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12화>
“……이렇게 된 거야.”
류세연이 경주 트랙 위에 엎드린 특급 헌터를 가리키며 설명을 끝냈다.
“그렇게 된 거구나.”
천문석은 류세연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이 겪은 일을 요약했다.
1. 나이트 아머가 초음속 폭격기에서 강하해 마신의 강림체와 격전을 벌였다.
2. 자동차 경주장으로 달려온 나이트 아머가 특급 헌터의 부가티 헌터 미니를 가지고 사라졌다.
3. 특급 헌터가 특급 쌩쌩이가 사라진 후 실의에 빠져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
순간 머리에 떠오른 의문.
‘뭐지, 중간에 하나가 빠졌는데? 파일럿이 내가 생각한 그 사람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한 천문석이 특급 헌터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너 괜찮냐?”
“특급 쌩쌩이가 사라졌잖아. 하나도 안 괜찮아…….”
특급 헌터는 엎드린 채 힘없이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너 엉덩이 괜찮냐고?”
“엉덩이? 나 엉덩이 멀쩡한데?”
특급 헌터가 고개를 갸웃할 때, 천문석도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 괴수 본체에서 코어를 날름하고 자동차 경주장으로 오는 길, 천문석은 항구로 달려오는 나이트 아머와 스쳐 지나갔다.
이때 나이트 아머에서 툭- 떨어진 ‘물체’.
그 ‘물체’를 보고 나이트 아머의 파일럿이 장민 대표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특급 헌터의 엉덩이도 불이 났을 거로 생각했는데…….
특급 헌터의 엉덩이는 무사했다!
‘뭐지? 파일럿이 장민 대표라면, 특급 헌터의 엉덩이가 이렇게 무사할 리가 없는데!?’
잠시 고심하던 천문석은 그냥 넘기기로 하고 엎드린 특급 헌터의 어깨를 툭 쳤다.
“이거 받아라.”
“앗! 이거는 내 쌩쌩이 열쇠잖아!”
자동차 키를 받은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나이트 아머가 가져간 부가티 헌터 미니의 키!
이것이 나이트 아머에서 떨어진 ‘물체’였다.
벌떡 일어선 특급 헌터는 쌩쌩이 열쇠를 힘차게 흔들며 외쳤다!
“특급 쌩쌩이 걱정 마! 내가 꼭 복수해 줄 테니까!”
“로봇! 이제 로봇은 특급 헌터의 적이야!”
“고기! 당장 고기를 먹어야겠어!”
“엄청난 힘이 필요해!”
이야압-
특급 헌터가 기합을 지르는 순간.
구으으-
띠딛디-
특급 헌터의 어깨에 앉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동시에 울었다.
그리고 류세연도 응원했다.
“특급 헌터! 넌 할 수 있어 힘을 내!”
“…….”
그러나 천문석은 힘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특급 헌터는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한 아이다.
그러나 커다란 로봇, 나이트 아머.
더 정확히는 나이트 아머에 탄 파일럿을 이기는 것은 아주 힘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천문석은 특급 헌터의 손을 잡고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천문석이 말한 순간 기운을 차린 특급 헌터가 크게 외쳤다.
“세연! 할머니! 이제 집에 가!”
“내가 차 가져올게.”
“세연, 나도 같이 가!”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차를 가지러 달려가자, 직원들에게 명령하던 임옥분 여사가 천문석을 바라봤다.
“문석아. 오늘 고생 많았다. 먼저 가서 씻고 쉬어.”
“여사님은 안 돌아가시나요?”
임옥분은 주위를 가리켰다.
자동차 경주장으로 대피한 사람들이 트럭, 자동차,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농장과 사업체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려면 한동안 임옥분 여사님은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그리고 예상 그대로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기 뒤처리하고, 보험금 신청하려면 한 며칠은 바쁠 것 같아.”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사님.”
천문석은 인사를 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녹색 진흙으로 엉망이 된 강화 전투복.
안전 장갑과 군화, 방검복 같은 장비.
체액과 피로 얼룩진 무기, 봉까지.
연이은 격전으로 빌린 장비 모두가 엉망이 됐다.
“여사님. 이 장비는 어떻게 할까요? 수리정비 비용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천문석이 내심 긴장하며 말한 순간, 임옥분은 웃으며 천문석의 손을 잡았다.
“그걸 걱정한 거야?”
거칠고 억세지만 작고 따뜻한 손.
이 손에서 전해지는 깊은 마음에 가슴에 훈훈한 온기가 감도를 때.
천문석은 새삼 깨달았다.
이 자동차 경주장에 가득한 사람들!
임옥분 여사님은 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낌없이 정품 마탄을 쏟아부었다.
그런 분이 이깟 장비 수리비를 말씀하실 리가 없었다!
이때 불쑥 튀어나오는 목소리.
“100년 어때?”
“네!? 100년이요?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반문하는 순간.
임옥분 여사는 음흉한 눈빛으로 말했다.
“사위는 100년 손님…….”
“할머니!”
이때 류세연의 다급한 외침이 멀리서 들려왔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할머니!”
자전거를 끌고 달려오는 손녀의 빨개진 얼굴을 본 임옥분 여사는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외치고 재빨리 몸을 피했다.
“농담이야. 농담! 그럼 모두 집에 가서 씻고 편하게 쉬어. 냉장고에 흑돼지 있으니까! 구워 먹고!”
순간 류세연과 돌아오던 특급 헌터가 외쳤다.
“고기! 흑돼지 고기! 나 얼른 고기 먹고 강해져야 해!”
“우리 강아지. 고기 많이 먹고 쉬고 있어요.”
“알았어. 할머니! 걱정하지 마! 엄청 많이 먹을 거야! 이야압!”
임옥분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잰걸음으로 자동차 경주장의 임시 사무실로 걸어갔다.
사무실로 걸어가는 길, 수많은 사람이 환한 얼굴로 인사하며 꼭 도움을 갚겠다고 말해 왔다.
임옥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면서 걸었다.
웃으며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이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신에겐 보상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로 집과 재산에 큰 피해를 보았지만,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자신이 준비한 헌터들과 무장한 병력 덕분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움직인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옆집 꼬마를 안고 달린 고등학생, 사다리차로 사람들을 대피시킨 사람.
버스와 화물차로 사람들을 가득 싣고 달려온 운전기사.
……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
임옥분은 문득 고개를 돌려 특급 헌터와 류세연, 천문석을 차례로 바라봤다.
너무나 훌륭하게 자란 우리 집 아이들.
이 아이들이 구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순간 임옥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줬으니 이제 자신이 할 일을 할 때였다.
큰 전투는 일단락됐지만, 해변에서 새어 들어온 괴물들을 소탕하고 사람들을 구조하고 복구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헌터 부대가 주가 돼서 할 일.
자신이 직접 챙길 일은 따로 있었다.
거액의 재해 보험.
임옥분은 눈을 빛냈다.
보험사들은 안전지대 제주도에서 재해 보험을 들겠다는 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보험계약을 했었다.
이제 10년 동안 낸 거액의 보험금의 대가를 받을 때였다.
농장과 사업체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체를 대상으로 들어 둔 몬스터 재해 보험의 대가를!
임옥분은 ‘안전지대’ 제주도 전체에 대한 ‘광범위한 몬스터 재해 보험’을 10년 전에 들었고 매년 갱신 중이었다.
* * *
“알바! 빨리빨리! 얼른 흑돼지 구워 먹어야 해! 엄청난 힘이 필요해!”
어느새 원래 모습을 되찾은 특급 헌터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좀 쉬어야 했다.
제주도로 온 여름 휴가 2일 차, 거대 괴수와의 격전이라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겪었다.
오늘부터 휴가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논다!
“그래! 얼른 가서 씻고 고기 구워 먹자!”
우와아아아-
특급 헌터가 환호성을 지를 때.
천문석은 잡낭을 슬쩍 열어 봤다.
잡낭 속에는 반짝이는 엄지손톱 크기의 구슬이 있었다.
이 구슬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코어!
이게 바로 항구에 쓰러진 거대 괴수 본체에서 날름한 코어다.
일반인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마석과 달리 코어에 대해서는 일반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코어는 나이트 아머 같은 전술 등급 마도구에 들어가는 만큼 가격이 엄청날 거란 것!
“와, 나 이번에 건물주 되는 거 아냐!?”
카캬카-
잡낭 속 검은 동전 옆에서 반짝이는 코어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오고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이때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씩씩한 목소리.
“삼촌. 얼른 집에 가자.”
“알바! 뒤에 타! 내가 운전할게!”
“야, 너 앞으로 운전 금지야!”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드는 순간, 보였다.
커다란 배달용 철제 자전거를 잡은 류세연과 어느새 안장 위에 앉은 특급 헌터.
“……너 차 가지러 간다고 하지 않았냐?”
류세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사람들 귀가시키고. 바로 구조 작업 시작해야 해서 남는 차가 없대.”
“……농장 근처로 가는 차도 없어?”
“감귤 농장이 외진 곳이잖아? 도심에 부서진 건물과 빌딩들 구조 작업 때문에 차량 대부분이 도심으로 이동할 거라는데?”
“…….”
이때 들려오는 씩씩한 목소리.
“세연, 알바! 뒤에 타! 내가 바퀴 돌릴게! 나 자전거 엄청 잘 타!”
이야압-
특급 헌터가 기합을 지르며 발을 뻗었지만, 짧은 다리는 페달에 닿지 않고 허공을 휘저었다.
붕, 붕, 붕-
“…….”
천문석은 특급 헌터에게 말했다.
“뒤에 타라. 내가 몰게.”
자전거 안장의 천문석, 짐칸의 류세연과 특급 헌터.
세 명을 실은 자전거가 자동차 경주장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임옥분 여사님의 감귤 농장이었다.
자동차로 대략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천문석은 절정의 내력으로 페달을 돌리며 슬쩍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님. 마지막에 이러시긴 가요?’
무심한 하늘은 언제나 그러하듯 대답이 없었다.
대신에 특급 헌터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겹살 먹으러 가요!”
“형, 누나들도 맛있는 흑돼지 드세요!”
“제주 흑돼지 삼겹살! 조아조아! 아주 조아!”
……
어느새 기운을 차린 특급 헌터는 자전거 주위를 지나가는 자동차와 버스, 화물차의 모든 사람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며 신나게 외쳤다.
* * *
바라카스 발도.
반쪽짜리 샤는 세계의 나무를 뛰어넘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금권 대협에게 깜박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다!
-내가 중요한 걸 깜빡 잊었어! 천…….
그러나 미쳐 말을 끝맺기도 전에 도약이 시작되고 끝났다.
-검 이세기와 단혈철검 주호가 나랑 같이 넘어…….
“……!?”
바라카스는 전음을 끝마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깜짝놀랐다.
허신의 강림체와 함께 인과가 이어지는 이가 있는 곳을 향해 세계의 나무에서 도약했다!
충분히 차원력을 쌓지 못하고 세계의 나무를 뛰어넘었으니, 당연히 엄청난 반동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반동이 전혀 오지 않았다!
게다가 도약이 너무 빨리 끝났다!
혼돈에서 자라나는 세계의 나무를 보기도 전에 도약이 끝난 것이다.
어느새 밤으로 변해 버린 하늘이 아니었다면, 실패했다고 생각할 정도 빠른 도약!
그리고 도약이 끝난 지금.
바라카스와 허신의 강림체는 갑자기 밤이 된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파아아아-
아직 남은 차원력으로 천천히 지상으로 떨어지는 허신의 강림체 위.
바라카스 발도는 재빨리 지상을 살폈다.
환한 달빛 아래 펼쳐진 거대한 대지!
주황색 땅 위에 자리한 새파란 호수, 뜨거운 물을 뿜어내는 간헐천, 증기가 피어오르는 열천.
이 주위로 드넓은 초원과 웅장한 협곡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지평선을 두른 거대한 산맥이 보였다.
숲과 초원, 협곡과 산맥.
모든 곳에 생명이 가득하다!
초원의 들소, 숲의 회색곰과 거대한 사슴, 강에 가득한 물고기까지.
이 드넓은 대지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이 느껴졌다.
바라카스가 넋을 놓고 도저히 탑 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풍경을 보고 있을 때.
휘이이이이잉-
생명력이 가득 담긴 바람이 하늘에서 불어왔다.
바라카스는 번쩍 고개를 들어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봤다.
그리고 수천수만의 별과 별 무리가 그려내는 천기를 읽는 순간 확신했다.
‘이곳은 천공탑이 아니다!’
아니 탑 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세계의 나무를 뛰어넘지도 못했다!
수천수만의 별들이 그려내는 천기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
며칠 전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기 전과 같은 현상이다.
게다가 하늘 곳곳에 자리한 눈에 익은 별자리!
“……!”
바라카스는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무림에서 떨어진 곳, 허신의 강림체와 싸웠던 세계다.
자신과 허신의 강림체는 세계의 나무를 뛰어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