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66화>
은근슬쩍 사위라니!
농담인 것 같지만, 예전에 겪은 게다가 임옥분 여사의 화술은 정말 교묘했다.
자신도 모르게 ‘네, 네.’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신을 차리고 ‘앗!?’ 경악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바짝 정신 차려야 했다!
천문석은 재빨리 주위를 돌아봤다.
제주도에 있는 거대한 농장.
주위를 둘러싼 십여 명의 친척들.
얼핏 봐도 임옥분 여사님의 농장은 수백, 수천억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아니, 뭐 이렇게 부자야!?’
류세연의 집이 부자란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임옥분 여사의 제주도 농장을 직접 보니 이건 부자의 범주를 벗어났다.
땅값만 수천억!
일반적인 부자가 아닌 재벌급이다!
이 모든걸 임옥분 여사가 홀로 일궈냈다고 들었는데…….
류세연의 외할머니, 임옥분 여사님은 자신의 예상을 몇 배나 뛰어넘는 부자였다!
예전에 얼핏 듣기로는 임옥분 여사의 직계 비속은 몇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위의 친족 대부분은 임옥분 여사의 방계 혈족들일 거다.
이들 모두가 갑자기 나타난 자신을 잡아먹을 듯, 적의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수천억 농장을 날름할지도 모를 놈이니까!
천문석은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재빨리 웃음부터 터트렸다.
“하, 하하- 여사님. 무슨 그런 농담을 하세요. 세연이는 조카 같은 아이입니다.”
이 순간 능글능글하게 웃던 임옥분 여사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야? 너희 아직도 삼촌, 조카 하는 거야?”
“맞아! 할머니! 오빠 아직도 그러는 거 있지! 할머니가 혼 좀 내줘!”
류세연은 외할머니에게 달라붙어 그동안의 설움을 쏟아 냈다.
“저번에 ‘오빠’라고 하니까! 삼촌이 어떻게 했던 줄 알아!?”
……
“정말로? 진짜로? 와- 그랬단 말야?”
임옥분은 손녀의 말에 연신 맞장구를 치면서 천문석의 등과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천문석은 차마 피하거나 막지 못하고 손바닥을 맞았다.
이 따끔따끔 매운 손!
‘류세연의 매운 손은 외할머니에게 물려받은 거였구나!’
이때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
“알바. 괜찮아?”
퐁퐁검으로 마당에 꼬불꼬불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리던 특급 헌터가 천문석에게 물었다.
“응 괜찮아…… 바빠 보이는데 하던 일 계속해…….”
“알았어! 휴- 힘들다! 니케가 하늘에서 보고 찾아오게 하려면 아주 크게 그려야 하거든!”
특급 헌터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던 그림을 계속 그렸다.
찰싹, 찰싹, 찰싹-
천문석은 따끔따끔 매운 손바닥을 맞으며 주위를 돌아봤다.
할머니를 붙잡고 그동안의 설움을 쏟아 내는 류세연.
손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매운 손으로 팔과 등을 때리는 임옥분 여사님.
당황한 얼굴로 임옥분 여사와 천문석을 번갈아 보고 있는 친척들.
친척들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뭐야? 농장 물려준다더니 갑자기 왜 때려!?’
천문석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최종 보스, 류세연의 어머니는 없지 않은가?
찰싹, 찰싹, 찰싹-
그러나 임옥분 여사님의 매운 손바닥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여사님은 여전히 기력이 넘쳤다.
* * *
찰싹, 찰싹, 찰싹-
임옥분 여사는 마치 혼내주듯 천문석의 팔과 등을 야무지게 때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임옥분은 겉모습과 달리 혀를 차고 있었다.
‘이런 미련한 녀석 같으니라고…….’
임옥분은 피하지도 않고 손바닥을 맞고 있는 천문석을 보며 내심 한숨 쉬었다.
‘고지식하게 약속을 지키면서도 그 이유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구나…….’
천문석 이 아이는 처음 봤을 때부터 이렇게 미련할 정도로 속이 깊었다.
임옥분은 천문석이 류세연에게 절대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제는 괜찮으니 편하게 지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이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딸과 사위.
세연의 부모는 두 사람이었다.
결자해지.
자신이 말해 봐야 미봉책일 뿐. 이 일은 결국 시작한 두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었다.
임옥분은 다시금 천문석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융통성 없는 녀석!
‘그냥 은근슬쩍 뭉개면 되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는 거야! 쯧-’
그러나 혀를 차면서도 임옥분은 천문석의 마음이 짐작이 갔다.
임옥분은 처음 천문석을 본 날이 기억났다.
갑자기 부모님이 실종된 후 일가친척의 등쌀에 도망치듯 작은 옥탑방으로 이사 온 어린 천문석.
천문석은 세연을 잘 돌봐달라는 자신의 부탁에 한참 동안 고심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도 힘들었을 텐데 부모가 관심을 주지 않는 아이 류세연을 친동생처럼 돌봐줬고 손녀는 너무나 바르고 착하게 자라났다.
천문석 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약속하면 반드시 지켰다.
이 모습을 보고 임옥분은 이미 천문석을 후계자로 점찍었다.
그리고 2년 전에는 부산에 있는 감귤 농장으로 불러 테스트까지 했다.
결과는 합격!
천문석은 농사일부터 힘쓰는 일, 집수리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사실 일을 잘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게 더 중요했다.
일하면서 보이는 진중하고 성실한 모습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약속한 건 반드시 지키는 신의.
힘든 마음을 내색하지 않는 속 깊은 성격까지.
천문석은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훌륭하게 자라났다.
임옥분은 문득 팔에 매달린 손녀를 봤다.
“……그래서 오빠가 그때 뭐한 줄 알아!?”
류세연은 고자질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졌고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가득 담겼다.
임옥분은 팔에 매달린 손녀를 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세연아 걱정 마라. 할머니가 팍팍 밀어 줄 테니까!’
임옥분은 천문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천문석,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귀여운 손녀의 마음고생을 시켰으니 벌은 줘야 한다.
때마침 일 거리가 잔뜩 준비된 상황!
류세연의 외할머니 임옥분 여사는 음흉하게 웃으며 한쪽의 창고를 가리켰다.
“흐흐흐- 옥탑방 꼬맹이 따라와라. 오늘 할 일 많다. 옷 갈아입자.”
“…….”
천문석은 말없이 임옥분 여사를 따라 창고로 들어갔다.
“이제 감뀰 따는 거야!? 나도!”
마당에 커다란 그림을 그리던 특급 헌터가 신나게 그 뒤를 쫓았다.
잠시 후,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천문석과 특급 헌터가 나타났다.
“엄청난 힘이 솟는다! 감귤 엄청 많이 딸 거야! 뀰뀰뀰-.”
“…….”
그리고 전혀 신나지 않는 감귤 농장의 하루가 시작됐다.
* * *
“감뀰! 맛있는 감뀰! 너무 조아조아!”
천이 달린 모자에 긴 팔, 긴바지를 입은 특급 헌터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선두에서 걸었다.
특급 헌터의 손을 잡고 걷는 임옥분 여사가 물었다.
“감뀰?”
“엄청 달고 맛있는 귤은 귤이 아니라 뀰이야! 뀰뀰-.”
“오. 뭘 좀 아는데!?”
“나는 원래 잘 알아!”
흐흐흐-
카카캬-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는 임옥분 여사와 특급 헌터.
그 뒤를 따라 걷던 천문석이 힐끗 뒤를 살폈다.
찌르르르릇-
류세연의 친척 십여 명이 적의가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천문석을 노려보던 젊은 청년이 외쳤다.
“할머님! 제가 더 일을 잘하면 아까 말한 거 재고해 주세요!”
“맞아요!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기회도 안 주시는 건 불공평해요!?”
임옥분 여사는 고개를 돌려 욕심쟁이 친척들과 천문석을 번갈아 봤다.
혹시라도 진짜로 농장이 넘어갈까 전전긍긍하는 친척들.
앞으로 일어날 빡센 노동에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문석.
친척들은 위아래 깔끔한 반팔 트레이닝복을 입고 모자도 안 쓴 채 선크림을 하얗게 발랐다.
천문석은 천이 늘어진 모자에 긴 팔 긴바지에 목에는 수건을 걸고 두꺼운 신발을 신었다.
입고 있는 옷만 봐도 이 승부가 어떻게 갈릴지 짐작이 갔다.
이런 기본도 안 된 녀석들!
그러나 일꾼들이 일할 의욕을 가진다면 좋은 일!
임옥분 여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하우스를 가리켰다.
“좋다! 오늘 최고의 일꾼에게 후계자 점수 10점을 주겠다!”
순간 터져 나오는 환호성.
우와아아-
으하하하-
끼요오옷-
십여 명의 친척들과 특급 헌터가 감귤 하우스로 달려갔다.
임옥분 여사는 이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뻘쭘하게 서 있는 천문석에게 물었다.
“넌 안 뛰어?”
“하하- 전 후계자 점수 필요 없으니 좀 쉬엄쉬엄…….”
임옥분 여사는 천문석에게 전지가위를 턱 넘겨주며 말했다.
“넌 1등 못하면 너 사는 건물 세연이한테 넘겨준다.”
“……!”
천문석은 경악했다.
‘뭐야,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자신의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정확히 콕 짚는다!
지금도 건물주 대리로 기세등등한 류세연.
류세연에게 건물 명의가 넘어가고 진짜 건물주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
#$#$#%!#!
“여사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천문석은 재빨리 하우스로 달려갔다.
그리고 하우스 감귤 수확이 시작됐다.
감귤 수확은 크게 두 가지 일로 나뉜다.
-감귤 따기.
-감귤 나르기.
일가친척들은 눈치를 보다가 더 쉬워 보이는 감귤 따기를 시작했다.
“이 나무는 내 거야! 비켜라!”
“그런 게 어디 있어! 네가 비켜!”
서로 실랑이하는 사이 천문석도 감귤을 따기 시작했다.
전지가위로 탁- 한번 길게 가지를 잘라 감귤을 따고, 탁- 다시 한 번 짧게 가지를 잘라 감귤 표면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탁, 탁-
두 번 소리가 울려 가지가 잘리고.
툭-
감귤이 땅에 떨어져 내렸다.
탁, 탁-
가지 자르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 순간.
탁탁, 탁탁, 탁탁, 탁-
가지 자르는 소리가 끝없이 들려오고.
툭, 투툭, 투두둑-
나무 아래 감귤이 비 오듯 쏟아져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깨작깨작 천천히 감귤을 따는 친척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속도!
그러나 친척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한두 푼도 아닌 수천억이 넘는 지주회사의 주인을 가르는 승부였다!
이들은 전동 전지가위로 마구잡이로 감귤을 따기 시작했다.
타탁, 타탁, 타타탁-
이때 뒤늦게 하우스에 들어온 임옥분 여사의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뭐 하는 거야! 그렇게 자르면 나무에 상처가 생기잖아!”
기겁한 임옥분 여사가 재빨리 달려와 친척들 손에 들린 전지가위를 빼앗았다.
“너희들은 감귤 따지 말고 나무 아래 쌓인 감귤을 상자에 담아서 화물차로 날라라.”
“네!”
의욕 넘치는 얼굴로 일제히 대답하는 친척들.
이들은 재빨리 떨어진 감귤을 20kg 상자에 담아 나르기 시작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임옥분 여사는 천문석을 힐끗 보더니 전지가위를 들고 감귤을 따기 시작했다.
탁탁, 탁탁, 탁탁, 탁탁-
후두드드드득-
천문석과 임옥분 여사 두 사람의 손아래서 우박 쏟아지듯 감귤이 쏟아지고.
친척들은 재빨리 땅에 떨어진 감귤을 주어 20kg 농산물 상자에 담고 나르기 시작했다.
으아압!
기합을 지르며 감귤이 가득 담긴 농산물 상자를 번쩍 들어 나르는 사람들.
따는 사람은 두 사람이고 나르는 사람은 십여 명이었다.
그러나 더운 여름 게다가 땀이 비처럼 쏟아지는 하우스 안이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선크림은 순식간에 지워지고 목과 팔다리, 드러난 피부가 붉게 타들어 갔다.
짧은 트레이닝복은 이내 땀으로 흠뻑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평생 농사일 근처에도 가지 않다가 이따금 눈도장을 찍으러 오는 친척들은 빠르게 지쳐갔다.
으아압!
여전히 번쩍번쩍 농산물 상자를 들어 올렸으나, 하우스 밖 임옥분 여사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상자를 나르고 있다.
그러나 천문석, 임옥분 두 사람은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알바로 단련되고 무공까지 되찾은 천문석.
평생 쉬지 않고 일해서 이 커다란 농장을 키워 낸 농사의 달인 임옥분 여사.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감귤을 수확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르는 속도가 따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감귤이 쌓이기 시작했다.
“허억- 더 빨리 담아야 해!”
“으아악! 빨리! 상자 빨리 날라!”
친척들은 땀을 비 오듯 쏟아 내며 열심히 움직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농사일에 하나둘 퍼져 버렸다.
“으아악- 허리! 내 허리!”
허리를 잡고 쓰러지고.
“물. 물 좀!”
타는 듯한 갈증에 픽 주저앉는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힘쓰는 현장 일이 그러하듯 감귤 수확도 겉보기에는 힘을 쓰는 일 같지만, 사실 일하는 요령과 지루한 반복 작업을 해내는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평생 임옥분 여사의 그늘에서 살아온 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퍼지지 않고 열심히 움직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감귤 조아조아!”
“귤이 맛있으면 뀰!”
“달고 맛있는 감뀰! 조아조아!”
감귤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감귤송을 부르며 쉴 새 없이 감귤을 주어 농산물 상자에 담는 특급 헌터!
특급 헌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다.
임옥분 여사는 어느새 손을 멈추고 특급 헌터를 보고 있었다.
세연이 전화할 때마다 신나서 이야기하던 특급 헌터라는 꼬맹이.
언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말대로.
이 꼬맹이는 쉬지 않고 열심히 감귤을 주어 상자에 담았다.
임옥분 여사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생겨났다.
이 꼬맹이를 보니 어린 시절 호미 한 자루만 가지고 돌밭을 개간하겠다고 나서던 시절이 기억났다.
“아유- 왜 이렇게 일을 잘하니! 우리 강아지는 이제 그만 쉬어도 괜찮아요.”
특급 헌터는 감귤을 줍더니 신나게 외쳤다.
“엄청난 힘이 솟아서 괜찮아! 감뀰- 너무 조아! 카캬카-.”
“우리 강아지 힘 안 들어? 재미없고 지루하지 않아?”
특급 헌터는 수건으로 땀을 쓱 닦으며 십 년 차 농부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을 누가 재미로 하나? 원래 일은 힘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