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45화>
“이제 승부가 난 것 같네요?”
악어 가면이 시계를 힐끗 보며 말한 순간 이태성은 뭐라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 앞에 놓인 몇 개 안 되는 칩.
맞은편 테이블에 놓인 수북한 칩 무더기.
칩을 세어 볼 필요도 없었고, 시간도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졌다!
패배했다!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어이없는 상황에, 이태성이 허탈하게 웃을 때.
하, 하, 하-
악어 가면은 손을 뻗어 룰렛 옆에 놓인 벌칙 음료수를 집었다.
솔의 눈.
탁-
천문석은 솔의 눈을 베팅 테이블의 [00] 칸에 놓고 말했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는 건 아쉽죠? 용 가면님. 벌칙 음료를 마실 사람을 정하는 마지막 승부를 겨뤄볼까요?”
순간 허탈하게 웃던 이태성이 벌떡 일어나 재빨리 말했다.
“와, 역시 악어님! 화끈하시고 훌륭하시네요! 구슬을 던져서 그 구슬이 솔의 눈이 놓인 곳! [00]에 멈추는 사람이 ‘지는‘거로 하는 게 어떨까요?”
“토끼님 괜찮으신가요?”
“당연하지. 오늘 나는 불패의 승부사야!”
천문석의 물음에 신나서 고개를 끄덕이는 이세영 선생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세영 선생님의 연속된 패배가 천문석 이세영 두 사람의 전략적 승리를 가져왔으니까!
천문석은 내심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하죠. 이걸 마지막으로 전 환전하고 집에 가야겠네요. 총괄 매니저님 혹시 바로 육지로 갈 수 있을까요?”
“유람선에 VIP분들을 위한 육지로 이동 가능한 배가 실려 있기는 한데…….”
진교은이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자,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자 그럼 이게 마지막 승부입니다!”
천문석의 목소리가 퍼져 나가자, 룰렛 테이블 주위로 VIP룸의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천문석은 바로 구슬을 던졌다.
파아아앙-
스핀이 걸려 빠르게 회전하는 구슬, 잠시 후 천문석이 던진 구슬은 [23]에 멈췄다.
“전 아니네요.”
뒤이어 원숭이 가면, 원기륭과 용 가면 이태성이 구슬을 던졌고 구슬은 [0], [17]에서 멈췄다.
그리고 마지막 토끼 가면 이세영 선생님의 차례.
“선생님 화이팅!”
천문석이 웃음 띤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룰렛에 집중한 이세영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선생님만 믿어! 나 오늘 완전 장난 아냐!”
파아아아앙-
이세영 선생님이 구슬을 박력 있게 던지는 순간.
룰렛 테이블 주위의 모든 시선이 구슬로 모였다.
휘잉, 휘잉, 휘이잉-
빠른 속도로 회전하던 구슬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톡, 토톡, 톡, 톡-
룰렛 판의 요철에 맞고 이리저리 튕기는 구슬!
구슬은 천천히 [00]을 향해서 움직였다.
순간 터져 나오는 기합성!
“하앗-! 그래! 할 수 있어! 거기로 가는 거야!”
용 가면이 외치는 순간.
딜러인 진교은도 손을 움켜쥐고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제발, 제발, 제발……!’
“아냐! 거기로 가면 안 돼! 이러면 안 돼! 으아앗-.”
그리고 이세영 선생님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오는 순간.
천문석은 내심 미소 지으며 카지노 칩을 상자에 챙겨 넣었다.
더는 볼 필요도 없었다.
구슬은 [00]에 들어갈 것이다.
역시 이세영 선생님은 명불허전!
룰렛 판 38칸 중 [00]에 구슬이 들어갈 확률은 2.6%.
50번 던져서 1번 일어난 확률인데 처음 던지는 순간 당첨되시다니!
하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40만$ 정도의 칩을 땄다.
반반으로 나눠도 20만$, 2.2억가량의 돈을 딴것이다.
벌칙게임에서 져서 ‘솔의 눈’ 마시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천문석은 힐끗 절박함이 느껴지는 용 가면을 쓴 남자와 좌절 중이신 이세영 선생님을 번갈아 봤다.
이세영 선생님은 아직도 모르시는 것 같지만, 천문석은 게임을 몇 판 했을 때 바로 깨달았다.
목소리와 몸짓에 숨겨진 깊은 호감!
용 가면을 쓴 남자는 이세영 선생님을 알고 있었다!
천문석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곧 짐작했다.
이세영 선생님은 박찬석 준장 같은 실력자들과 깊은 친분이 있으셨다.
이 용 가면도 그렇게 친분 있는 사람일 거다.
용 가면의 정확한 정체와 목적은 알 수 없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깊은 호감을 봐서는 선생님께 나쁜 일을 할 리가 없었다.
‘선생님. 전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천문석이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휘이이이익-
섬뜩한 바람 소리와 함께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도끼!
쾅-
도끼가 룰렛 판에 박히고 [00]을 향해서 굴러 가던 구슬이 하늘로 튀어 올랐다.
순간 이태성의 숨넘어가는 비명이 터졌다.
“겨우 이겼는데 도끼! 도끼라고!? 이런 빌어먹을 젠장! 도끼가 왜 룰렛 판에 박혀!? 어!? 으아악-.”
* * *
룰렛 테이블을 구경하러 모여들었던 VIP룸의 사람들이 흠칫 놀라 물러설 때.
검은 양복을 입은 30여 명의 사람이 천문석의 앞을 막고 위압적인 어투로 말했다.
“이세기님. 저희랑 잠시 같이 가시죠.”
“지금 손님분께 뭐하시는 건가요! 어?”
“…….”
진교은이 화를 내며 제지하려 했지만, 원기륭이 팔을 잡고 나서지 못하게 막았다.
이 순간 VIP룸 곳곳의 게임 테이블에서 붉은빛이 쏟아졌다.
각성력 감지기!
천문석은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자신의 앞을 막은 이 녀석들 전원 각성자들이다!
‘아니, 이게 갑자기 뭔 상황이야!?’
천문석은 재빨리 눈만 움직여 상대를 확인했다.
가면과 삼합 모자를 쓴 남녀 30여 명!
어느새 정장 아래 강화 전투복을 입고 무장 벨트에 칼과 도끼까지 차고 있다. 게다가 만만치 않은 각성력이 느껴진다.
그에 반해 자신은 무기도 장비도 없는 비무장 상태!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60초면 상대를 아작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놈들이 30명이 넘는다는 것!
그리고 뒤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이세영 선생님이 계신다!
연이은 승리에 한껏 풀어졌던 마음이 순식간에 조여들고 머리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했다.
‘어떻게 할까?’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수십 가지 대응방법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천문석은 그중 가장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는 너무나 익숙한 상황!
자신에겐 이럴 때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기술이 있었다!
으아악-
천문석은 비명을 질러 시선을 모으고 겁먹은 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들! 왜 이러시나요!? 저 사기도박 한 거 아닙니다!”
천문석의 잔뜩 겁먹은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 중간 보스가 앞으로 나서서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세기님. 잠시 저희랑 같이 가셔서 대화만 하시면 됩니다.”
도끼를 던져놓고는 대화라고?
속이 빤히 보이는 모습에 천문석은 겁먹은 사람처럼 뒤로 물러서며 양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냥 여기서 이야기하시면 안 될까요?”
사방에서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끌어올렸던 각성력이 흩어지는지 곳곳에 밝혀진 붉은 등이 꺼지고 있었다.
상대는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적을 앞에 두고 방심하다니!
이런 멍청한 녀석들!
이런 멍청한 놈들에게는 교훈을 내려 줘야 했다.
굉천수의 눈뽕이라는 교훈을!
천문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머리 위로 천천히 올렸다.
그리고 눈뽕을 먹이려는 순간.
천문석의 옆을 스쳐 앞으로 뛰어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토끼 가면을 쓴 이세영 선생님!
‘아니 선생님! 갑자기 왜!?’
깜짝 놀란 천문석이 양손을 멈추는 순간.
이세영 선생님이 작은 몸으로 천문석의 앞을 가리고 외쳤다.
“선생님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보증할게요. 얘는 선생님들과 같은 분과 엮일 만한 아이가 아니에요! 아까 이름은…….”
“당신이 누군데. 보증해?”
삼합회 조직원이 피식 웃으며 묻는 순간.
지금껏 신분을 감추던 이세영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저 이세영 교사입니다! 이 아이 제 제자예요! 아까 얘가 말한 이름은…….”
순간 삼합회 조직원들의 시선이 빠르게 교차했다.
이세기, 이세영?
이름만 들어도 둘이 관계를 알 수가 있었다!
“둘 다 데려간다!”
중간 보스가 명령하는 순간 삼합회 조직원들은 일제히 움직여 악어 가면과 토끼 가면을 잡으려 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이세영 선생님을 끌어당겨 물러나며 속삭였다.
“선생님. 눈감고 손으로 눈 가리세요. 절대 눈 뜨면 안 됩니다.”
“뭐?”
이세영이 반문하는 순간 룰렛 테이블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도끼 어떤 새끼가 던졌냐?”
“뭐? 어떤 새끼?”
이런 젠장, 저 사람도 있었지!?
시선을 돌리던 삼합회 조직원과 천문석은 경악했다.
후우우우웅-
만져질 듯 선명한 붉은 불꽃에 휩싸인 룰렛 테이블이 날아오고 있었다!
으아악-
“당장 피해!”
“이건 뭐야!?”
경악한 외침이 터지는 순간.
천문석 앞으로 지나가는 룰렛 테이블!
콰아앙-
콰지지직-
룰렛 테이블은 포커 테이블을 산산조각내고 벽을 단숨에 뚫고 박혔다.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
“이런 거지 같은 새끼들.”
순간 VIP룸의 모든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룰렛 테이블을 던진 남자가 룰렛 판에 박힌 도끼를 뽑아 들고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색 하와이안 셔츠에 반바지, 슬리퍼.
VIP룸이 아닌 해변이 어울리는 관광객 차림의 용 가면을 쓴 남자.
그러나 이 순간 이 안에 있는 모두는 이 남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이 남자의 전신에서 일렁이는 붉은 불꽃!
그런데도 옷은 조금도 불타지 않고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는 순간 이 붉은 불꽃의 정체를 모두는 알아챘다.
오러!
그것도 만져질 듯 선명한 표상 오러다!
순간 사방에서 쏟아지는 붉은빛!
각성력 감지기가 폭발할 듯 붉은빛을 토해 냈다.
“모두 조심해라! 표상 오러면……!”
중간 보스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오는 도끼!
후우웅-
까아앙-
경악한 중간 보스가 날아오는 도끼를 튕겨 내는 동시에, 용 가면의 주먹이 중간 보스의 몸에 꽂혔다!
강화 전투복의 방어 마력장이 일어나는 순간 기합과 함께 폭발하는 표상 오러!
하아앗-
콰아아앙-
중간 보스는 방어 마력장째로 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이게 시작이었다.
용 가면을 쓴 남자는 폭풍처럼 삼합회 조직원들을 아작내기 시작했다.
“조심해!”
“표상 오러!?”
“흩어져!”
“붙지 마라! 표상 오러다!”
“접근하면! 각성력이 흩어진다!”
“이 새끼 탱커다! 레이드 탱커!”
……
삼합회 조직원들은 재빨리 흩어져 무기를 꺼내고 각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연속해서 터지는 굉음과 비명!
쾅, 쾅, 콰아앙-
으아악-
꺼어어억-
30여 명의 삼합회 정예들이 사방으로 날아가 나뒹굴고, VIP룸의 모든 게 박살 나기 시작했다.
각성력 감지기의 붉은빛 아래에서 육중한 대리석 테이블이 날아다니고 테이블 위에 가득 쌓였던 칩이 비처럼 쏟아졌다.
꺄아아아-
으아아악-
흥미진진한 눈으로 싸움을 구경하려던 VIP 고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때.
사방으로 나뒹굴던 삼합회 조직원들은 악을 쓰며 용 가면에게 달려들었다.
“그물! 그물 없냐!?”
“이 새끼 레이드 탱커라니까! 붙지마!”
“원거리! 원거리 공격해!”
“뭐든지 좀 던져!”
……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VIP룸 구석.
주목의 대상이었다가 이제는 모두에게서 잊힌 사람들이 있었다.
“어, 저 오러. 분명 본 거 같은데……?”
이세영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용 가면의 표상 오러를 보며 고개를 갸웃할 때.
천문석은 뻘줌하게 들고 있던 양손을 슬그머니 내리고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 용 가면을 봤다.
“…….”
이렇게 다른 사람이 난장판을 만드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평소라면 굉천수로 눈뽕을 먹이고 난장판을 만들고 도망치는 건 자신이 할 일인데…….
‘뭐지, 갑자기 배역을 뺏긴듯한 이 기분은!?’
천문석이 한 번도 겪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을 때.
진교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원기륭에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싸움을 멈춰야 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 선생님께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겠습니다! 우선 여기서 몸을 피하시죠.”
원기륭이 공손히 고개 숙이고 난장판이 된 전장으로 달려가려는 순간.
진교은은 원기륭의 옷을 움켜잡았다.
“피를 볼 생각은 없습니다. 제압만 하고…….”
원기륭이 다시 한 번 안심시키려 할 때.
진교은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난장판의 중심에 있는 용 가면을 가리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이태성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