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53화>
지하터널을 달려 도착한 신서울의 장벽 앞.
어느새 이곳에는 거대한 주차장과 진입로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터널로 들어가려는 차가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갑 SUV, 장갑 버스, 화물 운송용 대형 트레일러…….
수많은 차량 행렬!
여기에 차선을 긋고 마력등을 설치하기 위한 작업용 중장비 차들이 끝없이 지하터널로 들어갔다.
“와. 사람들 진짜 빠르다. 벌써 차선을 그리나 본데?”
“그러게요. 생각보다 더 빠르네요.”
천문석은 이세영 선생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동승자들에게 물었다.
“바로 게이트를 넘어갈 건데. 혹시 여기서 볼일 볼 사람 있어?”
“…….”
최설은 넋 나간 얼굴로 밖만 보고 있고, 엠마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차가 너무 많아서 게이트 넘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겠는데?”
“그러게 말야. 이거 오늘 안에 넘어갈지 모르겠다.”
늦은 저녁 시간.
대기 인원이 많으면 밤에 혹은 내일에나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흐흐흐- 선생님만 믿으렴! 나한테 이게 있어!”
이 순간 이세영 선생님이 웃음을 터트리며 보안 카드를 꺼내 들었다.
홀로그램이 반짝이는 헌터 부대 신분증!
“오늘 자정까지는 유효하니까. 이걸로 바로 넘어가자!”
이세영 선생님의 장담대로였다.
천문석이 운전하는 화물차는 길고 긴 대기 줄을 무시하고 바로 게이트 통과 열차에 실렸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광화문 게이트 지역으로 돌아왔다!
천문석은 총기를 영치하고 장비를 대여 금고에 맡겼다.
그리고 바로 광역 스캐너를 통과해 광화문 게이트 지역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스마트폰 전원을 올리자 끝없이 울렸다.
띠링, 띠링, 띠링-
얼핏 보니 대부분이 스팸 문자들이다.
천문석은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돌리고 이세영 선생님을 봤다.
“선생님 어디로 가세요? 집까지 모셔다드릴까요?”
“아니. 난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금방이야. 데려다줘서 고마웠어.”
화물차는 광화문 광장에 멈춰 섰고.
이세영 선생님은 화물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었다.
“문석아! 나중에 꼭 학교에 놀러 와! 선생님이 맛있는 밥 사줄게!”
“잘 가세요. 선생님!”
이세영 선생님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광화문 광장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차에는 천문석과 엠마, 최설 셋만 남았다.
천문석은 뒷좌석의 최설을 보며 웃었다.
“그럼 앞으로 일할 사무실을 소개해 줄게. 최설 신입 사원.”
“…….”
화물차는 광화문 광장 동쪽 재금 빌딩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한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재금 빌딩 13층.
예전과 마찬가지로 상자가 가득 쌓인 통로를 지나 사무실에 도착했다.
A4 지에 매직으로 적어 철문에 테이프로 붙여 둔 명패도 여전했다.
[김철수 사무실]
“여기가 앞으로 네가 일할 직장이야.”
천문석이 소개하는 순간 최설은 엠마를 봤다.
“……?”
엠마는 표정만 봐도 최설의 심정이 짐작이 갔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황당하겠지.’
그러나 이건 앞으로 겪을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엠마는 그냥 어깨만 으쓱했다.
천문석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외쳤다.
“철수형! 제가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이 순간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연락을 주시면 마중 나갔을 텐데!”
“잠시만! 제가 시원한 음료를 가져오겠습니다!”
“…….”
엠마는 말문이 턱 막혔다.
전과 똑같은 잡다한 비품이 가득 쌓인 창고 같은 사무실이다.
그런데 이 사무실에 정장에 와이셔츠를 입고 출입증 카드 목걸이를 건 직장인 셋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직장인 셋.
게릭, 클릭스, 폴리머.
자신의 세 부하였다!
“너희들 어떻게 된 거야!? 그 모습 뭐야?”
깜짝 놀란 엠마가 외쳤지만.
“왔어?”
“리더 왔어?”
클릭스와 폴리머는 고개만 까닥하고 천문석에게 달려갔다.
“무겁게 뭐 이런 걸 들고 계세요! 제가 들겠습니다!”
클릭스가 재빨리 천문석이 들고 있는 안전 상자를 받아 들고.
“이 시원한 음료수부터 드십시요! 이 얼음 제가 마력으로 얼린 얼음입니다!”
폴리머가 쟁반에 받친 잔을 천문석에게 공손히 건넸다.
“부사장님! 현장에서 고생하시느라 어깨가 뭉치신 것 같습니다! 저 우수사원 게릭이 어깨를 풀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게릭은 어느새 천문석의 등 뒤에 서서 어깨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온갖 사건·사고를 겪고 난장판을 헤쳐 온 천문석마저 할 말을 잊었다.
간사한 웃음, 빠릿빠릿한 몸놀림.
진짜 직장상사라도 대하는 듯한 모습이라니!
한 달이 넘게 신동대문을 일을 끝내고 돌아왔더니 악당 3인이 완전히 변했다!
뭐야, 이 새끼들 왜 이래?
서류 업무가 너무 고돼서 맛이 간 건가!?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사장 책상을 살폈다.
그러나 책상의 주인은 자리에 없었다.
이때 엠마가 외쳤다.
“야, 너희들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순간 게릭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엠마 ‘평사원‘현장에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뭐……? 게릭 너 지금 뭐라고……?”
엠마, 성격이 더러운 리더가 어이없어하는 순간 클릭스와 폴리머가 움찔했다.
그러나 게릭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부사장님. 제 명함입니다.”
천문석에게 공손히 두 손으로 전해지는 명함.
“엠마 평사원. 내 명함이야.”
엠마에게 휙- 공중을 날아 전해지는 명함.
“…….”
“…….”
천문석은 명함을 봤다.
[김철수 헌터 사무실, ‘우수사원‘게릭]
“우수사원?”
“네! 저 두 번 연속 이달의 우수사원입니다! 하하하-.”
게릭이 자랑스럽게 웃으며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양복을 입고 웃고 있는 게릭의 사진 두 장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붙어 있는 A4용지.
[이달의 우수사원]
“…….”
천문석이 벙찐 얼굴로 게릭을 보자 게릭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김철수 사장님께서 3번 우수사원을 한 사람을 가장 먼저 ‘대리’로 승진시켜 준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제 ‘대리’ 승진까지 한 번 남았습니다! 하하하-.”
게릭은 호탕하게 웃으며 클릭스와 폴리머 그리고 엠마를 쓱 훑었다.
“제가 신입 사원 중에 처음으로 ‘대리’를 달고. 얘네들 ‘상사’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죠! 흐흐흐-.”
게릭이 웃는 순간.
클릭스와 폴리머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외쳤다.
“하- 게릭 저 아첨꾼 새끼!”
“리더 당장 게릭 저놈을 저지해야 해. 저놈이 대리 되면 우린 끝장이야!”
“…….”
천문석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처음 악당 4인조를 부하 직원으로 만들고 걱정했었다.
혹시나 철수형이 이 녀석들에게 휘둘리거나 위해를 입지 않을까.
그래서 겹겹이 안전장치를 만들었는데…….
한 달여 만에 돌아온 사무실은 예상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게릭, 클릭스, 폴리머.
악당 3인은 승진에 목을 매는 직장인이 되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천문석은 이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철수형이다!
경영과 화석.
미팅, 소개팅 주선의 신.
고소득 알바 알선의 제왕.
그리고 수많은 알바에서 단련된 강철 멘탈까지.
생활의 달인 철수형은 어느새 악당 3인조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와! 철수형! 진짜 정체가 뭐야!?”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리는 순간.
게릭을 보며 이를 갈던 엠마가 무언가 생각난 듯한 얼굴이 되어 다급히 외쳤다.
“야! 천문석! 너 신동대문에서 말했던 거…….”
이 순간 게릭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어허! 엠마 평사원! 부사장님 이름을 막 부르다니!”
“게릭! 이 새끼!”
엠마는 분통을 터트리다가 재빨리 말투를 바꿔서 다시 물었다.
“천문석 부사장님! 분명 저를 대리로 승진시켜 준다고 하셨었죠?”
순간 게릭의 얼굴이 확 변했다.
“뭐!? 아니 부사장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엄연히 사규란 게 있는데!”
“당연히 되지! 부사장님이 임명하겠다는데!”
“부사장님. 저는 어떻게 안 될까요?”
“저 마력 각성자 폴리머. 진심으로 충성을 하겠습니다! 저부터 승진 좀!”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부사장님! 저 두 번이나 우수사원 했다니까요!?”
“야, 비켜! 난 이미 약속을 받았어!”
엠마가 동료들을 밀어내고 천문석 앞으로 나서서 외쳤다!
“네가 분명 약속했잖아! 명함도 파준다며!”
“명함도 파준다고!? 나는 내 돈으로 명함 팠는데! 이런 게 어디 있습니까!? 부사장님!”
“뭐야? 명함 네가 판 거였어?”
“와! 이 새끼. 그것도 구라를 친 거였어!?”
네 사람이 폭풍처럼 말을 쏟아 낼 때.
천문석은 말없이 엠마를 보고 있었다.
“…….”
분명히 기억이 난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고블린 평야를 뚫고 신동대문에 도착했을 때였다.
전날 저녁부터 쉴 새 없이 이어진 격전과 난장판 그리고 개고생.
밤새 쉬지 않고 화물차 운전까지 해서 엠마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엠마의 헌신을 본 자신은.
텔레비전에서 본대로 부하 직원을 격려하는 직장상사 말투로 말했었다.
-‘엠마 사원. 아주 잘했다! 돌아가면 사장님께 말씀드려 ‘대리 특진‘을 추진하겠다.’
-‘명함도 파줄게. 엠마 파리킨슈 대리. 어때 근사하지?’
-‘회식도 할까?’
그때 당시에 엠마는 시큰둥했었다.
그러나 가치는 언제나 상대적인 것!
게릭, 클릭스, 폴리머.
옛 부하들이 승진에 목을 매고 게릭이 자신을 들이받는 걸 본 순간.
엠마는 시큰둥했던 대리 특진을 너무나 간절히 원하게 됐다!
‘와! 철수형! 도대체 어떻게 동기부여를 했길래 애들이 이렇게 된 거야!?’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감탄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엠마가 다시 한 번 다급히 외쳤을 때.
“야! 조용조용해! 천문석 부사장님! 빨리 대답해 주세요! 약속 기억나시죠!?”
천문석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그랬나?”
“……!”
시뻘겋게 달아오른 엠마의 얼굴.
“너 그때 말했었잖아!?”
“내가 요새 기억력이 안 좋아서…….”
천문석이 씨익 웃는 순간.
엠마는 목덜미를 잡고 넘어갔다.
“와, 와! 이 더럽게 치사한 새끼! 와!”
이 순간 세 사람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그렇지! 부사장님이 그럴 분이 아니시란 걸 저 게릭! 항상 믿고 있었습니다!”
“방금 게릭 놈이 소리치는 걸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저부터 승진 좀…….”
“저 마력 각성자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제가 마석 정제를…….”
게릭과 클릭스, 폴리머 셋은 불이 붙을 듯 열심히 아부했다.
그리고 천문석은 이들에게 기름을 부었다.
“음…… 한 명 대리 승진을 시키긴 해야 하는데…… 누가 좋을까?”
천문석의 시선이 닿는 순간 바짝 긴장해 침을 삼키는 세 사람.
“생각 좀 해 봐야겠네.”
천문석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자 셋은 바짝 달라붙어 더욱 열심히 아부를 쏟아 냈다.
“…….”
이때 사무실 안의 모두에게서 잊힌 한 사람이 이 모든걸 보고 있었다.
최설.
최설의 시선이 거만하게 걷는 천문석에게서 사무실 안으로 움직였다.
사무실 공간 2/3 이상에 A4용지, 화장지, 청소도구, 세제 같은 잡다한 비품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창고에 책상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최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임대료가 미친 수준인 광화문 게이트 앞, 그것도 성채 빌딩 13층에 사무실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온 사무실은 창고 그 자체다.
그리고 이 창고 사무실에 있는 세 직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대리 승진에 목을 매는 저 모습!
게다가 갑자기 거만한 직장상사처럼 행동하는 천문석까지!
삼합회 사무실에서 처음 악어 가면을 쓴 천문석을 만났을 때부터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최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나 왔…… 어, 문석아! 야, 너! 무사히 돌아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