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99화>
으아아악-
천문석이 괴성을 지르며 부가티 미니를 미는 순간.
특급 헌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바 괜찮아?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완전! 뜨끈뜨끈해!”
시작은 걱정이었으나, 끝은 신나하는 목소리였다.
특급 헌터는 달아오른 강화 전투복을 퐁퐁검으로 꾹, 꾹- 누르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
이 상황에 신이 나다니.
하, 이 긍정적인 녀석!
천문석은 옆구리에 낀 특급 헌터를 몸에서 슬쩍 떼어 내며 말했다.
“야, 만지지 마. 별거 다 묻었어. 그리고 이 정도는 괜찮아. 난 특급 알바잖아?”
천문석이 씨익 웃자, 특급 헌터가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우러러봤다.
“역시 알바는 대단해! 특급 알바야! 어떻게 저 커다란 괴수를 넘어트린 거야!?”
“뭐, 너 봤냐?”
천문석은 중추신경계에 박아넣은 봉으로 구인창의 경력을 쏟아 넣어 거대 괴수의 감각을 무너트렸다.
외부가 아닌 내부, 엄청난 반발장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아무도 모를 거로 생각했다.
“당연히 봤지! 나 시력 엄청 좋아서 되게 잘 봐! 봉으로 얍얍- 했잖아! 그리고 나 찍는 것도 엄청 잘해! 저번에도 찍어서 100점 맞았어! 그래서 선생님이…….”
천문석은 새삼 감탄했다.
촉수 사이로 얼핏 드러난 봉을 봤다고!?
역시 특급 헌터 이 꼬맹이 녀석의 자질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 순간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일기일원공을 가르쳐 볼까?
특급 헌터라면 일기일원공을 정말 엄청난 속도로 익힐 거라는 무인의 감이 왔다.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특급 헌터……!”
문득 고개를 들자 시가지 방향에서 항구를 향해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강화 전투복을 입고 소총을 멘 채 정신없이 달려오는 사람!
임옥분 여사!
절박한 표정의 임옥분 여사가 박살 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여사님! 특급 헌터를 찾아오시는구나!’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앞으로 들고 말했다.
“저기 할머니 보이지?”
열심히 설명하던 특급 헌터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앗! 할머니잖아!”
“맞아. 이제 도망칠 때야. 이 부가티 미니 시동 걸고, 저기 할머니랑 같이 안전한 곳으로 도망쳐.”
“뭐!? 특급 헌터는 적 앞에서 도망치면 안 되는데!?”
특급 헌터가 깜짝 놀라는 순간.
천문석은 바로 말을 바꿔서 설득했다.
“도망이 아니라. 전략적 후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야.”
“전략적 후퇴라고?”
“맞아. 특급 헌터 너한테도 중요한, 특급 임무를 줄게. 할머니랑 부가티 미니로 사람들 대피시키는 거야.”
특급 헌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잇달아 외쳤다!
“특급 임무, 전략적 후퇴?”
“특급 임무, 전략적 후퇴!”
……
특급 헌터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지 몇 번이나 특급 임무와 전략적 후퇴라는 말을 반복하더니 외쳤다.
“뭔가 멋있는 거 같아! 알았어! 나한테 맡겨줘!”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밀고 달리는 부가티 미니 위로 내려 줬다.
탕-
차체 위에 내려서는 순간, 천문석의 팔을 꼭 끌어안는 특급 헌터.
“야, 바다 비린내 장난 아냐. 만지지 마!”
그러나 특급 헌터는 팔을 꼭 잡은 채 환하게 웃었다.
“알바 조심해. 그리고 힘들면 특급 헌터 꼭 불러. 어디서든 달려 올게.”
“…….”
천문석은 이 순간 이 꼬맹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특급 헌터는 오늘 하루 위험한 사고를 정말 많이 쳤다.
그러나 그 사고로 생명을 건진 사람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대형 길드의 유명한 각성 헌터, 그 허무인조차 하기 힘든 일을 이번에도 이 어린아이가 해냈다.
그렇다. ‘이번에도’ 다.
천문석은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에 웃었다.
하지만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칭찬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특급 헌터를 너무나 걱정하고 있을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같은 이유로 천문석은 특급 헌터를 혼낼 수도 없었다.
특급 헌터를 너무나 걱정하고 있을 그 사람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혼낼 테니까!
흐흐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때, 천문석은 깊은 애도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힘내라.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부가티 미니 운전석으로 쏙 들어가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며 외쳤다!
“알바 걱정 마! 내가 할머니랑 재빨리 도망칠게! 특급 임무를 꼭 해낼게!”
특급 임무를 맡은 특급 헌터는 씩씩하게 외쳤다.
부아아아앙-
시동이 걸린 부가티 헌터 미니는 빠른 속도로 시가지 방향으로 달려갔다.
부가티 헌터 미니는 이 난장판을 겪었는데도 범퍼와 차체가 조금 찌그러진 것 말고는 멀쩡했다.
“저 차 뭐 이리 튼튼해. 저것도 특급이네. 하-.”
헛웃음을 터트린 천문석은 잠시 멀어지는 부가티 헌터 미니를 바라봤다.
특급 헌터는 자신의 ‘힘내라‘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천문석은 이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천문석을 알 수 있었다.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특급 헌터가 두려워하는 단 한 가지!
특급 헌터에게 엄청난 시련을 내릴, 공포의 대왕이 제주도로 오고 있다!
천문석은 이 ‘공포의 대왕’의 이름과 특급 헌터의 미래를 눈으로 보듯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짧은 행복을 즐겨라. 특급 헌터.’
부아아아앙-
그리고 특급 헌터가 운전하는 부가티 미니가 임옥분 여사에게 가까워질 때.
천문석은 내력을 실어 임옥분 여사에게 외쳤다.
“여사님! 특급 헌터랑 먼저 피하세요!”
그리고 몸을 돌려 전력으로 달렸다.
쿵, 쿵, 쿵-
난장판이 된 항구를 달리며 천문석은 전의를 끌어올렸다.
이제 이번 일의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다!
중추신경계가 무너진 거대 괴수는 무력화됐지만, 이건 영구적인 게 아니다.
엄청난 회복력을 지닌 거대 괴수가 회복되기 전에 마신이 사도에게 강림해서 생겨난,
저 거대한 마신의 눈을 처리해야 한다!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마신의 눈을 처리할 수많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러나 결정타를 넣고 마무리를 지으려면, 처음 이세계로 넘어갔을 때 했던 그 일을 다시 해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머리로 향한다.
탁-
매끈한 헌터용 헬멧에 막혀 만져지지 않는 머리카락.
천문석은 기원했다.
엄청난 섬광을 몸에 두른 저 사람이 거대한 눈을 아작내주기를!
자신이 거대한 눈, 마신의 눈과 모든 걸!
그야말로 모든걸 걸고 싸워야 하는 참사가 벌어지지 않기를!
천문석의 기원대로 섬광을 몸에 두른 존재는 엄청나게 잘 싸웠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불길한.
너무나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아니겠지? 설마…….”
* * *
임옥분은 정신없이 달렸다.
사방에서 널려 있는 마수와 몬스터의 사체도 하늘에 떠오른 섬뜩한 거대한 눈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항구를 향해 뻗은 도로와 도로 너머에 있을 환하게 웃고 있을 아이의 얼굴뿐이었다.
‘내 강아지!’
임옥분은 항구에 있을 아이를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헉, 허억-
호흡이 끊어질 듯 가빠오고, 가슴이 터질 듯 빠르게 뛰었다.
그러나 육체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모조리 닳아 없어질 듯한 애간장!
처음부터 막아야 했는데!
혼자 두지 말고 같이 있을걸!
자동차 경주장에 데려가는 게 아니었는데!
수많은 후회에 마음이 까맣게 타 버리고, 혹시라도 참혹한 광경을 볼까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이때 커다란 외침이 귀에 들려왔다.
“여사님! 특급 헌터랑 먼저 피하세요!”
“문석이!”
깜짝 놀란 임옥분이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보였다!
부아아아앙-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부가티 미니!
그리고 헬멧에 가죽옷을 입고 신나게 손을 흔드는 아이!
“내 강아지!”
이 순간 부가티 미니가 끼이이익- 멈춰 서고 신난 외침이 들려왔다.
“할머니! 특급 헌터가 왔어!”
임옥분은 정신없이 뛰어가 특급 헌터를 살폈다.
“괜찮아? 안 다쳤어? 아이고, 내 강아지! 내 새끼. 어쩌려고 그랬어! 어쩌려고!”
특급 헌터의 머리, 손, 발을 정신없이 살피며 외치는 임옥분.
“특급 헌터는 멀쩡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저번에는 내가 뭘 했냐면 말이지…….”
특급 헌터는 작은 손으로 가슴을 두들기며 씩씩하게 예전 일을 자랑하다가 깨달았다.
“앗! 이럴 때가 아니지! 할머니 빨리 타! 우리 ‘전략적 후퇴’해야 해! 알바가 ‘전략적 후퇴’하는 특급 임무를 줬어!”
“알바? 문석이 말하는 거야!? 문석이는 어디 있어?”
임옥분이 천문석을 찾아 주위를 살피자, 특급 헌터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외쳤다.
“알바가 우리한테 특급 임무 줬다니까! 빨리 전략적 후퇴해야 해!”
이때 시가지 방향 도로에서 장갑 SUV와 화물차가 무더기로 튀어나왔다.
부으으으응-
특급 헌터와 임옥분 여사를 확인한 순간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차들!
장갑 SUV와 화물차가 부가티 미니 앞에서 급브레이크를 밟고.
끼이이이익-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도련님!”
“……꼬맹이!”
“마님!”
“회장님!”
중무장한 경호원들과 헌터, 무장한 일꾼들.
장강 유통의 경호원과 임옥분 여사의 직원들이 다급히 소리치며 뛰어왔다.
이들이 두 사람 주위에 벽을 치는 순간.
특급 헌터가 외쳤다.
“모두 전략적 후퇴를 해야 해! 그게 우리 특급 임무야!”
“네!?”
“…….”
사람들이 얼빠진 표정으로 서로를 볼 때, 임옥분 여사가 하늘의 거대한 눈을 힐끗 보더니 외쳤다.
“바로 빠진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바로 빠진다! 모두 탑승해라!”
무장한 헌터와 일꾼들이 화물차에 타자, 장강 유통의 경호원들이 특급 헌터에게 몰려들었다.
“도련님! SUV에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번개같이 손을 뻗는 순간.
스르륵-
미끄러지듯이 손을 피하는 부가티 미니.
특급 헌터의 운전 솜씨와 이 레이싱 카트가 얼마나 잘 달리는지 아는 경호원들이 바짝 긴장할 때.
특급 헌터는 말했다.
“나 할머니 지켜 줘야 하는데?”
임옥분은 특급 헌터의 손을 꼭 붙잡고, 주위 경호원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 할머니랑 같이 타자. 절대, 절대로 할머니 곁에서 떨어지면 안 돼! 꼭 할머니를 지켜 줘야 해. 알았지?”
“알았어! 할머니는 내가 지켜 줄게!”
경호원들은 임옥분 여사의 의도를 바로 파악했다. 자신이 이 아이를 지켜 주겠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뜻.
경호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를 볼 때 헌터용 통신기로 연락이 왔다.
제임스 팀장!
경호원들은 바로 통신을 받았다.
“네! VIP 확보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제임스 팀장의 명령을 받은 경호원들이 장갑 SUV로 달려갔다.
그리고 특급 헌터와 임옥분 여사가 탄 부가티 미니, 장갑 SUV와 화물차가 시가지 방향으로 출발했다.
차량 행렬은 순식간에 시가지를 지나 해안 도로로 들어갔다.
부가티 미니 주위로 십여 대의 장갑 SUV와 화물차가 벽을 만들고 해안 도로를 달릴 때.
해안 도로에서 내려 오던 장갑 SUV 한 대가 180도 회전 부가티 미니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
부으으으으응-
나란히 달리는 부가티 미니와 장갑 SUV.
장갑 SUV 조수석 창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상체를 내밀어 특급 헌터를 확인했다.
“VIP를 확보했다! 코드네임 악마 꼬맹이 확보 완료! 바로 안전지대로 빠진다!”
이 남자와 차 안의 사람들을 본 특급 헌터가 반가운 표정으로 외쳤다.
“제임스 왔어? 앗! 제주도 형 누나들도 왔잖아!? 알바가 나한테 특급 임무를 줬어!”
“…….”
“나 지금 할머니랑 전략적 후퇴 중이야! 빨리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 빨리 안전한 곳으로 가자!”
카캬카캌-
특급 헌터는 정말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신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모습을 본 제주도 지사의 경호원들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
“……!”
오늘 하루 눈앞의 VIP 때문에 개고생을 했다!
자동차 경주장에서 환풍구를 기어 도망치더니, 반갑다고 손을 흔드는 저 모습!
게다가 안전지대에서 도망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다시 안전지대로 돌아가자니!
제주도 지사의 경호원들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본사의 경호팀이 이 VIP에게 왜 ‘악마 꼬맹이’란 코드네임을 붙였는지!
이 녀석은 진짜 악마 꼬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