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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316화 (317/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16화>

입안에 가득한 먼지, 얼굴을 흘러내리는 모래.

그리고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

김철수는 자신의 상태를 바로 깨달았다.

매몰됐구나!

몸에 힘을 줘 봤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김철수는 항상 하던 말을 외쳐 봤다.

“쿨럭, 할 만하다…….”

힘없는 목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다시 한 번 힘을 썼지만.

여전히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의식까지 흐려지기 시작했다.

전혀 할 만하지 않았다.

하하, 하-

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

거대 괴수가 나타나 난장판이 된 제주도.

투숙객 대부분이 탈출한 호텔 21층에 매몰됐다.

구조 우선순위에서 밀릴 테니 언제 구조대가 올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몸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의식까지 흐려지고 있다.

암울한 상황이다.

여기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거다.

그러나 김철수는 어쩐지 계속 웃음이 났다.

언제나 열심히 살았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나를 위해서.

삶에 후회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이제 본궤도에 오른 사무실이 좀 아쉽지만, 천문석이라면 알아서 사무실을 잘 운영할 거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김철수 사무실을…….

“그럼 이제 가자고.”

김철수는 마지막으로 한번 웃은 후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이 순간 육체의 감각이 빠르게 멀어졌다.

깊은 물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낙하감과 부유감이 동시에 느껴지고.

미동도 하지 못하게 몸을 짓누르던 무게가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느새 김철수는 너무나 익숙한 폐허로 떨어지고 있었다.

커다란 강이 동서로 관통하는 거대한 도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박살 난 건물과 뒤집힌 도로가 사방에 널려 있다.

크아아아아-

거대 괴수의 포효가 하늘을 떨어 울릴 때,

파스스스슥-

헤아릴 수없이 많은 마수와 몬스터가 부서진 도시 위로 파도처럼 몰아친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몇 번이나 꾼 그 꿈이다.

1차 게이트 사태 당시의 서울!

하늘에서 떨어지던 김철수는 어느새 폐허가 된 광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쏴아아아-

부서진 상수도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무지개를 만드는 비가 되어 광장에 쏟아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아-

이 순간 김철수는 깨달았다.

꿈이 달라졌다.

이 광장은 단 한 번도 꿈꾸지 않은 장소였다.

김철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이 광장은?”

꿈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그리고 머리를 돌리는 순간 주위 풍경이 보인다!

영화를 보듯 보여 주던 장면만 보였는데, 지금 이 순간 김철수는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있었다.

“자각몽, 죽기 직전의 주마등 같은 건가?”

김철수는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서진 벤치와 건물 잔해를 밝고 위로 올라갔다.

시야가 트이는 순간 김철수는 자신이 있는 광장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쓰러진 세종대왕 동상과 잔해 너머로 보이는 현판만 남은 문, 광화문.

그리고 이 광화문 뒤로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게이트가 보였다.

마력장을 뿜어내는 거대한 빛의 고리!

세계 최초로 생겨났고, 세계 최초로 게이트 안정화 장치가 설치된 광화문 게이트가 있었다.

이곳은 광화문 광장이었다!

광화문 게이트는 안정화 장치가 설치되기 전 모습 그대로, 만져질 듯 선명한 마력장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양 코로나처럼 수천 미터를 솟구쳐 허공에서 연기처럼 흩날리는 마력장!

이 순간 김철수는 홀린 듯 광화문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 반쯤 지났을 때.

익숙한 달리기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닥-

문득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였다.

커다란 검은 담요를 몸에 걸치고, 두 손을 꼭 쥔 채 달려오는 꼬마 아이.

수없이 본 꿈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뒤를 쫓는 들개 마수를 피해 묘기 하듯 폐허 위를 달리는 꼬마 아이.

김철수가 꿈속에서 수없이 봤던 그 꼬마 아이였다.

그러나 이 장소, 광화문 광장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는 꼬마 아이의 뒤를 쫓는 마수나 몬스터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마지막 꿈, 주마등이라 그런지, 지금 자신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김철수는 아이를 향해 그동안 정말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 그 손에 뭘 쥐고 있는 거야?”

이 순간 다급히 뛰어가던 꼬마 아이가 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춰 섰다.

광화문 게이트 앞에 멈춰 선 아이는 천천히 몸을 돌려 김철수를 봤다.

게이트에서 뿜어지는 엄청난 빛에 그 얼굴과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아이.

김철수가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거대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쿵, 쿵, 쿵-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는 동시에 무너진 빌딩 잔해를 짓밟고 나타나는 거대한 마수!

크아아아아-

마수의 포효가 터지는 동시에 기울어진 빌딩의 유리창이 박살 나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땅에 드리워지는 거대한 그림자!

“위험해!”

경악한 김철수가 몸을 던지는 순간.

휘이잉-

한 줄기 바람이 꼬마 아이의 담요를 흔들고.

빛의 고리, 최초의 게이트에서 폭발하듯 마력장이 뻗어 나왔다.

이 순간 몸을 날리던 마수가 급격하게 느려지더니 정지했다.

아니 마수뿐만이 아니었다.

뻗어 오던 마력장, 쏟아지던 유리창.

불어오던 바람, 주위에 가득한 빛.

모든 게 멈춘 공간에서 담요를 덮은 꼬마 아이와 몸을 날린 김철수 둘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김철수가 아이 앞에 도착한 순간.

담요 아래 깊게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드는 아이.

역광으로 아이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보는 너무나 분명한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에 무게가 실린 것처럼, 몸이 미동도 하지 않을 때, 불쑥 내밀어지는 작은 손.

꽉 움켜쥔 두 손이 천천히 펼쳐지고 마침내 손안에 쥔 것이 보였다.

반짝이는 조약돌과 강철 조각!

김철수의 두 눈이 못 박힌 듯 조약돌과 강철에 꽂히는 순간.

산이 무너지는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ㅁㅁㅁ!]

이해할 수 없는 외침이 몸 안에서 끝없이 메아리치며 외침은 울림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뜻이 이해됐다.

[찾아라!]

‘찾으라고?’

김철수가 번쩍 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순간.

최초의 게이트에서 뻗어 나오던 마력장이 폭발했다.

세상이 일그러진다.

물 위에 그린 그림이 비틀리듯 세상이 일그러지고 비명이 들려온다!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세계 그 자체가 부러지는 소리!

우드드드득-

이 순간 인과가 끊기고, 선택이 사라지고, 가능성은 죽어 버린다.

빛을 잃고 차가운 재가 되어 흩어지는 이 세상에서 빛나는 것은 하나.

아이의 두 손에 놓인 돌(石)과 철(鐵)!

김철수가 손을 뻗어 잡으려는 순간.

-흐흐흐흐흐흐흐

허신의 강대한 사념이 밀려 오고.

꿈속으로 침잠했던 의식은 다시 한 번 끊겼다.

* * *

-흐흐흐흐흐흐흐

허신의 사념은 거대한 파도처럼 퍼져 나가며, 대기를 흔들고 접촉하는 생명체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허신의 사념이 집중된 곳은 항구에서 격전을 펼치는 원대륙의 샤였다.

지금 이곳 도심의 사념은 의도치 않게 퍼져 나가는 부수적인 물결이었다.

그렇기에 허신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사념이 퍼져 나가는 도심지 빌딩 옥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21층의 김철수가 다시 한 번 정신을 잃는 동시에 호텔 옥상 정원에 신기루 같은 벽과 문이 생겨났다.

거대한 탑의 한 부위를 뚝 잘라 놓은 것 같은 완만한 곡선의 화강암 벽과 강철문.

강철문이 나타나는 순간 문 위에 성에가 두껍게 자라났고, 잠시 후 얼어붙은 강철문이 들썩였다.

쿵, 쿵-

쿵, 쿠웅-

진동과 함께 성에가 빠드득- 조각나 떨어져 나가고 문이 조심스레 살짝 열렸다.

끼이익-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두툼한 털모자를 쓴 사람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털모자를 쓴 사람은 강철문을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조심스레 문밖을 살폈다.

끝없이 펼쳐진 숲이 있는지, 자연의 빛과는 다른 황금빛이 보이는지.

기억에 각인된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숲, 없다!

-황금빛, 없다!

-저주받을 울음소리, 들려오지 않는다!

이 사람은 모두 확인한후에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슬그머니 강철문을 열고 나왔다.

휘이이잉-

이 순간 문안에서 쏟아지는 극저온의 냉기 폭풍!

단숨에 옥상 정원에 서리가 내리고 수분이 얼어붙었다.

이 사람은 재빨리 밖으로 나와 문을 약간의 틈만 남겨 두고 닫았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이 사람은 얼어붙은 고드름이 잔뜩 달린 마법사 로브를 입은 마법사였다.

콰아아앙, 쾅, 쾅-

이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염동포탄의 폭음!

당장이라도 빌딩이 무너질 듯 요동치고 사방에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았다!

그러나 고드름이 자라난 마법사 로브를 입은 마법사는 폭음도 화염도 연기도 느끼지 못했다.

마법사는 옷에 붙은 고드름을 뚝뚝 꺾어 집어던지고 털모자를 벗고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하늘을 바라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진짜 태양이 하늘에 있다!

느껴진다!

열을 삼키는 냉기 태양이 아닌, 열을 뿜어내는 뜨거운 태양!

극저온의 냉기 폭풍이 아닌, 따듯한 온기를 품은 시원한 바람!

얼음 가시 잎이 솟은 나무가 아닌, 녹색 나뭇잎이 가득한 제대로 된 나무!

지긋지긋한 눈도 얼음도 백곰도 없다!

이 모든 것에 비하면 발아래서 느껴지는 진동, 사방에서 솟구치는 폭음과 연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마침내, 마침내!”

마법사는 감격에 겨워 외쳤다!

천공탑으로 도망친 지 벌써 수십 년!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이번 층이 가장 힘들었다.

12년 7개월 12일 5시간 동안, 냉기 태양이 지지 않는 극한의 냉기 지대를 헤맨 것이다!

흡흡흡흡-

마법사는 다급히 온기가 느껴지는 공기를 들이켰다!

포근한 온기를 머금은 공기에 얼어붙은 폐가 단숨에 녹고 육체에 활력이 돌아오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살만한 곳으로 왔구나!”

마법사는 크게 외치고 주위를 살폈다.

“여기 어디야? 와 이 건물 뭐야? 뭘 이렇게 높게 지었어! 어라 이런 건물이 하나둘이 아니네!?”

쐐애애애액, 콰아앙-

이때 하늘을 날아와 건물에 처박히는 물체가 보였다.

물체가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촉수를 꿈틀거리는 거대한 괴수가 보였다.

보는 순간 마법사의 머리에 떠오르는 정보.

‘허신, 오래된 바다!’

“저 녀석 유배형 도중에 실종됐을 텐데!?”

마법사는 바로 감이 왔다.

이곳은 허신이 도망친 차원이구나!

나쁘지 않다.

아니, 아주 좋았다!

도망친 허신이 깽판을 치고도 무사할 정도의 차원이라면 잠시 숨어 살기에 딱이다!

그러나 그전에 확인할 게 있었다.

마법사는 재빨리 은폐 마력장을 펼치고 허신 주위를 확인했다.

허신을 섬기는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들은 평범하다.

그런데 허신의 몸 주위에서 마력장과는 다른 특이한 힘이 느껴졌다.

“신성력? 아닌데…… 설마 그놈들 힘은 아니겠지!?”

마법사는 재빨리 인증 수인을 짚고 파문을 일으켰다.

인증 수인에서 하늘로 퍼져 나가는 마력 파문.

마법사는 능숙하게 12 마도 계파의 인증 파문을 모두 일으켰으나, 그 어떤 마력 파문에도 마력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곳에 마탑은 없다.

마법사는 인증 파문을 거두고 마력장과 직접 연결했다.

순간 이곳 차원에 가득한 마력장과 특이한 힘에 대한 정보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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