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72화>
이른 아침 천문석은 활짝 열린 창밖을 보고 있었다.
바다에서 솟은 태양에 밝아오는 하늘과 땅.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과 노란 해바라기밭이 깨어나고 있었다.
마치 잠들었던 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듯 장엄한 모습이 창밖에 펼쳐졌다.
이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제주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문석이 감흥에 젖어 있을 때 창 아래에서 신나는 외침이 들려왔다.
“알바! 엄청 시원해! 빨리 헤엄치러 나와!”
어제저녁 배터리가 다된 것처럼 픽 쓰러졌던 특급 헌터의 목소리다.
창 아래를 내려다보자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바위 폭포 연못에서 뽈뽈뽈- 헤엄치는 특급 헌터가 보였다.
“와- 저 녀석 진짜 광합성이라도 하나?”
해가 뜨자 특급 헌터는 원래대로 기운 넘치는 아이로 돌아와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천문석은 재빨리 외치고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어 주위를 확인했다.
2층 창문 바로 아래, 바위 폭포 연못이 있었다.
어제 확인한 수심은 1, 3미터 정도.
마침 창문 아래는 수심이 깊은 곳이었다.
이 정도면 될 거 같았다!
천문석은 윗옷을 벗어 던지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앗! 알바!? 뭐 하는 거야!?”
특급 헌터가 깜짝 놀랄 때.
“내가 엄청 대단한 걸 보여 줄게!”
타앗-
천문석은 창턱을 밟고 뛰어올랐다.
절정에 달한 무공과 경신법!
천문석은 단숨에 하늘 높이 뛰어올라.
빙글빙글빙글-
다이빙 선수처럼 빠르게 회전하며.
첨벙-
화려하게 연못 안으로 입수했다.
촤아아아아-
그리고 수면으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
예상 그대로의 탄성이 들려왔다.
우와아아아-!
“알바 엄청나! 창문 다이빙!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야!? 나도 당장 창문가서 뛰어야겠어! 엄청 재밌을 거 같아!”
“내가 어렸을 때 세연이 학습지를 대신 풀어 줘서 창의력이 좀 넘쳐.”
천문석이 으스대는 순간.
어깨에 느껴지는 익숙한 타격감!
찰싹-
“앗! 따거! 뭐야!? 류세연! 네가 간덩이가 부었구나!”
천문석은 버럭 소리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가 굳어 버렸다.
세연이가 아니라 임옥분 여사였다!
“……아니, 여사님 왜?”
찰싹, 찰싹-
임옥분 여사가 천문석의 등을 연신 때리며 외쳤다.
“아이가 따라 하면 어쩌려고! 위험하게 창문에서 뛰는 거야!?”
“앗, 따거…… 여사님 잠시만, 잠시만요! 제가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앗, 앗!”
천문석이 다급히 해명하려 했으나, 임옥분 여사의 매운 손은 멈추지 않았다.
“위험한 거 할 거야! 안 할 거야!”
찰싹, 찰싹, 찰싹-
천문석이 연신 등을 맞자, 특급 헌터가 뽈뽈뽈 헤엄쳐 오며 외쳤다.
“알바! 내가 구해 줄게!”
특급 헌터는 재빨리 헤엄쳐와 두 팔로 천문석을 가리고 외쳤다.
“할머니! 멈춰! 내가 잘 설명할 수 있어!”
“특급 헌터!”
이 의리 있는 녀석 같으니라고!
천문석이 진한 감동에 휩싸인 순간 특급 헌터는 외쳤다.
“이건 하나도 안 위험해! 알바랑 더 대단한 것도 했었어!”
“……뭐?”
“그게 무슨…….”
임옥분 여사와 천문석이 동시에 얼빠진 표정을 짓자, 특급 헌터는 자랑스럽게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외쳤다.
“워터파크 갔을 때는 알바가 저어어기서! 저어어어어어기까지! 던져 줬어!”
“그리고 손을 얍얍- 얍얍- 이렇게! 이렇게! 하니까! 우와아- 파도가 엄청, 엄청! 커다랗게 일어났어!”
“콰르릉! 콰르르릉! 파도가 막막 부서지고! 엄청 커다랗게 소용돌이치고 그랬다니까!”
“그때도 하나도 안 위험했어! 엄청 재밌었어!”
“나도 모르게 끼요오오옷- 이소룡처럼 외쳤다니까!”
신나게 외친 특급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알바는 최고야!”
“…….”
“…….”
말문이 막힌 두 사람.
‘……뭐지, 이 녀석. 지금 멕이는 건가.’
천문석이 고뇌하는 순간.
임옥분 여사가 특급 헌터에게 물었다.
“……그걸 모두 문석이가 해 줬다고?”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가리키는 특급 헌터.
“응! 알바가 해 줬어! 요기에 안전 누나가 옐로카드 붙였는데! 아무도 모르게 안 걸리고 해치워 버렸다니까!”
카카카캬캌-
특급 헌터가 신나게 웃음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 하하- 애들은 역시 과장이 심하네요…….”
“…….”
잠시 말없이 천문석을 바라보던 임옥분 여사는 무섭게, 너무나 무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문석이. 너 나랑 잠깐 면담 좀 해야겠다.”
“…….”
천문석은 임옥분 여사와 30분간의 개인 면담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일과가 시작됐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대청마루 아래를 청소하고, 창고에 쌓인 잡다한 물건 정리까지 끝냈을 때.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
남의 맞선 자리를 확인하러 가는 그 민망한 순간이!
“알바! 잘 갔다 와!”
특급 헌터는 긴 가죽 재킷과 가죽 바지를 입고 팔에는 어린이용 안전 헬멧까지 든 채 신나게 외쳤다.
천문석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들려오는 목소리.
“가서 재밌게 놀다 와라. 문석아 흐흐흐-.”
임옥분 여사는 음흉하게 웃으며 천문석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
손을 펼치니 보이는 5만원권 10장과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금속 덩어리.
50만원!
“……아니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주세요!?”
임옥분 여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그냥 주는 거 아냐. 어제 너 일당이다. 너 혼자 5명 정도 일은 했어.”
“아니 그래도…….”
이때 특급 헌터가 번쩍 손을 들고 외쳤다.
“나도 일당 받았어!”
특급 헌터는 가죽 재킷에서 지갑을 꺼내 자랑스럽게 지퍼를 열었다.
지갑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반짝이는 500원 동전들!
임옥분 여사는 그것 보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서 넣어 둬. 문석아. 그리고 거기 호텔 가면 세연이 맛있는 거 사줘. 갈 때도 그냥 가지 말고 차 타고 가고.”
“차요?”
“그거 내 자동차 키야.”
임옥분 여사는 천문석에게 던져 준 묵직한 금속 덩어리를 만졌다.
탁-
순간 한쪽 끝에서 밀려 나오는 열쇠.
“그 열쇠로 차고에 있는 내 자동차 타고 가. 여기 버스가 안 와서 그냥 가면 시간이 오래 걸려.”
“…….”
이 순간 천문석은 묘한 감이 왔다.
고액의 일당과 자동차.
‘뭐지, 이 낚이는 듯한 느낌은?’
천문석이 머리를 갸웃하는 순간.
류세연이 방에서 나오며 외쳤다.
“나 준비 끝났어! 어서 가자!”
“세연아. 문석아. 재밌게 놀다 와라.”
임옥분 여사가 말하는 순간.
특급 헌터가 헬멧을 번쩍 들고 외쳤다.
“잘 갔다 와! 내가 엄청 커다란 문어 잡아 놓을게!”
“너 그 복장으로 문어 잡는다고?”
“나 오늘 엄청 바빠! 문어는 이따가 잡을 거야! 그렇지 할머니?”
“당연하지!”
임옥분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천문석은 신나게 웃는 류세연에게 끌려 차고로 이동했다.
“오빠 얼른 가자. 엄청 재밌을 거 같아! 후흐후흐흣-.”
그리고 천문석은 임옥분 여사님의 차를 몰고 신라호텔로 출발했다.
부으으으응-
마수가 울부짖는 듯한 엔진음.
살짝 밟는 순간 즉각 치고 나가는 반응속도.
안정적인 낮은 차체가 속도감마저 극대화 시킨다!
새파란 하늘 아래 길게 이어진 검은 아스팔트를 달리는 임옥분 여사님의 차는.
16기통 8,000cc 쿼드터보 엔진, 1500마력의 수퍼카.
부가티 시론이었다!
“임옥분 여사님. 무슨 이런 차를…….”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조수석의 류세연이 대답했다.
“우리 할머니 원래 이런 차 좋아해. 산 뒤에 자동차 경주장이랑 무슨 팀도 가지고 계시다던데? 예전에 드라이버 라이선스도 따셨대.”
“자동차 경주장?”
“어. 특급 헌터 자동차 경주장 가잖아. 아까 특급 헌터가 이야기했잖아? 아, 그때 삼촌 대청마루 청소할 때였나?”
“그런가 본데. 난 못 들었어.”
“특급 헌터 가죽 재킷 입은 거 거기 자동차 경주장에 있는 레이싱 카 타러 가서야. 아까 특급 헌터 엄청 좋아하면서 노래도 불렀어. 드디어 네 발 탈것으로 돌아간다고 엄청 좋아하던데.”
임옥분 여사.
부가티 시론.
레이싱 트랙.
특급 헌터.
어쩐지 묘하게 어울렸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신라호텔을 향해 부가티 시론을 몰았다.
* * *
부으으으응-
제주도의 도로를 달리는 날렵한 푸른 차체의 수퍼카.
천문석이 운전하는 부가티 시론이었다.
부가티 시론은 부자들이 발에 챌 정도로 많다는 제주도에서도 보기 힘든 수퍼카였다.
차 가격만 2,400,000 유로.
강남 아파트 한 채가 움직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모여들고, 뒤이어 부러움 가득한 탄성이 들려왔다.
“와- 저거 부가티 시론이잖아!?”
“한국에 저 차가 들어왔어!?”
“유럽이나 중동 부자가 가져온 거 아냐?”
“운전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 같은데……?”
“저 차 엔진오일만 2500만원이라는 차 아냐!?”
“젠장! 내 페라리가 초라해 보이다니!”
……
그러나 부러워하는 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리라.
지금 천문석은 부가티 시론을 운전해서 세계 최고의 휴양지 제주도에서도 최고급 호텔인 신라호텔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천문석이 신라호텔에 가는 목적은.
식사, 관광, 업무, 휴식 그 무엇도 아니었다.
자신이 신라호텔에 가는 목적은 어제 처음 만난 류세연 사촌 언니의 맞선 현장 확인이었다.
“…….”
천문석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제주도까지 와서 남의 맞선 현장을 몰래 확인하러 갈지도.
그 길에 생전 처음 수퍼카 부가티 시론을 몰지도.
분명 자신은 휴가를 왔는데.
뭔가 어이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나고 있었다.
이때 옆좌석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삼촌! 엄청 재밌을 거 같지 않아!?”
“아니, 전혀. 하나도 재미없고 벌써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다.”
천문석은 지금 느끼는 마음 그대로를 전했다.
후흐흐흣흐크흐-
그러나 류세연은 어째선지 빵 터져서 배를 잡고 웃었다.
“뭐야? 너 뭔가 수상한데!? 뭐 숨기는 거 있냐?”
천문석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류세연을 바라봤다.
여전히 신나게 웃으며 눈을 반짝이는 류세연.
천문석의 말대로였다.
지금 류세연은 터질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촌 언니, 강화영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소원 들어 주기!’
오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자신이 무슨 소원을 말할지.
그리고 그 소원이 자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역시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천문석 - 류세연 - 강화영]
셋을 하나로 잇는 키워드가 있었다!
건물!
후흐흐흣-
류세연은 터질듯한 웃음을 삼키며 신나게 외쳤다.
“오…… 삼촌! 빨리 달려!”
……
천문석과 류세연은 신라호텔에 도착해 발렛 파킹을 맡기고 바로 11층 라운지로 올라갔다.
문득 시계를 보니 10시 정각.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거 너무 빨리 온 거 아냐?”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들려오는 목소리.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얼른 이거 쓰고 나 따라와.”
류세연은 야구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천문석에게도 모자를 건넸다.
천문석도 모자를 쓰고 류세연을 따라 움직였다.
류세연이 멈춘 곳은 [예약석]이란 종이가 올라와 있는 창가의 테이블이었다.
“음 여기서 만난단 말이지?”
류세연은 주위를 돌아보더니 한곳을 가리켰다.
기둥 아래 나란히 놓인 소파.
“저기가 좋을 것 같네. 잠깐 여기 있어 봐.”
기둥으로 걸어간 류세연은 소파를 약간 움직이더니 자리에 앉았다.
순간 얼굴과 상체 대부분이 기둥과 소파 등받이에 감쪽같이 가려졌다.
류세연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흔들며 물었다.
“어때? 괜찮지? 안 보이지? 어서 와!”
천문석은 떼어지지 않는 걸음을 걸어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10시 40분이 됐을 때.
류세연은 2만 5천 원짜리 호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왜 이렇게 안 오지? 맞선이면 보통 30분은 일찍 오는 거 아냐?”
“내가 맞선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
“아, 그렇지.”
류세연이 탄성을 지르는 순간.
천문석은 단호히 말했다.
“얼굴만 확인하고 바로 가는 거다.”
“진짜 재벌 3세인지도 확인해야지!”
“그걸 어떻게 확인하려고? 이마에 재벌 3세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면 너 재벌 3세 얼굴 아는 사람 있냐?”
“아…….”
류세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보면 알 수 있어!”
“뻥 치시네!”
“사실 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잠깐 대화를 나누면 재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
아니, 지금 이게 무슨 말이야!?
천문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 설마 보는 것만이 아니라, 가서 말까지 걸겠다는 거야!?”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류세연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여기 걸린 게 얼마나 큰데!”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맞선 중인 사람에게 가서 말을 걸다니!
생각만으로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역시 류세연!
이 녀석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때 류세연이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그리고 당연히 삼촌도 나랑 같이 가야 해.”
“……생각해 보니까. 그냥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제발 말은 걸지 말자.”
천문석이 즉시 방금 주장을 철회하는 순간.
“……!”
라운지 입구를 보던 류세연은 바짝 굳어 버렸다.
“뭐야, 왔어?”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탓-
목깃을 잡아당기는 거친 손길!
“어엇-.”
천문석은 류세연에게 끌려 소파 등받이 아래로 얼굴이 숙어졌다.
“야! 어?”
“너…… 왜 그래?”
화를 내려던 천문석은 류세연의 얼굴을 본 순간 당황했다.
류세연의 얼굴은 믿기지 않는 무언가를 본 듯하얗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