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50화>
“네!? 기여분에 따라서 정산된다고요!”
천문석이 경악하는 순간.
스캐너 옆에 선 헌터 부대 병사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통 이런 대규모 전투는 그런 식으로 전과에 따라 처리하거든요. 이게 사실 전투 전에 알렸어야 했는데 이번 전투가 너무 급하게 진행돼서…….”
“…….”
“마석과 부산물을 모두 회수해서 감정한 다음에 기여분에 따라서 헌터 통장으로 정산해 드립니다.”
원래 이런 거라고!?
천문석이 굳어 있는 동안 병사는 재빨리 서류철을 확인했다.
“김철수 사무실. 천문석님 맞으시죠? 이번 전투 같은 사냥팀으로 등록한 엠마, 최설 두 분이랑 하나로 묶어서 전과를 교차 검증. 정산될 예정입니다.”
“…….”
“그럼 채집한 마석은 여기서 제출 부탁드립니다.”
천문석은 허탈한 눈으로 손에 들린 자루를 봤다.
바닥에 끌릴 정도로 묵직한 자루 안에는 마석이 가득했다.
자신이 번개같이 전장을 누비며 뽑아낸 마석들!
대부분이 중급 마석으로 이 정도 수량이면 못해도 수십억은 할 거다.
이때 헌터 부대 병사가 열린 자루 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와! 헌터님. 혹시 마력 각성자신가요?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무슨 마석을 이렇게 많이 모으셨어요!? 지금까지 헌터님이 최고입니다! 혼자서 거의 전문 채집 꾼 몇 개 팀 몫을 해내셨네요! 이것도 정산 비율에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병사의 목소리에 스캐너를 통과하기 위해 대기중이던 헌터들의 시선이 모였다.
“뭐야? 저 자루 안이 모두 마석이라고!”
“와-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마석을 저렇게 많이 뽑아냈어!?”
“마력 각성자 아냐?”
“설마, 마력 각성자 몸값이 얼마인데 직접 마석을 뽑겠어.”
……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봤다.
병사의 말은 사실이었다.
스캐너를 통과하며 마석을 제출하는 헌터 중에 자신의 반 아니 반의반 정도의 마석을 모은 헌터도 없었다.
순간 천문석의 머릿속에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떠올랐다.
역시 협동농장은 생산성이 개인농장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
노력과 수익이 비례하지 않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는가?
자본 주의가 문제가 많은 제도지만…….
천문석이 현실에서 도피하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터님! 헌터님!”
“네?”
헌터 부대 병사가 천문석이 움켜쥔 마석 자루를 가리켰다.
“그 마석 제출하셔야죠.”
“네…….”
천문석은 차마 놓이지 않는 손을 놓고 마석이 가득 담긴 자루를 넘겼다.
그리고 신동대문으로 돌아가는 화물차 안.
우울해하는 천문석에게 엠마가 말했다.
“야, 차라리 대형 길드를 들어가. 네 실력이면 계약금만 해도 엄청나게 받을 텐데!”
“대형 길드 들어가면 계약 기간이 너무 길어. 초반 정산금도 낮고 게다가 일도 빡세고.”
“……대형 길드가 빡세다고?”
엠마는 천문석의 말을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고블린 잡다가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리고, 화살 범인 찾다가 거대 괴수한테 끌려 간 녀석이 대형 길드가 빡세단 말을 하다니!
아무리 대형 길드 레이드가 빡세도 며칠 동안 이 녀석이 겪은 일들보다 빡셀 리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 넌 뭔가 대단히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는 엠마를 보며 피식 웃었다.
투덜거리는 엠마에게서 어쩐지 은근한 걱정이 느껴졌다.
악연에서 시작했지만, 엠마는 이제 완전한 동료가 되었다.
문득 시선이 화물차 뒷좌석으로 움직였다.
뒷좌석에는 지난밤의 격전으로 탈진한 최설이 잠들어 있었다.
새로운 직원 후보, 삼합회 단주의 비서 최설.
최설은 무공 각성자로 쾌검을 기가 막히게 썼다.
그러나 이것보다 중요한 건 거대 조직의 비서였다는 것.
최설은 서류에 치이는 김철수 사무실에 꼭 필요한 인재였다!
‘최설. 우리 오랫동안 같이 가자.’
천문석이 웃는 순간 잠든 최설은 악몽을 꾸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 * *
고블린 평야의 몬스터 웨이브 소탕이 끝난 후, 신동대문에 돌아온 천문석은 화물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호텔 짐 정리하고 준비해라. 난 이 마석 탐지기 기태한테 돌려주고 일 좀 보고 올게. 끝나면 바로 신서울로 출발하자.”
“알았어.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고.”
엠마는 고개만 까닥이며 대답했다.
“야, 그럴 리가 없잖아.”
“하-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몇 시에 출발할 거야?”
“글쎄 돌려주고 환불받고 하면…… 한 2, 3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오후 2시쯤? 어때 시간 충분하냐?”
“충분해. 지하터널 입구에 있을 테니까 거기로 와라.
천문석은 손을 한번 흔들고 바로 김기태의 헌터 사무실로 향했다.
신동대문의 인도와 도로는 수많은 사람과 차량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단 하루 사이에 두 배는 불어난 사람들.
게이트가 없는 거점도시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 몫 챙기러 온 헌터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았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광장에 뚫린 지하터널을 통해 도착한 장사꾼들이다!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 대한민국!
지하터널이 뚫리고 몬스터 웨이브가 정리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는데도.
돈 냄새를 맡은 수많은 장사꾼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 순간 천문석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대박의 냄새를!
‘이거 지금이라도 신동대문에 상가라도 하나 사야 하는 거 아냐?’
문득 생각하는 순간, 마침 부동산 중개 사무소가 보였다.
휑했던 유리창에 A4용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매물이 나왔다고!?’
천문석은 재빨리 부동산 사무소 유리창으로 매물을 달려가 훑었다.
처음 신동대문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2배 정도 폭등한 가격!
그러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것도 싸다!
공간 축약 지하터널이 뚫린 신동대문의 성장 포텐은 엄청나다.
지금 이 부동산을 사기만 하면 시세차익에 엄청난 임대 수익을 얻을 거다.
천문석은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 여유자금을 계산했다.
-통장 잔액 1억2천만원.
-경매에 올린 마스터 급 오크의 뼈 도끼 1+1.
-경매에 올린 마스터 급 오크의 상급 마석 1개.
여기에 청년 헌터 신용 대출까지 받으면?
“하- 그래도 부족하네…….”
이때 천문석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대환단!
자신에겐 검역이 끝나고 철수형이 보관하고 있을 영약이 있었다!
천문석은 스마트폰을 꺼내 가격을 검색하려다가 깨달았다.
게이트가 사라진 이곳에서는 인터넷 검색이 안 된다.
그러나 명색이 무림에서 손에 꼽히는 영약, 대환단이다!
못해도 최소 몇억에는 팔릴 거다!
이 순간 마음속에 떠오르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환단 vs 부동산]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대환단은 한번 먹으면 끝이지만, 부동산은 오래오래 임대수익을 안겨 준다!
천문석은 벽에 붙은 매물 용지를 쭉 살펴서 하나를 떼어 냈다.
10평대 단층 건물.
매매 가격은 10억.
예전이었다면 정신 나간 가격이지만, 지하터널이 뚫린 지금은 이것도 싸다.
바로 헌터 수표로 계약금을 걸고 대환단을 팔아서 잔금을 치르면 자신도 건물주가 된다!
천문석은 매물 종이를 들고 부동산으로 들어가려 했다.
이때 부동산에서 나오는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작은 건물 하나 없냐?”
“어? 분명 어제 거대 괴수 나타나서 매물 쏟아졌는데!?”
“그 매물 해뜨기 전에 이미 다 팔렸다더라.”
“뭐? 미친! 그게 말이 돼!?”
“중개인 말로는 밤새 계좌로 계약금에 잔금까지 전액 송금했대.”
“뭐야? 여기 지금 통신 안 되잖아?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이때 외국인 헌터가 말했다.
“그거 분명 한국인일 거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헌터들의 시선이 모이자 외국인 헌터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한국인들 빨리빨리 장난 아냐. 생각해 봐. 몬스터 웨이브 일어났다는 소식 전해지고 3일 짼 데 전투가 끝났잖아? 와! 이게 말이 되는 거냐?”
“하긴 그렇긴 해.”
“지금 도착하는 헌터들 황당할걸. 아니 뭔 몬스터 웨이브가 이렇게 빨리 끝나?”
“아침에 만난 사냥팀 애들은 내가 구라치는줄 알고 직접 확인한다고 고블린 평야로 갔어.”
“아무리 헌터 부대에 연합 레이드 팀이 움직였어도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주위 헌터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헌터 중에는 천문석도 있었다.
그렇다.
한국인들의 빨리빨리는 세계 최고다.
고블린 평야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 게 2일 전.
몬스터 웨이브를 뚫고 신동대문에 도착한 게 어제다.
그런데 오늘 새벽 전격전을 펼쳐 고블린 평야의 몬스터 웨이브를 멈췄다.
3일 만에 몬스터 웨이브를 정리한 거다!
‘와- 생각해 보니까. 진짜 미친 속도네.’
천문석은 감탄했다.
그리고 손에 들린 매물 종이를 봤다.
게다가 한국인은 부동산의 민족.
폭등의 조짐이 보이는데 매물이 남아 있을 확률은 낮았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확인해야 했다.
천문석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부동산에 들어가며 외쳤다.
“이 건물 지금 계약 가능합니까!?”
* *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김기태 헌터는 대답을 짐작한다는 듯 돌려받은 마석 탐지기를 흔들며 웃었다.
“어떤 미친 큰손이 새벽에 이미 낚아챘다더라. 매물 내놨던 집주인이 매물 올린 거 빼러 문 여는 시간에 부동산 왔는데!”
“왔는데?”
“부동산에 이미 잔금까지 전액 입금했다는 전화가 왔다고 하더라고! 아니! 그 밤중에 어떻게 계약금에 잔금까지 입금한 거야!? 여기선 인터넷 뱅킹 안 되는 거 아니었어!?”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김기태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었다.
“흐흐흐- 다 방법이 있지!”
“……!”
순간 천문석의 촉이 움직였다.
“……너! 그 웃음! 수상한데!?”
흐흐흐흐-
김기태는 음흉하게 웃으며 책상 위에 놓인 종이상자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뒤집었다.
테이블 위에 와르르 쏟아지는 서류뭉치!
서류에 적힌 글자를 보는 순간 천문석은 경악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
한두 개가 아니다. 최소 수십 건!
“설마!”
경악한 천문석의 시선이 닿는 순간, 김기태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너한테 정보 받자마자, 그동안 다진 인맥, 자금, 신용 기타 등등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싹쓸이했다!”
“……!”
천문석은 어제 정보를 전했을 때 김기태의 모습이 떠올랐다.
몬스터 웨이브 정리계획과 지하터널 개통을 알리자마자 눈을 번뜩이던 김기태!
길드를 만들 야망이 넘치던 놈이라 전투에서 한몫 건질 생각인 줄 알았는데……!
부동산 투기를 하다니!
순간 머리를 때리는 단어가 있었다.
‘밤새 매물을 싹쓸이한 큰 손!’.’
천문석은 벌떡 일어났다.
“와, 와? 와! 매물 싹쓸이한 큰손! 그게 너였던 거야!?”
“야, 진정해!”
김기태가 말리는 순간 천문석은 외쳤다.
“부러운 녀석! 하- 난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왜 긴 왜야! 자금이 없어서지! 으아악-.”
“…….”
천문석은 한참을 괴로워하다가 테이블 위에 놓인 마석 탐지기를 가리켰다.
“대박 난 김기태 헌터. 그 마석 탐지기 정제 마석 가격은 좀 깎아주면 안 되겠냐?”
“……뭐?”
“이번 전투 보상 나중에 기여분에 따라서 정산받는다고 하더라고! 젠장! 아까운 정제 마석만 날렸다! 이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
“…….”
김기태는 분통을 터트리는 천문석을 보며 내심 어이가 없었다.
알게 된 지 한 달 남짓 된 헌터, 천문석.
천문석은 여러 가지로 황당한 녀석이었다.
보통 자신의 정보로 타인이 대박을 쳤다면, 어떻게든 엉겨 붙으려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너무나 담백하게 정제 마석 값이나 깎아달라고 한다.
어수룩한 신입 헌터, 닳고 닳은 베테랑 헌터 모두와 전혀 다른 반응.
이 순간 김기태는 어째선지 유쾌해지고, 눈앞의 황당한 친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단호히 말했다.
“야, 정제 마석은 당연히 못 깎아주지! 너 헌터 격언 모르냐?”
“헌터 격언? 무슨 격언?”
“무기는 빌려 줘도 마석 탐지기는 안 빌려 준다는 격언 말야? 진짜 몰라? 내가 그렇게 소중한 마석 탐지기를 빌려 준 거야!”
“……그럼 정제 마석 말고 대신 이걸 주면 안 될까? 이게 마안이라고 진짜 귀한 건데…….”
천문석이 잡낭에서 마안을 꺼내는 순간.
김기태는 손을 들어 말을 끊고 단호히 말했다.
“정제 마석은 반드시 받을 거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를 가리켰다.
“대신 거스름돈으로 하나 골라라.”
“……뭐?”
“거기 서류에 사진 붙어 있어. 보고 마음에 드는 거로 하나 골라라. 그럼 그 건물 거스름돈으로 넘겨줄게.”
“…….”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내려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를 봤다.
상가 건물.
다세대 주택.
빌딩의 한 개 층 전체.
길드 사무실로 쓸만한 5층 건물.
……
수십 개의 부동산!
아무리 작은 거라도 몇억은 한다!
이걸 준다고!?
아니, 왜, 이걸 줘?
김기태 이 녀석 재벌 3세 뭐 그런 건가?
그러나 의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냥 준다는데 거절할 천문석이 아니었다.
천문석은 일기일원공을 끌어올리고 절정에 달한 기감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을 테이블 위에 가져가는 순간.
촤르르르-
패를 섞는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서류 더미!
“……!”
탁-
천문석의 손에 서류 더미가 달라붙었다!
이거다!
느낌이 아주 좋다!
“고맙다! 이걸로 할게!”
“너 지금 뭐한 거……!?”
천문석에게서 느껴지는 힘에 놀라던 김기태는 건네받은 서류를 보고 경악했다.
“빌딩 계약서!”
“와! 엄청난 우연이다! 대충 잡았는데 빌딩이 걸렸어!”
천문석이 부자연스럽게 놀라는 순간.
김기태는 어이없어했다.
“이게 왜 거기에 끼어 있어!?”
“하늘의 뜻 아닐까?”
김기태는 발끈했다.
“야! 인간적으로 빌딩은 고르면 안 되지!”
“……이거 우연인데 진짜로 안 되냐?”
“와! 이 날강도 같은 놈!”
김기태가 분통을 터트리려 하자, 천문석은 재빨리 말을 바꿨다.
“야, 장난이야 장난! 내가 설마 빌딩을 고르겠냐?”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5층 건물을 고르려 할 때.
빌딩 계약서에 딸려 올라온 서류가 툭 떨어졌다.
김기태는 떨어진 서류를 낚아채더니 훑어보고 천문석에게 건넸다.
“이게 네 운명인가보다. 이거 넘겨줄게.”
대지 20평, 2층 건물.
1층은 상가 2층은 주택이다.
사진을 보니 기억에 있는 건물이다.
어제 칠성파의 비밀창고로 갈 때 스쳐 지나간 건물이다.
작지만 광장에 접한 입지가 좋은 건물이었다.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이 멋진 새끼! 미래의 대형 길드 길드장, 김기태! 고맙다!”
이 순간 전생부터 이어진 오랜 꿈이 이뤄졌다.
안정화 권역도 아니고 미리찍어 둔 건물도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시작이 아주 좋았다.
천문석은 마침내 건물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