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32화>
현대고와 한신 국제고의 상황이 역전됐다.
리무진 버스의 넓은 좌석에 앉아 광장을 내려다보는 현대고 학생과 선생님들.
믿기지 않은 눈으로 리무진 버스를 올려다보는 한신 국제고 학생과 선생님들.
현대고와 한신 국제고는 바로 지역에 있는 학교로 모든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되곤 했다.
그리고 그 비교에서 현대고는 한 번도 한신 국제고를 이긴 적이 없었다.
현대고 학생과 선생님들이 생전 처음 맞이하는 승리감에 취해 있을 때.
이세영 임시 담임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그러나 생각을 하기도 전에 학생들의 신난 외침이 들려왔다.
“선생님! 곧 출발하나 봐요!”
리무진 버스는 바로 출발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부산 국제 크루즈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미 탑승 수속은 일괄 처리된 상황.
현대고 학생과 선생님들은 바로 터미널을 지나 선착장으로 들어갔다.
“……!”
그리고 모두는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국제 크루즈 터미널에서 내릴 때 이미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그러나 선착장에 서는 순간.
기대감을 몇 배는 뛰어넘는 결과가 눈앞에 있었다.
머리를 한껏 들어 올리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야만 전체가 보이는 크루즈선!
[Seabourn Encore]
이때 선명을 검색한 몇몇 학생들이 외쳤다.
“시본 앙코르!”
“이거 럭셔리 크루즈 선이잖아!?”
“럭셔리 크루즈 선?”
“300개 객실 전체가 스위트 룸이고 2인 요금이 천만원이 넘는데!”
“와, 이게 뭐야!? 우리 교장 로또라도 된 거야!?”
“로또 됐다고 이럴 분이 아니신데……?”
경악한 학생들이 사방에서 외칠 때.
정복을 입은 승무원들이 다가와 고개 숙였다.
“현대고 고객님들을 환영합니다.”
그리고 곧 탑승이 시작됐다.
승선장에 깔린 붉은 카펫 좌우에 도열한 승무원들이 환영 음료와 물수건을 나눠 줬다.
얼떨떨한 얼굴로 유리잔에 담긴 음료와 물수건을 받는 선생님과 학생들.
순식간에 탑승이 이뤄지고, 크루즈 선에 탄 모두는 깜짝 놀랐다.
배 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자연 채광.
천장 곳곳에 하늘이 보이는 채광창이 있고, 커다란 유리 벽을 통해 넓은 바다가 한눈에 보였다.
승무원들은 인솔 교사에게 서류와 승선 카드를 건넸다.
“2인 1실로 방 배정해 주시고, 선내에서는 승선 카드를 신분증, 신용카드처럼 사용하시면 됩니다.”
“신용카드요? 그럼 결제는 어떻게?”
학생 주임의 질문에 승무원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여행 중 발생하는 모든 비용에 대해선 이미 결제가 끝났습니다. 편하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와아아아-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지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모여 방 배정을 하고 승선 카드를 나눴다.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들은 반별로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크루즈선 내부를 확인했다.
“자 모두 모여! 승무원분이 시설 안내를 해 주신대!”
이세영의 외침에 순식간에 모여드는 학생들.
앞장선 승무원 뒤로 안내서와 승선 카드를 든 이세영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였다.
“그럼 시설 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고객님.”
미소 지은 승무원이 앙코르 호 내부를 안내했다.
화려한 중앙 나선 계단.
야외 풀 사이드
뷔페식당과 레스토랑.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테라스형 카페.
넓은 좌석의 그랜드 살롱.
실내 카지노 오락시설.
헬스장, 도서관, 쇼핑 공간.
배 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화려한 공간이 나올 때마다 학생들의 탄성이 연신 터졌다.
그리고 시설 안내가 끝나고 도착한 이세영 선생님의 방 앞.
“여기가 이세영 고객님의 방입니다.”
이세영은 학생들에게 방 번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 선생님 방 기억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와야 한다.”
“선생님. 빨리요!”
“방 궁금해요. 빨리 열어 보세요!”
학생들의 채근을 받으며 이세영은 방문을 활짝 열었다.
호텔 객실 못지않은 스위트 룸이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바다가 통째로 보이는 넓은 베란다였다.
와아아아-
환호성을 지른 학생들이 객실을 가로질러 베란다로 들어갔다.
대형 월풀 욕조와 리클라이너가 놓인 베란다 창 너머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우와아- 이게 뭐야!?”
“혹시 우리 재단 재벌이었어!?”
“그럴 리가 없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선생님 방만 이런 건가!?”
“방 등급 전부 스위트 룸이야!”
“우리 방도 이렇다고!?”
“캬- 어떡해 바다가 보여!”
“여기 월풀 욕조! 우리 4명 모두 들어가겠어!”
학생들이 경악하고 놀라고 웃고 즐거워할 때.
이세영도 똑같이 즐거워하면서도 생각했다.
한 번도 크루즈 여행을 해 본 적 없지만, 이 모든 게 말도 안 된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한 사람당 수백에서 수천만원짜리 크루즈 여행을 보내 주는 학교 재단이라니.
그런 재단이 있을 리 없었다.
금전적 제약을 떠나서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외적으로도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세영은 직감했다.
자신을 아는 누군가 힘을 썼다!
자신이 다시 선생님이 된 걸 아는 사람들은 특임대와 헌터부 상층부의 몇 명뿐이다.
그러나 이세영은 게이트 전쟁을 거치며 많은 1세대 헌터들과 같이 싸웠고.
그때 같이 싸운 1세대 헌터들은 지금은 대형 길드, 대기업, PMC 같은 곳의 상층부가 되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문득 생각하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얼굴.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누가 범인인지 찍기도 힘들었다.
-길드를 수천억에 대기업에 팔았다는 경석이.
-수류탄을 기막히게 던졌던 장인이 돈이 엄청나게 많다는 찬호.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위와는 달리 부동산 전문가가 돼서 대박이 났다는 호석이.
……
누가 했을지는 몰라도, 수십억은 들었을 호의다.
평소라면 절대 받지 않았을 호의다.
이세영은 문득 고개를 들어 방안을 누비는 학생들을 봤다.
부산역 광장에 모일 때만 해도 축축 어깨를 늘어트리고, 얼굴에 짜증과 피로, 우울함만 가득했던 학생들은 거짓말인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즐거워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교사의 즐거움.
이 수학여행은 학생들에게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다.
이세영은 이번 한 번만은 모른 척 이 과분한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의 결정을 한 이세영은 학생들에게 외쳤다.
“너희들, 이 배 맘에 드니?”
네에-!
“엄청 맘에 들어요!”
“그냥 이 크루즈선 안에서 수학여행 내내 있다가 돌아가도 좋을 것 같아요!”
하하하-
학생들의 웃음이 터져 나올 때, 이세영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 재밌을 거라는 감이 와! 모두 즐겁고 재밌는 수학여행 보내자!”
와아아아-
학생들의 환호성이 터지고 얼마후 선내 방송이 나왔다.
[잠시 후, 세이프티 드릴. 재난 상황을 대비한 3단계 대피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방송이 나오자 방문 앞에서 대기하던 승무원이 고개 숙이며 말했다.
“이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셔서 그 안내서의 내용대로 대피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훈련이 끝나야 출항할 수 있습니다.”
환한 얼굴의 학생들이 재빨리 자신의 방을 찾아 뛰어갔다.
그리고 이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 * *
도로를 달리는 롤스로이스 팬텀 뒷좌석에 앉아 이세영과 학생들의 영상을 보는 사람.
화려한 검은색 하와이얀 셔츠.
비치 반바지에 삼선 슬리퍼.
싸구려 선글라스.
휴양지를 어슬렁거리는 관광객 차림새를 한 사람은 이태성이었다.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 재밌을 거라는 감이 와! 모두 즐겁고 재밌는 수학여행 보내자!]
이태성은 화면에서 재생되는 이세영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크크킄-
이세영에겐 수많은 이명이 있었다.
검은 폭풍.
낙동강 전선의 영웅.
서울 수복 작전의 브레인.
역대 최고의 레이드 커맨더.
게이트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 불패의 전술가.
하나같이 엄청난 이명들이다.
그러나 이세영과 함께 광화문 게이트에 최초의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설치한 1세대 헌터들은 이세영을 다른 이름으로 기억했다.
‘꽝의 여신!’
이태성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서울 수복 작전의 브레인으로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이 왔다고 해서 바짝 긴장했는데…….
막상 나타난 사람은 작은 키 작은 몸의 10대로만 보이는 소녀였다.
어차피 각성자, 육체의 나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
문제는 그 어이없을 정도로 잘 빗나가는 감!
당시 모인 1세대 헌터들은 지금과 달리 변변한 장비도 없이, 몇 년 동안 수십 수백 번 마수와 몬스터들과 싸우면서도 살아남은 베테랑들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을 수도 없이 넘은 베테랑 헌터의 감은 예지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했다.
그런데 감이 잘 빗나가는 헌터라고?
1세대 헌터들이 의심 어린 눈으로 검은 폭풍을 볼 때.
이태성이 나서서 동전 앞뒤 맞추기 승부를 제안했다.
잠시간의 여흥, 장난 같지만, 사실 이 승부는 리더의 운과 감각을 시험하는 1세대 헌터들의 의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십 명의 1세대 헌터들 앞에서 시작된 이태성과 이세영의 승부.
이태성은 계속 이겼다.
처음 3연승을 했을 때는 모두가 웃었고, 다음 10연승을 했을 때는 모두가 어이없어했다.
그러나 50연승을 했을 때는 고개를 갸웃하고 침묵하는 헌터들이 확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이태성이 100연승을 하고, 이세영이 100연패를 하는 순간.
승부를 보던 1세대 헌터 모두가 침묵했다.
불가능한 100연패!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단 한 번의 승리도 없는 100연패, 불가능한 연패를 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승부를 본 1세대 헌터들은 깨달았다.
이 1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소녀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전황을 수도 없이 뒤집고.
대한민국에 남은 유일한 후방을 지킬 수 있는 이유를.
그때 이태성은 결심했다.
성공확률 제로.
자살작전이라고 말해지던 서울 수복 작전, 광화문 게이트 안정화 장치 설치에 참여하겠다고!
그리고 참가를 망설이던 다른 1세대 헌터 모두도 참가를 결정했다.
사실 참가를 망설이던 1세대 헌터들에게 필요한 것은 높은 작전 성공률이 아니었다.
단지 이 불가능한 작전이 성공 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했다.
이 희망을 이세영, 검은 폭풍이 보여 줬다.
100연패.
수학적으로 한없이 0에 가까운 일을 직접 해내서!
이때 검은 폭풍과 직접 대결한 이태성은 검은 폭풍 이세영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여 줬다.
‘꽝의 여신!’
그리고 시작된 서울 수복 작전은 1세대 헌터들의 예상대로 됐다.
100연패, 거의 100% 빗나갔던 저 감은 전투 상황에서 완벽하게 반전됐다.
누군가 했다는 말 그대로 확률, 신의 주사위를 속이는 전투 예지가 되어.
검은 폭풍은 수많은 변수와 돌발사건, 선택의 갈림길에서 정답만을 골라내 마침내 불가능한 승리를 낚아챘다!
세계에서 최초로 열린 광화문 게이트에, 마찬가지로 세계 최초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설치됐다.
그리고 낙동강 전선, 전남 끝까지 밀려났던 대한민국은 서울을 수복했다.
“…….”
상념에 잠겼던 이태성은 태블릿 화면에 뜬 영상을 뒤로 돌렸다.
[…… 이번 수학여행은 정말 재밌을 거라는 감이 와!]
이세영의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태성은 확신했다.
자신의 계획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꽝의 여신, 이세영의 직감은 이번에도 당연히 빗나갈 테니까!
크크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