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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60화 (261/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60화>

푸젠(복건)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장갑 SUV 5대가 이 언덕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장강 유통의 장민 대표와 경호원들이 탄 차량이었다.

장민은 도로 위 드문드문 나타나는 초소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남중국 군벌 연합과는 이미 계약을 마쳤다.

-재금 중공의 정품 마탄 공급.

-게이트 안정화 권역의 확대.

-상급 마석의 우선 협상권.

……

수많은 이권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위장.

장민이 진정 원하던 건 하나였다.

아무것도 없는 산맥으로 연결됐기에 버려진 던전.

무림 던전!

그러나 이번에도 무림 던전 확보에 실패했다.

무림 던전이 있는 곳은 푸젠성 해안의 작은 섬이었다.

그런데 군벌 연합이 만들어지는 마지막 순간. 푸젠 군벌의 수장이 마음을 바꾸면서 이번 협상의 진정한 목표 무림 던전 확보는 허사가 됐다.

장민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한 협상이 남중국의 복잡한 사정으로 길어지고 있었다.

장민은 문득 보안 스마트폰을 꺼내 SNS 앱을 실행시켰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신나게 달리는 꼬맹이, 특급 헌터의 사진이 화면 가득 떠올랐다.

제임스와 세연이가 틈틈이 찍어서 올려 준 사진들이다.

최근에 올라온 사진에는 커다란 사슴벌레, 반짝이는 풍뎅이, 그리고 축 늘어진 다람쥐가 찍혀 있었다.

어제 의기소침하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특급 헌터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던 거니?”

장민은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순간 특급 헌터가 환하게 웃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특급 헌터는 거실에 쪼그려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거지 중인 남자를 보고 있었다.

천문석.

신동대문의 헌터일을 끝내고 돌아온 천문석 때문이었다.

장민은 사진 속 아이에게 문득 물었다.

“엄마는 하나도 안 보고 싶은 거니?”

이 순간 생생한 대답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응! 하나도 안 보고 싶었어!’

너무나 씩씩하고 당당해서 얄밉기까지 한 대답!

장민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사진을 하나하나 넘겼다.

고양이 냠냠이의 팔을 잡고 춤을 추고.

처음 보는 삼색 고양이에게 츄르를 주고 있다.

류세연과 세발자전거를 타고 경주하고.

건강해지는 샐러드를 먹으며 환하게 웃는다.

특급 헌터는 너무나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장민은 류세연과 천문석에게 새삼 고마웠다.

두 사람은 아이에게 너무나 소중한 추억을 하나 가득 만들어 주고 있었다.

김철수 사무실에 거래라인을 하나 넘겨주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이걸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알바씨. 건물주가 꿈이라던데…… 건물을 하나 넘겨줄까?’

문득 천문석이 좋아할 선물이 생각났지만, 장민은 곧 고개를 저었다.

천문석은 이미 차근차근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류세연, 동생 같고 딸 같은 류세연의 장대한 계획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후흐흣-

이런 풋풋함이라니!

장민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환하게 조명이 밝혀진 석조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표님. 리웨이 사령관의 저택에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장민은 스마트폰을 내리고 웃음을 지웠다.

이제 장강 유통의 대표로 돌아가 남중국의 능구렁이와 협상을 해야 했다.

*   *   *

푸젠 군벌의 수장 리웨이 사령관의 저택 입구.

장갑 SUV가 나타나자 신원 확인 후 곧 정문이 열렸다.

장민 대표가 탄 차량 행렬이 정원 중앙으로 난 도로를 지나갔다.

장민의 시선이 도로 좌우 정원에 놓인 빈 테이블을 훑어봤다.

음식과 술, 조명, 음악. 모든 게 완벽하게 세팅된 파티.

이 파티에 없는 건 하나, 파티를 즐길 ‘사람’들이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무너지는데?’

장민 대표가 내심 생각할 때, 조수석의 비서가 몸을 돌려 태블릿을 내밀었다.

“대표님.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시, 광둥 둘이 방금 넘어갔습니다!”

장민은 비서가 건넨 태블릿을 받아 지도를 살폈다.

이로써 푸젠을 내륙에서 포위한 저장, 장시, 광둥 세 성이 모두 군벌 연합으로 넘어갔다.

육로가 끊겼고 남은 건 바닷길뿐.

그러나 바닷길은 이미 대만이 막고 있다.

푸젠은 포위됐고 남중국의 대세는 완전히 군벌 연합으로 넘어갔다.

장민은 문득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이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정원에 놓인 수십 개의 빈 테이블이다.

리웨이 사령관은 부하들을 한곳에 모아 건재함을 과시할 생각이었겠지만, 이게 오히려 악수가 됐다.

시류에 밝은 기업인과 푸젠의 소규모 군벌들은 이미 등을 돌렸고. 이 사실이 대외적으로 드러났다.

실제 사실보다 대외적으로 드러나고 리웨이 사령관의 체면이 상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푸젠 군벌에 내분이 일어났단 사실이 내일이면 푸젠성 전체에 퍼질 거다.

그리고 아직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한 이들은 선택하게 되리라.

연합 군벌과 푸젠 군벌.

둘 중 하나를.

푸젠(福建) 군벌의 수장, 리웨이가 대세를 거스르고 버틴다면 결국 고사할 뿐이다.

장민은 문득 궁금해졌다.

푸젠 군벌의 수장 리웨이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내부 균열을 봉합할 인망, 열세를 뒤집을 지략.

혹은 체면을 깎고 숙이고 들어가는 배포를 보여 줄 수 있을까?

장민은 두 눈을 반짝였다.

제대로 타이밍을 맞췄다.

한 사람의 진면목은 위기의 순간에만 알 수 있었다.

리웨이 사령관의 진면목이 이번 만남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때 석조 저택이 보이고, 5대의 장갑 SUV가 차례로 멈춰 섰다.

경호원이 장갑 SUV의 문을 여는 순간 장민 대표는 차 밖으로 내렸다.

늦은 새벽 시간.

그러나 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아열대 특유의 열기가 확 올라왔다.

군복을 입은 장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장민 대표님. 사령관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장민 대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저택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구축된 기관총 진지, 옥상의 발칸포, 곳곳에 깔린 병사들.

멀리 주차장에는 전차와 장갑 차량까지 대기 중이다.

게이트 안전지대인 푸젠시에 있는 본거지라고는 믿기지 않는 과도할 정도의 방어였다.

그리고 이 진지를 지키는 병사들도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듯 바짝 긴장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장민은 이채를 띈 채 저택으로 들어갔다.

“리웨이 사령관님은 3층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민은 리웨이 사령관이 있는 방으로 안내됐다.

“사령관께서는 이 방 안에서 ‘혼자‘기다리고 계십니다.”

혼자 들어가라는 무언의 압박.

“여기서 기다리도록 해요.”

장민은 가볍게 손을 저어 경호원을 대기시키고 성큼성큼 걸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군복을 입은 장년의 남성, 리웨이 사령관은 혼자 들어온 장민을 가늠하듯 훑어봤다.

“…….”

그리고 한참 후 던지듯 툭 내뱉었다.

“내가 리웨이요.”

장민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리웨이 사령관님. 장민이라고 합니다. 작은 회사를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은 회사? 그 장철의 동생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가 군벌 연합이랑 계약했다는 건가? 재금 그룹과의 거래까지 주선하는 회사가 작은 회사라니…….”

리웨이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장민 대표. 나한테 제안할 게 있다고?”

“섬을 좀 매입했으면 합니다.”

장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태블릿에 지도를 띄워 리웨이에게 건넸다.

“남일도? 이 섬은 주변 지역 전체가 마경인데? 이 쓸모없는 섬을 왜 매입하려는 건가?”

리웨이는 장민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겠다는 듯이 노려봤다.

그러나 웃음 뒤에 가려진 장민의 속마음이 전혀 짐작되지 않았다.

리웨이는 곧 손으로 태블릿 위의 섬을 짚었다.

“그래. 이 섬을 얼마에 사겠소?”

리웨이가 물음에 장민은 바로 대답했다.

“제주도 소재 은행의 1000만달러. 혹은 군벌 연합과 선을 놓아드리죠.”

“내가 스스로 박차고 나온 군벌 연합과 선을 놓아준다고? 농담이 과하군.”

장민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연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군벌 연합은 리웨이 사령관님을 환영할 겁니다.”

“그 녀석들이 날 환영한다고? 막판에 판을 깼는데도?”

리웨이가 어이없다는 듯 묻자, 장민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판은 깨지지 않았고 이 정도 트러블은 큰일에 따르는 사소한 사건입니다. 한 가지 일만 해 주시면. 군벌 연합은 리웨이 사령관님을 기꺼이 받아들일 겁니다.”

“한 가지 일?”

“짧은 유감 표명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스스로 체면을 깍고 허리를 숙이라는 말.

“…….”

리웨이는 한참 동안 장민을 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천만달러 가 더 마음에 드는군. 그런데 가격 조정이 좀 필요하겠어. 천만은 말도 안 되지. 3천만 어떤가?”

‘이 정도 인물이었나…….’

장민이 내심 한숨을 내쉴 때, 리웨이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시계를 봤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

리웨이는 벌떡 일어나 리모컨을 눌렀다.

위이이잉-

모터음과 함께 창을 가린 커튼이 걷히고, 벽 전체가 위로 들렸다.

방 전체가 탁 트인 야외 테라스가 되고, 눈앞에 푸젠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게이트 안정화 권역에 만들어진 안전지대, 푸젠시는 새벽인데도 화려 했다.

“어디더라…… 아, 저기군!”

리웨이는 한 호텔을 가리키며 웃었다.

“장민 대표. 거래하기 전에 화려한 쇼를 보여 주지. 저 호텔을 잘 보라고. 이제 곧 성대한 불꽃놀이가 시작될 테니까 말야. 이 불꽃놀이를 보면 3천만달러 가 전혀 아깝지 않을 거야!”

하하하-

리웨이의 웃음에서 잔인한 살기가 느껴졌다.

장민은 잔인함을 힘으로 착각하는 권력자들을 수없이 봤다.

헌터 군벌은 브레이크 없는 권력자들, 그 어떤 미친 짓을 해도 놀랍지 않았다.

이때 리웨이가 잔에 술을 따라 장민에게 건넸다.

“군벌 연합 멍청하지 않나? 모두의 힘을 모아서 남중국의 마경을 모조리 정리하고 새 시대를 열자고?”

“하- 이 멍청한 녀석들. 마경을 정리하면 인민들이 잘했다고 박수라도 칠 줄 알았나?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지는 법. 마경이 권력 기반의 핵심인 걸 잊다니. 모두 어린놈에게 홀려서 맛이 갔어.”

“그 맛이 간 놈 중에 내 부하들이 있을 줄 상상도 못했지만 말야.”

홀로 말하던 리웨이는 씨익 웃으며 창밖 정원을 가리켰다.

“장민 대표. 정원의 빈 테이블을 봤겠지?”

“…….”

리웨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내 초대를 거절한 부하들과 기업인 놈들이 저 호텔에 있다. 그리고 그 어린놈을 기다리고 있지?”

“어린놈이라면?”

장민의 물음에 리웨이는 분노를 토해 냈다.

“천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 천둥벌거숭이 놈! 그놈과 멍청한 부하들이 지금 저 호텔에 있다!”

“그 어린놈이 날 무시하고 내 영역! 내 땅! 내 저택 바로 앞의 호텔에서! 내 부하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그걸 참아야 하나? 나 리웨이가! 그런 수모를 참아야겠나!?”

리웨이가 분노를 토하는 순간.

장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깨달았다.

화려한 불꽃놀이!

장민은 잔을 내려놓고 탄식했다.

“어리석은 늙은이가 큰일을 망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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