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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83화 (284/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83화>

“할머니가 각성자냐고?”

류세연의 얼굴에 드러난 어이없어하는 표정.

이 얼굴만 봐도 대답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할머니 평생 농사짓고 물질하셨는데. 하-.”

류세연은 실소를 흘리며 점검이 끝난 헌터용 벨트를 천문석에게 건넸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 장비, 저기 총이랑 마탄. 그리고 일꾼분들까지. 모두 할머니가 만약을 위해서 준비해 두신 거야.”

“만약?”

“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주도는 한 번씩 사건이 터지면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고. 안전지대라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평소에 계속 준비하셨어.”

“…….”

천문석의 손은 반사적으로 움직여 군화를 신고 방검 방탄조끼를 입고 조이고 있지만, 시선은 주위를 훑었다.

기다렸다는 듯 소총과 중화기가 튀어나왔다.

게다가 임옥분 여사님 휘하의 일꾼분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이 소총과 중화기를 능숙하게 다뤘다.

터프한 해양 마수가 순식간에 작살나는 걸 보니 사용한 마탄도 제대로 된 마탄이다.

이 모든 준비를 하는데 대형 길드 이상의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거다.

대형 길드는 마탄을 써서 마수와 몬스터를 사냥해 마석과 부산물을 얻지만, 임옥분 여사의 준비에는 반대급부가 없었다.

게다가 고가의 각성 헌터용 장비까지 준비했다.

천문석은 가볍게 주먹을 쥐고 뻗었다.

근육이 팽팽한 힘을 받는 순간.

파아앙-

거의 딜레이 없이 반응하는 강화 전투복.

충전된 마력이 강화 전투복의 마력 회로를 흐르며 부드럽게 육체의 움직임을 보조한다.

지금까지 입었던 강화 전투복 중 2번째로 좋은 강화 전투복이다.

가장 좋았던 장민 대표에게 빌린 강화 전투복이 30억이 넘었던 걸 생각하면, 이 강화 전투복도 수십억은 할 거다.

게다가 안전 장갑과 군화, 방검 방탄조끼 같은 장구류와 구급함의 포션까지 전부 상급 이상의 물건들이다.

이걸 모두 합하면 어지간한 건물 한 채 값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거, 진짜…… 내가 사용해도 되는 거야?”

천문석이 머뭇거리며 묻자, 류세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오빠. 지금 할머니 구하러 갈 것 아냐?”

“그렇지?”

“그런데 그런 걸 물어봐?”

그렇다!

자신은 장비 주인 임옥분 여사를 구하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비의 주인 임옥분 여사님은 수십억이 넘는 장비가 모두 박살 나도 그냥 웃어넘길 분이셨다.

“…….”

그러나 어째선지 이 순간 알 수 없는 오한이 느껴졌다.

‘……그렇겠지?’

*   *   *

천문석이 고심할 때.

류세연은 어느새 놓인 다른 안전상자를 열며 외쳤다.

“오빠, 무기확인해!”

천문석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안전상자 안을 확인했다.

검, 칼, 도끼, 해머, 방패…….

각성 헌터용 냉병기가 가득 들어 있다.

천문석은 짧은 검과 작은 방패를 벨트에 걸고, 길이 1.5미터 정도의 단봉을 하나 꺼냈다.

한쪽 끝은 도끼에 찍힌 듯 잘려 있고, 반대쪽 끝은 뭉툭하다.

금속도 나무도 아닌 묘한 감촉.

손에 착 달라붙는 묵직한 단봉에서 뇌리를 간질이는 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그거 아이템이래. 효과는…….”

류세연이 안전상자 안의 서류를 찾아 읽는 순간.

천문석은 본능적으로 이 아이템을 다루는 법을 깨달았다.

핑-

단봉이 쑤욱- 자라나.

순식간에 3미터가 넘는 장봉이 됐다.

천문석은 가볍게 봉을 휘둘러 봤다.

휘이잉-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길어지고 짧아지는 봉!

짧게는 손안에 감춰질 듯 작아지고, 길게는 3층 건물 높이까지 자라난다.

순간적으로 길이가 변하는데도, 손에 걸리는 무게는 변함이 없다.

짧아지고 길어지는 길이에 따라, 현란하게 변하는 무게 중심과 속도!

힘과 육체를 앞세운 몬스터보다 기교와 기술이 좋은 인간을 상대하기 좋은 무기다.

하지만 여기에 절정에 달한 내력과 기술이 실린다면 어지간한 해양 마수와 몬스터는 농락하듯 상대할 수 있다.

이거다!

천문석이 단봉을 무기로 고른 순간 자동차 열쇠가 건네졌다.

탁-

“오빠! 저 장갑 SUV 열쇠야! 그거 타고 가면 돼!”

“알았어!”

천문석은 장갑 SUV로 달려가다가 문득 돌아봤다.

류세연이 어느새 강화 전투복을 입으며 외쳤다.

“오빠 조심해!”

“……너 설마 계속 여기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저놈들만 처리하고 바로 이동할 거야!”

류세연은 검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해양 마수와 몬스터 무리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몰려 오는 적들은 10여 마리가 전부.

반면에 이쪽에는 화기와 마탄으로 완전무장한 100여 명의 훈련된 병력이 있었다.

압도적인 우세였다.

“너 무모한 짓. 절대 하면 안 된다!”

천문석은 다시 한 번 외치고 장갑 SUV를 탔다.

그리고 임옥분 여사가 있는 곳 해수욕장을 향해 출발했다.

구으으으응-

빠르게 멀어지는 장갑 SUV.

류세연은 멀어지는 장갑 SUV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흐흐흐-

역시나, 위급 상황이 되니 ‘오빠‘라고 몇 번이나 불렀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류세연의 의미심장한 미소는 어느새 은근한 미소로 변했다.

자신은 가장 위험한 곳.

거대 괴수가 나타난 항구 바로 옆으로 가면서 안전한 곳에 있을 자신을 걱정하다니…….

역시 옥탑방 오빠다웠다.

류세연은 웃으며 주위를 돌아봤다.

특급 헌터는 경호원들이 데려갔고, 할머니는 옥탑방 오빠가 갔으니 걱정할 것 없다.

이제 자신은 잠시 통화가 연결됐을 때 할머니가 꼭 해야 한다고 한 일을 해야 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고립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일.

류세연은 멀리서 다가오는 해양 마수와 몬스터를 가리키며 외쳤다.

“빨리 처리하고. 사람들 구하러 가요!”

“세연! 아가씨가 명령하셨다!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누군가 장난스럽게 외치자, 왁자한 웃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하하하하-

이때 몇몇 청년이 연장자의 눈짓을 받고 세연의 주위에 벽을 쌓았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수십 년 동안, 임옥분 여사의 그늘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류세연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람이었다.

잠시 후 중기관총을 잡은 지휘관의 외침이 들려오고.

“모두 준비해라!”

“곧 유효사거리에 들어온다!”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발사!”

“발사!”

복명복창과 함께 마탄 사격이 시작됐다.

타다다다다-

*   *   *

타다다다다-

빠르게 멀어지는 마탄 사격음.

장갑 SUV를 운전하는 천문석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백미러에 비친 전장을 살폈다.

“세연이 괜찮겠지?”

예상대로 농장의 일꾼분들은 엄청난 화력으로 해양 마수와 몬스터를 말 그대로 갈아버리고 있었다.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세연이를 데리고 움직이고 싶지만, 지금 자신이 가는 곳은 제주도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거대 괴수가 있는 항구 바로 옆 해수욕장!

그러고 보니 신동대문의 지하터널에서 초거대 사슴벌레를 만나고 벌써 2번째 거대 괴수다.

대형 길드 레이드 팀이 아니면, 평생 헌터일을 해도 보기 힘든 게 거대 괴수라던데.

자신은 벌써 거대 괴수를 둘이나 봤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자신이 거대 괴수를 불러들이는 줄 알겠다.

하-

말도 안 되는 생각.

천문석은 헛웃음을 터트리다가 문득 시선을 조수석 창 쪽으로 돌렸다.

항구 방향, 산처럼 솟은 거대 괴수가 보였다.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는 거대 괴수.

그러나 벌써 2번째라서 그런가?

어느새 천문석은 이 말미잘을 닮은 해양 괴수와 신동대문에서 만난 거대 사슴벌레를 견주고 있었다.

[거대 말미잘 vs 거대 사슴벌레]

말미잘 괴수는 자동차, 화물차, 컨테이너에를 탄환 삼아 원거리 폭격을 했다.

원거리에서는 말미잘 괴수가 우세할 것 같았다.

그러나 붙는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모든 면에서 초거대 사슴벌레가 우세하다.

전신에 두른 강력한 괴수 반발장!

수십 미터 길이의 초진동하는 거대한 톱니 집게!

높은 건물을 내려다볼 정도의 체고와 엄청난 크기의 몸체와 중량에서 나오는 파괴력!

거대 사슴벌레는 이 엄청난 육체 스펙으로 신동대문과 신서울을 잇는 지하 터널을 하루도 안 돼서 뚫었다!

직접 사슴벌레 위에서 싸운 천문석은 직감했다.

단단한 바위와 깊은 지하에서 중량으로 다져진 흙조차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거대 사슴벌레의 초진동 톱니 집게에 걸리는 순간.

저 거대 말미잘 괴수는 단숨에 산산조각이 나서 끝장난다!

이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너무나 생생한 전투장면이 그려진다.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는 거대한 톱니 집게.

그 뒤로 쿵, 쿵, 쿵- 생명체라고는 믿기지 않는 거대한 몸통이 튀어나온다.

강적의 등장을 직감한 거대 말미잘 괴수가 다급히 원거리 공격을 쏟아 낸다!

쾅, 쾅, 쾅-

컨테이너와 차량, 어선!

마력이 담긴 탄환이 비 오듯 쏟아지지만, 거대 사슴벌레의 이 모든 공격을 몸으로 버티며 돌진한다.

해양 마수와 몬스터가 다급히 몰려들지만, 거대 사슴벌레의 돌진을 막을 수는 없다.

쿵, 쿵, 쿵-

거대 사슴벌레는 전차처럼 모든 공격을 받아 내며 돌진해.

거대한 톱니 집게로 단숨에 거대 말미잘 괴수를 물어 버린다!

그리고 이 톱니 집게가 부르르르- 초진동하는 순간!

콰아아앙-

산산이 조각나는 거대 말미잘 괴수!

이 순간 거대 사슴벌레는 초진동하는 톱니 집게를 하늘로 쳐들고, 천지를 떨어 울리는 승리의 포효를 터트릴 것이다!

구으으으으으으-

*   *   *

구으으-

부가티 헌터 미니의 대시보드 위에서 진동이 섞인 작은 울음이 터졌다.

부으으으응-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부가티 헌터 미니, 특급 쌩쌩이를 운전하던 특급 헌터가 대시보드를 봤다.

“사슴이 무서워서 그래?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게!”

특급 헌터는 벨트에 끼워 놓은 퐁퐁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퐁, 퐁, 퐁-

“이걸로 때리면 도망칠 거야! 그리고 알바한테 아프게 때리는 것도 배웠어!”

구으, 구으으-

그러나 한 뼘 크기의 사슴벌레는 작은 집게를 쳐들고 다시 한 번 울었다.

“뭐!? 무서운 게 아니라…… 쟤들을 네가 막겠다고?”

구으으-

사슴벌레가 집게를 끄덕일 때, 특급 헌터는 슬쩍 뒤를 살폈다.

크르르륵-

가시 창을 들고 철퍽, 철퍽- 녹색 진흙을 흘리며 달리는 작은 어인.

파박, 파바박-

커다란 집게를 무섭게 철컹 이며 좌우로 왔다 갔다 따라오는 커다란 게.

쓰으으으윽, 쾅, 쾅-

거대한 몸 엄청 큰 앞발로 주위 모든걸 박살 내며 돌진하는 거대한 가재까지.

“…….”

사슴이한테는 미안했지만, 사슴이는 뒤를 쫓는 누구랑 싸워도 질 거 같았다.

그러나 친구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특급 헌터는 외쳤다.

“이번에는 나랑 알바에게 맡겨줘! 특급 사슴이한테는 다음에 부탁할게.”

구으으-

특급 사슴이가 알겠다는 듯 톱니 집게를 끄덕일 때.

띠딛디딛-

그 옆의 풍뎅이 특급 반짝이도 반짝반짝 빛을 내며 울었다.

“알았어! 다음에는 꼭 둘한테 맡길게!”

특급 헌터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

부으으으으응-

부가티 미니가 빠르게 가속하고 뒤를 쫓는 해양 마수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작고 날렵한 부가티 미니는 도로 곳곳에 널린 버려진 자동차와 쓰러진 가로등 같은 온갖 장애물 사이를 잽싸게 달렸다.

그리고 교차로를 지나 해안 도로로 들어가는 순간.

건물이 사라져 시야가 트이고 목적지가 내려다보였다.

새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진 해수욕장!

그리고 이 해수욕장으로 이어진 ‘S‘자 해안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행렬이 보였다.

육중한 장갑 SUV와 화물차, 세단과 장갑 버스가 뒤섞인 20여 대의 차량!

특급 헌터는 바로 알아봤다.

할머니가 해수욕장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경주장에서 몰고 간 차들이다!

이 차들이 해안 도로 위에 가득한 어인 몬스터를 밀어내고 해수욕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순간 특급 헌터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외쳤다!

“할머니! 조금만 기다려! 내가 도와주러 왔어!”

천문석, 류세연, 임옥분 여사.

세 명 모두 특급 헌터는 경호원이 안전한 곳으로 데려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료를 버리지 않는 특급 헌터는 할머니를 도우러 달려왔다.

어인 몬스터가 나타나는 해수욕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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