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65화>
“와, 와와-!”
진실을 깨달은 천문석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때 류세연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삼촌 이야기 많이 했어. 할머니는 삼촌이 정말 마음에 든다네? 할머니가 평생 만난 일꾼 중에 삼촌이 최고래! 흐흐흐-.”
“……!”
다시 한 번 말문이 턱 막히는 순간 들려오는 신나는 노랫소리.
“감귤 조아! 너무 조아!”
“맛있는 감귤! 많이많이 따야지!”
“감귤 너무 조아조아! 카카캌카카-.”
퐁, 퐁, 퐁-
특급 헌터는 퐁퐁검을 휘두르며 신나게 감귤송을 불렀다.
‘아직 늦지 않았다!’
천문석은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재빨리 특급 헌터에게 외쳤다.
“야, 이거 네가 생각하는 즐거운 놀이 그런 거 아냐! 우리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는 거야! 특급 헌터 당장 너희 별장으로 차 돌려야 해!”
그러나 이미 류세연이 특급 헌터를 홀리고 있었다.
“거기 가면 감귤이 가득 달린 나무가 잔뜩 있어!”
“뭐, 맛있는 감귤이 달린 나무가 잔뜩 있다고!? 열 개보다 많아!?”
“훗! 열 개는 아무것도 아냐! 엄청엄청 많아! 그 많은 나무에 달린 귤을 따고 싶은 만큼 딸 수 있어!”
“진짜로!? 10개 아니 10개씩 열 번 따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그리고 정말 달고 맛있는 귤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 세연!?”
특급 헌터가 두근두근 기대감이 가득 담긴 얼굴로 묻는 순간.
류세연은 천문석을 힐끗 봤다.
“너무 달아서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외치게 돼.”
뀰-
이 순간 커다란 눈을 번쩍 뜬 특급 헌터가 상기된 표정으로 외쳤다.
뀰-!?
“감뀰 조아! 너무 좋아!”
“맛있는 뀰뀰뀰! 카카캌-.”
이 단어를 듣는 순간 천문석은 오래전 일을 기억해 냈다.
‘뀰-.’
3년 전 겨울, 자신이 류세연에게 했던 말이다.
겨울방학이라 집에서 빈둥거리는 류세연을 남해에 있는 감귤 농장 알바로 꼬드길 때 했던 말.
‘……류세연 정말 맛있는 귤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뭐야? 삼촌 또 뭔 아재 개그를 하려고?”
뀰-
흐흐흨흐흨-
류세연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신나게 뀰, 뀰- 외치며 자신과 남해 감귤 농장에 내려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에서 류세연은 감귤을 던지며 외쳤다.
‘뭐? 뀰이라고? 뀰뀰-? 빌어먹을 뀰! 으아악-.”
감귤을 던지자마자, 허리를 잡고 숨을 몰아쉬던 류세연.
“으아, 으아- 허리, 허리가 너무 아파!”
“……미안하다. 감귤 농장이 이런 건지 몰랐어. 세연아 거기 파스 좀 주라. 죽을 거 같다.”
“으아, 으아아- 내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삼촌!”
세연은 복수한다고 말했고 그 말은 지켜졌다.
2년 전 갑자기 연락을 받고 내려간 부산.
부산에 있는 임옥분 여사의 감귤 농장에서 극한 알바를 했으니까!
‘그런데 또다시 낚이다니!’
천문석이 머리를 부여잡는 순간.
류세연의 신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흨흐흐흨-
구으으응-
장갑 SUV는 제주도 남쪽 임옥분 여사님의 감귤 농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한 시간이 넘게 도로를 달리며 수많은 카지노와 호텔, 빌라 단지와 리조트를 본 천문석은 깨달았다.
이곳은 부산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휴양지 제주도다!
제주도의 미친 땅값을 생각하면 부산에 있는 것 같은 대단위 감귤 농장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했다!
감귤 농장이 있어 봐야 작은 규모의 소규모 농장이나 있을 것이다.
천문석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차 안으로 반사된 빛이 들어왔다.
“응?”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순간.
보였다.
산기슭에 넓게 펼쳐진 평지에 줄지어 있는 하우스, 하우스, 하우스…….
“…….”
하우스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세연이 아니겠지만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저기 저 하우스가 임옥분 여사님 감귤 농장은 아니지?”
“세연! 저기야? 저기가 맛있는 ‘감뀰’이 있는 농장이야!?
천문석과 특급 헌터의 시선이 모두 모이자 류세연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잖아?”
하-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저 뒤로 더 있어.”
“……뭐?”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자신도 모르게 농장을 보는 순간 류세연의 설명이 이어졌다.
“방울토마토, 양상추, 양배추, 해바라기…… 저기 전부랑 저 뒤까지 전부 다 할머니 농장이야.”
“정말이야!? 농장이 그렇게 많아!? 세연 엄청 부자였잖아!”
특급 헌터가 부러움이 담긴 눈으로 보는 순간.
류세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할머니 거긴 한데. 언제든 농사지을 거면 준다고 했으니까. 내거나 마찬가지지. 흐흐흐-.”
특급 헌터가 부러워하고, 류세연이 음흉하게 웃을 때.
천문석은 끝없이 나타나는 하우스와 농장들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땅값이 미친 수준인 제주도에 저런 대규모 농장이라니!
“어떻게!?”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는 이 순간에도 임옥분 여사의 농장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 * *
정문을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간 순간 나오는 커다란 3층 건물.
한옥과 양옥을 합친듯한 건물 앞에 장갑 SUV가 멈춰 서는 순간.
차 문이 열리고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동시에 뛰어나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이 순간 건물 입구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천이 늘어진 챙 넓은 모자, 목에 걸린 수건과 긴 팔 긴 바지.
여름용 작업복을 차려입은 작은 키의 할머니.
천문석은 한눈에 알아봤다.
어렸을 때 가끔 서울에 찾아와서 만났고, 2년 전 부산의 하우스 감귤 농장에서도 만났던.
류세연의 외할머니 임옥분 여사님이었다!
“왔어? 세연아. 네가 세연이가 말한 아이구나. 어서 와라!”
와아아아아-
순간 류세연과 특급 헌터가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가 와락 안겼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자주자주 오라니까. 아유 넌 듣던 대로 힘이 장사네.”
류세연과 특급 헌터의 등을 연신 어루만지며 환하게 웃는 임옥분 할머니.
“나도 자주 와도 되는 거야?”
“당연하지! 맨날 와도 괜찮아!”
“진짜로?”
“진짜, 진짜로!”
임옥분 여사와 특급 헌터는 분명 처음 만나는 걸 텐데도 친할머니 친손자처럼 엄청 반가워하고 있었다.
“세연이가 미리 소개한 건가?”
천문석이 고개를 갸웃하며 차에서 내리자 제임스가 같이 내려 말했다.
“그럼 난 외곽 경호를 하겠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이 비서에게 말하면 된다.”
“무엇이든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바짝 긴장한 이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 제임스는 바로 농장 밖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천문석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는 순간.
임옥분 여사의 천둥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꼬맹이! 빨리 안 움직이지!”
“꼬맹이!? 꼬맹이 여기 있어!”
특급 헌터가 자신을 부른줄 알고 손을 번쩍 들자, 임옥분 여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유- 우리 귀여운 강아지를 부른 게 아니에요.”
그리고 번쩍 고개를 들어 천문석을 봤다.
“천문석! 오랜만에 할머니 봤는데 빨리빨리 안 움직이지!?”
천문석은 재빨리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네요. 임옥분 여사님!”
순간 임옥분 여사는 매서운 눈으로 천문석에게 물었다.
“꼬맹이!”
“네. 여사님!”
“천문석!”
“네! 천문석 왔습니다! 여사님!”
“그동안 바빴다고?”
“네. 하는 일이 좀 바빴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제야 오는 게 말이 돼!?”
“……네?”
‘뭐지, 이거? 내가 안 온 게 이상한 건가?’
뭔가 이상한 분위기에 천문석이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임옥분 여사의 매서운 얼굴이 사르륵 풀리고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이제야 찾다니 괘씸하지만. 어차피 다 물려받을 농장. 내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라.”
“……네!? 뭘 물려받는다고요?”
“너 이 농장 물려받으러 온 거 아냐?”
천문석은 멍한 눈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끝없이 펼쳐진 하우스와 농장!
이걸 물려받는다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이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숙모님! 누가 뭘 물려받는다고요!?”
“할머니! 그게 무슨 소리여요!”
……
평생 농사일은 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십여 명의 남녀.
이들이 깔끔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에서 쏟아져 나왔다.
천문석은 이들을 보는 순간 알아봤다.
부산의 감귤 농장에서도 봤었던 류세연의 외가 쪽 친척들이다.
친척들은 다급히 임옥분 여사에게 달려와 말을 쏟아 냈다.
“저 사람이 누군데 농장을 물려줘요!?”
“할머니. 말도 안 돼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숙모님. 설마 아니죠? 생판 남에게 이 농장을 물려주다니요!”
……
임옥분 여사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뭐야? 너희들 농장에서 농사일하려고? 카지노, 호텔에 한자리 씩 줬잖아? 그거 관두고 농사지을 거야?”
몰려든 친척들은 서로의 눈치를 봤다.
임옥분 여사는 게이트가 열리기 전부터 제주도에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임옥분 여사는 땅을 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 년 열두 달 쉴 새 없이 일하며 힘든 농사를 지었고 여윳돈이 생기면 땅을 조금씩 늘려 갔다.
어차피 외진 제주도의 땅 그 가치는 별 볼 일 없었기에 친척들도 임옥분 여사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제주도의 땅이 게이트가 열리고 제주도가 안전지대가 되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등했다.
일부 땅을 팔아 호텔과 카지노, 리츠 회사를 세웠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땅과 농장은 많았다.
하나하나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 땅들!
게다가 제주도의 이 농장, 농업 법인은 호텔, 카지노, 리츠 회사를 모두 아우르는 지주회사였다!
친족 모두가 카지노, 호텔 같은 회사에 한 자리씩 받았지만, 어차피 지분도 없는 월급쟁이다.
이 농장을 이어받는 사람이 제주도와 부산, 서울까지 아우르는 임옥분 여사의 거대한 사업을 이어받는 후계자가 된다!
‘수천억 가치의 이 농장을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넘겨준다고!?’
젊은 남자가 천문석의 멱살을 잡고 버럭 소리 질렀다.
“야, 너 누구야!? 누군데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할머니 농장을 탐내!”
“전부 오해입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부산에서 잠깐 만났었는데 기억 안 나…….”
천문석이 재빨리 설명하는 순간.
젊은 남자의 머리로 나무 막대기가 떨어졌다.
따아악-
으아악-
젊은 남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자, 막대기를 휘두른 임옥분 여사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평생 손에 흙 한번 안 묻혀 본 놈들이 욕심만 많아서는! 지금 손님한테 경우 없이 무슨 짓이야!”
“제가 몇 년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요!”
젊은 남자가 억울함을 담아 외치고.
주위에 모여든 친척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얘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요!”
“숙모님 제가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전 어제 한 시간이나 비료를 날랐습니다!”
……
가끔가다 한 번씩 와서 일한 주제에 이런 당당함이라니!
임옥분 여사는 피식 웃으며 천문석의 팔을 잡았다.
“이 녀석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야. 내가 본 최고의 일꾼이야! 이 녀석은 혼자서 10명분의 일을 한다니까!”
이 순간 천문석은 2년 전 임옥분 여사의 부산 하우스 감귤 농장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5시간 동안 허리 한번 안 펴고 감귤 박스를 나르고!”
-내가 날랐다.
“하우스 10동에 비닐을 치고!”
-내가 비닐을 쳤다.
“깨진 기와를 갈고 부서진 계단을 보수하고!”
-내가 집과 창고를 수리했다.
“고장 난 안테나를 고치고!”
-내가 집과 숙소의 안테나들을 모두 고쳤다.
“마지막에는 감귤까지 팔고 왔다니까!”
-내가 부산역, 해운대에서 손수레를 끌며 감귤을 팔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2년 전 임옥분 여사의 농장에서 엄청 빡세게 굴렀다.
‘2년 전의 나. 진짜 열심히 일했었구나…….’
그런데 다시 임옥분 여사의 농장에 오다니…….
그것도 몇 배나 커진 농장에!
난 헌터인데…….
각성도 했는데…….
무공도 찾았는데…….
‘난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천문석이 새삼 온 현타에 넋을 놓는 순간.
“……!”
사방에서 외치던 친척들은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잡일을 잘한다는 이유로.
수천억 가치의 농업 법인, 수많은 회사의 지주회사를 넘긴다는 거야!?
이때 머리를 맞은 젊은 남자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서 외쳤다.
“할머니! 그래도 어떻게 남한테 이 농장을 넘겨요!”
이 외침이 물고를 틔웠다.
“맞습니다!”
“그래요! 어떻게 남에게 넘겨요!”
“일은 배워도 핏줄은 어떻게 할 수 없잖아요!”
친척들의 외침이 다시 한 번 쏟아지려 할 때.
임옥분 여사는 나무 작대기를 들어 올려 세 사람을 가리켰다.
천문석.
류세연.
특급 헌터.
나무 작대기가 특급 헌터에게 멈춘 순간.
임옥분 여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남은 누가 남이야? 벌써 애까지 있는데!”
“……!”
충격으로 멍해진 친척들의 시선이 움직였다.
-나뭇가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은 아이, -입을 떡 벌리고 뭐라 말을 못하는 젊은 청년.
-얼굴이 터질 듯 새빨갛게 달아오른 임옥분 여사의 직계 손녀 류세연.
친족들이 분노한 외침이 쏟아졌다.
“세연아! 너 설마!”
“너 농사일에는 관심 없다며!”
“세연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지금 이게 뭐야!? 그동안 그 개고생을 했는데!”
……
그리고 잠시 후 이 모든 외침을 덮는 류세연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
순간 진지했던 임옥분 여사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생겨났다.
“농담이야 농담! 그리고 애 좀 있으면 어때? 결혼하면 되지. 안 그래 사위?”
흐흐흐-
임옥분 여사는 천문석의 어깨에 손을 척 올리고 음흉하게 웃었다.
“…….”
천문석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2년 만에 만난 류세연의 외할머니 임옥분 여사님.
이 분도 나이를 드셨으니 변했으리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임옥분 여사님은 예전과 똑같았다.
아니, 처음 옥탑방에서 만났을 때.
그리고 부산에서 다시 만났을 때보다 더한 능구렁이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