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19화>
“알바! 나 먼저 나갈게!”
샤워를 끝낸 특급 헌터는 바로 문을 열며 외쳤다.
“야, 물기! 물기 닦고 옷 입어야지!”
천문석은 옷도 안 입고 나가려는 특급 헌터에게 수건을 던졌다.
“앗! 그렇지!”
특급 헌터는 보지도 않고 손만 휘저어 수건을 받더니.
파바박-
한 동작에 머리와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반팔티, 반바지를 입고 외쳤다.
“다 했어!”
천문석은 잽싸게 특급 헌터를 낚아채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털어 냈다.
“야, 뭐가 그리 급해! 흑돼지 삼겹살은 안 도망가.”
“빨리빨리! 한국 사람은 빨리빨리! 몰라!?”
“네가 한국에서 제일 성격 급한 꼬맹일 거다.”
“진짜로?! 내가 1등이야!? 제일 빠르다고!? 그럼 앙꼬 대장도 이길 수 있을까? 앙꼬 대장 진짜 엄청나게 빠른데! 장난이 아니야!!”
특급 헌터가 솔깃한 표정으로 외치는 순간.
천문석도 궁금해졌다.
누가 더 빠른지보다 앙꼬 대장이 도대체 누군지가.
파바바팡-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단숨에 특급 헌터 머리의 물기를 날려 버리며 물었다.
“그런데 앙꼬 대장이 도대체 누구야? 키즈 카페 오는 애야?”
“뭐?! 알바 앙꼬 대장을 모른다고?!”
경악한 특급 헌터가 재빨리 설명했다.
“앙꼬 대장 부하가 우리 동네에서 엄청 큰 피시방 하잖아! 그 형 엄청 유명해! 지나가면 형, 누나들이 이렇게 인사한다니까!”
특급 헌터는 손을 ‘ㄱ’자로 굽혀 경례하며 외쳤다.
“충성! 연합 군주님!”
“…….”
뭐지, 이 생각도 못한 대답은?
앙꼬 대장 꼬맹이 아니었어?
꼬맹이 부하가 피시방을 한다고?
천문석이 어이없음에 말문이 막힌 순간 특급 헌터는 크게 외쳤다.
“앗! 흑돼지! 알바! 나 먼저 갈게!”
욕실에서 나간 특급 헌터는 계단 난간을 잡고 단숨에 미끄러져 내려갔다.
쓰으으윽-
천문석도 특급 헌터 뒤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어느새 씻고 나온 김철수가 마당 한쪽의 평상을 나무 그늘로 옮기는 게 보였다.
“나왔냐?”
“철수 형. 그냥 앉아 있어요! 매몰됐다가 나온 사람이 지금 뭐 해요? 병원도 안 가고!”
천문석이 깜짝 놀라 다가가는 순간.
김철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보였다.
“나 지금 완전 멀쩡해! 너 내 이야기 들으면 바로 납득 할 거야. 이따가 세연이 나오면 이야기해 줄게.”
이때 들려오는 기합 소리와 뒤이은 타격음!
“이야얍- 하늘을 잇는다!”
따악-
뀨, 뀨귝-
문득 고개를 돌리자,
특급 헌터가 다시 한번 기합을 지르며 니케에게 딱밤을 날리는 게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특급 헌터는 키즈 카페의 악마 꼬맹이 시절에도 알바 천문석은 고통스럽게 해도, 다른 친구나 어린 동생, 동물을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특급 헌터가 지금은 새끼 다람쥐,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찾아온 친구에게 연신 딱밤을 날리고 있었다.
얍얍, 따악-
뀩뀨규귝-
작은 손가락으로 얍- 기합을 터트리며 딱밤을 날릴 때마다,
찔끔찔끔 눈물 흘리며 슬프게 우는 새끼 다람쥐.
너무나 애처롭고 불쌍해서 하지 못하게 막는 게 정상인 상황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끼 다람쥐가 전혀 불쌍하지 않았다.
마치 합당한 벌을 받는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지고,
어째선지 가슴에 시원하게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이건 뭐지?’
천문석이 의아해 하는 순간 주방에서 류세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고기랑 밑반찬 준비됐어! 이제 나르면 돼!”
“고기! 흑돼지 고기!”
특급 헌터가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세연! 나는 뭘 나르면 돼!”
“이 바구니 가지고 가서, 텃밭에서 같이 먹을 야채 따오면 돼.”
“알았어! 맡겨줘!”
바구니를 두 손으로 번쩍 든 채 텃밭으로 달려가는 특급 헌터.
천문석도 주방으로 가서 고기와 불판을 날랐다.
마당 한쪽, 나무 그늘에 놓인 평상에 순식간에 상이 차려졌다.
대나무 평상 위에 차려진 근사한 저녁상.
커다란 불판이 두 개.
고기 접시에는 두툼하게 썰린 흑돼지 삼겹살, 목살, 항정살이 수북이 쌓였다.
그리고 상을 가득 채운 정갈한 밑반찬과 신선한 채소, 보글보글 된장찌개에 밥까지!
상 주위에 앉은 류세연, 김철수, 특급 헌터 세 사람의 시선이 고기 집게를 잡은 천문석에게 향했다.
“아직이야!? 멀었어?! 알바 빨리빨리! 구워야 많이많이! 먹지 않을까?!”
성격 급한 특급 헌터가 외친 순간.
천문석은 손을 뻗어 불판 위에 올리고 말했다.
“응 아직이야. 기다려. 불판에 열이 더 올라와야 완전 맛있는 삼겹살이 구워져.”
“알았어! 알바! 완전 맛있는 삼겹살이면 난 기다릴 수 있어!”
꿀꺽, 꿀꺽-
특급 헌터가 연신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손바닥을 타고 오르는 열기!
느낌이 왔다!
지금이다!
오른손의 집게로 삼겹살을 집는 동시에,
내력을 끌어올린 왼손으로 삼겹살 위를 훑는다!
절정의 일기일원공에 흑돼지 삼겹살 내부가 달아오르는 순간.
치이이익-
번개같이 불판 위에 놓이는 삼겹살!
탁, 탁, 탁, 탁-
천문석은 순식간에 불판 가득 달아오른 흑돼지 삽겹살을 올렸다.
그냥 삼겹살을 올렸다면 불판 온도가 내려갔을 거다.
그러나 절정의 내력으로 달아오른 삼겹살은 일정한 온도로 일제히 구워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잠시 후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퍼져 나갈 때 다시 한번 번개같이 가위가 움직였다!
관음천수도!
무림 던전에서 초절정 고수 주호마저 낚은 절정의 도법이 가위로 펼쳐졌다.
뚝, 뚜둑, 뚜두둑-
가위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잘리고 동시에 뒤집혀 가지런히 구워지는 삼겹살!
커다란 불판 두 개에 일정한 크기로 잘린 삼겹살이 가득 채워졌다.
“알바! 손이 엄청 빨라! 파바박- 움직여!”
특급 헌터가 감탄한 순간,
류세연과 김철수도 감탄했다.
“그러게. 삼촌 손 정말 빨라 졌는데?”
“예전에도 손이 빠르긴 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 무공 각성이라도 한 줄 알겠는데?”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무공에 다시 입문하고, 절정의 경지에 오르고, 각성까지 했는데 정식으로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각성한 걸 짐작은 하는 눈치인데…….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왜 말을 안 했지?’
생각 순간 바로 답이 떠올랐다.
그동안 정신없이 굴렀으니까!
“…….”
천문석은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자신이 각성했다는 걸 말하려 했다.
이때 들려오는 류세연의 웃음소리.
카카카캌-
“철수 오빠! 설마? 무공 각성자들 프라이드가 엄청 강한데. 무공으로 고기를 구울 리가 없잖아!”
“하긴 그렇긴 하네. 무공 좀 보여달라면 모욕으로 느낀다더라.”
“나도 그 뉴스 봤어. 취객이 무공 좀 보여 달라니까 무공으로 패버렸다잖아.”
“하긴 무공 각성자에겐 무공이 몬스터와 싸울 기술인데 함부로 보여 줄 리가 없지.”
“…….”
절정의 일기일원공, 관음천수도로 삼겹살을 굽던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무공은 원래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익히는 거다.
편한 일상생활을 위해서 쓰는 게 당연한데, 이런 편견이라니!
이때 들려오는 씩씩한 목소리!
“알바! 다 된 거 아닐까?!”
어느새 삼겹살은 노릇노릇 아주 잘 구워져 있었다.
천문석은 잘 구워진 삼겹살을 김철수, 류세연, 특급 헌터와 자신의 앞 접시에 올렸다.
그리고 네 사람은 일제히 임옥분 여사님께 감사하고 여사님이 준비한 제주 흑돼지 삼겹살 구이를 먹었다.
순간 두 눈을 번쩍 뜨는 특급 헌터!
흐어, 어-
뜨거운지 연신 입바람을 불고 외친다.
“훌륭해! 이건 아주 훌륭한 특급 고기야!”
그리고 번개같이 움직이는 특급 헌터의 젓가락!
특급 헌터는 한결같은 아이였다.
고기, 고기, 고기…….
밥도 먹지 않고 고기만 먹으며 연신 탄성을 터트렸다.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작은 몸으로 먹방을 찍듯 빠르게 고기를 먹는 특급 헌터를 보며 천문석과 류세연, 김철수도 식사를 이어 갔다.
한동안 식사가 이어지고 배가 적당히 찼을 때,
김철수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와, 무슨 집안에 폭포가 있냐? 인공 호수도 있네?”
순간 쌈을 꿀꺽 삼킨 특급 헌터가 외쳤다.
“그렇지!? 신기하지! 저 위에 창문에서 뛰어내리면 엄청 재밌을 거 같아! 그런데 할머니 오기 전에 몰래 해야 해! 할머니는 어른이라 그런지 걱정이 많다니까.”
“너희 집에도 이거 비슷한 거 있잖아? 베란다 정원에 있는 개울. 그거 좀 작긴 해도 헤엄칠 수도 있겠던데?”
천문석의 말에 특급 헌터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우리 집 거는 창문에서 다이빙할 수가 없잖아!”
“아, 그렇지! 다이빙은 중요하지!”
천문석이 바로 납득하는 순간.
찰싹-
등에 떨어지는 류세연의 매운 손바닥!
으앗-
“삼촌 애 앞에서 뭐야! 위험한 일 했다고 아침에 할머니한테 혼났다며!?”
천문석은 고통에 저릿저릿한 등을 비틀며 말했다.
“야, 너 각성 검사받아 봐라! 내가 아픔을 느끼다니! 아무리 봐도 너 손바닥 정상이 아니다!”
순간 류세연은 솔깃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설마 마력 각성한 걸까? 혹시 치료 능력?! 드디어 닥터 류세연이 탄생하는 건가!?”
“뭐, 치료 능력? 닥터 류세연? 응, 아냐. 넌 분명 육체 각성이다. 폭력배 류세연!”
“뭐……!?”
류세연이 발끈하려는 순간 천문석은 번개같이 쌈을 싸서 입에 쏙 넣어 줬다.
“ㅁㅁㅁㅁ ㅁㅁ! ㅁㅁㅁ! ㅁㅁㅁ!”
“아, 너도 동의한다고? 카캬카-.”
류세연이 소리 없는 외침을 터트리고 천문석이 비웃을 때.
특급 헌터가 입을 크게 벌리고 외쳤다.
아아아아-
“알바! 나도, 나도! 쌈 싸줘!”
“그렇지! 너도 쌈 싸줘야지! 흐흐흐-.”
천문석이 음흉하게 웃으며 싸준 쌈을 씹는 순간.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하는 특급 헌터!
“매워! 엄청 매워!! 으앗! 고기가 없잖아!?”
특급 헌터가 마늘과 고추, 파무침만 한가득한 쌈을 먹고 고통스러워할 때.
천문석은 어른스럽지 못하게 외쳤다.
“흐흐흐- 꼬맹이 예전의 복수다!”
“앗!”
깜짝 놀란 특급 헌터는 재빨리 몸을 돌려 쌈을 싸더니 천문석에게 내밀었다!
“알바! 내 쌈도 먹어!”
“야, 내가 그걸 먹겠냐?! 카캬카-.”
천문석이 비열하게 웃고.
“안 돼! 특급 헌터는 지면 안 된단 말야!”
꼬맹이가 좌절하는 순간.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지! 귀 좀 줘봐.”
류세연이 꼬맹이 귓가에 속삭이고 꼬맹이는 마당 한쪽으로 다다닥- 달려갔다.
김철수는 세 사람을 보며 웃었다.
어제 사모님을 만나러 제주도에 올 때 느껴지던 암울함이 연기처럼 날아가 버린다.
제주도에선 좋은 일이 없었다.
물가는 비싸고,
거대 괴수가 나타나고,
붕괴한 호텔에 매몰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순간 김철수는 어쩐지 제주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가 너무나 근사했다.
앞에는 맛있는 흑돼지 삼겹살이,
고개를 돌리면 멋진 풍경이 있다.
커다란 바위 폭포,
산을 따라 이어진 거대한 농장.
그리고 그 끝에 펼쳐진 하늘과 바다.
이 멋진 풍경을 보며 같이 맛있는 밥을 먹는 사람들은 식구(食口).
자신에 진짜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천문석과 류세연 그리고…….
“어, 꼬맹이는 어디 간 거야?”
악마 꼬맹이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손에 툭 닿는 길쭉한.
“오이?”
오이를 든 사람은 자신이 찼던 꼬맹이, 특급 헌터였다.
“오이는 왜?”
김철수가 묻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잇달아 들려오는 외침.
“오이 맛있어!”
“여름의 맛이야!!”
“가슴이 꼬물꼬물하고!!”
“더위가 싹 날아가서 엄청 시원해!!”
……
점점 커지는 목소리와 두 눈에 이글거리는 선의.
키즈 카페에서 몇 번이나 겪었던 기시감이 다시 들 때.
“…….”
김철수는 손에 쥔 오이를 들어 보이며 확인했다.
“이 오이 나 먹으라는 거지?”
“응응응응응응응!”
특급 헌터는 폭풍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철수는 이 순수한 선의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오이를 와삭 깨물어 먹으며 말했다.
“할 만하다.”
김철수는 비누를 먹는 것 같아서 평소 생 오이를 먹지 않았지만, 아이의 순수한 선의가 담긴 오이는 먹을 만했다.
“와- 이 오이 진짜 엄청 시원하고 맛있는데?!”
“그렇지!?”
특급 헌터는 신나게 외치고 움켜잡고 있던 옷깃을 놓았다.
순간 와르르 쏟아지는 오이 무더기.
“이거 다 줄게! 맛있게 먹어! 저기 밭에 아직 많아!”
“…….”
김철수는 말없이 오이를 특급 꼬맹이의 옷에 다시 담아주고 말했다.
“이 맛있는 오이, 문석이랑 세연이에도 가져다줘라.”
“앗! 그렇지! 알바! 내가 엄청 맛있는 거 줄게!”
옷에 오이를 가득 담은 특급 헌터는 한달음에 천문석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경악한 천문석의 외침과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앗- 뭐야!? 이렇게 복수하는 거냐?!”
“카카캌- 특급 헌터는 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