건들인데, 한국, 그것도 수많은 유력 인사들이 있는 제주도 근해에서 공작팀과 함께 발견된다면!?
누가 봐도 저 고속선은 요인 납치용 무장 공작선이다.
자신들의 있는 곳 주위에서 요인 납치용 무장 공작선이 발견됐는데 그냥 넘어갈 유력자는 없다!
안전지대 제주도에 있는 유력 인사들의 수는 어지간한 국제회의장 이상.
이들이 분노하는 순간 그 누구도 무마할 수 없다!
상부에서는 바로 꼬리 자르기에 들어갈 테고.
자신들은 한국 사법 당국에 넘어갈 거다.
이때 방금 전 타겟이 외치던 목소리가 팀장의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사람한테 마탄 쏘면, 최하가 던전 노역형이야!]
[하수구 던전 노역형 받으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괴롭다!]
마탄을 처음 발명한 재금 그룹이 있는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마탄 관련 범죄에 대한 형량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다.
아니, 형량 자체는 강하지 않았다.
단지 한국은 게이트 전쟁 이후 중범죄자를 일반 교도소가 아닌 게이트 너머 몬스터 광산이나 던전 광산에 수감했다.
형기를 채우기도 전에 죄수들이 픽픽 죽어 나가는 노역형으로.
특히 오수에 들어가 곡괭이로 마석을 캐는 하수구 던전 노역장의 악명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다.
상상만으로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느껴질 때, 팀장은 멍하니 서 있는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육체 각성자! 염동력자! 당장 움직여! 바로 밀고 끌어!”
“네……?”
“뭘, 밀어요?”
멍하니 배를 보고 있던 팀원들이 반문하는 순간.
팀장은 팀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절규하듯 외쳤다.
“우리 공작선! 저 배 다시 바다에 띄우지 못하면! 우린 끝장이다!”
* * *
고속선이 갑각 위에 멈춰 서고, 기세등등하던 적들이 정신없이 달려갈 때.
이태성은 탄성을 터트렸다.
“와! 역시, 이세영! 어떻게 유람선으로 배를 밀어 버릴 생각을 하냐!? 으하하-.”
미끼가 되기 위해서 뛰어나왔던 이태성은 갑각 위에 납작 엎드린 채로 웃고 있었다.
사람에게 개틀링을 쏟아붓고 소총을 겨누던 놈들이 타고 온 배가 거대 거북이 위로 올라왔다!
즉, 저놈들은 이곳에 갇힌 거다.
여기서 빠져나가서 국가 헌병대 그 끈질긴 놈들한테 신고만 하면.
사람한테 개틀링 마탄을 쏟아부은 쟤들은 던전 노역형 확정이다!
“너희들은 내가 책임지고 하수구 노역장으로 보내 주마.”
이태성은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이세기와 함께 여기서 빠져나갈 때다.
이세영이 몰고 온 저 카지노 유람선을 타고!
“어!?”
카지노 유람선으로 고개를 돌리던 이태성은 굳어 버렸다.
고속선을 밀어 버린 카지노 유람선이 어느새 멀어지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이태성이 다급히 달리며 외쳤다.
“이세영! 멈춰!”
“야, 어디 가는 거야!?”
“이런 젠장! 이세영이! 야!”
각성력이 담긴 천둥 같은 외침이 하늘을 뒤흔들었지만, 카지노 유람선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멀어져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그리고 사방에서 빠르게 가까워지는 기감이 느껴졌다.
파드드득-
곧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오고, 거대 거북이 갑각 위로 마수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태성은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깨달았다.
카지노 유람선으로 몰려들던 마수의 어그로가 이쪽으로 끌려 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거대 거북이 위에서 개틀링 마탄을 갈기고 표상 오러 와 각성력을 터트리며 요란하게 싸웠으니까!
그리고 몰려들던 마수들을 떨쳐 낸 카지노 유람선은 안전하게 위험 해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 안에 수많은 민간인을 태운 채로.
“……설마 이것까지 노린 거냐?”
하, 하, 하-
이태성은 허탈하게 웃다가 몸을 돌려 거대 거북이 등 위에 올라온 고속선을 봤다.
바로 전까지 싸웠던 적들이 미친 듯 달려가는 고속선!
거대 거북이는 해류에 실려 빠르게 외해로 나가고 있고, 주변 바다에는 마수가 들끓는다.
마수가 들끓는 이 바다를 빠져나가려면 저 배가 필요했다.
거대 거북이 등 위로 올라와 기울어져 있는 적들이 모두 모여드는 저 고속선이.
하아-
이태성은 깊은 피로감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 쉬었다.
“뭐가 이렇게 개판으로 돌아가…… 어떻게 된 게 레이드 뛴 거보다 더 피곤하네…….”
수많은 돌발 변수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사건들.
오늘 밤 이세영을 카지노 테이블에 앉힌 이후로 어떻게 된 게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젠장!”
이태성은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고속선을 향해 달렸다.
이렇게 이태성과 정예 공작원들이 고속선으로 달리기 시작했을 때.
이 고속선을 향해서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간 사람이 있었다.
천문석이었다.
* * *
파바바바밧-
천문석은 엄청난 속도로 굴곡진 갑각 위를 달리고 있었다.
고속선이 갑각 위에 멈춰 서는 순간 본능이 소리쳤다!
‘저 배에 가야 한다!’
본능이 말하는 순간 천문석은 생각하기 전에 전력 질주했다.
처음에는 본능에 따라 달렸지만, 곧 어슴푸레 주위가 밝아오자 보였다!
어느새 밝아오는 하늘 아래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마수들!
제주도에 온 이래 몇 번이나 싸운 거대 게, 가재, 말미잘 같은 해양 마수가 몰려 오고 있다!
하지만 전과는 상황이 달랐다.
지켜야 할 사람이 없는 지금 저 정도 마수는 큰 위협이 안 된다.
문제는 동쪽이었다.
주위가 점점 밝아오자 보였다.
거대 거북이 동쪽으로 펼쳐진 바다가!
동쪽에 있어야 할 제주도가 보이지 않았다!
휘이이잉-
그리고 동풍이 불어오는 순간 깨달았다.
해류에 실려 제주도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있는 곳은 거대 거북이 등 위.
거대 거북이가 깨어나 잠수라도 하면 끝장이다!
육지, 배 위에서 마수와 싸우는 것과 바닷속에서 마수와 싸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마수가 들끓는 바다를 통과하려면 저 고속선이 필요했다.
문제는 고속선이 거대 거북이 위에 나뒹굴고 있다는 사실!
그러나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미친 듯이 고속선으로 달려 오고 있다.
이들의 각성력이면 이 거대한 고속선을 다시 바다에 내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 뒤에선 이태성까지 있었다.
천문석은 재빨리 계획을 세웠다.
-바로 고속선 함교로 들어가 내부를 장악한다!
-적들이 고속선을 바다에 띄우는 순간 이태성과 함께 제주도로 탈출한다!
계획을 세운 순간 천문석은 고속선이 기울어진 곳에 도착했다.
쾅-
단숨에 갑각을 박차고 뛰어 납작한 창날 같은 고속선 선체 위로 올라갔다.
개틀링 건이 뜯겨 나간 갑판 안쪽, 비스듬히 기울어진 입구가 보였다.
바로 달려가 문을 두들기는 순간.
딱, 딱, 딱-
소리와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보안등급 강화 철판!
게다가 뒤에는 마력 회로까지 깔려 있다!
천문석은 재빨리 고속선 선체 위를 두들기며 훑었다.
딱, 딱, 딱딱딱-
완벽한 방호력!
선체 전체에 강화 철판과 마력 회로가 깔려 있다!
이 배는 금고나 마찬가지였다.
“뭘 이렇게 단단하게 만들었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선체에 솟아 있는 10여 개의 둥근 관들이 보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탱탱볼, 강습 포트.
이 둥근 관은 그걸 쏘아낸 발사관이다!
강습 포트 안에 사람이 탑승한 걸 보면 이 발사관은 선내와 연결됐을 게 분명했다.
천문석은 바로 발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발사관 입구 10미터 아래 막혀 있는 철판을 두들기는 순간 직감했다.
쿵, 쿵, 쿵-
마력 회로가 없는 그냥 철판이다!
이건 뚫을 만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뚫는 건 무리.
천문석은 바로 주머니와 강화 전투복 포켓을 확인했다.
카지노 칩, 봉인된 스마트폰, 지갑, 괴수 코어, 특급 헌터 2등상 말간 돌, 검은 동전…….
검은 동전!
단단한 검은 동전으로 강기를 일으켜 철판을 뚫는다!
천문석은 검은 동전을 꺼내 이 안에 일기일원공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동전에 내력을 쏟아 넣는 순간, 작은 동전이 아닌 거대한 바위산, 끝없는 바다에 내력을 쏟아붓는 듯한 막막한 느낌이 전해졌다!
“……이게 대체!?”
깜짝 놀라 검은 동전을 유심히 살피는 순간.
검은 동전이 파르르- 진동하더니 쏟아부은 내력이 되돌아와 불쑥 강기가 어렸다!
의문은 나중, 지금은 이 고속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우선이다!
천문석은 강기가 어린 검은 동전으로 강철판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끄드드드드득-
잠시 후 마력 회로가 없는 강철판이 찢기듯 잘려 나가고 구멍이 뚫렸다.
천문석은 검은 동전을 주머니에 넣고 고속선 선내로 들어갔다.
공작원과 이태성은 고속선까지의 거리를 반도 줄이기 전.
당연히 천문석이 배 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어린 다람쥐 한 마리가 이 모든걸 보고 있었다.
깨진 마안을 두 손으로 잡은 어린 다람쥐.
니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