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307화>
꿈틀거리는 촉수 사이로 파고드는 순간.
맞물린 좁은 바위 사이로 몸을 밀어 넣는 것처럼 엄청난 압력이 쏟아졌다!
경화된 강화 전투복을 으스러트릴 듯 밀려오는 촉수 더미!
마신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내력만 사용해야 한다.
천문석은 2자 길이로 줄어든 봉을 기둥 삼아 촉수 안으로 한참을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쿵, 쿵, 쿵, 쿵, 쿵-
거대한 반발장과 마력장, 각성력의 근원 힘이 모여서 퍼져 나가는 맥!
맥을 찾은 순간 바라카스의 전음이 들려왔다.
-준비 끝났네! 언제든 시작하면 되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외치는 동시에 천문석은 봉을 늘려 공간을 만들어 냈다.
우드드득-
간신히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만들어지는 순간, 천문석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었다.
전생의 스승님께 배운 이 수인은, 무공도 주술공도 아닌 혼백에 새겨진 일종의 법(法)이었다.
전법륜인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하는 법이지 누군가를 공격하는 무공은 아니다.
그러나 천문석은 이 전법륜인으로 마신의 강림체가 가진 힘을 깎아낼 생각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북한산 워터파크에서 심상 공간의 폭풍우를 현실 공간의 풀장에 만들고, 물리력 이상의 고통을 주는 전법륜인 딱밤을 때린 것처럼 하면 된다.
심상 공간에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강대한 존재를 만들어 내고.
이 존재의 심상을 전법륜인으로 마신의 사념에 전한다!
강대한 존재의 심상에 짓눌려 공포감을 느낀 순간, 마신의 위계는 떨어지고 힘은 훅 깎여나간다.
이성이랄게 없는 다른 마신이라면 쉽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이 마신은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특이한 마신이라 충분히 가능했다.
문제는 마신의 사념이 공포에 질릴 정도의 존재를 찾는 것.
그리고 심상을 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마신과 같은 감각을 느낄 거라는 거다.
천문석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참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그리고 이 마신의 강림체가 공포에 질릴 정도의 존재는 너무 많이 많아서 문제였다!
흐흐흐-
음흉하게 웃은 천문석은 바로 시작했다.
후-
눈을 반개하고 깊은 호흡을 하는 순간.
천문석은 영육과 혼백의 사이 심상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기일원공의 내력이 도도히 흐르는 기경팔맥.
천문석은 한걸음에 기경팔맥을 뛰어넘어 스스로 만든 문으로 들어갔다.
끊임없이 안으로 무너지는 입구를 지나는 순간.
밀려오는 혼돈에 공간이 일그러지고, 시간 감각이 흩어져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천문석은 심상 공간에 생겨난 무저갱의 마굴을 바라보며, 이 마굴을 돌파하던 당시 만난 존재들을 떠올렸다.
사방에서 불쑥불쑥 치솟아오르는 그림자들.
시선이 닿는 순간 그림자가 일그러지며 마음으로 말을 걸어온다.
-고통 가득한 울부짖음.
-영육을 타락시키는 웃음.
-이차원 존재 특유의 광기.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의 폭풍이 몰아친다.
그러나 이런 정신에 가해지는 공격은 마음을 태우는 마공, 천마 신공으로 극에 달했던 천문석에겐 통하지 않았다.
천문석의 시선은 무심하게 이들을 지나쳐 한곳에서 멈췄다.
일그러진 그림자 사이.
한 존재가 멀어지고 있다.
푸른 불꽃들을 새하얀 몸 주위에 휘감은 채, 꼬리를 나긋나긋하게 흔들며 멀어지는 대요마!
천문석은 보는 순간 알아봤다.
주위의 열을 흡수해 엄청난 냉기를 뿜어내는 9개의 푸른 불꽃, 냉기 불꽃!
저 냉기 불꽃에 닿는 순간 밖은 꽝꽝 얼어 들어가고 속은 재가 될 때까지 불탄다!
냉기 불꽃을 품은 대요마!
이 대요마는 갑자기 툭 튀어나와 꿈속을 거닐 듯 몰려드는 마물 들을 짓밟으며 무저갱의 마굴을 가로질렀다!
이 대요마와 싸우지는 않았지만, 냉기 불꽃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기억에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천문석은 이 냉기 불꽃을 보는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있었다!
더 빨리 마신의 강림체가 가진 힘을 깎을 방법이 있다!
천문석은 결정했다.
대요마의 냉기 불꽃, 이걸 이용하는 거다!
천문석은 즉시 마굴을 무너트리고 심상 공간에 냉기 불꽃을 구현해 냈다.
심상 공간에 냉기 불꽃이 피어오르는 순간, 주위의 열기를 삼키는 냉기 불꽃의 영향으로 북풍한설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도도히 흐르는 일기일원공의 내력 위로 눈송이가 하나둘 떨어지고, 무엇이든 얼리는 냉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에 육체가 얼어붙는 순간 천문석은 전법륜인의 수인을 짚었다.
그리고 열기를 흡수하는 차가운 불꽃, 냉기 불꽃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 * *
너울거리는 촉수로 만든 기괴한 문양!
이 문양에서 느껴지는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정신파가 물결치듯 쏟아져 나왔다!
쿵, 쿵, 쿵-
어느새 아군 대부분은 침묵한 상태.
쾅, 콰아앙-
드문드문 마력 포탄이 날아왔지만, 허신의 강림체는 이제는 공격을 막지도 않았다.
콰아앙-
박살 나 끊어지는 촉수와 쏟아지는 체액을 보란 듯 재생하며 정신파에 비웃음이 담긴 사념을 실었다.
흐흐흐흐흐흐흐흐-
정신을 오염시키는 사념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자, 공포에 질려 절규하는 사람들!
허신의 강림체는 이 감정을 음미하고 있었다.
바라카스는 허신의 강림체를 바라보며 웃었다.
허신, 오래된 바다!
제국 군단 앞에서도 웃을 수 있을지 보자!
인과가 이어진 그와의 연결은 이미 끝났다.
이제 금권 대협이 허신의 강림체가 가진 저 거대한 힘만 약간 덜어 내면, 단숨에 세계의 나무를 넘어 제국 군단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제국 군단이라면 허신의 본체도 아닌 강림체 정도는 단숨에 박살 낼 수 있다!
그러나 금권 대협은 언젠가부터 바라카스의 전음에 답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당한 건가?!’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마신의 강림체는 완전히 방심했다.
게다가 금권 대협에게는 자신의 기원이 통하지 않고, 천기가 흐려질 정도의 엄청난 불운이 붙어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 엄청난 불운의 운명을 모두 겪기 전에는 금권 대협이 죽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철검장의 주호와 비무할 때 보여 준 그 주도면밀한 모습!
금권 대협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주호를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농락하듯이 이겼다!
단혈철검 주호를 생각하는 순간.
바라카스의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다급한 상황에 금권 대협에게 말하지 못했다.
이 세계로 넘어온 것은 셋이라는걸.
자신과 이세기, 주호.
이 세상에 금권 대협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세기와 주호가 지을 표정이 상상됐다.
친우를 보며 환하게 웃을 이세기.
마귀가 나타난 것처럼 경악할 주호.
이세기와 주호.
그 극명한 대비를 상상하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
바라카스가 헛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강림체에서 쏟아지던 정신파와 사념이 돌연 멈췄다!
그리고 얼굴에 닿는 차가운 무언가가 있다.
“눈?”
얼굴을 훔쳤으나 물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금권 대협에게서 다급한 전음이 전해졌다.
-시작합니다!
쿵쿵쿵쿵쿵-
순간 강림체의 촉수가 끊어질 듯 요동치고, 이 요동치는 촉수에서 엄청난 사념이 쏟아졌다!
음산한 웃음이 아닌 고통 가득한 절규가 담긴 사념이!
크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절규를 듣는 순간 몸 내부에서 뜨거운 열기가 끓어 올랐다.
그리고 몸 밖에서는 엄청난 한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온다.
휘이이이잉-
하늘에서 쏟아지는 한기를 품은 칼바람에 단숨에 차가워지는 육체!
마음은 불구덩이에 들어간 듯 뜨거운데 육체는 얼어붙을 듯 춥다!
강림체에서 전해진 사념에 바라카스는 경악했다.
허신의 강림체는 불타는 고통에 비명 지르고 있다!
그런데 강림체의 외부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얼어붙고 있었다!
화염과 냉기!
상반된 힘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벌떡 일어난 바라카스는 홀린 듯 강림체를 보며 외쳤다.
“금권 대협?!”
이 순간 대답하듯 금권 대협의 전음이 전해졌다.
-빨리하세요! 이거 더럽게…….
으아악-
전음이 끝나기도 전에 터져 나온 비명!
바라카스는 직감했다.
‘금권 대협의 비명이다!’
-조금만 버티게! 바로 던져 버릴 테니!
바라카스는 숨어 있던 어선을 뛰어넘어 요동치는 허신의 강림체에게 돌진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뚝, 뚝- 떨어지는 기온!
전설의 빙정석이라도 삼킨 것처럼, 어느새 마신의 강림체의 촉수에서는 두꺼운 얼음에 자라나고 있었다.
바라카스는 뇌전공을 끌어올려 단숨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쾅-
뇌성이 터지고 다음 순간 바라카스는 마신의 강림체의 눈에 붙었다!
‘바로 넘어간다!’
자신의 영혼육백과 마신의 강림체의 영육이 이어지는 순간.
바라카스는 혼백에 새겨지는 인과와의 연결점을 떠올렸다.
바람 사막에서 만나 천공탑에 가는 법을 가르쳐 준 인과로 엮인 이.
제국 군단과 함께 있을 그가 있는 곳으로 간다!
거대한 마신의 강림체가 들씩이며 천천히 하늘로 떠오르는 순간.
파스스스슥-
허공에서 벽지를 쭉 찢어 낸 듯 별이 가득한 검은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라카스는 모든 뇌전공과 차원력을 끌어올려 균열로 도약했다!
쿠르르, 쿠르, 쿠르르르-
그러나 터질락 말락 터지지 않는 뇌전공!
강림체의 힘이 너무 커서 넘어갈 수가 없다.
더 깎아내야 한다!
-아직이야. 조금 더 깎아야 해!
바라카스가 전음을 보내는 순간, 전음에서 느껴지고 실제로도 들려오는 괴성!
-으아아악
으아아악-
천문석은 괴성을 지르며 냉기에 얼어붙은 손에 일기일원공의 내력을 모았다!
대요마의 냉기 불꽃!
심상에서 만들어 강림체의 사념에 전할 때, 영향을 받을 거란 건 이미 짐작했다.
그런데 이 미친 냉기 불꽃은 효과가 너무 좋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신이 엄청난 냉기에 얼어붙는 동시에.
심상 공간에서 시작된 화염이 몸 내부를 태우고 있다!
당장이라도 재가 될듯한 화염과 꽁꽁 얼어붙을 듯한 냉기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심상일 뿐 실제가 아니다.
아상을 끊는 순간 이 고통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강림체가 느끼는 고통도 사라진다!
천문석은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법륜인의 수인으로 인도했다!
육체가 함포에 박살 나고 마탄의 저주가 스며들 때도 비웃던 마신의 사념.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마신의 사념이 울부짖었다.
이 고통은 감각으로 전해지는 통증이 아니었다.
천문석은 자신의 영혼육백을 심상 공간의 냉기 불꽃으로 불태워, 고통 그 자체를 전법륜인을 통해서 마신의 사념에 때려 박고 있었다!
본체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도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얼리고 불태우는 이 고통은 사념을 통해 전해진다!
이것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뜻을 전하는 수인, 전법륜인의 힘이었다.
전법륜인(轉法輪印)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세계의 비의, 드높은 깨달음, 혼백에 새겨진 가르침을 전하는 법(法)이었다.
천문석, 전생 천마는 스승님에게 배운 전법륜인을 그 누구보다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심상 공간에 대요마의 냉기 불꽃을 구현하고, 그 차가운 불꽃에 자신을 던져 영혼육백을 불태우며 동시에 얼린다!
영육이 얼어붙고 혼백이 불타는 엄청난 고통.
천문석은 직접 겪고 있는 이 고통을 전법륜인으로 마신의 사념에 때려 박고 있었다.
전법륜인을 익혔던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천문석이 해냈다!
당연했다.
그 누가 전법륜인 드높은 깨달음을 전하는 법으로 스스로를 불태우는 고통을 전할 생각을 하겠는가?
생각해 낸 것도 직접 한 것도 전생 천마, 천문석이 유일했다!
이 순간 고금의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천문석은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발도 스님! 이제 됐습니까?! 으어억!!
* * *
다급한 외침이 전해진 순간, 바라카스는 차원력을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아직이야! 조금만 더!!
발도의 대답이 돌아온 순간.
천문석은 일심으로 냉기 불꽃의 크기를 키웠다!
하늘 끝까지 타올라라!
이 순간 천문석을 태우는 냉기 불꽃이 폭발하듯 커지고. 한계가 없는 심상 공간에 냉기와 불꽃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몰아쳤다.
끄어어억-
본래의 냉기 불꽃이 낼 수 있는 위력 이상의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냉기 불꽃에서 전해지는 이 엄청난 고통조차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칠정, 인간의 마음을 태워 공을 일으키는 천마 신공으로 극에 달했고.
그 극을 넘어 영혼육백과 마업을 천강의 불길로 스스로 태워 버렸다.
천강(天罡)의 불길과 지금 심상의 불꽃은 다르지 않았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천문석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지권인(智拳印) 번뇌를 끊는 수인을 짚었다.
일순간에 모든 것이 변했다.
눈에선 끝없는 지혜가 빛나고, 전신에 드러난 천강흔이 맥동한다.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태우던 냉기의 불꽃이 천강흔에 닿는 순간.
업(業)이 흩어지고, 아상(我相)이 사라지고, 무명(無明)이 밝혀진다.
이렇게 고통조차 그저 존재하는 현상이 되어 버렸을 때.
전신에서 맥동하는 천강흔이 빛나는 륜(輪)이 되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끝없는 지혜로 빛나는 눈으로 전생·현생·후생, 삼생을 하나로 바라보는 순간.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니, 지금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