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52화>
“선생님! 저 마수를 누가 상대한다고요?!”
천문석이 다시 물었지만, 이세영은 선실에서 고개를 내민 승객들에게 연신 외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나오지 마세요!”
“통로는 위험합니다!”
“선체 벽에 붙으시면 안 돼요!”
“잠시만 선실 안에서 기다리세요!”
....
“....”
천문석은 더는 질문하지 않고 이세영 선생님을 따라 달렸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지금 이세영 선생님은 평소와 달랐다.
확신에 찬 모습으로 승객들에게 지시하면서 무언가를 하려 하고 있었다!
이렇게 객실 통로를 지나 계단이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이세영은 돌연 멈춰섰다.
"문석아! 솔의 눈!"
바로 건네지는 찌그러진 솔의 눈.
이세영은 솔의 눈을 손에 들고 1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태성. 나와라."
이태성?
태성 길드 이태성!?
"선생님 갑자기 무슨 이태성을…!"
천문석은 전신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 들어 계단 위를 보는 순간.
쓱, 쓱, 쓱-
슬리퍼 끄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모습의 사람이 나타났다.
같이 룰렛 테이블에 앉았던 용 가면을 쓴 남자, 압도적인 위용으로 삼합회를 아작내던 그 사람이다!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이태성!
용가면은 태성 길드의 이태성이었다!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순간.
이태성이 천문석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세기. 내가 제안을 하나…."
그러나 이태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세영이 외쳤다.
"솔의 눈!"
"뭐?"
이태성이 문득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야얍-
이세영 선생님이 기합을 지르며 '솔의 눈'을 볼링공처럼 객실 통로로 굴렸다.
데구르르르-
엄청난 속도로 바닥을 구르는 솔의 눈, 엘릭서!
"야, 이 미친!"
경악한 이태성은 번개같이 계단을 뛰어 내려와 바닥을 구르는 솔의 눈을 향해 달려갔다!
이 순간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지고 선체가 뒤흔들렸다.
쿵, 쿵, 쿵-
통, 통, 통-
솔이 눈이 충격에 통통 튕겨 오르는 순간.
이태성은 몸을 날려 튕겨 오르는 솔의 눈을 낚아챘다.
탁-
이태성은 손에 잡은 솔의 눈을 샅샅이 살폈다.
곳곳이 찌그러들긴 했지만, 내용물은 무사했다!
하아-
안도도 잠시 이태성은 깨달았다.
'이세영은?!'
번쩍 고개를 들자, 생각과는 달리 이세영이 도망치지 않고 계단 앞에 서 있었다.
웃음기 하나 없는 이세영의 진지한 눈빛!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이세영은 벼락같이 외쳤다.
"후방! 적 기습! 회전 낙법!"
수십 수백 번.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외침을 듣는 순간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쿵-
이태성이 땅을 박차고 뛰어 사선으로 구르는 순간.
콰아아앙-
객실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집게발이 이태성이 있던 곳에 박혔다.
데굴-
굴러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흐아앗-
기합을 터트리고 각성력을 폭발시킨다!
쾅, 쾅, 쾅-
두 주먹을 맞부딪히는 순간 전신에서 일렁이는 표상 오러!
마수의 거대한 집게발을 향해 이태성은 오러가 실린 주먹을 갈겼다.
표상 오러에 닿는 순간 마수 반발장이 순간적으로 흩어지고!
콰아아앙-
이태성의 맨주먹과 게 마수의 집게발이 격돌했다.
콰지지직-
강철보다 단단한 키틴질 갑각이 단숨에 으스러질 때 마수의 전신을 헤집는 표상 오러!
쿵-
게 마수의 집게발이 축 늘어지고 몸이 축 처지는 순간.
흐아앗-
기합을 지른 이태성은 폭풍처럼 밀어붙였다.
쿵, 쿵, 쿵-
바닥을 짓밟고 전진하며 공성 해머 같은 주먹을 때려 박는다!
쾅, 콰앙, 쾅-
매 순간 오러가 폭발하고 강철이 비틀려 터지는 굉음이 울렸다.
콰지지지직-
단숨에 게 마수를 선실로 밀어붙이자 보였다!
찢겨 나간 선체 벽!
그리고 그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가재 마수!
"하, 이건 또 뭐야?!"
이태성은 단숨에 돌진해 가재 마수의 머리를 박살 내고 게 마수를 들어 구멍을 막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세영!
자신을 미끼로 던지고 도망쳤구나!
"이세영!"
분통을 터트리며 밖으로 나온 순간 계단 위 자신이 섰던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이세영이 보였다.
"어, 너 왜…!?"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안 도망쳐?!’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이태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세영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태성! 명령이다! 30분이다! 이 통로를 30분 동안 지키고 함교로 올라와라!"
"뭐?! 야 그게 무슨…!?"
분통을 터트리던 이태성은 멈칫했다.
이세영이 '전장'에서만 하던 '명령'을 했다!
박살 난 객실 문 너머에는 찢긴 선체를 틀어막은 게 '마수'가 있고.
그 뒤에서 선체를 기어오르는 마수들이 느껴진다!
이태성은 깨달았다.
이세영의 전투 예지가 발현된 이유를.
평범한 위기 상황에서는 검은 폭풍의 전투 예지가 발현되지 않는다!
이세영, 검은 폭풍의 전투 예지가 발현됐다는 말은.
지금 이곳에 엄청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낙동강 전선, 서울 수복 작전!
수많은 불가능한 승리를 낚아채고, 죽음의 위기를 수도 없이 벗어나게 해준.
검은 폭풍의 전투 예지가 움직일 정도의 위기가 온다!
이 순간 이태성은 전율했다.
1세대 헌터, 인간재해, 철벽, 탱커 랭킹 1위….
호평과 악평이 뒤섞인 별명들.
하지만 이태성은 각성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각성 전, 게임 폐인 레이드 메인 탱커.
각성 후, 각성 헌터 레이드 메인 탱커.
불리는 이름만 달라졌을 뿐 자신은 언제나 탱커였다.
강대한 적 앞에 서서 모든 공격을 받아내는 사람, 탱커.
그리고 탱커는 커맨더가 명령하면 그 명령을 수행한다.
그 어떤 위기가 닥치고, 그 어떤 적이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이태성은 솔의 눈을 배낭에 넣고 각성력을 끌어 올렸다.
쾅, 쾅, 쾅-
두 주먹을 마주칠 때마다 전신에서 끓어오르는 표상 오러!
전신에 불타는 오러를 휘감은 이태성은 오래전 게임에서 하듯 이세영에게 경례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각성력을 담아 외쳤다.
"야! 숨어있는 놈들! 밖으로 나오지 마라! 앞으로 30분! 이곳에 마수가 쏟아진다!!"
이태성이 외치는 순간.
이세영은 몸을 돌려 함교로 달렸다.
* * *
몬스터 경보방송을 한 진교은은 함교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몬스터 레이더에 잡히는 수십 개의 점, 이 점 하나하나가 마수와 몬스터다!
안색이 하얗게 변한 진교은이 선장에게 물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왜 몬스터 경보를 울리지 않은 거죠?!"
"몇 시간 전부터 무전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 나타났던 괴수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장이 힐끗 선원들을 보며 말끝을 흐리는 순간.
진교은은 폭발하려는 화를 억눌렀다.
어차피 일은 터졌다.
잘잘못은 일을 수습한 후에 따져야 한다.
지금은 선장의 태만, 삼합회, 의뢰 같은 걸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승객들의 안전!
어떻게든 카지노 유람선 안의 모든 사람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진교은은 바로 함교 안 선원들에게 물었다.
"064 헌터 부대는 어떤가요?! 언제쯤 구조대가 올까요?"
"연결은 됐는데 지금 가용인원이 없다고 합니다!"
더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진교은은 바로 선장에게 명령했다.
"은폐 마력장 발생기! 당장 작동시키세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몬스터 경보 단계도 낮고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습니다. 은폐 마력장 발생기 사용하면 정제 마석이 들어가는데 그 비용이…."
선장이 평소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순간.
진교은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제 거대 괴수가 나타나 제주도 남부 시가지가 난장판이 됐는데 이런 태평한 말이라니!
진교은이 다시 한번 은폐장 작동을 명령하려 할 때.
쿠우웅, 쿵, 쿵-
육중한 진동이 느껴졌다.
깜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할 때 다급한 외침이 함교 곳곳에서 터졌다.
"선측에 마수 출현!"
"게 마수, 가재 마수. 해양 마수 출현!"
"마수가 선체를 타고 오르고 있습니다!"
진교은은 잇달아 명령했다.
"선장님! 함교 무기고 개방하세요!"
"보안요원들! 보안실에 연락해서 당장 무장하도록 지시하세요!"
"마수, 몬스터 출현 방향은 육지인가요?"
"네! 모두 육지 방향에서 밀려오고 있습니다! 지금 외해는 조용합니다!"
대답을 듣는 순간 진교은은 바로 결정하고 명령했다.
"선장님! 은폐 마력장 켜고. 바로 외해로 빠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함교 금고 여세요!"
선장은 힐끗 부선장을 보더니 굳은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냥 근해에서 버티는 게 더 안전…."
선장과 부선장의 심상치 않은 기색!
'설마……!'
이때 진교은의 머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몇 달 전 동대문 게이트 소멸 때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정제 마석 비리 사건!
진교은은 바로 움직였다.
탁-
선장의 허리를 훑어 열쇠를 빼내고 함교 안 금고로 달린다!
“진 사장!”
“사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깜짝 놀란 선장이 다급히 외치고, 부선장이 금고로 달리는 진교은을 막으려 할 때.
우드득-
으아악-
보안요원이 부선장을 붙잡고 팔을 꺾어 무릎 꿇렸다.
진교은은 재빨리 부선장의 허리에서도 열쇠를 꺼내 함교 금고에 꽂아 넣었다.
딸깍, 딸깍-
금고에 선장과 부선장의 열쇠가 꽂히고 동시에 돌아가자.
철컥-
금고가 열리고 안에 세워진 한 뼘 길이의 안전 상자 7개가 보였다.
진교은이 안전 상자를 여는 순간.
숨죽여 이 모든걸 보고 있던 함교 안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있었네…."
"하, 시바 시껍했네!"
안전 상자 안에는 푸른 빛을 뿜어내는 정제 마석이 담겨있었다!
“진 사장님! 이 무슨 무례한 행동입니까!”
강제로 무릎 꿇려진 부선장이 악을 썼다.
그러나 정제 마석을 확인한 진교은은 굳은 얼굴로 7개의 안전 상자를 모두 열었다.
그리고 액화된 정제 마석을 하나 꺼내 마력장을 일으켰다.
궁, 궁, 궁-
진교은의 손에서 마력장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함교 안 모두는 경악했다.
"마력 각성자!?"
“사장님이 마력 각성자라고?!”
선장과 부선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할 때.
푸른 빛을 발하던 정제 마석은 순식간에 빛을 잃고 투명한 물이 되어 버렸다.
"이게 대체?!"
"사장님 그건!?"
진교은은 정제 마석을 휙 집어 던졌다.
파삭-
함교 가운데 떨어진 정제 마석은 단숨에 박살 나고 그 안에 담긴 물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엄청난 강도의 정제 마석이 깨지다니 말도 안 되는 일!
게다가 액화된 정제 마석은 공기 중에선 흩어지지 않고 결집한다!
함교 안 모두는 깨달았다.
'정제 마석이 가짜다!!'
진교은은 재빨리 명령했다.
"선장. 부선장! 재해 특별법에 따라 지위를 박탈합니다! 보안요원! 두 사람을 보안실에 가두세요!"
"오해 십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부선장이 다급히 외쳤지만, 진교은은 믿지 않았다.
금고를 열기 위해서는 선장과 부선장의 열쇠가 모두 필요했다.
부선장의 도움 없이 선장 혼자 정제 마석을 바꿔치기했을 리 없었다!
선장과 부선장, 검사 업체까지 이번 일에 어디까지 관련됐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정제 마석이 가짜고, 은폐 마력장 작동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은폐 마력장 없이 외해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
그렇다면 무장하고 어떻게든 이곳 근해에서 버텨야 했다.
다행히 이 유람선 선체는 강화 철판으로 개보수된 상황, 선체가 뚫릴 일은 없다.
마수에게 포위되지 않도록 계속 항해하면서 바다에 세워진 성벽, 갑판에서 마수를 처리하면 된다!
헌터 부대 구조대가 올 때까지만!
진교은은 함교 안 선원들과 보안요원들에게 명령했다.
"바로 무장합니다! 고객들을 지켜야 합니다."
이때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2층 객실 외부 선체가 뚫렸습니다?!"
"네?! 2층 선체는 보수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말하는 순간 진교은의 눈에 가짜 정제 마석이 들어왔다.
2층 선체는 선장의 강력한 요청으로 새로운 업체를 선정해 보수한 부위였다!
“하, 시바!”
욕할 시간도 없다.
선체에 뚫린 구멍으로 마수가 쏟아지면 참사가 일어난다!
진교은은 바로 움직였다.
“바로 무장하고 2층으로 이동한다! 그곳으로 마수가 쏟아지면 끝장이다!”
“알겠습니다!”
함교 무기고가 열리고 마탄 소총과 방검 방탄복으로 무장하는 보안요원들!
그리고 2층으로 이동하려 할 때 함교 입구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헉, 허억! 잠시만, 잠시만 멈춰요!"
함교 입구, 꿀벌 가면을 쓴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진교은은 한눈에 알아봤다.
타겟!
의뢰인 이태성 길드장의 타겟이 스스로 함교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