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97화>
일기일원공을 익힌 일기일원문의 제자라니!
바라카스는 과거·현재·미래 삼생의 인과를 이어 자라나는 가능성,
세계의 나무 위를 오랜 시간 동안 헤매고 다녔다.
갑자기 사라지신 상을 찾기 위해서였다.
당연히 상이 처음 내려오신 곳,
원대륙을 집중적으로 훑었고, 원대륙에서 시작됐다는 일기일원문 또한 찾았었다.
일기일원문의 제자를 찾으면 단숨에 상이 있으신 곳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시대와 가능성의 세계에서도 일기일원문과 그 제자는 찾을 수 없었다.
문득 이 모든 여행이 시작될 때 일기일원문이 있다는 산에 오른 기억이 떠오른다.
선조의 책을 보고 찾은 그 산.
정상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고, 그 아래 층층이 펼쳐진 계단 논과 숲이 있었다.
이 계단 논 사이에는 돌로 포장된 도로와 정상의 호수에서 흘러나온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었다.
일기일원문.
엄청난 강자를 키워 내는 문파가 있는 산이 아니라, 엄청난 부농이 있을 것 같은 산이었다.
잘 가꿔진 이 산에는 소작한다는 농부들과 산 주인이 산다는 빈집, 작은 숲 속에 자리한 수많은 동물 조각상이 있는 사당만 있었다.
인기척이 없는 빈집을 지나 도착한 사당의 어린 여자 제사장은 일기일원문을 찾아왔다는 자신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었다.
“일기일원문이요? 이 산에 그런 문파는 없는데…… 이 산에 있는 건 이 사당이랑 저 위에 산 주인이 사는 저 집 하나뿐인데요?”
“혹시 저 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있을까요?”
바라카스가 산 주인이 산다는 빈집을 가리키자,
여 제사장은 분기 어린 얼굴로 이를 갈았다.
“그놈들 찾아온 건가요?! 곰 같은 농사꾼! 사기나 치고 다니는 장사꾼! 그리고 그놈! 그 주정뱅이 놈! 으드득!!”
농사꾼에 장사꾼, 술주정뱅이라니.
이런 이들이 일기일원문의 제자일 리 없었다.
그러나 바라카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질문했었다.
“그 사람들을 제가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여 제사장은 허탈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 결혼식에서 신부를 훔쳐서 지금 도망 다니고 있어요.”
“네? 뭐라고요?”
충격받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제사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들 완전 상습범이라, 이를 갈며 찾아다니는 존재들이 하나둘이 아닌데…… 그 주정뱅이가 진짜로 도망을 미친 듯이 잘 쳐서 찾기는 힘들 거예요.”
바라카스는 말문이 턱 막혔었다.
일기일원문이 있다는 산에 이런 미친놈들이 있다니!
발도 가문의 선조께서 아시면 뒤로 넘어가실 일이었다!
결국, 바라카스는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허탕을 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긴 세월이 지났지만, 바라카스가 일기일원문에 대해 알 수 있던 건 선조의 책에 적힌 내용이 전부였다.
-데이몽 발도.
발도 가문의 선조이자, 일기일원문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과 머리를 지닌 수제자, 검성.
막내 사제.
-무사인 카이류.
신화적인 강자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강자.
스스로 신격을 거부하고 지상에 남은 초월자.
둘째 사형.
-그리고 대사형.
선조의 기록에는 이름이 적히지 않은 대사형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 적혀 있었다.
치사한 짠돌이!
경계를 넘나들며 요마괴이까지 등쳐 먹는 도박꾼!
은자를 날름하고 내 입문검까지 가지고 튀어 버린 놈!
그러나 이 모든 불만 뒤에 짧게 적힌 한 줄의 문장이 일기일원문의 대사형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줬다.
일기일원문 조사 이래 최고의 천재이자, 검성 데이몽 발도와 초월자 무사인 카이류에게 일기일원공을 가르친 스승.
가속된 사고 속에서 바라카스 발도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일기일원공.’
모든 문제의 시작은 일기일원공이었다!
일기일원공에 입문 할 수만 있다면.
무사인 카이류, 허신조차 단숨에 박살 낼 초월자를 부를 수 있었다.
상께서 있으실 아니 최소한 상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제사장이 있는 허공도로 갈 수도 있었다.
일기일원공은 이미 바라카스 발도에게 있었다.
데이몽 발도, 선조의 책에는 일기일원공이 남겨져 있었다.
일기일원공은 이해하기 어렵지도, 익히기 힘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일기일원공은 일심으로 익혀도 허깨비처럼 실체가 잡히지 않았다.
이 심법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호수에 돌을 던져넣는 것처럼 몇 년을 운공해도 변화가 없었고.
절정고수라도 이 심법을 운공한 후에는 이심법으로는 진정한 입문, 주천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오래 시간 일심으로 익혀도 입문할 수 없는 실체가 잡히지 않는 연기 같은 심법이 일기일원공이었다.
하지만 이 일기일원공이야말로 천원좌(天元座).
인과를 벗어나 세계의 나무의 정점에 오른 이를 키워 낸 심법이다.
그리고 선조의 책에는 일기일원공에 입문하는 방법도 적혀 있었다.
일기일원공을 일 년 정도 수련한 후에는 시동을 걸어 줄 사람을 찾으라고,
그리고 그곳에 추신처럼 적힌 글귀.
대사형이나, 일기일원문의 개파조사를 찾으면 한방에 입문을 넘어 대주천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동(始動).
이 생경한 단어의 의미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러나 바라카스 발도는 가속된 사고 속에서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일기일원문의 대사형은 천원좌에 오른 존재다.
그는 세계의 나무가 잇는 인과에서 벗어난 존재,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일기일원문의 개파조사는 그 존재 자체가 허구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정보가 없는 사람이었다.
선조가 남긴 개파조사에 대한 정보는 하나였다.
일기일원공에 입문하면 이상할 정도로 운이 없어지는데.
그게 개파조사의 불운이 심법으로 옮아서 그런 것 같다는 황당한 이야기뿐이었다.
일기일원문의 개파조사는 이상할 정도로 생사의 기로에 자주…….
‘생사의 기로!’
이 순간 바라카스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아무리 사고 가속 중이라지만,
지금 자신은 허신의 정신공격을 받아 거대 괴수 위를 구르고 있었다!
이 다급한 순간에 무슨 잡생각이란 말인가!
바라카스는 재빨리 잡념을 흩어 버리고.
이번 위기 저 허신을 상대할 방법을 떠올렸다.
완전한 샤였던 선조와 달리 자신은 이름을 바치지 못한 반쪽짜리 샤이기에 ‘인과’가 닿은 강자들만 부를 수 있었다.
바라카스는 자신과 인과가 닿은 강자들을 떠올렸다.
-무사인 카이류, 선조의 둘째 사형!
그라면 허신뿐만 아니라 거대 괴수와 주위의 마물까지 확실히 박살 낼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박살이 나겠지. 젠장!’
-마스터 메이지, 뇌전의 씨앗으로 만든 무공 뇌전공으로 인과가 닿은 마도왕!
천둥벼락과 우레 폭풍의 마도왕 마스터 메이지라면 허신을 상대하기 충분하다!
그러나 마스터 메이지급의 강자를 부르려면,
이 강자들에게 줄 대가 운명을 사는 화폐 ‘흑전’이 있어야 한다!
수많은 세계를 헤매고 다녀도 그림자도 보지 못한 흑전이 자신에게 있을 리 없었다.
“…….”
이 순간 바라카스는 정신이 멍해졌다.
허신을 상대할 두 강자와 인과가 이어져 있는데.
이들을 부르는 데 필요한 게 둘 다 자신에게 없었다.
일기일원공과 흑전.
‘하, 젠장! 흑전 하나만 좀 남겨 주시지!’
바라카스가 선조에게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차원 용병!
흑전이 없어도 부를 수 있고,
후불로도 대가 지급이 가능한.
세계의 나무 그 어디에 있든 계약만 하면 싸워 준다는 차원 용병!
그들이 있었다!
바라카스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선조의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건 최후의 방법이다!
최후의 순간에도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생각한 후에도 어지간하면 부르지 말고,
부르기 전에 반드시 대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차원 용병이 위험한 놈들이라는 게 문장에서 느껴졌다.
게다가 지금 자신은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져 지급할 대금도 없었다.
그러나 사고 가속이 끝나면 당장 박살 나게 생겼는데 무엇을 가린단 말인가!?
정 안 되면 배를째면 된다!
마음의 결정을 한 바라카스는 재빨리 손에 집중했다.
콰지지직-
손에 집중되는 뇌전공의 내력으로 감각이 돌아오는 순간.
바라카스는 선조가 남긴 수인을 맺고 차원 용병의 이름을 불렀다.
“원대륙의 샤가 계약을 원한다! 케페니안의 차원 용병이여!”
---
거대 괴수 위를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라카스.
허신은 정신에 장벽을 세운 반쪽짜리 샤를 공격하지 않고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 바라카스에게서 시공을 넘어 전해지는 파문이 흘러나왔다.
허신, 오래된 바다는 반쪽짜리 샤의 파문에 담긴 강한 기원을 단숨에 파악했다.
자신을 도와줄 이를 부르는 샤의 힘!
그러나 그 누가 자신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마도 황제가 만들어 낸 힘,
마력과 각성력을 삼켜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고 있는 자신을!
-흐흐흐흐흐
이 순간 허신의 비웃음을 담은 진동이 반쪽짜리 샤에게 쏟아졌다.
-절망하거라! 어리석은 샤여!
그러나 바라카스가 부르는 차원 용병의 이름이 허신에게 전해진 순간.
이 진동이 돌연 뚝 끊겼다.
케페니안!
이 순간 바라카스를 주시하던 허신의 눈동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깜빡였다.
이때 뒤이어 반쪽짜리 샤의 파문에서 전해지는 목소리!
‘…… 케페니안의 차원 용병을 열…… 아니, 백! 그래 백 명을 고용…….’
뭐, 이런 미친 새끼가!?
허신은 사도의 촉수와 염동포탄을 다급히 움직였다.
쐐애애액-
거대 괴수의 촉수가 떨어지고, 염동포탄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감각이 차단된 바라카스는 이 공격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허신에게서 전해지는 진동에서 다급한 감정이 느껴졌다!
쿵, 쿵, 쿵-
급격히 빨라진 진동!
이 순간 바라카스는 직감했다.
‘먹히는구나! 허신조차 차원 용병을 두려워하는구나!’
과연 선조가 최후의 방법으로 남겨 둘 만했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허신을 끝장낼 수 있는 인원을 부른다!
바라카스는 당장에 부르려던 인원을 확 늘려서 외쳤다.
“고용인원은 천명! 천명의 케페니안 차원 용병과의 계약을……!”
바라카스의 손에서 시공을 넘어 퍼져 나가는 파문이 일어나고 계약이 마무리 되려 했다!
하늘과 땅 바다 위,
사방에 생겨나는 황금빛 포탈.
그리고 이 포탈에서 전해지는,
숲 내음이 가득 담긴 바람과 차원 용병들의 무시무시한 존재감!
바라카스는 감각이 차단됐지만, 이 모든 것을 느낄수 있었다!
킥, 키키킥-?
키킼, 키키킼-?
……
‘어?!’
그리고 생각과는 전혀 다른 울음소리가 느껴지는 순간.
쐐애애애액-
콰아아아앙-
허신은 계약이 마무리되기 전에 이 반쪽짜리 샤를 끝장내기 위해서 훔쳐 낸 ‘각성력’을 사용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염동포탄과 떨어지는 촉수에 실리는 각성력!
이때 돌연 이변이 생겼다.
쐐애애애액-
바라카스를 향해 쏟아지던 염동포탄과 촉수가 비틀렸다!
염동포탄과 거대 괴수의 촉수가 통제력을 잃고 서로 충돌해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쾅, 콰쾅, 쿠우웅-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굉음!
이때 각성력이 실린 염동포탄과 촉수 몇이 허신의 눈을 직격했다.
쿠으으응-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각성력에 허신과 사도와의 연결이 약해지고 눈동자가 흐려졌다!
마도 황제의 각성력.
바다 일족을 통해 모아들여 정제한 막대한 ‘각성력’이 실린 염동포탄과 촉수를 맞는 순간.
각성력에 담긴 마도 황제의 위압감에 신성이 단숨에 위축되고 있었다!
이 순간 멀리 지상에서 누군가 외쳤다.
“특급 헌터가 왔다!!”
이 외침을 듣는 순간 바라카스의 감각에 기준점이 생겼다.
오감이 나뉘고,
하늘과 땅이 분리되고,
몸 안과 밖이 구별된다!
이차원의 정신체, 허신에게 오염되던 정신이 또렷해지는 순간 육체의 통제권이 온전히 돌아왔다!
이 순간 사고 가속이 풀리고,
몸으로 떨어지는 염동포탄이 보였다!
쒜애애애액-
바라카스는 차원 용병과의 계약을 진행하던 수인을 재빨리 풀고 뇌전공을 일으켰다!
콰아아앙-
솟구친 벼락의 힘으로 염동포탄을 피해 내는 순간 거의 다 이뤄졌던 계약의 파문이 흩어진다!
킼, 키키킼-?
키킼키킼키-?
……
사방에 열린 황금빛 포탈이 흐릿해지며 들려오는 의아해 하는 외침들.
계약이 취소되고 있었다!
바라카스가 재빨리 다시 계약의 수인을 짚으려 할 때.
부와아아아앙-
빠르게 가까워지는 굉음!
자신도 모르게 굉음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사방으로 쏟아지는 염동포탄 사이에서 쇠 마차가 나타났다!
이 쇠 마차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다.
바라카스는 한눈에 이 사람의 정체를 알아봤다.
감각 기준이 되어 준 외침을 지른 사람!
“아이?!”
바라카스가 경악하는 순간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고 외쳤다.
“알바! 도와주러 왔어! 여기야! 여기로! 뛰어내려! 빨리!”
“알바? 무슨?”
당황한 바라카스가 주위를 살필 때 다급한 외침이 거대 괴수 촉수 안에서 잇달아 터져 나왔다!
“야, 오지 마!”
“안 와도 돼!!”
“나 안 위험해!!”
“다 내 계획대로야!!”
……
그리고 꿈틀거리는 촉수 안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는 사람이 나타났다!
“왜, 저기에 사람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 바라카스는 경악했다.
자신이 뇌전공을 쏟아붓던 거대 괴수의 촉수 안에 사람이 있었다고!!??
촉수가 반이 넘게 아작날 때까지 뇌전공을 쏟아부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