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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43화 (34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43화>

통-

테이블에 앉은 모두의 시선이 룰렛에서 튕겨 나온 구슬을 따라 움직였다.

통, 통, 통-

스핀이 걸려 불규칙하게 테이블 위를 튕기는 구슬!

구슬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구슬에 걸린 스핀 때문에 룰렛에서 튕겨 나왔다.

또르르르르, 툭-

테이블 위에서 몇 번 튕기던 구슬은 곧 구르기 시작했고 천문석이 건 칩에 닿고서야 멈췄다.

“…….”

“…….”

진교은과 이태성이 믿을 수 없는 결과에 굳어 있을 때.

천문석과 이세영은 감탄했다.

“와! 무슨 스핀이! 토끼님. 구슬에 스핀 걸린 거 보셨죠!?”

“그러게 말야! 얼마나 스핀이 걸렸으면 구슬이 밖으로 튕겨 나오니!? 나 이런 거 처음봐! 진짜 신기하다!”

이 순간 이태성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신기한 건. 이세영 너잖아!?’

‘아니,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거야!?’

‘도박 기술자가 대놓고 기술을 썼는데!?’

“갑자기 구슬이 왜 튕겨 나와!”

이태성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진교은은 휘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뻔했다.

섹션 중앙을 향해서 구슬을 던졌는데 룰렛 밖으로 튕겨 나왔다!

프로 도박사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십 년이 넘게 구슬을 던졌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진교은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때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딜러님. 빨리빨리 다음 판 하죠.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모르세요?”

진교은은 재빨리 몸을 바로 하고 반사적으로 말했다.

“이건 게임은 노 게임입니다. 바로 다음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파아아앙-

얼굴이 창백해진 진교은이 구슬을 굴리는 동시에.

탁-

이세영이 [흑]에 칩을 놓았다.

탁, 탁-

순간 [적]에 놓이는 두 개의 칩 무더기, 두 개의 손.

그리고 가면을 쓴 세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어!?”

“……?”

토끼 가면, 이세영의 당황한 시선.

악어 가면, 천문석의 어이없어하는 시선.

두 사람의 시선이 용 가면을 쓴 이태성에게 모이는 순간.

“…….”

이태성은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용 가면님 이러시면 안 되죠! 승부가 걸렸는데!”

하하하-

이태성은 우선 어색한 웃음부터 터트리고 재빨리 말했다.

“이거 참 우연이네요. 하하하-.”

“…….”

우연이라는 데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우연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반복됐다.

“용 가면님?”

“하하하- 또 우연이네요!”

이태성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딜러 가 대응책을 낼 때까지 천문석과 똑같은 베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천문석은 폭발했다.

천문석은 베팅하려던 칩을 탁- 내려놓고 토끼 가면을 가리키며 외쳤다.

“용 가면님! 우리 둘은 팀입니다! 우리 팀 작전을 따라 하시는 건 매너가 아니죠!”

“…….”

맞는 말이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다.

지금 딜러는 멘붕 상태, 딜러 가 정신을 차리고 대책을 세울 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이태성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아니, 무슨 팀이 서로 다른 곳에 걸어요? 그리고 항상 한 명만 따는 건 이상하잖아요? 설마 두 분……!?”

이태성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는 순간.

천문석은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가?’

카지노는 처음이라 세세한 매너는 몰랐다. 하지만 얼핏 생각하니 용 가면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천문석은 어렸을 때부터 주먹 싸움에서는 져도 말싸움에선 져 본 적이 없었다.

이런 경우 움찔하는 건 하수다!

되든 안 되든 말을 쏟아 내서 상대의 혼을 쏙 빼놔야 했다!

“이건 우리 둘이 심사숙고해서 만든 비장의 전략입니다!”

“일종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게임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죠!”

“포트폴리오 들어 보셨죠!? 우량주와 개잡주를 같이 사서 리스크를 줄이는 거나 마찬가지 방법입니다!”

“우량주와 개잡주요? 아니, 무슨 [홀] [짝]에 거는 게 포트폴리오예요!?”

용 가면이 반박했지만, 경영학부 전 공자인 천문석의 입에선 즉각 대응 논리가 튀어나왔다.

“주식, 선물, 옵션. 금융시장! 롱포지션, 숏포지션 아시죠? 이게 원리는 홀짝이나 마찬가집니다. 오를지 내릴지! 홀짝! 즉 [홀] [짝]에 돈을 거는 건. 금융시장에서도 이뤄지는 첨단 금융 공학, 리스크 관리 기법입니다!”

되는 대로 말을 내뱉다 보니 자신이 듣기에도 그럴싸했다.

당연히 천문석의 목소리에는 점점 확신이 담겼고.

이태성은 말문이 턱 막혔다.

“…….”

분명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듣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렇지! 맞아! 훌륭해’라고 연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토끼 가면까지!

‘이 녀석 뭐지?’

순간 이세영에게만 쏠렸던 이태성의 관심이 눈앞에 있는 악어 가면을 쓴 남자에게로 움직였다.

이태성은 의도적으로 각성력과 기세, 기질을 갈무리한 상태였다.

누군가 유심히 보거나 사진을 찍어도 이태성이 각성자라는 걸 알지 못할 정도로.

그러나 최고등급 각성자에게서 은연중 흘러나오는 기세는 알게 모르게 주위에 영향을 미친다.

이세영이야 원래부터 이상했으니까 논외,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진교은도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 있다.

그런데 자신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고도 당당히 말싸움을 걸어온다고!?

이태성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불쑥 물었다.

“악어님?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네요? 이름이…….”

땡-

이때 벨 소리가 울리고 딜러 진교은이 말했다.

“no game. 아무도 걸지 않으셔서 이번 판은 무효로 하겠습니다.”

“…….”

이태성은 말없이 딜러 진교은을 봤다.

‘하- 이 도움 안 되는 녀석 같으니라고!’

마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시선에 가뜩이나 창백했던 진교은의 안색이 더 창백하게 변했다.

진교은은 창백한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2:1이라서 서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은데. 한 분 더 모셔서 2:2 팀으로 게임을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이는 말.

“그리고 저희 카지노에서 서비스 칩을 제공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방법을 찾았나 보군.’

이태성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천문석과 이세영도 바로 동의했다.

진교은은 보안요원에 지시해서 한 명을 모셔 오라고 지시했고.

보안요원은 마작 테이블에 앉아 있던 원숭이 가면을 쓴 사람을 룰렛 테이블로 데려왔다.

이제 룰렛 테이블에는 2명씩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각자의 앞에는 서비스 칩 10만$씩이 추가로 놓였다.

악어 가면과 토끼 가면.

용 가면과 원숭이 가면.

이태성의 파트너가 된 원숭이 가면을 쓴 사람은 진교은이 준비한 보험.

텔레파시 능력자 원기륭이었다.

* * *

천문석, 이세영.

이태성, 원기륭.

둘씩 팀을 짠 룰렛 승부가 다시 시작됐다.

천문석은 2:2 팀 승부가 됐지만, 전략을 바꾸진 않았다.

어차피 용 가면과의 승부는 솔의 눈이 걸린 벌칙게임일 뿐.

진짜 중요한 건 카지노를 상대로 대박을 내는 거다!

먹히고 있던 전략을 바꿀 필요는 없다.

“토끼님. 우리는 하던 대로 하는 겁니다!”

“화이팅! 우리는 진정한 승리자가 될 거야!”

천문석의 전략은 간단했다.

헛다리의 신, 이세영 선생님이 거는 곳의 반대에 베팅한다!

[흑]에 거시면 [적]에.

[홀]에 거시면 [짝]에.

[1-18]이면 [19-36]에.

특정 숫자에 걸거나 [1st], [2nd], [3rd]에 거시면 똑같은 액수를 마음 내키는 곳에 베팅한다.

그러나 카지노에서 승부를 거부하거나 상대 팀이 따라 하면 안 되기에, 홀에서 했듯이 가짜 베팅을 중간중간에 끼워 넣었다.

룰렛은 [0], [00]의 존재로 수학적으로 5% 정도 카지노가 유리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이 ‘5%‘는 도저히 줄일 수 없는 엄청난 격차였다.

수학적 승률은 95%!

게임 판수가 누적되면 결국 판돈은 0에 수렴하고 갬블러는 오링이 난다.

1보다 작은 0.95를 무수히 곱하면 결국 0에 한없이 가까워지니까 말이다.

그러나 천문석에게는 인간 마이너스 지표, 이세영 선생님이라는 파트너가 있었다!

천문석은 깨달았다.

자신에게 대운(大運)이 온 게 맞았다!

이세영 선생님의 불운, 저 미친 듯한 헛다리 자체가 자신에겐 대운이었다.

하늘이 항상 마장과 선연을 함께 준비한다.

이세영 선생님의 불운이라는 마장에, 자신의 대운이라는 선연이 찾아온 것이다!

촤르르륵-

다시 한 번 승리한 천문석은 경쾌한 소리를 내는 칩을 쓸어 담으며 하늘을 향해 최고의 찬사를 바쳤다.

카캬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명정대하신 하늘님! 충성충성!’

“이게 웬일이니! 으하하-.”

이 순간 천문석의 등을 찰싹찰싹 때리며 좋아하는 토끼 가면, 이세영 선생님.

천문석과 이세영 두 사람은 원기륭 텔레파시 능력자가 나타났는데도 룰렛 판을 지배했다!

두 사람이 모든 승부에서 이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패배할 때는 작게 잃고, 승리할 때는 크게 따며 빠르게 칩을 불려 나갔다.

이렇게 1시간이 지났을 때.

천문석과 이세영 앞에서 수북한 칩 더미가 쌓여 있었고.

테이블 반대쪽 이태성과 원기륭 앞에는 1만$도 안 되는 몇 개의 칩만 남겨져 있었다.

“…….”

원기륭이 침묵할 때, 이태성은 분통을 터트렸다.

“이런 젠장!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이 순간 진교은의 창백한 얼굴이 원기륭에게 향했다.

원기륭은 텔레파시 능력자다.

도박에 있어서는 최고의 각성력이 텔레파시 능력이다.

상대의 심층 심리를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표면 심리를 읽는 것만으로도 승률은 비약적으로 올라간다.

룰렛 테이블에는 각성력 감지기가 설치된 상태.

지금 이 테이블에서 각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건, ‘감지기 바이패스’를 가지고 있는 원기륭뿐이었다!

그런데도 지고 있다고!?

보험으로 준비한 텔레파시 능력자도 먹히지 않는 상황!

진교은은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가장 황당해하는 건 원기륭이었다.

원기륭은 눈앞에 있는 가면 쓴 두 사람을 다시 한 번 봤다.

악어 가면과 토끼 가면을 쓴 두 사람.

룰렛을 시작한 원기륭은 몇 게임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악어 가면을 쓴 사람은 이 게임의 손발일 뿐 실질적인 키맨은 토끼 가면이다.

그래서 토끼 가면의 표면 심리를 읽고 룰렛을 선택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토끼 가면의 표면 심리는 너무나 명료해서 보는 순간 알 수 있었으니까.

[오늘 나는 진정한 승리자가 된다!]

[홀! 오늘은 3일이니까! 이번에는 분명 홀이다!]

놀랍도록 단순한 생각들!

그런데 막상 구슬이 룰렛 칸에 들어가는 순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엉뚱한 곳을 선택했다는 것을.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악어 가면을 쓴 사람의 표면 심리를 읽으려 했다.

하지만 악어 가면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한겨울 호수 같은 표면 심리!

겉으로는 베팅의 흥분, 승리의 환호성, 룰렛이 돌아갈 때의 조마조마함이 몸짓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 마음은 한점의 흔들림조차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악어 가면은 도박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공 수련 중 깊은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 같았다.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호수 같은 표면 심리에 비치는 것은.

그걸 들여다보는 자신의 마음뿐.

원기륭의 손은 어느새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산.

폭풍우가 몰아치는 거대한 바다.

시간마저 멈춘 듯 고요한 겨울 호수.

장엄한 자연은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을 품게 하고 사람을 경도한다.

어느새 원기륭은 악어 가면의 압도적인 고요함에 경도됐다.

진교은이 새하얗게 질린 것도, 파트너가 분통을 터트리는 것도 알지 못했다.

홀린 듯 악어 가면을 바라보던 원기륭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분통을 터트리던 이태성, 새하얗게 질린 진교은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악어 가면에게 모였다.

세 사람의 시선이 닿는 순간.

천문석은 언제나 그러했듯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이름을 말했다.

“이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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