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31화>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한 KTX가 부산역에 도착하고.
KTX에서 쏟아진 학생들이 부산역 광장으로 나왔다.
“1반! 여기다!”
“3반! 여기로 모여!”
깃발을 든 선생님이 광장 한쪽에서 외치자, 학생들은 몇몇씩 짝을 이뤄 자신의 반을 찾아 움직였다.
이때 이십여 명의 학생 무리가 광장으로 나왔다.
“그게 진짜라고?”
“거짓말 아니고! 그게 정말이라고?!”
가운데 있는 학생들이게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는 학생들.
이미 KTX를 타고 오면서 수없이 같은 대답을 듣고 스마트폰에 있는 증거까지 봤지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와! 미친! 이태성을 진짜 만났다고?”
“김태성, 최태성이 아니라 진짜 이태성!?”
이태성을 직접 만나고 아이템과 골드까지 받은 학생들은 자랑스럽게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흐흐흐- 이 골드 봐라 이게 형님께 받은 골드다!”
“이 장비도 태성 형님께 받은 거다!”
“진짜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단 거지?!”
“그렇다니까. 나중에 길드 찾아오면 형이 밥도 사준다고 했어.”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유명 헌터가 즐비한 태성 길드에 밥을 먹으러 간다니!?
순간 남녀 학생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이 쏟아지고 너도 나도 외쳤다.
“우리 다니엘 오빠! 오빠 사인 하나만 받아다 주면 안 돼?”
“난 이소연 헌터!”
“그냥 나도 슬쩍 끼어서 같이 가면 안 될까?”
“야. 무슨 일 당하려고 이태성을 찾아가? 너 다음 날 오크랑 같이 발견된다!”
한 학생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을 듣는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너라면 안 갈 거냐?”
“…….”
이태성은 수많은 괴담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태성에겐 사람을 특히 1, 20대를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전화 건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을 아작내고, 갑질하는 재벌 3세를 오히려 돈으로 찍어 누른다.
삥을 뜯던 일진을 직접 쥐어패고, 악의적 보도를 한 언론사 건물을 산 다음 폭파 철거하기도 했다.
조폭 헌터들이 고블린 사냥터를 통제하자, 그 길드를 완전히 밀어 버린 적도 있었다.
누구나 머릿속에서 한 번쯤 상상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
이태성은 그런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게다가 조 단위의 개인 재산.
초대형 길드, 태성 길드의 길드장.
그리고 그 자신이 한국 탱커 랭킹 1위다.
수많은 괴담과 논란의 대상인 이태성, 하지만 청소년기의 학생들에겐 되고 싶은 롤모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태성 길드장을 만났다니!
다시 한번 학생들의 선망 어린 시선이 쏟아졌다.
이때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여기야! 빨리 와! 혁재, 민수, 최태성!”
학생들이 고개를 돌리자 깃발을 크게 흔드는 나이 든 선생님이 보였다.
“혁재?”
“민수?
“최태성?”
“너 성이 최 씨였어?”
“우리 담임 선생님. 사람 이름을 못 외워.”
이름을 불린 학생들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대답하고 재빨리 달려갔다.
“선생님. 저 민재예요!”
“전 태수구요!”
“태성은 맞는데! ‘김‘태성이에요!”
……
달려온 학생들의 등을 툭, 툭 치며 이세영 임시 담임은 환하게 웃었다.
“알아! 선생님이 재밌으라고 농담한 거야. 하하하-.”
담임 선생님이 환하게 웃었으나 반 학생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의 비밀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임시 담임 겸 역사 선생님인 이세영 선생님은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와 인물의 이름 같은 교과서 내용은 정확히 기억하시는데.
이상할 정도로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학생들의 의심스러운 눈길을 받으면서도 이세영은 부산역에서 나와 하나둘 모여드는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확인했다.
어느새 두 번 인원 체크가 끝났을 때 한 학생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선생님. 우리 진짜 배 타고 가요? 그냥 비행기 타고 가면 안 돼요? 요즘 누가 제주도 수학여행을 배 타고 13시간 넘게 가요?”
“맞아요! 그냥 우리 반이라도 비행기 타요!”
“배 타고 가는 수학여행은 나름의 재미가 있어. 한 배에 모두 같이 타고 갈 수 있잖니? 생각보다 더 재밌을 거야.”
이세영이 달래듯 말했지만, 학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에휴- 우리 학교가 이렇지 뭐.”
“하- 짠돌이 교장 선생님…….”
“그냥. 경주나 가지…….”
……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이미 동아리와 방과 후 활동에서 매년 반복되는 악명높은 수학여행에 대해서 몇 번이나 들었다.
제대로 눕기도 힘든 좁고 딱딱하고 냄새나는 여객선 3등 객실.
처음 몇 시간은 웃고 떠들어도 어느 순간 모두 시체처럼 쓰러진다고 했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아직 반도 가지 않은 상황에 다시 한번 절망하게 된다.
이때 보이는 육지!
환호성을 질러 보지만, 좋아할 것은 없었다.
그곳은 제주도가 아니라 완도였으니까!
그리고 완도에 내려서 게이트 전쟁 당시 호남평야 사수전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2시간 동안 강연을 들어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가 완도에 도착해 있을, 호남평야 참전용사인 교장 선생님에게…….
그 후에 완도 게이트 투어를 하고, 호남평야 사수전 당시 식량을 나를 때 쓰였다는 지게를 메고 직접 쌀가마를 나르는 체험을 한다.
한 반당 1톤씩!
그리고 지친 몸으로 돌아와 여객선 3등 객실에 10시간이 넘게 쓰러져 자다 깨기를 반복하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제주도!
그러나 제주도에 도착한 후에도 기대할 것은 없었다.
문득 방과 후 활동 때 만난 선배들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재생된다.
‘우리 교장 가성비에 미쳤어.’
-주상 절리, 협재 해수욕장, 제주 둘레길로 이어지는 가성비 우선의 여행.
-침대는커녕 이불도 모자란 가성비 위주의 숙박.
-학교 급식보다 열악한 가성비 위주의 식사까지!
하아-
에휴-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고, 학생들은 전혀 기대감이 없다는 투로 말했다.
“자유시간이나 많이 주면 좋겠다.”
“그러게 말야. PC방이나 가야지.”
“우리는 쇼핑이나 하려고.”
“노래방도 들리자.”
……
이 목소리가 수학여행을 가는 현대고 2학년 전원의 심정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이번 제주도행 수학여행에 기대하는 게 전혀 없었다.
‘이거 큰일이네…… 아이들이 너무 축축 늘어지는데…….’
이세영이 임시 담임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 됐다.
하지만 이세영은 인생 대부분을 선생님으로 살아왔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수학여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매년 가는 수학여행이지만, 학생들에겐 고등학생 시절 단 한 번뿐인 수학여행이다.
수많은 친구와 아무 걱정 없이 웃고 걷고 이야기하며 여행하는 건, 대부분 학생이 평생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학창 시절의 추억은 앞으로의 삶에서 어려울 때 힘을 내고 한번 웃을 수 있는 기억이 된다.
그래서 이세영은 어떻게든 학생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방법을 떠올렸지만, 특별히 좋은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수학여행에서 같은 반뿐만 아니라 학년 전체를 뒤집어 놓고, 선생님들에게도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겨 준 제자!
‘아, 이름이 뭐였지!’
이름을 기억할 때면 늘 그렇듯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새길 때.
인원 확인을 끝낸 학생 주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모두 여객 터미널로 이동하도록 하죠! 선생님들은 학생들 인솔 시 교통안전에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현대고 2학년 학생들이 일제히 이동하려 할 때.
부으으응-
대형 리무진 버스가 줄줄이 나타나 부산역 광장 가장자리에 줄줄이 멈춰 섰다.
리무진 버스 옆에 새겨진 이름.
[Seabourn Cruise Tour]
“시본 크루즈 투어? 크루즈 관광객이 왔나?”
한 학생이 리무진 버스 옆에 새겨진 이름을 읽고 의아해 할 때.
리무진 버스로 다가가는 학생들이 보였다.
눈에 익은 교복, 현대고 옆에 있는 한신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한신 국제고등학교는 빵빵한 재단으로 유명한 학교.
현대고 학생들은 어떻게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와! 한신 애들 크루즈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거야?”
“역시 캐부자 한신 재단! 젠장!”
“나도 저거 타고 싶다!”
“와, 뭐가 이렇게 차이가 나?!”
……
학생들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리무진 버스 앞에 줄을 서는 학생들을 바라봤다.
도보 이동 vs 리무진 버스 이동.
여객선 vs 크루즈 선.
엄청난 격차에 현대고 학생들의 어깨가 축축 처질 때, 반대로 리무진 버스 앞 한신 국제고 학생들의 어깨는 쑥쑥 위로 솟았다.
“무슨 애들 수학여행을 크루즈로 가?”
학생 주임이 어어 없다는 듯 말하자, 친구인 한신 국제고 학생 주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재단 모토 모르냐? 항상 최고가 돼라! 수학여행도 최고로 가는 거지. 흐흐흐-.”
“…….”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마저 기가 죽어 갈 때, 이세영 선생님이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모두 어깨 펴고 고개 들어! 학창 시절에는 작은 일 하나하나가 모두 추억이 되는 거야!? 자 모두 옆에 친구들 봐봐. 친구들과 함께하는 고생들 하나하나가 모두 추억이 되는 거야.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이때 이세영의 반 학생이 힘없이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고생 끝에 낙이 안 오잖아요? 이제 완도 가면 쌀가마니 날라야 하는데…….”
“…….”
천하의 이세영마저 말문이 막힌 순간.
한신 국제고 학생 주임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희 아직도 쌀가마 나르냐? 혹시 호남평야 사수전 강연도 계속하고?”
“…….”
현대고 학생 주임이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자, 웃음을 터트리는 한신 국제고 학생 주임.
“하하- 참, 너희 교장 선생님도 일관성이 있으시네.”
피슈으으으-
이때 유압 빠지는 소리와 함께 선두의 리무진 버스 문이 열리고 깔끔한 정복을 입은 직원이 내렸다.
“이사장님께서 이번에는 더 신경을 쓰셨네. 바로 탑승하면 됩니까?”
한신 국제고 학생 주임이 앞으로 나서서 말하는 순간 옆을 대답 없이 스쳐 지나가는 직원.
직원은 현대고 깃발을 든 이세영 앞에 멈춰 섰다.
“서울 현대 고등학교. 선생님이신가요?”
“네?”
이세영이 생각지도 못하는 질문에 당황하자, 반 학생들이 대신 대답했다.
“네 맞아요!”
“우리가 서울 현대 고등학교 학생들이에요!”
“애들아 잠시만!”
이세영이 다급히 제지하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정복을 입은 직원은 이세영에게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하며 말했다.
“시본 크루즈 투어에서 나왔습니다. 고객님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선 타시죠. 국제 크루즈 터미널에서 앙코르 호가 준비를 끝내고 대기 중입니다.”
정복을 입은 직원이 손짓하는 순간.
피슈으으으-
유압 빠지는 소리와 함께 줄줄이 늘어선 리무진 버스 문이 모두 열렸다.
그리고 문에서 나오는 작은 깃발을 든 직원들.
“깃발에 적힌 반을 보고 탑승하시면 됩니다.”
학생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서로를 보며 리무진 버스로 움직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가성비 교장 선생님이 이럴 리가 없는데?!”
“우리 재단에서 움직인 거 아냐?!”
“우리 재단도 있었어?!”
……
“야, 너희들 잠깐 타지 말고 기다려!”
“선생님들이 확인할 테니 기다려!!”
선생님들이 재빨리 버스 입구를 막고 학생들을 제지하며 외쳤다.
“주임 선생님 어떻게 하죠?”
“잠시만, 행정실장님에게 전화 중입니다.”
현장 책임자인 학생 주임은 재빨리 행정실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네! 지금 부산역인데 리무진 버스가…….”
-……
“이게 맞대고요? 아니, 짠돌이 교장, 흠, 흠…… 네, 네!”
-……
“네? 그게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허가나 뭐 그런 건?”
-……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학생 주임이 전화를 끊는 순간 현대고 선생님과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모였다.
터질듯한 침묵 속, 한 학생이 바짝 긴장한 얼굴 그러나 기대감이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주임 선생님?”
학생 주임은 무덤덤한 얼굴로 기대 어린 학생들의 얼굴을 쓱 훑었다.
이 시선이 얼빠진 얼굴을 한 한신 국제고 학생 주임에게 닿는 순간.
“모두 타세요! 이번 현대고 수학여행은 크루즈 선으로 갑니다!”
우와아아아아아-
순간 폭발할듯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학생들이 리무진 버스로 쏟아져 들어갔다.
현대고 학생 주임은 여전히 얼빠진 표정인 친구, 한신 국제고 학생 주임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너희 버스 저기 오나 보다?”
“어?”
자신도 모르게 고개 돌리자 보였다.
관광버스 창가에 붙어 있는 A4 용지.
‘한신 국제고등학교.’
“…….”
“항상 최고가 돼라? 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