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93화>
천문석이 생사팔문의 보법을 역으로 밟아 특급 헌터의 사문(死門)으로 들어온 순간.
콰아앙-
하늘에선 거대 괴수의 염동포탄이 떨어지고.
쒜애애액-
앞에선 거대 가재의 음속 펀치가 날아온다.
그리고 등 뒤에선 천문석이 절대 피할 수 없는 이유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 역시 특급 알바야! 어떻게 한 거야!?”
사면초가의 상황!
어떡하지?
생각하는 순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천문석은 와류를 담아 쏘아내던 회전창의 타점을 내렸다.
순간 거대 가재의 음속 펀치와 봉이 미끄러져 맞닿았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적을 단숨에 박살 냈을 봉이 휘었다.
과아아앙-
비틀려 눌리는 굉음이 터지고, 길게 뻗은 봉이 엄청난 힘에 천천히 줄어들며 휘었다.
꽈드드득-
엄청난 힘이 실려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지는 봉!
이 순간 천문석은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쿵, 쿵, 쿵-
거대 가재가 돌진력을 잃고 멈추는 순간.
모든 힘을 폭발시키며 전진해서 올려친다!
파아아앙-
봉에 실린 모든 힘이 폭발하는 순간.
거대 가재는 하늘로 쏘아지듯 솟구쳤다!
다음 순간 솟구치는 거대 가재와 떨어지는 염동포탄이 충돌해서 경로가 비틀렸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터지고 산산조각난 거대 가재의 잔해가 와르르 쏟아질 때.
천문석은 재빨리 몸을 돌려 달리며 외쳤다.
“야! 빨리 도망……!”
부아아앙-
그러나 어느새 돌진해 온 부가티 미니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빨리 타!”
염동포탄이 떨어지는 곳으로 돌진했다고!?
“와- 이런 미친 꼬맹이!?”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외치는 순간.
끼이이이익-
부가티 미니가 브레이크를 밟으며 급회전했다.
뒷바퀴가 접지력을 잃고 차체가 미끄러져 360도 회전하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봉으로 땅을 찍고 뛰어 부가티 미니 조수석으로 들어갔다.
콰아아앙-
이때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가재 마수와 충돌해 궤도가 비틀린 염동포탄이 타워크레인을 때리고 있었다!
부아아아아앙-
동시에 폭발하듯 치솟는 엔진음!
“알바! 달릴게!”
특급 헌터의 외침과 함께.
부가티 미니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갔다.
거대 괴수가 있는 항구 방향으로!
경악한 천문석이 다급히 외쳤다.
“야, 야! 반대! 반대 방향! 뒤로! 해안 도로 있는 시가지로 가야지!?”
“어, 뒤에는 길 없는데!? 진짜 뒤로 가!?”
“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순간 특급 헌터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거대 괴수의 주위를 회전하던 다른 염동포탄들도 하나둘 쏟아지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애액-
쾅, 쾅, 콰아앙-
공기를 찢어발기는 음속폭음이 터지고 염동포탄이 건물에 틀어박히는 순간.
건물 외장재와 콘크리트가 으스러지고, 철근 골조가 휘어져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카페와 펜션.
모텔과 도로.
도망치는 마수와 몬스터까지!
시가지 모든 곳으로 염동포탄이 떨어지고 있다!
이때 바다에서도 폭음이 들려왔다.
콰아아아앙-
긴급 회피기동 중인 군함에 컨테이너 덩어리가 내려꽂혔다!
군함의 마력장 필드가 물리력을 상쇄했지만, 이 공격은 시작일뿐이다.
쾅, 쾅, 콰아앙-
우그러진 컨테이너가 음속으로 계속 내려꽂혔고, 엄청난 충격파에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회피기동 중인 군함은 당장이라도 전복될 듯 크게 흔들리고.
하늘과 항구 뒤쪽에서도 폭음이 터졌다.
쐐애애애액-
음속폭음을 내는 염동포탄이 지나가는 순간 양력을 잃고 추락하듯 떨어지는 시호크 헬기들!
쾅, 콰르릉-
뒤로 물러서 2차 저지선을 만들던 헌터 부대의 장갑차와 탱크들도 거대 괴수의 공격에 주저앉고 있다!
바다, 하늘, 육지.
함대, 헬기, 헌터 부대.
거대 괴수를 공격하던 모든 부대가 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때 특급 헌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큰일이야! 뒤에 할머니 있는 곳 봐봐!”
뒤를 돌아보는 순간 천문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시가지의 사람들을 구하던 임옥분 여사의 무장병력이 있던 곳.
안전지대에도 거대 괴수의 염동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순간 천문석은 깨달았다.
바다의 군함, 하늘의 헬기, 육지의 헌터 부대.
시가지의 임옥분 여사와 사람들.
이 모두를 구할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거대 괴수를 쓰러트리는 것!’
아니지, 꼭 쓰러트릴 필요는 없다.
염동포탄을 쏘지 못하게만 해도 도망칠 시간을 벌 수는 있다!
방법을 깨닫는 순간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거대 괴수의 염동포탄은 거대 괴수가 서 있는 이곳 항구에는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특급 헌터! 너 여기 항구 안에서 버틸 수 있겠냐?”
“특급 헌터에게 불가능은 없어!”
이 녀석의 운전 솜씨로 볼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럼 너 여기서…….”
안전한 항구에 있으라고 말하려는 때, 대시 보드에서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구으으, 구으으응-
띠디, 띠딛디, 띠딛-
번쩍이는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자신을 향해 다급히 울고 있었다.
“어!? 뭐야, 네 친구? 얘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특급 사슴벌레와 특급 반짝이는 훌륭한 친구들이야. 그런데 약한데도 자꾸 자기들이 나서겠대서 문제야. 에휴- 이런 힘든 일은 특급 헌터나 특급 알바가 아니면 못하는 일인데 말야.”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천문석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뭘 나선다는 거야? 아니 그보다 너 얘네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는 거야? 너 정말로 각성…….”
반문하던 천문석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자신도 모르게 말려들었다!
지금은 특급 헌터에게 말려들 때가 아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특급 헌터에게 말했다.
“너, 여기 항구에서 나 기다릴 수 있지?”
“당연하지! 알바가 거대 괴수랑 싸우려고!?”
특급 헌터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천문석을 봤다.
‘아니, 그냥 염동력만 봉인하고 얼른 튈 건데.’
차마 이 반짝거리는 눈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 나 믿지? 거대 괴수는 나한테 맡겨!”
“난 언제나 알바를 믿어!”
천문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혹시 10분 뒤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거나. 거대 괴수가 공격 멈추면 바로 할머니한테 가라.”
“앗!? 뭐라고? 나한테 동료를 버리란 거야!?”
천문석은 깜짝 놀라는 특급 헌터의 안전 헬멧을 툭 치며 씨익 웃었다.
“야, 나 특급 알바야. 걱정하지 마.”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부가티 미니에서 뛰어내리며 봉을 내려쳤다.
쿵-
도로를 찍는 순간 쑤욱- 길어지는 봉!
천문석은 봉의 탄성에 몸을 실어 단숨에 컨테이너를 뛰어넘어 거대 괴수를 향해 달렸다.
곳곳에 찌그러진 컨테이너와 뒤집힌 지게차, 불타는 차량이 널려 있는 항구.
천문석은 난장판이 된 항구를 달리며 머리를 굴렸다.
지금 함대와 헬기, 헌터 부대의 기갑 차량이 힘을 못 쓰는 것은 거대 괴수의 원거리 공격, 더 정확히는 염동력 때문이다.
거대 괴수의 염동력만 막으면, 함대와 헬기, 기갑 차량이 어떻게든 거대 괴수를 잡을 수 있다!
다굴에는 장사가 없는 법!
아무리 거대 괴수가 크고 터프하고 반발장이 엄청나도!
뒤질 때까지 재금 공업 정품 마탄을 쏟아부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다!
아마도…….
천문석은 바로 목표를 설정했다.
‘거대 괴수의 원거리 공격력 염동력만 봉인하고 바로 튄다!’
거대 괴수의 엄청난 염동력을 봉인하다니!
대 괴수 전 최고의 브레인.
태성길도 거대 괴수 레이드 전술 개발팀이라도 고개를 저을 일이다.
그러나 이 순간 천문석의 뇌리에는 이미 몇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신동대문에서 1세대 헌터 염동력자 마혁진과 혈투를 벌였다.
마혁진의 능숙한 염동력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자신은 전생에서부터 같은 기술을 쓰는 적에게 두 번 고전한 적이 없다.
당연히 전투가 끝나자마자 염동력자와 어떻게 싸울지 방법을 생각해 뒀다.
거대 괴수에게도 그 방법이 통할지는 의문이었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순간 천문석은 전의를 끌어올리며 마음속에서 외쳤다!
‘난 할 수 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는 거다!’
이때 불쑥 머리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신동대문에서 했던 개고생.
-몬스터 웨이브 돌파.
-삼합회, 야쿠자, 칠성파 아작내기.
-신동대문 광장에서의 깃발전.
-지하터널을 달리는 거대 괴수 위에서의 결전.
-갑자기 지하에서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으로 튕겨 나가는 시껍한 경험.
굵직한 사건 사이사이에 일어난 눈표범과의 전투 같은 자잘한 일들은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신동대문의 스펙타클한 난장판과 개고생.
마치 몇 년은 지난 일, 영화 속, 꿈속의 일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었다.
천문석은 헌터 벨트에 걸린 잡낭 속에 손을 넣었다 뺐다.
손에는 마치 빛을 흡수하는 듯한 검은 동전이 들려 있었다.
이 검은 동전이야말로 그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 증거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새삼 깨달았다.
자신이 신동대문의 그 난장판을 빠져나온 지 일주일도…….
아니지!?
어제 제주도에 왔고, 그저께 신서울에서 광화문 게이트로 나왔으니까…….
‘어, 이거 뭐야!?’
이 순간 천문석은 경악했다!
신동대문의 난장판이 끝나고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거대 괴수와 싸울 일은 없다고 생각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거대 괴수와 싸우게 됐다!
“뭐가 이렇게 재수가 없어!?”
자신도 모르게 한탄하는 순간, 애써 끌어올리던 전의가 급격히 사그라졌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선 천문사에 입문했을 때부터, 현생에선 키즈카페에서 알바를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 자꾸 꼬여가고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 세계의 의지가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넌 굴러야 한다고!
쿵-
이때 천문석은 무너진 컨테이너 더미로 뛰어올랐고 거대 괴수의 모습을 정면에 드러났다.
자신이 상대할 거대 괴수는 수많은 촉수를 흔드는 말미잘을 닮았다.
천문석은 재빨리 아상을 흩어 버리고 존재감을 지웠다.
그리고 단숨에 거대 괴수의 반발장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타다다다닥-
괴수 반발장이 강화 전투복의 마력 필드와 반발해 푸른 불꽃을 흘렸다.
깜짝 놀라 멈췄으나 이 거대한 괴수는 다른데 정신이 팔렸는지 자신이 반발장 안으로 들어온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강화 전투복의 마력 필드 감도를 낮추고, 반발장 깊숙한 곳 끝없이 꿈틀거리는 촉수를 향해 움직이며 생각했다.
신동대문에서 그 개고생을 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안전지대 제주도에서도 거대 괴수와 싸우다니!
어이없고 전의와 의욕이 확 죽는 일이지만, 천문석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옛날에 얼핏 본 자기개발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삶은 맛있는 사탕과 맛없는 사탕이 섞여 있는 사탕 봉지와 같다고.
맛없는 사탕을 잇달아 먹었으니, 이제 사탕 봉지 안에 남아 있는 사탕은 맛있는 사탕이 더 많을 것이다!
천문석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며 애써 웃을 때.
어느새 거대한 산 같은 거대 괴수 촉수 덩어리가 눈앞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촉수에 솟은 억센 섬모.
확 올라오는 찝찝한 바다 비린내.
녹색의 진흙과 뒤섞여 흐르는 찐득한 기름.
이제부터 기어 올라갈 꿈틀거리는 촉수 덩어리를 바로 앞에서 보는 순간.
“하, 시바-.”
애써 끌어올린 의욕이 뚝 꺾인다.
천문석은 거대 괴수의 촉수를 잡고 기어 올라가며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맛없는 사탕이다.”
“더럽게 맛없는 사탕이다.”
“냄새나고 더럽게 맛없는 사탕이다.”
“이제 사탕 봉지에는 맛있는 사탕이 더 많다!”
……
그러나 어째서일까?
열심히 동기부여를 하지만, 사탕 봉지 안에 맛있는 사탕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