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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91화 (292/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91화>

“감사합니다. 신세를 졌군요.”

장민은 전화를 끊고 창밖을 봤다.

제주도로 향하는 전용기 창밖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 바다에 방금 통화한 함대가 나타날 것 같았다.

미 7함대.

계획대로 미 7함대를 통해 제주도 인근 해역의 4 호위대를 움직이는 건 성공했다.

지금쯤이면 이미 해상 자위대 4호위대군은 거대 괴수와 전투를 시작했을 거다.

그러나 거대 괴수와의 전투는 일반적인 마수와의 전투와 달리 변수가 많다.

거대 괴수가 생각대로 호위대군 함대와 싸우지 않고 이상행동을 한다면?

알바와 세연이 그리고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쿵, 쿵, 쿵-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길한 상상만으로도 총구 앞에서도 담담했던 평정심이 무너지고.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 제대로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스스로에게 묻는 순간.

수많은 이름이 떠올랐다.

한 명 한 명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한시가 급한 지금 필요한 건 시간이 걸리는 영향력이 아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힘이었다.

당장 떠오르는 이름은 장철이다.

그러나 장철은 2000년 서울에 최초의 게이트가 열렸을 때를 재현하는 던전을 찾기 위해 지금도 균열에 들어가 있었다.

벌써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장철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비서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대표님. 서울 헌터 부대 박찬석 준장입니다.”

장민은 복잡한 눈으로 창밖을 보며 전화를 받았다.

“장민 대표님. 박찬석 준장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제주도에 거대 괴수가 나타났습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부 라인을 통해 미 7함대에 나이트 아머 강습 부대 출동을 요청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거부당했습니다. 혹시 대표님께서…….”

“……!”

이 순간 장민은 머릿속 안개가 걷히는 것만 같았다.

나이트 아머!

그걸 잊고 있었다니!

“……대사님과 선을 놓아주실 수 있으시면…….”

그리고 이어지는 박찬석 준장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장민은 헌터 부대에선 복잡한 미국 내 나이트 아머 역학관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대사관이을 통한 공식 라인으로 나이트 아머를 움직이려면 빨라도 3일은 걸린다.

아니, 그 어떤 공식 비공식 라인을 이용해도 나이트 아머를 제주도로 오늘 안에 전개하는 건 불가능했다.

미국 연방 정부.

W. S. 인더스트리.

나이트 아머 연료인 최고등급 정제 마석과 균열 코어까지.

복잡하게 얽힌 미국 내 역학관계가 전술 등급 마도구인 나이트 아머의 기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준장님!”

장민은 재빨리 박찬석 준장의 말을 끊고 물었다.

“정부에서는 나이트 아머의 제주도 작전을 승인했습니까?”

“……공식적으로 요청했다는 건 부인될 겁니다.”

장민은 박찬석 준장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초음속 폭격기와 나이트 아머.

두 무기는 연습 비행, 훈련 강하만으로도 주변국에 대한 위협이 된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강습 작전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암묵적으로 승인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암묵적 승인이라 하여도 당연히 대가가 돌아와야 한다.

“나이트 아머 기동에 따른 대가, 구체적으로 연료인 정제 마석 공급, 균열 코어 대금 지급 가능한가요?”

장민의 물음에 박찬석 준장은 희색을 띤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합니다! 출동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2시간…….”

장민이 재빨리 계산해서 대답할 때, 전용기 창밖 수평선에 나타나는 함대가 보였다.

항모와 이지스 순양함 1척, 이지스 구축함 3척…….

장민은 한눈에 이 항모를 알아봤다.

USS 로널드 레이건!

7함대의 항모이자, 나이트 아머 강습 부대가 실려 있는 함선이다.

“대표님? 장민 대표님? 정말 2시간이면 가능하겠습니까!?”

장민은 항모를 보는 순간 말을 정정했다.

“1시간! 1시간 안에 거대 괴수가 나타난 항구에 나이트 아머가 전개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장민은 박찬석 준장의 전화를 끊은 후 심호흡했다.

게이트가 처음 열린 후 평범한 학생이던 장민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각성 헌터,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무력, 정치력, 재력, 대중 영향력, 각기 자신만의 힘으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재금 그룹과 W. S. 인더스트리.

사실상 세계를 움직이는 두 초거대기업의 수뇌부.

1시간 안에 나이트 아머를 제주도에 전개하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

W. S. 인더스트리의 이사와 미 국방부를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장민은 보안 전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더 까다로운 상대, W. S.인더스트리의 이사 중 한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따르르, 딸깍-

발신음이 울리는 순간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장민 대표? 좀 늦었군. 더 빨리 전화할 거로 생각했는데 말야.”

모국어의 영향이 남는 마력 각인의 특징.

프랑스어 억양이 실린 한국어를 들으며 장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로롤로 이사님. 부탁이 있습니다.”

“천하의 장민 대표가 부탁이라니 어디 들어 볼까?”

로롤로의 느긋한 목소리를 들으며 장민은 입을 열었다.

“USS 로널드 레이건에 실린 나이트 아머 한 기, 제가 사겠습니다.”

* * *

제주도 동쪽 해상.

파르르르릉-

대기가 요동치고 바다가 치솟는 순간.

쿵, 쿵, 쿵-

거대한 마력 파동이 하늘을 무너뜨릴 듯 뒤흔들며 날아왔다.

피할 틈도 없이 전신을 훑는 마력 파동!

이 순간 해양 마수를 박살 내던 바라카스 발도는 느꼈다.

영혼육백 존재의 본질을 훑는 시선을!

그리고 이 시선을 느끼는 순간, 본능적인 공포와 혐오감이 마음에 드리워졌다.

그러나 바라카스 발도는 반쪽짜리이기는 하나 샤.

아상(我相)을 끊는 순간 마음에 드리워진 그늘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발도는 우뚝 멈춰 서서 마력 파동이 날아온 곳에서 느껴지는 아상을 살피는 시선을 봤다.

수평선 너머, 섬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촉수 덩어리.

이 촉수 덩어리에서 이 세계에 있을 리 없는 힘이 느껴졌다.

스스로를 ‘오래된 바다‘라 칭하는, 짙은 바다 비린내가 풍기는 옛 신.

허신(虛神)!

헤아릴 수 없이 긴 세월 타대륙을 지배한 가짜 신, 허신의 힘이 이 촉수 덩어리에서 느껴졌다!

이 순간 바라카스 발도는 이 촉수 덩어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허신의 추종자, 오래된 바다의 사도구나!’

상을 찾아 긴 시간을 세계의 나무를 방랑한 바라카스 발도는 어이가 없었다.

타대륙의 허신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발도가 태어난 세계에는 두 개의 대륙이 있었다.

원대륙과 타대륙.

동서로 세계를 나눈 두 대륙에는 아주 오래전 두 절대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타났다.

-원대륙의 상(上).

경계를 그어 요마괴이와 인간을 구분하고.

영혼육백을 태워 삼생과 삼천세계를 잇는 세계의 나무를 키워내신 분.

허공도의 주인이자, 수많은 샤를 거느리신 드높은 존재.

-타대륙의 마도 황제(魔道皇帝).

허신들의 놀이터였던 타대륙에 문명의 빛을 가져오고, 세계와 별의 비의를 깨우쳐 마법이라는 힘을 만들어 낸 마도의 신.

그리고 인간과 이종족을 아우르는 거대한 마도 제국을 세운 자.

마도 황제!

마도 황제는 수많은 이명을 지니고 있었다.

살아서 별의 길에 오른 마도의 신.

세계에 금기를 새기는 자.

보석과 강철의 황제.

……

그의 이명 중 하나가 허신을 죽이는 자, 신살자(神殺者)였다.

악에 물든 수많은 허신이 마도 황제에게 봉인돼 세계의 나무 밖 혼돈으로 던져졌고.

그 추종자들은 마도 제국의 두 힘, 제국 군단과 마탑의 마도사들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다.

수많은 악의 왕국이 무너져, 타대륙에도 허신은 몇 남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 타대륙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허신, 오래된 바다의 사도가 나타났다고?

허신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마력 파동이 발도의 아상을 샅샅이 훑는 동안.

바라카스 발도 또한 허신, 오래된 바다의 사도를 살피며 재빨리 선조의 책을 꺼내 확인했다.

-더럽게 찝찝한 바다 비린내!

-전투 전 마력 파동으로 싸울 만한지 간을 보는 모습!

-거대한 말미잘, 해파리, 오징어, 문어 같은 해양 생물과 융합된듯한 모습까지!

하나같이 기록에 나온 오래된 바다의 사도의 모습 그대로다.

상대가 허신, 오래된 바다의 사도라는 걸 깨닫는 순간.

바라카스 발도는 깨달았다.

허신이 어떻게 이 세계에 나타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름을 바치지는 않은 반쪽짜리지만 샤였다.

인연을 따라 세계의 나무 위를 걷는 샤는 상께서 키워내신 세계의 나무를 지키는 정원사다.

정원사가 나무를 병들게 만드는 해충을 만나면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해충을 치우는 것!

순간 바라카스 발도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핫-

내력이 폭풍처럼 뻗어 나가는 순간.

단숨에 마력 파동을 떨쳐 내고 쏘아졌다.

파아아아앙-

바라카스 발도는 엄청난 속도로 바다를 가로질러 거대 괴수를 향해 돌진했다.

* * *

발도가 돌진한 순간.

함대와 헬기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그대로 받고 있던 거대 괴수에게 변화가 생겼다.

파르르르릉-

거대 괴수 오래된 바다의 사도는 촉수를 떨어 파동을 흘렸다.

세계의 나무를 헤매는 샤라면 바다 일족의 신께 바치는 최고의 재물.

오라!

어리석은 정원사여!

이 순간 잘려 나간 촉수와 바다로 쏟아진 형광 체액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투둑, 투두둑-

체액이 거대한 육체 안으로 다시 스며들고 잘려 나간 촉수가 이어졌다.

콰아앙, 쿵, 쿵-

타다다다다다-

함포가 반발장을 꿰뚫어 폭발하고, 헬기에서 쏟아지는 기관총이 전신에 박혀 들었다.

그러나 거대 괴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항구 위로 올랐다.

쿵, 쿵, 쿵-

지진이라도 난 듯 항구가 울리고 타워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장난감처럼 무너져 찌그러졌다.

이 순간 거대 괴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기 중이던 064 헌터 부대에서도 공격을 쏟아부었다.

콰아앙, 쾅, 쾅-

타다다다다-

전차 포가 발사되고, 장갑차의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거대 괴수를 향해 바다와 육지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화력에 이어진 촉수가 다시 끊겨 나가고 형광 체액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끊긴 촉수와 쏟아진 체액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떨어지다 말고 공중에서 멈추더니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촉수와 체액!

거대 괴수의 육체는 마치 시간을 돌리는 것처럼 복원되고 있었다.

경악한 4 호위대군 함대와 064 헌터 부대가 맹공을 쏟아부었지만.

공격이 거세질 수록 거대 괴수의 육체는 점점 더 빠르게 복원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 괴수가 항구 위에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콰아아앙-

함대에서 쏘아진 포탄이 거대 괴수의 반발장에 닿는 순간.

포탄은 거짓말처럼 빙글 회전해 함포를 발사한 군함으로 돌아갔다.

콰아앙-

포탄이 단숨에 마력장을 꿰뚫고 5인치 함포에 박혀 폭발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파아앙-

탱크에서 발사된 철갑탄이 돌아가 탱크의 반응 장갑을 때리고.

타다다다다다-

헬기에서 쏟아붓던 기관총탄이 꼬리 날개를 박살 내, 헬기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던 공격이 순식간에 무력화된 순간 거대 괴수는 귀찮은 듯 촉수를 휘둘렀다.

마치 물속에서 흔들리듯 허공에서 흔들리는 거대 괴수의 촉수들.

거대 괴수 주위의 모든 것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찌그러진 컨테이너, 넘어진 타워 크레인, 부서진 자동차와 지게차.

그리고 거대 괴수가 쏟아 내던 해양 마수와 몬스터마저 하늘로 솟아 올랐다!

마치 중력이 사라진 듯 하늘로 날아오르는 수많은 물체!

끼이이이이익-

강철이 우그러드는 거대한 굉음이 울리고, 하늘로 날아오른 모든 것이 압착돼 회전하기 시작했다.

휘잉, 휘잉, 휘잉-

자동차, 타워 크레인, 거대한 컨테이너선.

해양 마수와 몬스터!

거대 괴수 주위를 회전하는 물체들은 점점 빠르게 회전하더니.

어느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휘이이이이잉-

엄청난 바람이 사방으로 불어가는 순간.

쐐애애애애액-

쾅, 쾅, 쾅, 쾅-

공기를 찢어발기는 음속폭음이 터졌다!

항구를 봉쇄했던 064 헌터 부대, 거대 괴수와 격전을 치른 4 호위대군 함대, 항구 옆 시가지에서 일반인을 구하고 있던 헌터들까지.

이 순간 거대 괴수를 보는 모두는 깨달았다.

엄청난 공격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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