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77화>
“……12개월 할부 계산 끝나셨습니다.”
직원의 환한 미소와 함께 돌아온 카드와 영수증.
천문석과 김철수는 직원들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다.
“…….”
김철수는 카드와 영수증을 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지갑 안에 넣었다.
천문석이 보기에 철수 형은 방금 전 출생의 비밀을 밝혔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거 같았다.
“……철수 형 괜찮아요? 제가 반 낼 수 있는데.”
천문석이 묻는 순간.
김철수는 재빨리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야, 나 김철수 사무실의 김철수 사장님이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그렇다!
철수 형은 이 정도로 꺾일 남자가 아니다!
천문석은 내심 고개를 끄덕일 때, 김철수는 작게 한탄했다.
“젠장, 있는 놈들이 더 하다더니…….”
천문석은 못 들은 척 슬쩍 물었다.
“철수 형 아직 휴가 남았죠? 제주도 더 있다 올라갈 거죠?”
“어, 휴가는 며칠 더 남았는데…… 제주도 물가가 완전히 미쳤어. 민박집 1박에 20만 원이야! 이게 말이 되냐?”
“…….”
“서울집 월세가 월에 45만원인데 1박에 20만원이야!? 그래서 그냥 오늘 저녁에 배 타고 올라갈까 생각 중이다.”
천문석은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있는 곳은 임옥분 여사님의 대농장, 만능일꾼 철수 형이 오면 임옥분 여사님은 엄청 좋아하실 거다.
“철수 형 그러지 말고…….”
천문석은 철수 형에게 임옥분 여사를 소개하려다가 멈칫했다.
임옥분 여사는 류세연의 외할머니이자, 강화영의 친할머니였다.
강화영과 김철수 두 사람의 맞선이 해프닝이 된 지금 철수 형을 강화영의 친할머니에게 소개해 줄 수는 없었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장철 헌터의 별장!
제주도에는 특급 헌터의 삼촌 장철 헌터의 별장도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신과 류세연, 특급 헌터 모두 그 별장에서 숙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임옥분 여사님의 집에 머무는 상황.
오늘 저녁쯤 별장으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었으니 철수 형에게 미리 그 별장을 소개해 주면 될 것 같았다.
특급 헌터와 제임스에게 미리 말해야겠지만,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았다.
“철수 형. 그러지 말고…….”
천문석이 생각한 걸 말하려는 순간.
쿵-
별안간 크게 뛰는 심장과 육감을 자극하는 무언가!
그리고 전투기가 하늘을 나는 듯한 음속폭음이 들려왔다.
쒜애애애액-
“어, 이거 무슨 소리야? 전투기가 지나가나?”
김철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창밖을 볼때.
천문석은 단숨에 뛰어 김철수를 낚아채 벽으로 던졌다.
으아아악-
김철수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순간.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 나는 강화 유리창!
강화 유리창을 박살 낸 붉은 쇳덩어리가 김철수의 눈앞을 휙 스쳐 지나갔다.
이 거대한 쇳덩어리가 천문석을 덮쳤다!
“문석아!”
김철수 다급히 외치는 순간.
천문석이 날아온 쇳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확 일어나는 먼지!
따르르르릉-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천장의 스프링클러 가 일제히 작동했다.
쏴아아아아-
비처럼 쏟아지는 물속에 다급한 비명이 터졌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깜짝 놀란 사람들이 정신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벽에 처박힌 김철수는 재빨리 쇳덩어리가 박힌 곳으로 달려갔다!
“문석아! 야! 너 괜찮아!”
“저 괜찮아요.”
천문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거대한 쇳덩어리 뒤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천문석의 얼굴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
김철수는 자신도 모르게 천문석의 시선이 향한 곳을 보는 순간 경악했다.
쒜애애애액-
콰아아아아앙-
뻥 뚫린 창밖에서 잇달아 전해지는 음속폭음과 굉음!
두 사람은 단숨에 창가로 달려갔다.
제주도 곳곳에 붉은 마력광에 휩싸인 물체들이 떨어진다!
이 모든 게 날아오는 곳은 항구!
항구에는 물로 빚어진 듯 빛을 굴절시키는 거대한 촉수 다발이 있었다.
이 촉수가 흔들릴 때마다.
자동차, 어선, 컨테이너, 크레인이 하늘로 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촉수가 떠오른 물체를 툭 때리는 순간.
쒜애애애액-
음속폭음을 내며 날아가.
콰아아아앙-
제주도 곳곳에 떨어졌다!
쿵, 쿠쿵, 콰아앙-
창밖 휴양지 제주도 곳곳에서 치솟는 화염과 검은 연기!
어느새 호텔에도 사이렌이 울리고, 사방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문석과 김철수 두 사람은 직감했다.
거대 괴수 출현!
몇 달 전 겪었던 일과 같은 상황이다!
이 순간 서로를 본 두 사람은 동시에 외쳤다.
“서울 사태!”
“서울 사태!”
제주도가 뚫렸다!
* * *
위이이이잉-
응급 상황 사이렌이 울리자, 사방의 식당과 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폭음!?”
“지금 뭔 일이야?”
“오늘 훈련 있었어!?”
식당 안에 있다가 놀라서 튀어나온 사람들은 쏟아지는 스프링클러 와 박살 난 창, 벽에 박힌 쇳덩어리를 보고 깜짝놀랐다.
으아아악-
꺄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자.
어느새 나타난 보안요원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침착하세요!”
“침착하게 대피하시면 됩니다!”
이 순간 천문석과 김철수 두 사람도 움직였다.
“철수 형. 우선 세연이 위치부터 확인할게요!”
“알았어. 연결 안 돼도 계속 걸어! 통화량 폭주 중이어도, 혹시 연결될 수도 있다! 난 찾을 거 있어! 바로 이곳으로 돌아올게!”
김철수는 천문석에게 외치고 통로 한쪽으로 달려갔다.
거대 괴수는 홀로 움직이지 않는다.
거대 괴수가 출현한 이상, 언제 마수와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른다!
이 상황에 맨몸으로 다니는 건 자살행위.
보통의 상황이라면 대 몬스터 방어설비가 된 건물 안에서 버티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방금 날아온 쇳덩어리에 강화 유리창이 산산이 조각난 순간.
김철수는 제주도는 서울과는 다르게 돌아갈 것을 직감했다.
창문이 뚫렸는데도 강화 덧창이 내려 오고 호텔 건물이 봉쇄되는 게 아니라.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스프링클러 가 작동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안전지대 제주도에 있는 이 호텔에는 대 몬스터 방어설비가 안 돼 있다!
이곳에서 가만히 기다리다가 마수와 몬스터에 휩쓸리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분명 여기서 봤는데!?”
벽을 훑으며 달리던 김철수는 곧 찾던 것을 볼 수 있었다.
비상사태용 방재함!
김철수는 바로 방재함을 열었다.
소방호스와 소방 도끼, 플래시 그리고 긴급 상황에 대비한 응급백이 가득 쌓여 있다.
김철수는 양어깨에 2개씩 4개의 응급백을 걸치고 정장 주머니에 플래시를 챙겼다.
그리고 커다란 소방 도끼를 떼어 낼 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저기다!”
“저기에 방재함! 응급백이 있어!”
……
김철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방재함을 찾은 사람과 갑작스러운 사이렌에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던 사람들!
이들의 시선이 김철수에게 향하고, 다음 순간 이들 모두가 방재함을 향해 달려왔다.
“잠깐만 기다려! 응급백!”
“다 가져가면 안 돼! 우리도 필요해!”
“이 안에 충분히 있습니다!”
김철수는 방재함 문을 활짝 열고 가득 쌓인 응급백을 무너뜨리고 재빨리 뒤로 빠졌다.
와르르 쏟아지는 응급백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
“비켜!”
“내가 먼저야!”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서로 응급백을 차지하러 싸웠다.
김철수는 소방 도끼를 재빨리 벗은 정장 상의로 둘둘 감아서 싸우는 사람들을 놔두고 천문석에게 달려갔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에 사이에 끼어들면 무슨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
지금은 가까운 사람부터 지킬 때였다.
김철수는 천문석과 헤어진 장소로 달렸다.
레스토랑 앞 기둥.
천문석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전화 연결됐냐?”
김철수는 응급백을 건네며 물었다.
고개를 젓는 천문석.
“통화량 폭주 중이라 연결이 안 돼요.”
천문석은 응급백을 받아 허리에 채우며 머리를 굴렸다.
류세연은 강화영을 쫓아 달려 나갔다.
눈물이 터진 강화영은 이곳에서 멀리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 상황에서 두 사람이 갔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이 호텔 안.
호텔 안에서도 가능한 사람의 시선을 적게 받을 장소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곧 가능성이 큰 몇몇 장소가 떠올랐다.
옥상 정원.
프라이빗 카페.
최악의 경우 객실을 빌렸을 수도 있다.
류세연과 강화영을 찾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철수 형. 아무래도 위에서부터 차례로 뒤져야 할 것 같아요.”
천문석의 말에 같은 생각을 하던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 옥상 정원부터 확인하자!”
두 사람은 바로 비상계단을 향해 달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 타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통로가 가득했다.
“철수 형! 길 뚫을게요. 제 뒤에 붙어요!”
“벽 쪽으로 붙어서 뚫어라! 중앙으로는 위험하다!”
천문석은 벽에 바짝 붙어 인파를 뚫었고, 김철수는 정장 상의로 가린 소방 도끼를 들고 그 뒤에 바짝 붙었다.
간신히 통로를 지나 도착한 엘리베이터 앞은 인산인해!
“정원 초과입니다! 다음 엘리베이터 타세요!”
“천천히! 비상계단으로 움직이세요!”
호텔의 직원과 보안요원들이 아이들과 보호자만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다른 사람들은 비상계단 방향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안전지대 제주도에 나타난 거대 괴수에 사람들이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해양 마수나 몬스터도 아닌 거대 괴수!
절대 나타날 리 없는 존재의 등장에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졌다.
“비켜! 나 한 명은 괜찮잖아!?”
“제발요! 힐 신어서 계단으로 못 내려가요!”
“야, 안에 젊은 놈들은 내려! 너희는 계단으로 가라니까!”
……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엘리베이터에 타려 했다.
“밀지 마세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호텔 직원들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밀어냈으나 중과부적.
탁, 탁-
무작정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팔다리에 걸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았다.
“밀지 마세요! 문이 안 닫힙니다!”
“고속 엘리베이터라 금방 내려가실 수 있습니다!”
보안요원들이 연신 외쳤으나, 팔과 다리를 밀어 넣은 사람들은 뒤로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이이이잉-
끊임없이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스프링클러에 흠뻑 젖은 몸!
게다가 이따금 들려오는 무시무시한 진동과 폭음!
쿠우웅, 콰아아앙-
무언가가 끝없이 날아와 대지를 때리고 폭발하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11층 강화 유리창으로 쇳덩어리를 던진 거대 괴수의 잔상이 너무나 선명히 남아 있었다.
지금 머리에 있는 생각은 어떻게든 이곳에서 도망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때 음속폭음이 다시 한 번 터졌다!
쐐애애애액-
“저기!”
누군가 외친 순간 일제히 돌아간 시선!
이곳에 있는 모두는 볼 수 있었다.
붉은 마력광이 담긴 쇳덩어리에 박살 나는 강화 유리창!
콰아아아앙-
산산조각난 유리창이 쏟아지는 순간.
끄으으으윽-
붉은 쇳덩어리는 대리석 바닥을 죽죽 긁으며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벽에 틀어박히며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아앙-
붉은 쇳덩어리의 정체는 압착기로 누른 듯 우그러든 트럭!
이게 트리거가 됐다!
“으아아악! 비켜!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땡땡땡-
중량 초과를 알리는 벨 소리가 계속 울렸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꺄아악-
으아아앙-
보호자의 비명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터지고, 호텔 직원과 보안요원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위험합니다!”
“밀지 마세요! 지금 밀면 큰일 납니다!”
“으아악- 야 밀어내! 밀어내고 바로 문 닫아!”
“아이들이 위험하다! 몸으로 밀어내!”
다급한 외침이 터지는 순간.
길을 뚫던 천문석이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철수 형! 저기부터!”
“문석아. 넌 비상계단까지 길 뚫어! 저긴 내가 처리할게!”
“철수 형……?”
김철수는 비각성 헌터.
젊고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지만, 패닉에 빠진 인파에 휩쓸리면 끝장이다!
그러나 천문석이 제지하기도 전에 김철수는 달리며 외쳤다.
“저 엘리베이터만 보내고 바로 갈게! 비상계단에서 보자!”
김철수는 응급백을 뒤지며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었다.
분명 있을 거다!
잘 정리된 응급백 안 김철수가 찾던 게 손에 걸렸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김철수는 손에 걸린 걸 꺼내 비틀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던지며 외쳤다.
“불이야! 불! 모두 피해!”
휘이잉-
강렬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LED 발광 신호기!
김철수가 던진 발광 신호기가 몰려든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안으로 떨어졌다.
LED의 강렬한 붉은빛이 퍼져 나가는 순간.
김철수는 다시 한 번 외쳤다!
“불이야! 모두 도망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