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90화 (29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90화>

쾅, 쾅, 쾅-

끝없이 이어지는 함포사격의 굉음이 하늘을 울렸다.

거대 괴수에게 화력을 쏟아부으며 전투 중인 함대는 해상 자위대 4 호위대군 함대였다.

4 호위대군 함대는 해양 마수와 전투 중인 2 호위대군 함대를 도우려고 긴급 이동 중이었다.

이건 표면상의 임무이고 실제 임무는 등급외 각성자 나찰승의 회유였다.

그러나 2 호위대군 함대에 합류하기 전 제주도에 거대 괴수가 나타났고.

참의원의 압력이 해상 자위대 상층부에 들어왔다.

인접국인 한국의 제주도에 나타난 거대 괴수 토벌을 돕는 게 한일 양국 간의 우호선린 관계복원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

은근한 어조지만 너무나 분명한 압력이었다.

그러나 압력을 가한 참의원은 환경위원회 소속의 초선 의원.

해상 자위대 수뇌부는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참의원의 압력을 웃어넘겼다.

그러자 온갖 곳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중의원.

각성 헌터 특별위원회.

민간인 각료와 조달청장까지.

이와 동시에 긴급 속보가 뜨고, 각 파벌 모임이 빠르게 움직였다.

정부와 국회, 민간 기업과 언론사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인 압력이 들어왔다!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인도적 지원, 우호선린, 대 몬스터 전투 협력 등 다양했다.

그러나 이건 말이 안 됐다.

규슈 가고시마 지역에 마경이 생겼을 때도 조용하던 이들이 이제 와서 왜!?

해상 자위대 수뇌부가 있던 상황실에는 내각 정보실 고위직이 작전 협조를 위해 파견 나와 있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빠르게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 이권이 얽힌 유력자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내각 정보실 요원의 대답을 들은 해상 자위대 수뇌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달았다.

제주 함대는 마수와 몬스터와의 교전으로 제주도로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다.

그런데 마침 제주도 인근 해역에 4 호위대군 함대가 있었다.

이걸 확인한 유력자들이 4 호위대군 함대를 거대 괴수와의 전투에 동원하려는 것이다!

일본 각계각층에서 쏟아지는 압력은 제주도의 유력자들이 움직인 결과였다.

아니, 어쩌면 압력을 넣는 본인이 제주도에 이권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안전지대 제주도의 투자 이민 제도를 이용해 한국의 영주권을 획득한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이 수두룩하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까.

‘이런 민족 반역자 놈들!’

해상 자위대 상층부와 내각 정보실은 분통을 터트렸다.

겉으로는 인접국과의 선린우호 관계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제주도에 얽혀 있는 엄청난 이권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압력을 넣은 것이다!

처음부터 어느 정도 압력이 들어올 것은 예상했다.

그런데 그 압력의 규모와 방향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제주도 해역에서 퇴거 명령을 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입해서 거대 괴수와 싸우라니!

거대 괴수와의 전투는 변수가 많고 까딱 잘못하면 함대가 엄청난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본토의 해상 마수 방어망에 구멍이 뚫린다!

해역 이탈 명령이라면 몰라도 거대 괴수와의 교전 명령은 가뜩이나 과부하가 걸린 해상 자위대에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차피 1, 2시간이면 나찰승 회유 작전은 끝나고 해역에서 이탈한다.

그래서 해상 자위대 상층부는 버텼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압력이 들어왔다.

미 7 함대 사령관의 ‘비공식’ 협조 요청.

미 7함대가 움직인 것도 놀랍지만, 이 ‘비공식’ 협조 요청이 어디서 온 것인지 확인한 순간.

해상 자위대 상층부는 4 호위대군 함대에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전속으로 제주도 해역으로 이동해서, 모든 화력을 동원해 거대 괴수를 격퇴하라고.

‘비공식 협조 요청’을 한 곳은 해상 자위대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거물이었다.

미국의 W. S. 인더스트리.

재금 그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거대기업.

재금 그룹에 찍힌 일본으로서는 W. S. 인더스트리에까지 찍힐 수는 없었다.

W. S. 인더스트리가 생산하는 무기는 대 몬스터 전의 전략 물자로 지금의 일본에 꼭 필요한 무기였다.

나이트 아머.

전술 등급 마도구이자, 마도 공학 기술을 집대성해서 만들어 낸 대 몬스터 전 결전 병기.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일본.

나이트 아머가 처음 등장한 이래, 수많은 선진국이 나이트 아머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파츠라고까지 불리는 전술 등급 나이트 아머를 생산하는 건 여전히 세계에서 단 한 곳 W. S. 인더스트리뿐이었다.

각성 헌터들의 한국 유출이 심각한 일본의 상황에서, 본토에 생긴 마경을 정리하려면 나이트 아머 말고는 답이 없었다.

나이트 아머 조종사는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훈련으로 길러 낼 수 있었으니 지금의 일본 상황에 더욱 적합했다.

정치권과 자위대에서는 일본 내 전술 등급 나이트 아머 기갑 사단 배치에 사활을 걸었고.

당연히 유일한 전술 등급 나이트 아머 제작사의 ‘비공식‘협조 요청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비공식 협조 요청을 7함대를 통해서 했다는 것 자체가, W. S. 인더스트리 상층부에서 움직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순간 내각 정보실은 깨달았다.

국제적인 영향력과 외교력에서 한국에 완전히 밀려 버렸음을.

가고시마에 마경이 생겨 일본 규슈 지방이 위협받을 때는 조용하던 국제사회!

그러나 제주도에 거대 괴수가 나타나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까지 압력이 들어왔다!

재금 그룹 본사가 서울 하늘에 떠 있는 상황인데.

또 다른 초거대 기업인 W. S. 인더스트리조차 한국의 편을 들어 줬다!

이게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국제사회가 한국의 중요도를 일본 보다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

분통이 터지는 상황이었다.

2000년 게이트 사태 초기에는 일본이 새 시대를 선도해 나갈 것만 같았다.

지금도 일본이 한국보다 인구는 1.5배는 많고, 산업 생산력도 우위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 버렸다.

모든 게 재금 그룹 때문이었다.

마탄과 게이트 안정화 장치를 발명해서, 일본의 세계 전략을 무너트린 그놈들.

지난 20년 세계 각국은 재금 그룹의 깡패짓에 수도 없이 당했다.

원래대로라면 재금 그룹은 공중분해 되고 한국도 경제제재를 맞았을 터였다.

그러나 강아지가 시끄럽게 짖으면 발로 걷어차도, 호랑이가 울부짖으면 두려워하며 재빨리 몸을 피한다.

재금 그룹은 호랑이도 아닌 재앙급 마수나 마찬가지였다.

강대국들이 제재를 가하자 배를 째고 누워 게이트를 터트리고.

특별세를 부과하니 섬으로 본사를 이전해서 하늘로 띄워 올리는 미친놈들.

여전히 재금 그룹의 오너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재금 그룹을 움직이는 이사들은 하나같이 미친놈들이었다.

이런 재금 그룹과 척을 진 일본으로서는 W. S. 인더스트리와 국제사회의 일치된 압박을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4 호위대군 함대는 지금 제주도 남부 항구, 타국의 섬에서 거대 괴수와 싸우고 있었다.

* * *

쾅, 쾅, 콰아아앙-

바다에서는 구축함과 헬기항모가 5인치 함포를 쏟아붓고,

파라라랑-

하늘에서는 시호크 헬기들이 대구경 기관총으로 마탄을 끊임없이 갈겼다.

항구 전체를 초토화할 정도의 화력이 거대 괴수에게 집중됐다.

괴수 반발장이 마탄에 실린 운동에너지를 상쇄시켰지만, 마탄에 새겨진 마력이 괴수 반발장을 태우며 전진, 거대 괴수 본체 곳곳에서 폭발했다.

콰아아앙, 쾅-

폭염이 치솟고, 마탄에 새겨진 마력이 거대 괴수의 육체로 스며들었다.

거대한 촉수가 하나둘 끊어지고, 형광 체액이 녹색으로 물든 바다 위로 넓게 퍼져 나갔다.

이렇게 육체 곳곳이 부서지는데도 말미잘을 닮은 거대 괴수는 반격하지 않았다.

수많은 촉수를 하늘로 뻗고,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흔들고만 있었다.

압도적인 우세!

거대 괴수는 곧 격퇴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 4 호위대군 기함의 함교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거대 괴수를 스캔 중인 마력 각성자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마력장 왜곡 진행 중!”

“마법 전조 현상 발생!”

“마력 구성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

마력 각성자의 외침이 이어질 수록 함교 안 모두의 얼굴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구성 마력의 규모로 봐서 대마법 수준입니다!”

대마법!

마력 각성자의 외침을 듣는 순간 함교의 모두가 경악했다.

“함장님. 즉각 후퇴해야 합니다!”

부관이 다급히 외쳤지만.

“…….”

이 일에 얽힌 정치적 고려를 알고 있는 함장은 잠시 망설였다.

이때 마력 각성자가 쥐어짜듯이 외쳤다.

“지금 구현됩니다!”

하늘하늘 떨리던 거대 괴수의 촉수가 뻣뻣하게 굳는 순간.

이 경직된 촉수에서 마력 파동이 뻗어 나왔다!

파르르르릉-

쿵, 쿵, 쿵-

거대한 마력 파동이 동쪽 바다를 향해 쏘아졌다.

시호크 헬기와 구축함을 휩쓸고 부채꼴을 그리며 퍼져 나가는 마력 파동!

마력 파동을 맞은 헬기와 함대에서 방어용 마력장이 펼쳐지고 마력장 표면에서 푸른 섬광이 일어났다.

쿠르르르릉-

이와 동시에 요동치는 대기와 높게 치솟는 파도!

마력 파동에 실린 엄청난 힘에 폭풍이라도 온 듯 하늘과 바다가 요동치고 마음속에서 본능적인 공포와 혐오감이 치솟았다!

으아아-

꺄아아-

심약한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는 순간.

주위 사람들이 다급히 이들을 붙잡고 외쳤다.

“정신 차려!”

“마력 필드 안은 안전하다!”

“피해 상황!?”

“함대와 헬기! 피해 상황 확인해!”

사관들이 급히 피해 상황을 확인했지만, 헬기와 구축함 모두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대마법 수준의 엄청난 마력 파동이 헬기와 구축함을 훑고 지나갔다.

아무리 마력 필드로 방어했어도 아무런 피해가 없다고!?

“이게 무슨…….”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당황한 군인들이 서로를 볼때.

거대한 마력 파동을 쏘아낸 거대 괴수는 우뚝 서 있었다.

거대 괴수는 부채꼴 형태로 뻗어 나가는 마력 파동을 통해 전해지는,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정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강철의 배를 탄 하찮은 인간들.

-매번 바다 일족을 가로막던 귀찮은 적은 미동도 없다.

-일족의 전사가 끌고 올라간 자잘한 마수와 몬스터들이 주변 바다에 흩어져 있다.

일족의 전사가 죽으며 보냈던 사념.

태양을 닮은 황금빛을 뿜어내는 존재는 바다 어디에도 없었다.

육지로 이동한 건가?

거대 괴수가 육지 방향으로 마력 파동을 쏘려는 순간.

느껴졌다!

동쪽 바다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존재.

이 존재가 가진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황금빛을 뿜어내는 그 존재는 아니다!

거대 괴수의 정신에 본능적으로 떠오른 존재가 있었다.

‘오래된 바다’를 모시는 바다 일족이 옛 고향에서 싸운 대적자!

신을 죽이고, 별의 길에 오른 자.

타대륙의 신살자(神殺者).

강철(强鐵)과 보석(寶石)의 황제.

마도 제국의 마도 황제!

설마 그를 쫓아온 사도인가!?

거대 괴수는 경악하여 이 존재에 집중했다.

이 순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대마법 파동이 집중되고 이 존재가 가진 힘의 정체가 느껴진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도 황제가 만들어 낸, 마법도 각성력도 아니다!

너무나 이질적인 이 힘은 거대 괴수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힘이었다.

이 순간 대마법을 펼친 거대 괴수의 정신에 바다 일족의 신, ‘오래된 바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ㅁㅁㅁ ㅁㅁ ㅁ.’

마도 황제가 세계에 새긴 금기(禁忌)가 의미가 퍼져 나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지금 거대 괴수는 대마법으로 일족의 신, 오래된 바다와 연결된 상태.

신의 속삭임이 전해 주는 정체를 순식간에 깨달았다.

원대륙의 샤.

세계의 나무를 지키는 정원사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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