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4화>
맛있는 흑돼지를 먹느라 깜박했다!
장민이 오고 있다는 것을!
으아아악-
경악한 특급 헌터는 번개같이 몸을 돌려 연못을 헤엄쳤다.
파바바바팟-
개헤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엄청난 속도!
단숨에 커다란 연못 한가운데까지 도망쳤을 때 머릿속에서 아까 들었던 알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특급 헌터 넌 엄마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 없어! 없어!’
“앗! 그렇지! 이제 무서워할 필요가 없지!”
반사적으로 도망치던 특급 헌터가 조심스레 뒤를 본 순간.
사라졌다!
장민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 꿈이었던 거야!? 카캬카캌-.”
특급 헌터가 환하게 웃을 때.
탁-
누군가 창문턱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드는 순간 드리워지는 그림자!
으아앗-
깜짝 놀란 특급 헌터가 비명을 지르는 동시에.
촤아아아악-
2층 창문에서 뛴 사람이 단숨에 연못으로 다이빙했다!
“장민!”
다이빙한 사람의 정체를 깨달은 특급 헌터가 번개같이 팔다리를 움직였으나.
휘이, 휘이, 휘이이-
특급 헌터의 짧은 팔다리는 물이 아닌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연못에 다이빙한 장민이 순식간에 특급 헌터를 붙잡아 번쩍 든 것이다!
“으악! 안 돼!”
특급 헌터는 재빨리 반바지에 꽂아둔 퐁퐁검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한발 먼저 움직이는 장민의 손!
장민의 손이 특급 헌터의 허리와 등, 목, 귀 뒤를 훑었다.
우히힣힣히힛-
순간 자지러지는 웃음이 터지고 특급 헌터의 팔다리가 쭉 펼쳐진 채로 고정됐다.
특급 헌터는 목덜미 정지 버튼을 누른 새끼 고양이처럼 팔다리를 쭉 뻗은 채 계속 웃었다.
이렇게 장민에게 붙잡힌 특급 헌터는 순식간에 연못에서 빠져나왔다.
쏴아아아-
물을 한껏 머금은 장민의 검은 블라우스와 청바지에서 물이 쏟아지는 순간 정지 버튼이 풀린 특급 헌터는 재빨리 외쳤다.
“장민! 내가 전부 다 잘 설명할 수 있어!”
“응? 뭘 설명하는데?”
장민이 블라우스에 가득한 물기를 짜내며 의아한 얼굴로 묻자.
“……!?”
깜짝 놀라 주위를 훑어본 특급 헌터는 깨달았다.
제임스가 없다!
경호원 형, 누나들도 없다!
즉, 장민은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
특급 헌터는 재빨리 평소대로 대답했다.
“나 아주 안전하고 착하고 재밌게 잘 놀았어. 뛰지 않고 걸어 다니고, 밥도 열심히 먹고, 말썽도 부리지 않았어! 앗 맞다! 나 어제 감뀰도 엄청 많이 땄어! 일당도 받았어!”
“그래? 뭔가 설명하려던 거 아냐? 오늘은 뭐 하고 놀았는데?”
장민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당황한 특급 헌터는 손을 붕붕 휘저으며 다급히 외쳤다.
“아냐. 할 말 아무것도 없어! 앗! 맞다! 내가 오이 줄까! 오이 완전 맛있어! 여름의 맛이야! 오이 먹으면 시원해! 가슴이 꼬물꼬물…….”
특급 헌터가 열심히 말을 돌리며, 호시탐탐 도망칠 기회를 노릴 때.
장민은 대답 없이 블라우스의 물기를 짜내고 젓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평소처럼 여상하고 부드러운 움직임.
그러나 장민의 손과 발은 특급 헌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특급 일꾼처럼 감뀰을 완전 열심히 딴 거야! 그래서…….”
특급 헌터가 열심히 어제 일을 이야기할 때 다른 사람들은 침묵했다.
“…….”
“…….”
열심히 말하는 특급 헌터.
말없이 물기를 짜는 장민.
대조적인 두 사람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를 때.
물기를 털어 낸 장민은 빙그레 웃으며 마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세연이. 제주도에서 보니 더 반갑네?”
“언니. 제주도에 잘 왔어요.”
“김철수 사장님. 직접 보는 건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다시 뵙습니다.”
“알바씨는 어쩐지 오늘 하루 고생을 아주 많이 하신 것 같은 얼굴이네요? 혹시 우리집 아이 때문인가요?”
“하, 하하- 그런가요?”
장민 대표의 물음에 천문석이 어색하게 웃는 순간 특급 헌터의 뜨거운 시선이 날아왔다.
특급 헌터의 뜨거운 시선, 간절한 표정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저절로 재생됐다.
‘알바! 절대,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걱정 마라. 꼬맹이!’
천문석은 손을 내려 몰래 ok 사인을 보내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제가 어제 특급 헌터랑 감뀰을 열심히 따서 얼굴에 드러나나 보네요? 하, 하하-.”
“맞아! 알바는 어제 나랑 엄청 열심히 감뀰 땄어!”
“……그런가요?”
장민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천문석을 보더니,
특급 헌터를 허리춤에 끼고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렀다.
툭, 툭, 툭-
물에 젖은 검은 블라우스와 청바지,
검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
옷을 입은 채 물에 빠져 엉망이 됐는데도 장민 대표에게서 느껴지는 카리스마는 그대로였다.
장민 대표의 등 뒤에서 일렁이는 불길한 아우라!
김철수가 꿀꺽- 침을 삼키고,
류세연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는 순간.
하, 하하-
천문석은 다시 한번 어색하게 웃었다.
이때 대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대표님. 지시하신 일 모두 끝냈습니다.”
“제임스! 제임스가 왜 여기 있어!?”
경악한 특급 헌터가 외치는 순간.
장민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 말 아직도 없니?”
“…….”
이 순간 천문석과 장민에게 붙잡힌 특급 헌터의 눈이 마주쳤다.
‘ㅁㅁ! ㅁㅁㅁ!’
특급 헌터의 무언의 외침이 이번에도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알바! 살려 줘!’
‘미안하다. 특급 헌터…….’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구하기 위해서 마수와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해수욕장, 항구로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그런 천문석도 지금의 장민에게서 특급 헌터를 빼낼 자신은 없었다.
지금 장민은 자식이 위험한 일을 해서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엄마였으니까.
“잠시 방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
장민은 임옥분 여사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특급 헌터를 단단히 붙잡고 집안으로 걸어갔다.
오늘 하루 마수와 몬스터, 경호원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던 특급 헌터가 마침내 잡혔다.
그러나 특급 헌터는 언제나 당당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알바!”
“세연!”
“철수 형!”
“할머니!”
“사슴이! 반짝이! 니케!”
특급 헌터는 마당의 사람들을 씩씩한 목소리로 한 명 한 명 부르고 외쳤다.
“괜찮아!”
“나는 완전 괜찮아!”
“모두 걱정할 것 없어!”
“장민한테 완전 잘 설명하고 무사히 돌아올게!”
그러나 장민과 특급 헌터가 방으로 들어간 후 설명하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특급 헌터의 우렁찬 외침과 젖은 천을 내리치는 듯한 소리만 들려왔다.
짜악, 짝, 짝-
“이야압! 특급 헌터는 두렵지 않다!”
짝, 짜악, 짝-
“으으윽! 특급 헌터는 아프지 않다!”
짝, 짝, 짜악-
“으아아- 장민, 잠깐만! 조금만 쉬었다 하면 안 될까!?”
짝, 짝, 짜아악-
“으앗, 으앗, 으아앗- 장민 그만! 정지! 잠깐만!”
“좀 쉬었다가 하란 말야! 엉덩이가 없어진 거 같단 말야!”
짝, 짝, 짝, 쯔아악-
. ……
언제나 당당한 특급 헌터는 이번에도 당당히 외쳤다.
그러나 아무리 단단한 강철도 계속 때리면 결국에는 구부러지는 법.
씩씩한 외침은 점점 작아지고,
곧 서러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앙, 아앙, 아앙-
그러나 울음 사이사이 여전히 씩씩한 외침이 들려왔다.
“특급 헌터는……! 아앙- 울지 않는다!”
* * *
임옥분 여사의 저택 마루에서 다시 한번 씩씩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특급 헌터는 절대 지지 않는다!”
그러나 씩씩한 외침과 달리 특급 헌터는 대청마루에 빨개진 엉덩이를 깐 채로 엎드려 있었다.
어디를 봐도 특급 헌터가 진 모습이었다.
천문석은 패배했지만, 정신 승리 중인 특급 헌터의 새빨간 엉덩이에 물파스를 바르며 물었다.
“너, 엉덩이 진짜 괜찮냐? 터질 것 같은데?”
천문석이 묻는 순간.
특급 헌터는 마당 평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친구들을 슬쩍 봤다.
사슴이, 반짝이, 니케.
셋은 석상이라도 된 듯 긴장한 모습으로 나란히 앉아 엉덩이에 물파스를 바르는 특급 헌터를 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씩씩한 외침.
“특급 헌터는 멀쩡하다! 하나도 안 아프…… 으으윽-.”
외치는 중에 엉덩이가 아픈지 얼굴을 찡그리는 특급 헌터.
하아아-
이때 젖은 옷을 갈아입은 장민이 방에서 나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짧은 한숨에 담긴 장민 대표의 복잡한 마음에 천문석이 미소 지을 때.
장민이 천문석에게 고개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알바씨.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우리 아이를 또 구해 주시다니…… 이제는 감사드리는 것도 민망할 지경이네요.”
“아닙니다. 저도 오늘 큰 도움을 받았어요. 그리고 아마 제가 아니어도 부가티 미니로 순식간에 빠져나왔을 겁니다.”
“그렇죠. 이번에도 그 부가티 헌터 미니가 문제였죠. 딜러사를 모두 막았는데…… 제주도에 그 레이싱 카트가 있을 줄 생각도 못했네요. 하아-.”
장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순간.
천문석은 은근슬쩍 미끼를 던졌다.
“부가티 헌터 미니는 어디에 놓으셨나요?”
“네? 그 레이싱 카트가 어디로 갔나요?”
장민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갸웃할 때.
특급 헌터는 엎드린 채로 분통을 터트렸다.
“내 특급 쌩쌩이! 로봇! 악당 로봇이 가져갔어!”
콩, 콩, 콩-
특급 헌터는 분하다는 듯 작은 손으로 대청마루를 두들겼다.
이 순간 장민 대표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악당 로봇 아주 마음에 드는데?”
“장민! 좋아하면 안 돼! 그 로봇 악당이란 말야! 분명 그 안에 완전 악당이 타고 있을 거야! 잡아서 고등어! 고등어를 맨날맨날 먹여야 해!”
분노한 특급 헌터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이 순간 엎드린 특급 헌터는 장민의 표정을 보지 못하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천문석은 볼 수 있었다.
장민의 얼굴 가득 생겨난 장난스러운 표정!
나이트 아머 파일럿이 장민 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부가티 헌터 미니를 치워 버리게 한 건 장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역시, 장민 대표!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특급 헌터를 구하고, 눈에 밟히는 레이싱 카트를 치워 버리기 위해 나이트 아머까지 동원하다니!
이때 엎드려 버둥거리던 특급 헌터가 천천히 일어나며 외쳤다.
“로봇은 이제 특급 헌터의 적이야! 난 특급 쌩쌩이를 꼭 되찾을 거야!”
“어떻게?”
장민의 물음에 바지에 꽂아둔 퐁퐁검을 꺼내려는 특급 헌터.
그러나 허리를 비트는 순간,
엉덩이가 절로 뒤로 빠지고 몸 전체가 새우처럼 구부러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비명.
“으앗- 내 엉덩이!”
순간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풉-
“세연! 웃지 마!”
풉풋-
“철수 형! 웃지 말라니까!”
키킥, 키-
“니케! 너마저!”
후흐흐흡-
“할머니! 웃으면 안 돼! 할머니 참으란 말야! 내가 웃음 막아줄 게 조금만 기다려!”
그러나 특급 헌터가 엉덩이를 쭉 뺀 채 뒤뚱뒤뚱 달리는 순간 허망하게도 임옥분 여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흐흣-
후흐흐흫-
……
평상 위에 앉은 모든 사람이 웃을 때,
천문석만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특급 헌터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특급 헌터. 힘을 내라.”
“걱정하지만 알바! 난 반드시 특급 쌩쌩이의 복수를 할 거야! 악당 로봇! 기다려라!”
으아악-!
특급 헌터가 퐁퐁검을 지팡이처럼 짚고 몸을 쭉 펴면서 외쳤다.
특급 헌터는 열의에 넘쳤지만,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도 있었다.
천문석은 눈을 반짝이는 장민 대표를 힐끗 보며 다시 한번 특급 헌터를 응원했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