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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22화 (323/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22화>

“보험사는? 아직도 연락이 안 됐나?”

임옥분이 다시 한번 묻자,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비서실 직원들이 유선, 무선, 인터넷으로 계속 연락 중입니다. 모든 보험사가 연결 자체가 안 되고 있습니다. 통신이 복구된 지 얼마 안 되고 문의가 많아서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 연락처도 마찬가진가?”

“전혀 연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임옥분은 생각에 잠겼다.

안전지대 제주도에 나타난 몬스터.

당연히 보험사에는 비상이 걸렸을 거다.

그러나 회사가 몬스터 재해 보험금으로 5개 보험사에 내는 금액만 매년 20억이 훌쩍 넘는다.

게다가 거대 괴수 토벌은 이미 끝났고 통신도 복구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통화량이 폭증했다고 해도,

평소라면 보험사 지사장들이 방문하고도 남았을 시간이 지났다.

‘설마…….’

문득 드는 불안감에 임옥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보험사 지사장의 개인 번호로 전화를 걸려 할 때 비서실장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보험사 한곳과 연결됐습니다! 회장님!”

임옥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통화 스피커폰으로 들을 수 있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곧 임옥분 앞 테이블에 전화기가 놓이고 비서실 직원과 보험사 직원의 통화 내용이 흘러나왔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황한 비서실 직원의 목소리 뒤로 들려오는 민망해하는 보험사 직원의 목소리.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 아무래도 정확한 원인 규명 전에는 보험금 지급이 힘들 것 같습니다.

-네? 몬스터 재해 보험을 들었고 몬스터가 나왔는데 무슨 원인 규명을 한다는 말입니까?

=저희 심사평가부서에서는 보험 대상물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제주도 전체를 대상으로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비서실 직원이 반문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설명이 시작됐다.

=제주도 전체가 회사 소유도 아닌데, 제주도 전체의 피해를 보상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심사부서의 판단입니다.

=제주도에 있는 귀사의 사업체는 거의 피해가 없다고 하던데…….

=사업체가 피해를 보지도 않았는데 보상을 해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보험사 직원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에서 나오는 순간 비서실장이 전화기를 잡으려 했다.

임옥분은 손을 들어 비서실장을 제지했다.

이때 스피커폰에서 비서실 직원의 분노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니! 애초에 보험을 그렇게 들지 않았습니까!? 벌써 10년이 넘게 보험금을 받아가고는! 이제 와서 무슨!

=죄송합니다. 곧 보험 조사관이 피해 조사를 위해 귀사로 나갈 예정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비서실 직원이 다급히 외치는 순간 전화는 일방적으로 뚝 끊겼다.

“이게 무슨!”

비서실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순간 기다렸다는 듯 다른 보험사와도 하나둘 전화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임옥분은 다른 보험사와의 통화도 스피커폰으로 들었다.

보험사들은 함께 모여 대응 방안을 상의라도 한 듯 하나같이 비슷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 전체 피해에 대한 보상은 과도하다.

-안전지대 제주도가 뚫린 일로 업무가 폭증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다.

-몬스터 재해 보험에서 규정하는 몬스터에 거대 괴수는 들어가지 않는다. 거대 괴수에 의한 피해가 불가항력 사유인지 확인하기 위한 법원 판단이 필요하다.

……

서로 다른 이유를 대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당장은 보험금 지급이 힘들다.’

임옥분은 이들의 의도를 짐작했다.

통화 연결을 피해 조바심을 가지게 하고,

보험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선수를 친 후에,

규정과 법원을 언급해 혼을 쏙 빼놓고 있다.

임옥분은 보험사들이 다음에 할 행동도 짐작이 갔다.

재판으로 간다면 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엄포를 놓고,

피해 대상을 자신의 사업체로 한정한다면 보험금을 바로 지급하겠다고 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 낸 보험금을 원금 그대로 돌려주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보험사들은 법과 제도, 조직의 힘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보험금을 후려치려 하고 있었다!

개인이 거대 보험사를 상대할 때 흔히 겪는 일이다.

그래서 임옥분은 회사 명의로 제주도 전체의 몬스터 재해 보험을 들었다.

개인은 후려쳐도 수천 명의 사람이 일하는 회사, 년 20억이 넘는 보험금을 내는 회사를 후려칠 생각은 하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지금 보험사들의 대응방법은 정도만 달라졌을 뿐 개인을 상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거대 보험사들이 보기엔 자신의 회사 또한 개인과 별다를 것 없는 만만한 상대였다.

임옥분은 내심 한숨이 나왔다.

회사의 외형과 겉으로 보이는 영향력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게 결정적인 순간 발목을 잡고 있다.

명분과 실리 모두 이쪽이 압도적이다.

회사의 자금으로 거대 로펌을 고용하고,

드러나지 않은 인맥과 언론을 움직이면 결국 재판에서는 이긴다.

하지만 보험금을 제대로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때 받는 것도 중요했다.

지금 받을 몬스터 재해 보험금은 집과 일터를 잃은 사람들에게 쓰일 돈이다.

재판을 몇 년씩 끌면 이들이 입을 피해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회사가 먼저 지급하고 보험금으로 충당할 수도 없다.

회사 자금을 모두 끌어써도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법적, 경제적, 도의적 문제가 모두 걸린다.

회사 직원들은 오늘 하루 위험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했고 지금도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런데도 자신을 믿고 위험을 무릅쓴 직원들에게 한 번 더 ‘우리‘같이 손해를 감수하자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강요된 ‘우리’라는 말은 선의로 포장된 강압적인 폭력이나 다를 게 없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임옥분이 깊은 고심에 빠져 있을 때,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회장님. 세종시에 연락을 해 보시는 게…….”

비서실장은 세종시에 있는 임옥분의 사위,

고위공무원으로 일하는 류세연의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었다.

임옥분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사위와 딸, 부부간에 갈등이 심한데 자신마저 끼어들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맨땅에서 거대한 회사를 키워 낸 임옥분은 이런 회사들을 상대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상대와 똑같이 어르고 달랜다!

50% 합의안을 생각한다고 슬쩍 흘려 보험사들을 안심시키고,

거대 로펌을 고용하고 정치권과 언론을 움직여 한번 흔들어 준다.

그렇게 해도 재판 없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아마도 60% 정도!

기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재판으로 가면 몇 년은 걸린다.

회사는 이 재판을 버텨도 집과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망가질 거다.

‘이게 최선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고 깊은 피로가 몰려 왔다.

마수와 몬스터 앞에서도 느껴지지 않던 피로에 소파 깊숙이 몸을 묻을 때.

문득 한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천문석.

피로를 느끼는 순간 회사에 자리 잡은 아들, 고위공무원인 사위가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옥탑방 아이 천문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엉망이 된 모습으로 자동차 경주장에 나타나 겸연쩍게 웃으며 장비를 걱정하던 그 모습.

어제는 감귤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오늘은 갑자기 튀어나온 마수와 몬스터 무리 속에서 정신없이 구르며 사람들을 구했다.

그런데도 천문석은 별것 아니라는 태도로 웃었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할 일을 하는 큰 사람이.

임옥분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문석아. 얼른 결혼해서 회사 가져가라.’

이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비서가 들어와 허리를 숙였다.

“회장님. 손님분이 방문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손님? 지금 올 만한 사람이 없을 텐데?”

임옥분이 의아해하자, 비서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회장님께 아이를 맡겨 두고 인사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곧 인사드리러 오겠다는 연락이 방금 왔습니다.”

임옥분은 누구에게 연락이 온 건지 바로 알아챘다.

경호원이 수십 명이나 쫓아다니던 그 아이의 엄마구나!

* * *

“안녕하세요. 임 회장님. 장강 유통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장민이라고 합니다.”

임옥분의 사무실에 들어온 장민은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임옥분이라고 해요. 우선 앉으세요.”

소파에 앉은 장민은 다시 한번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

“임 회장님 우선 사과부터 드릴게요. 우리 집 아이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죠.”

임옥분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활기찬 아이, 특급 헌터.

정중한 엄마, 장민 대표.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서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에요. 아이가 언제나 씩씩하고 티 없이 밝고 착해서 보고 있기만 해도 힘이 나더군요.”

“너무 힘이 넘쳐서 문제예요…….”

장민이 힘없이 웃자,

임옥분도 마주 웃었다.

경호팀에서 이미 보고를 했을 테니 아들이 한 위험한 일을 엄마인 장민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구했어도,

아이가 한 행동의 본질은 위험한 일이다.

엄마가 위험한 일을 한 아이를 칭찬할 수는 없었다.

“너무 혼내지는 마세요. 친한 친구가 사라져서 많이 슬퍼했거든요.”

임옥분이 웃음을 삼키며 말하자,

장민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 친구 일도 제가 사과드려야겠네요.”

“네……? 사과라고요? 친구라는 건 자동차인데…….”

임옥분이 의아한 얼굴이 되자,

장민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로 내밀었다.

쓱-

“이건 뭔가요?”

“제가 드릴 사과입니다.”

봉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수표였다.

어쩐지 눈에 익은 숫자가 적혀 있는 수표.

“이렇게 많은 돈을 왜 저한테……!?”

숫자를 보며 반문하던 임옥분은 문득 깨달았다.

이 숫자는 자신이 그 레이싱 카트를 산 가격이다!

부가티 헌터 미니!

이 순간 자동차 경주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갑자기 경주장에 나타나 부가티 헌터 미니를 번쩍 들고 사라져 버린 나이트 아머!

임옥분은 수표와 장민을 번갈아 봤다.

장민 대표와 나이트 아머!

둘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이트 아머를 움직였다고!?

장강 유통 대표 장민의 엄청난 영향력을 알 수 있었다.

그 엄청난 영향력으로 아이가 위험한 일을 할 때 사용한 레이싱 카트를 가져갔다.

그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

임옥분은 장민의 손을 잡았다.

“회장님……?”

장민이 의아해할 때,

임옥분은 장민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아이 때문에 힘들죠?”

하아-

장민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때.

임옥분은 받은 수표를 돌려주며 말했다.

“그 차는 괜찮아요. 이미 특급 헌터에게 준 거고. 저는 더 중요하고 소중한 걸 받았습니다.”

“…….”

장민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임옥분 회장이 말하는 소중한 게 무엇인지는 이미 짐작이 됐다.

사비를 들여 직원들을 훈련하고, 만약의 사태를 준비했다.

그리고 진짜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나자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을 구했다.

임옥분 회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돈은 그렇기에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

류세연의 외할머니, 임옥분 회장은 보기 드문 훌륭한 어른이었다.

순간 장민은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깊은 울림을 느꼈다.

경호팀에게 보고를 받으며 임옥분 회장이 이럴 것을 이미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했다고 해서 이 울림이 약해지지는 않았다.

‘그때 임옥분 회장님 같은 사람들이 있었으면 장철이 지금 같지는 않았을 텐데…….’

장민이 상념에 빠져들려는 순간,

임옥분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 지금 모두 집에 있어요. 직원을 붙여 줄 테니 장민 대표도 가서 같이 좀 쉬어요. 저는 한동안 바쁠 것 같네요.”

장민은 눈을 반짝였다.

아이에게 바로 가지 않고 사무실에 들러 임옥분 회장을 먼저 만난 이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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