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47화>
토끼 가면, 이세영!
다 이긴 룰렛 판에 도끼를 던진 삼합회 놈들을 두들겨 패다가 정작 이세영을 깜박했다!
“시바! 시바! 개시바!”
이태성이 분통을 터트리며 재빨리 주위를 훑었지만, 악어 가면과 토끼 가면, 두 사람 다 VIP룸 어디에도 없었다!
“토끼 가면! 하, 시간 없는데 미치겠네!”
이태성이 외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진교은이 앞으로 나와 무전기를 내밀었다.
“조금 전 VIP룸에서 나가셨습니다. 보안실에서 CCTV로 동선을 추적 중이고. 보안요원들도 선내를 수색 중입니다! 이 무전기를 사용하시면 보안실과 바로 연결됩니다!”
“뭐!? 하아- 고맙다!”
이태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하자, 눈치를 살피던 원기륭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말씀만 하신다면! 당장이라도 토끼 가면님을 모셔 오겠습니다!”
“뭐, 누굴 모셔 온다고?”
“토끼 가면을 쓰신…….”
하하하하하-
이태성은 미친 듯 웃음을 터트렸다.
박살 난 VIP룸 곳곳에 엉거주춤 있는 삼합회 놈들!
몇 번 쥐어박으나 처음 살기등등한 모습은 씻은 듯 사라지고, 당장이라도 도망칠 듯 전전긍긍 뒤로 몸을 빼고 있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만 강한 전형적인 조폭 헌터의 모습이다!
이런 놈들이 토끼 가면과 악어 가면을 데려온다고?
검은 폭풍 이세영과 그 친척을!
이태성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괜히 수십억을 써서 크루즈 선을 구하고 브로커를 고용해서 복잡하게 일을 꾸민 게 아니다.
이 모든 건 이세영이 스스로 카지노 유람선에 오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검은 폭풍, 이세영은 부대를 재편하는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재앙급 마수 3마리를 달고 도망 다닌 적도 있었다.
이런 녀석들 천 명이 있어도 이세영은 잡지 못한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 때문에 내 계획이 일그러졌다니!”
이태성은 탄식할 때, 원기륭이 다시 한 번 고개 숙이며 말했다.
“용 가면님의 그 계획 저희가 어떻게든 보상하겠습니다!”
“보상? 보상한다고?”
하, 하, 하-
이태성은 다시 한 번 허탈하게 웃었다.
이 녀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 무엇을 준비했는지!
서울을 수복할 때까지 낙동강 전선을 지킬 수 있던 건 단 한 사람 덕분이었다.
검은 폭풍, 이세영.
총은커녕 칼 한번 잡아본 적도 없던 전직 교사는 각성하자마자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한계를 넘어서까지 각성력과 생명력을 뽑아내 불리한 전황을 수도 없이 뒤집었다.
그 결과 서울을 수복하고 남한 전체를 회복할 수 있었지만, 노화까지 역행하는 최고등급 각성자였던 이세영은 각성력이 담긴 그릇이 깨지고 생명력을 잃고 빠르게 늙어 버렸다.
이세영은 괜찮다고 다시 선생님을 하려면 적당히 늙은 얼굴이 좋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이태성은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건 이태성뿐만이 아니었다.
-재앙급 마수의 어그로를 끈 채로 손을 흔들며 달려가던 모습.
-치명상을 입은 동료를 짊어지고 후방 병원까지 달려와 픽 기절하던 모습.
-피가 철철 흐르는 몸으로 전장을 가로질러 와 커다란 배낭에서 마탄을 꺼내던 모습.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암울한 순간.
전장에서 가장 작고, 어려 보이는 소녀는 항상 웃으며 가장 위험한 전투마다 앞장섰다.
그리고 전투마다 빠르게 늙어 갔다.
이세영은 이제야 원래 나이로 돌아간다고 웃었지만.
그 웃음을 한 번이라도 본 전우들은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나서자 전우들이 힘을 모아줬다.
그러고서도 추이린에게 엄청난 대가를 치른 후에야 만들 수 있었다.
깨진 각성력뿐만 아니라, 생명력까지 다시 채워 주는 이세계의 마도 비약!
엘릭서.
그러나 추이린이 만든 엘릭서는 제조 후 48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약효를 잃고 곧 평범한 포션이 돼버린다.
다시 모든 세팅을 하고, 이세영이 스스로 도박 테이블에 앉게 한 후,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대결해서 이긴다고 해도.
그때쯤이면 엘릭서는 이미 평범한 포션이 돼버린 후다.
이태성은 고개 숙인 원숭이 가면에게 물었다.
“너희가 보상한다고?”
“네! 무엇이든 원하시는 형태로 보상을…….”
원기륭이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는 순간 이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 저으며 말했다.
“미친놈들 내가 그 솔의 눈…….”
순간 이태성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엘릭서!’
순간적으로 이성이 끊겨 솔의 눈으로 위장한 엘릭서를 깜빡했다!
* * *
“움직이지 마!”
이태성은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네!?”
중간 간부 한 명이 자신도 모르게 되물으며 한걸음 움직이는 순간.
콰아앙-
번개같이 달려간 이태성의 주먹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혔다.
쾅-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기절해서 쓰러진 중간 간부!
이태성은 다시 한 번 살기등등한 외침을 터트렸다.
“솔의 눈! 당장 ‘솔의 눈‘찾아!”
“…….”
삼합회 조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봤다.
이들 모두는 마력 각인을 받아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러나 상황과 맞지 않은 ‘솔의 눈‘같은 고유 명사를 듣자, 이들은 지금 용 가면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의 눈? 소나무 눈 말하는 거야?”
“이 배에 소나무가 있었어?”
이때 진교은이 재빨리 나서서 설명했다.
“모두 잘 들으세요!”
“솔의 눈은 캔 음료입니다!”
“한 뼘 정도 크기! 겉에 소나무 그림이 그려져 있어요!”
“테이블에 있던 그 음료수!”
솔의 눈이 무엇인지 깨달은 원기륭은 룰렛 테이블에서 봤던 솔의 눈의 이미지를 텔레파시로 뿌렸다.
삼합회 조직원들은 바로 난장판이 된 VIP룸에서 ‘솔의 눈‘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문득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 이세기는 잡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원기륭이 눈치를 살필 때, 진교은이 이태성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솔의 눈은 제가 책임지고 찾아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먼저 움직이세요.”
이태성은 순간적인 판단이 중요한 레이드 탱커이자 커맨더.
진교은의 말하는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인원을 나눠서 움직이자는 뜻!
이태성은 재빨리 10여 명의 삼합회 조직원을 지목했다.
“너, 너. 너너너……!”
삼합회 조직원들이 난장판을 뒤지다가 바짝 긴장해서 일어서는 순간.
이태성은 원기륭에게 명령했다.
“얘들 데리고 악어 가면, 이세기를 찾아라!”
“알겠습니다!”
원기륭이 바로 밖으로 달려나갈 때.
이태성도 이들과 같이 달려 나가며 몇 번이나 강조했다.
“토끼 가면이 아니라 악어 가면이다! 절대 토끼 가면은 잡으려 하거나, 위해를 가하거나 위협을 해선 안 된다! 아니 아예 말도 걸지 마라!”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명령하는 사람이 이태성이었다.
삼합회가 박살 나지 않으려면 이태성이 무슨 일을 시키든 해야 했다.
원기륭은 상급자에게 하듯 절도 있게 고개 숙이며 대답했다.
“맡겨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방금까지 적으로 싸웠던 삼합회를 수족처럼 부리며.
이태성은 재빨리 머리를 굴려 계획을 세웠다.
이세영이 위기감을 느껴 전투 예지가 발현되면 끝장이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전투 예지가 발현된 이세영을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다행히 이세영 옆에는 몸을 던져서까지 지키려는 친척 이세기가 있었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엘릭서만 날릴 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엘릭서를 만들고 기회를 잡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순간 이태성은 결심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강제로라도 엘릭서를 먹인다!
* * *
이태성과 삼합회가 천문석과 이세영을 쫓아 카지노 유람선 안을 달리고 있을 때.
카지노 유람선 밖에선 누군가 굴린 스노우볼로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킥, 키키키킥-
니케가 하늘을 빙글빙글 활강하며 제주도 안에 은밀히 숨어든 마수와 몬스터들을 모조리 물었다!
마수와 몬스터들은 엄청난 고통에 무력화됐다가 맹목적으로 도망쳤고, 064 헌터 부대는 정리가 끝난 줄 알았던 마수와 몬스터의 등장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이렇게 비상이 걸리자, 제주도의 수호신 거대 거북이를 어떻게든 움직이려던 헬기와 함대는 바로 항구로 귀환해 내륙의 헌터 부대를 지원했다.
결국, 맹목적으로 도망치는 마수와 몬스터들은 헌터 부대가 저지선을 친 내륙이 아닌 주변 바다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마수와 몬스터가 쏟아지는 제주도 근해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하는 공작선과 각성 동물이 있었다.
파도 사이를 뚫고 달리는 파랑관통형 공작선.
바닷속을 엄청난 속도로 가로지르는 각성 동물.
파랑관통형 공작선은 카지노 유람선으로 이동 중이었고, 각성 동물은 어제부터 계속 대답이 없는 부하, 거대 거북이를 향해서 이동 중이었다.
고오오오오오-
초음파에 텔레파시를 담아 몇 번이나 쏘아 보냈지만.
짙은 두려움이 담긴 감정만 돌아오고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각성 동물은 의아해하며 속도를 더 올렸다.
파아아아아아아-
물리적 한계를 넘어 바닷속을 꿰뚫는 각성 동물!
쾅, 쾅, 쾅, 쾅, 쾅-
각성 동물이 나아가는 경로를 따라서 폭음이 터지고, 바닷물이 수십 미터씩 벽이 되어 치솟았다가 안개가 되어 쏟아졌다.
바다 위에 거대한 안개 장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너무나 거대해 인공위성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안개 장벽은, 서해에서 시작해 제주도의 근해 거대 거북이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밤이라 아직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이 안개 장벽을 보는 순간 이걸 만든 각성 동물의 정체를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각성 동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서해에 있는 각성 동물은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서해에 흘러들어온 해양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를 순식간에 박살 내고.
서해 중앙에 금을 긋듯 거대한 안개 장벽을 만들어 서해를 둘로 쪼개 버린 각성 동물!
처음 존재가 알려진 지 벌써 20년!
한국과 중국에서 서로 자국 각성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이 각성 동물은.
바다의 제왕이자 재앙, 용용이었다.
지금 이 순간 바다의 제왕 용용이가 대답 없는 부하를 확인하러 제주도 근해, 카지노 유람선이 향하는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지금 카지노 유람선은 태풍의 눈, 사건의 중심이었다.
니케는 카지노 유람선이 내려다보이는 하늘에서 날았고.
숨어 있던 마수와 몬스터는 카지노 유람선이 이동하는 바다로 도망치고 있었다.
카지노 유람선 남서쪽에서는 북중국의 고속 공작선이, 카지노 유람선 북서쪽에서는 바다의 재앙 용용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삼합 카지노 유람선은 제주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다.
더 정확히는 카지노 유람선에 있는 한 사람이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이었다.
복잡하게 얽힌 이 모든 사건의 인과를 거슬러 올라가면 한 사건이 나온다.
-니케가 제주도로 날아오다가 거대 거북이와 거대 괴수를 물어 버린 사건.
이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거대 거북이와 거대 괴수가 무력화되자 마신의 사도 거대 말미잘이 제주도를 공격했다.
-천문석은 개같이 구르다가 간신히 마신의 사도를 차원 너머로 던져 버리고 코어를 날름하고 이세기의 이름을 새겼다.
-이세기의 이름이 헌터 부대와 내각정보실로 흘러 들어가고 중국의 국가안전부까지 움직였다.
-국가안전부는 삼합회를 움직였고 삼합회가 이세기를 발견하자 고속 공작선을 보냈다.
-그리고 거대 거북이가 의욕을 잃자 용용이가 제주도로 오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 거북이와 거대 괴수가 니케에게 물린 것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어난 이유, 니케가 제주도로 오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옥탑방에 놓인 ‘깨진 마안’.
‘깨진 마안’이 처음 구른 스노우볼이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방안에 깨진 마안을 놓아둔 사람은 천문석이었다.
처음 ‘깨진 마안‘으로 시작한 이 작은 눈 뭉치는 구를수록 점점 커져, 이제는 거대한 눈사태를 일으켰다.
이 눈사태가 삼합 카지노 유람선, 처음 눈 뭉치를 던진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밀려 오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인과는 인지로 헤아릴 수 없는 법.
처음 자신도 모르게 눈 뭉치를 던졌던 사람, 천문석은 밀려 오는 눈사태는 짐작도 못한 채 신나게 외쳤다.
“완벽한 성공입니다! 선생님!”
“잘했어! 역시 넌 머리 회전이 기막히다니까!”
“쟤가 좀 그런 면이 있죠!”
카캬카카칵-
으흐흐흐흣-
천문석과 이세영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VIP룸이 난장판이 된 순간 천문석은 칩 상자를 챙겨 이세영 선생님과 함께 도망쳤다.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연신 탄성을 질렀다.
조폭 헌터들이 나타난 순간 대신 싸워 줄 사람이 등장하다니!
이렇게 재수가 좋다니!
역시 자신에게 대운이 온 게 맞았다!
‘하늘님! 충성충성!’
천문석은 하늘의 인과로 자신에게 밀려 오는 사건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위대하고, 훌륭하고 공평무사하신 하늘을 향해 찬탄을 바치며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