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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33화 (33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33화>

이태성이 다시 한 번 웃는 순간, 조수석에서 통화 중이던 비서가 태블릿을 내밀며 보고했다.

“앙코르 호는 대피 훈련 후 바로 출항한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이번 일에 시본사의 럭셔리급 크루즈선, 앙코르 호를 빌리며 발생한 비용입니다. 확인 후 결제해 주시면 됩니다.”

이태성이 태블릿을 받자 비서는 숫자를 말했다.

“탑승 대기 중이던 승객들에게 일정 지연에 따른 보상 비용 10억원. 시본사에는 추가 비용 17.23억원 지급하는 거로 합의했습니다.”

이태성은 태블릿을 쓱 훑고는 비서에게 돌려줬다.

“길드장님 거기 사인을…….”

“이건 내 카드로 긁어.”

“네?”

비서가 반문하는 순간, 이태성은 당연한 일이라는 듯 대답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다. 가지고 있는 내 카드로 긁어. 저번처럼 할부하지 말고 일시불로 긁어. 할부하면 포인트 까인다.”

“네…….”

수십억을 카드 일시불로 긁겠다는 말에 비서는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평범한 동네 청년 같은 외모에 깜빡깜빡 하지만, 자신 앞에 있는 사람은 개인재산이 조 단위인 이태성이었다.

이때 이태성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질문했다.

“던전 광산은 어떻게 됐지? 간 보던 길드 뒤 확인됐나?”

이게 이태성이 어젯밤 제주행 비행기를 캔슬한 이유였다.

보통의 일은 이사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지만, 다른 길드와 척을 지고 원한을 만드는 일은 길드장인 이태성이 직접 결정해야 했다.

사냥터 문제로 위장 길드와 몇 번 갈등이 일어났던 외국계 길드 하나가 광산으로 위장한 비밀 던전 주위로 모여들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세계에서 헌터업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대한민국은 헌터업 역사가 가장 긴 나라이기도 했다.

게이트 전쟁 때의 1세대 헌터부터 최근에 청년 대출을 받아 무작정 헌터 업계에 뛰어드는 비각성 헌터까지.

헌터 업계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인맥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당연히 한 길드와 척을 지면 그 길드의 인맥 전체와도 척을 지게 된다.

그래서 다른 길드와 헌터팀과의 분쟁 전, 서로의 인맥 확인은 필수였다.

비서는 태블릿을 확인하며 대답했다.

“네. 길드장님 예상 대로입니다. 비서 실장이 조사 결과를 담은 보안 문서를 서버에 올렸는데. 그 외국계 길드도 삼합회의 위장 길드였습니다.”

“삼합회라…… 잘됐네. 애들한테 그냥 밀어 버리라고 해라. 팔, 다리 한두 군데 부러뜨려 주면 되겠네.”

“그게…… 어제 자정을 기해서 그 길드가 전원 거점 도시로 물러섰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툭, 툭, 툭-

이태성은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들기며 장난스레 말했다.

“밀어 버릴까. 한번 봐줄까.”

“밀어 버릴까. 한번 봐줄까.”

……

핑그르르-

어느 순간 비서에게 날아가는 동전.

탁-

비서가 반사적으로 동전을 받자.

이태성은 말했다.

“그 동전 던져서 앞이면 밀어 버리고, 뒤면 한번 봐주는 거로 하지.”

“…….”

비서는 잠시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뒤에 삼합회가 있는 길드의 존폐를 동전 던지기로 정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이태성 길드장이니까.

핑그르르-

동전은 던져졌고, 결과는 나왔다.

이태성은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삼합회 위장 길드의 존폐는 이미 이태성의 머릿속에 없었다.

이태성의 머릿속에는 ‘꽝의 여신’, 역대 최고의 레이드 커맨더 생각만 가득했다.

“내가 곧 힘을 찾아주마.”

이코노미석에 앉은 이태성은 매고 있는 배낭을 보며 웃었다.

* * *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이세영.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이태성.

이세영과 이태성의 목적지 제주도를 주목하는 세력이 하나 더 있었다.

북중국의 국가안전부.

최근 북중국 국가안전부 최대의 관심사는 갑자기 남중국에 나타난 천검이라는 인물이었다.

마경을 밀어 버리고 헌터 군벌들을 통합해서 남중국의 통합을 이뤄 내고 있는 인물!

남중국의 통합은 고착화된 헌터 군벌과 대도시 주위에 쐐기처럼 박혀 있는 마경들로 100년이 지나도 불가능하다고 예상됐다.

그런데 이 통합을 천검이 해내고 있었다.

북중국의 국가안전부는 이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수십, 수백 개로 분열된 남중국과의 통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분열된 남중국이 하나로 통합된다면 최초의 게이트 사태 이후 남북으로 분열된 중국이 하나로 합쳐질 수 있었다.

지금은 각성의 시대.

인적 자원의 가치가 그 어떤 때보다 높아진 시대다.

분열된 중국이 합쳐지고 10억이 넘는 인구에서 각성자가 쏟아진다면 세계의 패권을 잡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국가안전국은 천검의 헌터 군벌 통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선이 닿은 남중국의 헌터 군벌을 움직이고, 접경 지역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해서 마경을 정리할 여유를 줬다.

그러면서도 먼 훗날을 위해 이세기라는 이름이 퍼져 나가는 것은 적극적으로 막았다.

어렵지는 않았다.

여기서는 남중국 헌터 군벌들과 북중국 국가안전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졌으니까.

천외천의 각성자 천검, 이세기가 필요한 건 마경을 정리하고 남중국을 통합하기 위해서지.

천검 이세기를 새로운 지도자로 모시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연히 대중에게 ‘이세기’라는 이름이 각인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름에는 명성이란 힘이 생긴다.

과거에는 명성은 간접적인 힘, 영향력이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명성 자체가 실질적인 힘이 된다.

10억명의 대중이 한 사람의 명성, 이름과 위업을 기억하고 긍정한다면 그 사람에겐 국가 권력의 정점에 오를 힘이 실린다.

그렇기에 국가안전부에서는 천검을 전적으로 지원하면서도, ‘이세기’라는 이름이 퍼져 나가는 것만은 전력을 다해 막았다.

천검, 이세기는 곧 떠날 사람처럼 명성과 재산, 권력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었기에 이 작전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천검 이세기가 갑자기 폭풍 같은 행보를 시작했다.

푸젠성 헌터 군벌 수뇌부를 단숨에 밀어 버리고, 자신의 이름 아래 모여든 능구렁이 같은 헌터 군벌들의 뒤통수를 때렸다.

이세기는 헌터 군벌의 부대에 명령했다.

마경을 토벌해, 삶의 터전을 넓힌다.

명령은 간단했고, 이상은 공감하기 쉬웠다.

수십만의 병력이 이세기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무엇이든 처음이 힘든 법.

첫 명령이 먹힌 순간 헌터 군벌들은 자신의 부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고.

이세기는 마치 남위에 서기 위해서 태어난 군주처럼 폭풍처럼 움직였다.

이세기가 거대 괴수를 붙잡고 있는 동안 마경의 마수와 몬스터가 정리됐고, 곧 집중된 화력이 거대 괴수에게 쏟아졌다.

이렇게 연합 병력이 마경을 정리한 순간, 마경 주위의 자잘한 중소 군벌들이 연합 병력으로 모여들었다.

눈덩이가 몸집을 불리듯이 순식간에 연합 병력이 세력을 불리기 시작했다.

이세기는 이 연합 병력을 마치 수족처럼 움직여 뻗대던 헌터 군벌과 굵직한 마경을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급변하는 남중국의 상황에 국가안전부에 비상이 걸렸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처럼 실질적인 무력, 헌터 군벌들의 부대를 이세기가 장악한 이상 기존의 계획은 모두 폐기해야 했다.

이때 국가안전부 14국 암호 통신국은 갑자기 제주도에서 ‘이세기’란 이름에 대한 검색 트래픽이 치솟는 것을 감지했다.

즉시 비상이 걸리고 트래픽 발생지를 확인 결과.

한국의 헌터 부대와 일본의 호위대군 함대가 나왔다.

한국과 일본의 정보 당국도 아닌 군부대.

그것도 거대 괴수와의 격전을 치른 부대들에서 ‘이세기’란 이름이 튀어나온 어이없는 상황.

곧 제주도 현지의 정보 채널에서 소식이 들어왔다.

-이세기란 헌터가 제주도에 나타났다.

-이세기가 무언가를 가지고 도망치고 있다.

-이세기의 목적지는 남중국으로 추정된다.

. ……

남중국에서 폭풍 같은 행보를 보이는 천검 이세기가 제주도에 나타났다는 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됐다.

‘그렇다면?’

14국 암호 통신국 국장은 머리를 굴렸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나타난 천검 이세기.

아무리 조사를 해도 이세기의 과거 행적, 출신, 혈연, 그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천검이 점점 유명해지며 가족, 지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났지만, 천검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이들은 조사 결과 전원 사기꾼이거나 허풍을 친 거로 드러났다.

그런데 누군가 제주도에서 ‘이세기’란 이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는 곳은 거대 괴수와 격전을 치른 헌터 부대와 호위대군 함대다.

14국 국장은 감이 왔다.

이건 진짜다!

제주도에 천검 이세기를 ‘아는 누군가’가 있다!

이세기의 과거 행적을 밝힐 수 있으면 이세기의 가족, 지인 같은 약점도 알 수 있게 된다!

14국 암호 통신국 국장은 바로 상관에게 보고했고, 국가안전부 부장은 회의를 소집했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유력자가 있는 제주도에서 국가안전부가 직접 작전을 펼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미 제주도 현지에 뿌리를 박은 세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삼합회.

삼합회는 오래전부터 제주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대형 식당, 호텔, 레스토랑, 카지노, 리조트, 여행사, 크루즈 선까지.

수많은 합법 사업체를 안전지대 제주도에 만든 상태였다.

평소에는 남중국과 북중국 사이에서 간을 보던 삼합회라 일방적인 요청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 삼합회는 뻗댈 상황이 아니다.

천검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남중국 전체가 요동치는 지금.

갑자기 나타난 신흥세력, 철검장에 삼합회의 남중국 기반이 흔들리고 있었다.

남중국에서 철검장에 밀리는 지금, 북중국의 기반까지 흔들리면 삼합회는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지금 삼합회는 국가안전부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

국가안전부는 삼합회에 협조 요청을 했고, 결과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협조 요청이 온 순간 삼합회는 이세계의 던전 광산 무력시위를 멈추고, 삼합회 소속 중간 간부들을 모아들였다.

삼합회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 지단으로 갈려 있던 중간 간부 수십 명이 한곳에 모인 자리.

세 명의 단주가 굳은 얼굴로 협의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수십 명의 중간 간부 앞으로 나서서 명령했다.

“제주도로 가라.”

“네? 제주도요?”

“그 거대 괴수 나왔다는 제주도 말입니까?”

……

중간 간부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를 볼 때.

세 단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회사들을 움직여서.”

“정보를 모조리 모아라.”

세 단주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중간 간부들도 바짝 긴장했다.

이때 중간 간부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정보를 모아야 하는 겁니까?”

단주는 이름 하나를 말하면서 극도로 긴장하던 국가안전부 요원의 모습이 떠올리며 말했다.

“이세기.”

“제주도에서 ‘이세기’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아라!”

이렇게 수십 명의 삼합회 중간 간부들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제주도로 모이고 있었다.

-수학 여행가는 현대고 임시 담임, 이세영.

-이세영을 영입하려는 태성 길드 길드장, 이태성.

-이세기에 대한 정보를 모으려는 삼합회 3개 지단의 중간 간부들.

목적도 다르고 사는 세계도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누군가 무심코 굴린 스노우볼 때문에 제주도로 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스노우볼을 굴린 누군가는 자신이 스노우볼을 굴렸다는 것도 모른 채 신나게 웃고 있었다.

카캬카카캌-

신나게 웃고 있는 천문석의 앞과 뒤에서 탄성이 터졌다.

“역시 알바는 특급특급특급! 알바야! 우와아아아! 이거 엄청 재밌어!”

“와! 기발한 녀석!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

특급 헌터의 엄청난 찬사와 김철수의 탄성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져 하늘로 치솟는 물보라!

촤아아아아-

천문석과 특급 헌터, 김철수 세 사람은 임옥분 여사의 저택 마당에 있는 연못에서 바다까지.

수십 개의 농장을 가로질러 이어지는 수 km에 이르는 수로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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