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48화 (249/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48화>

지휘용 장갑 버스.

정소라 중위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부대장 박찬석 준장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신동대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이렇게 치안청에서 처리 중입니다. 지하터널이 뚫린 광장은 장갑 버스 차벽을 설치해 접근을 막았고. 수직 통로에는 승강기를 설치 중입니다. 북쪽으로 뚫린 지하터널에는 10Km까지 수색을 마치고 출입 통제를 위한 바리케이드를 설치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알았다.”

박찬석 준장이 고개를 까닥한 순간, 정소라 중위는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시선을 옆으로 움직였다.

새하얀 머리카락 작은 몸, 전혀 군인 같아 보이지 않는 여자가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군용 강화 전투복 견장에서 빛나는 두 개의 별!

이것만이라면 평범한 예비역 소장.

이번 도로 건설계획에 참여한다는 예비역 출신 고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소라 중위의 옆에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헌터 부대 특임대 대원들이 있었다.

헌터 부대에 배속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서 있는 헌터 부대 특임대의 베테랑 대원들!

정소라 중위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렴풋이 여자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설마……?’

이때 박찬석 준장의 시선이 부동자세를 취한 특임대 대원에게 향했다.

“음! 상사. 자세가 아주 각이 잡혔어! 자네 이름이 뭔가?”

박찬석 준장이 오랜 친구에게 장난을 치는 순간.

‘뭐야, 이 새끼가. 왜 이래?’

특임대 선임상사는 목소리가 들려올 듯 띠꺼운 표정으로 박찬석 준장을 봤다.

그러나 지도를 보던 예비역 소장이 번쩍 고개를 드는 순간!

“상사! 이기찬!”

선임상사는 번개같이 차려자세를 취하고 관등성명을 외쳤다.

부대 사령관, 장관 앞에서도 뻗대는 특임대 선임상사의 각 잡힌 모습!

정소라 중위는 짐작이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게이트 전쟁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군에 있던 특임대 선임상사가 이런 모습을 보일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압도적 열세에서도 낙동강 전선을 지켜 낸 게이트 전쟁의 살아 있는 전설.

나이, 성별, 외모 모든 게 베일에 가려져 있던 그분이시다!

정소라 중위의 가슴이 벅차오르는 순간.

예비역 소장이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기찬! 맞아! 너 기억나! 3차 역습 때 통신선 들고 뛴 걔 맞지!”

“…….”

“그 옆에 너! 머리 좋게 생긴 녀석! 서울대 박사과정 밟다가 입대했다는 호석이!”

“…….”

“그리고 얼굴 삭은 너! 그 늙은 얼굴 보니 기억나네! 나이 속여서 입대했는데 아무도 몰랐다는 동석이!”

“…….”

이 순간 박찬석 준장과 특임대 선임 대원들.

오랜 전우들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대장님 전보다 더 심해진 거 같은데?’

‘이거 하나도 못 알아보시는데 괜찮은거야?’

‘원래 대장님은 평소에는 이름이랑 얼굴 매칭을 못하셨잖아?’

‘맞아. 헛다리도 잘 짚으셨고.’

‘아니, 그래도 바로 앞에서 얼굴을 보면서 딴사람을 이야기하는데…….’

‘……이거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

‘군대가 아니라 당장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신나게 헛다리를 짚고 있는 이세영 소장.

이세영 소장을 보는 특임대 선임 대원들의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생겨났다.

검은 폭풍, 이세영 특임 소장.

노화까지 역행하던 최고등급 각성자, 처음 봤을 때 10대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던 대장은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세고 각성력마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각성력과 수명을 깎아 싸운 결과였다.

자신들을 몇 번이나 구해 준 옛 상관의 쇠락한 모습에 특임대 대원들이 말을 잇지 못할 때.

반가워하던 이세영 소장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봤다.

“거기 창문 좀 열어 봐.”

바로 장갑 버스 창문이 열리고 지하터널의 건조한 바람이 쏟아지는 순간.

휘이이잉-

이세영 소장은 손을 들어 바람을 느끼고 음미하듯한 호흡 들이켰다.

건조한 바람에 실린 미약한 숲 내음.

마수와 몬스터의 체향.

그리고 너무나 분명한 전장의 냄새!

순간 이세영 소장의 머릿속에 쌓인 단편적인 정보들이 폭발하듯 떠올랐다.

고블린 평야의 몬스터 웨이브.

신서울과 신동대문을 잇는 지하터널.

강, 전진 거점에 모이는 수많은 헌터들.

참나무 숲에서 튀어나온 거대 사슴벌레.

신동대문에서 북쪽으로 뻗어 나간 지하터널.

……

그리고 이 정보가 하나로 조합되는 순간.

예지의 영역에 달한 검은 폭풍의 전투 감각이 번뜩였다!

검은 폭풍의 진가는 대규모 전투의 맥을 짚는 능력!

이세영 소장은 이번 전투의 맥을 짚었다!

“이 통로! 고블린 평야로 이어졌다!”

이세영 소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지도를 짚었다.

“출구는 이곳!”

천문석이 말했던 거대 괴수가 나타난 참나무 숲!

주위의 모든 시선이 지도에 모일 때.

이세영 소장은 낙동강 전선의 검은 폭풍으로 돌아가 명령했다.

“이곳이 이번 고블린 평야 몬스터 웨이브의 맥이다!”

“신서울의 연합길드, 헌터 부대에 바로 출동을 명령해라!”

“신동대문의 모든 병력과 헌터들을 헌터 캠프, 전진 거점으로 보낸다!”

“몬스터 웨이브의 맥을 끊는 순간! 단숨에 들이친다!”

이세영 소장은 눈앞의 옛 부하들을 보며 선언했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 내일 해가 뜨기 전에 해결한다!”

쾅-

이세영 소장이 테이블을 내리치는 순간.

박찬석 준장과 특임대 상사들은 일제히 차려자세를 취했다.

근거가 부족하고 허술해 보이는 작전이다.

그러나 이 작전을 짠 사람은 불리한 전황을 수없이 뒤집은 자신들의 대장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할 일은 예전과 똑같다.

소장님이 달리시면, 우리는 뒤를 따른다!

이세영 소장의 옛 부하들은 일제히 외쳤다.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전격전을 펼치는 듯한 몬스터 웨이브 소탕전이 시작됐다!

*   *   *

신서울의 연합 레이드 팀과 헌터 부대는 연락을 받자마자 급속 기동했다.

신서울 -> 신동대문 -> 고블린 평야.

세 지역을 하나로 잇는 지하터널을 통과해, 고블린 평야 안 참나무 숲에 병력을 전개한다.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길드의 정예 헌터들.

마경 토벌 장비로 완전무장한 기계화 헌터 부대.

두 집단이 참나무 숲 언덕에 대기 중일 때.

신동대문의 헌터들과 헌터 부대, 특임대는 고블린 평야 동쪽, 강에 마련된 전진 거점에 모이고 있었다.

지금 시간은 여명이 밝기 전 새벽!

불과 10시간도 안 돼서 전투 준비가 끝났다.

알 수 없는 공간 축약 마법이 걸린 지하터널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신서울과 신동대문의 병력을 전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신속하게 진행되는 상황에 감탄할 때.

참나무 숲에서 작전 시작을 알리는 신호용 마력탄이 솟아 올랐다.

휘이이이, 파아앙-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아 올라 선명한 불꽃을 수놓는 신호용 마력탄!

이 순간 참나무 숲의 헌터 부대 장갑 차량이 움직였다.

구으으응-

100여 대의 장갑 차량이 중화기로 마탄을 쏟아부으며 급속기동을 시작했다!

이 장갑 차량들의 목적은 반시계방향으로 고블린 평야를 이동하는 마수와 몬스터의 무리에 균열을 내는 것.

대형 마탄 사격이 쏟아지고 작은 균열이 발생하는 순간, 연합 레이드 팀이 이 균열을 파고들었다.

선두는 레이드 장비로 완전 무장하고 겹겹이 보호 마법을 받은 탱커들!

“가자!”

이지스 방패 세트를 착용한 메인 탱커가 외치는 순간!

탱커들은 단단한 쐐기가 되어 몬스터 웨이브에 생긴 균열을 파고 들어갔다.

이들의 목적은 몬스터 웨이브의 흐름을 끊는 것!

흘러내리는 강물을 막아 내듯 무모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대형길드의 수뇌부는 두말하지 않고 이 작전을 받아들였다.

이 작전 계획을 짜낸 사람은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 낸 살아 있는 전설이었으니까!

그리고 상황은 믿음대로 돌아갔다.

탱커들이 흐름을 멈추는 순간 몬스터 무리는 순간적으로 뒤엉켰다.

이 절묘한 타이밍.

반전한 장갑 차량이 곡괭이가 되어 뒤엉킨 몬스터 무리를 내리찍었다.

몬스터의 결속이 느슨해지는 순간, 연합 레이드 팀의 근딜이 쏟아져 들어갔다.

헌터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대규모 전투였으나 명령은 간단했다.

동료와 같이 움직인다.

강이 보일 때까지 멈추지 않고 걷는다!

무공, 육체, 오러, 초능력…….

수많은 계통의 각성 헌터들이 결속이 허술해진 마수와 몬스터를 박살 내며 전진하는 순간.

그 뒤로 쏟아지는 원거리 딜러의 화력!

마력 각성자의 광범위 메즈기가 쏟아지고.

사격 목표 확인용 신호탄이 사방에서 날아왔다.

뒤이어 터지는 외침.

사선 확인!

사선 확인!

……

그리고 엄청난 마탄 사격이 쏟아졌다.

타다다다당-

타다다다당-

마탄 각성자, 헌터 부대 병사들이 쏘아낸 수백 발의 마탄이 화망이 되어 반발장이 약화된 마수와 몬스터를 갈아버렸다.

이때 두 번째 신호용 마력 탄이 오르고.

휘이이이, 파아앙-

전진 거점의 헌터들과 병사들이 움직였다.

“하하하- 풍성한 잔치구나!”

“모두 쓸어 담으러 가자!”

구으으으응-

강화 철판을 덕지덕지 붙인 장갑 버스와 장갑 SUV 수백 대가 선두다.

수천에 달하는 신동대문의 헌터들이 특임대의 인도에 따라 수백 대의 마력 엔진 차량을 앞세워 서쪽으로 밀고 나왔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꿰뚫는 헌터 부대와 연합 레이드 팀.

동쪽에서 서쪽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밀어붙이는 신동대문의 헌터들과 특임대.

이들은 망치와 모루, 적의 대열을 꿰뚫는 기병이고 깔아뭉개는 성벽이었다.

화력은 몬스터 웨이브를 꿰뚫는 헌터 부대와 연합 레이드 팀이 강했다.

그러나 전과 대부분과는 단지 밀어붙이며 마탄을 쏘는 신동대문 헌터들 쪽에서 나왔다.

타다당-

화망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산발적인 사격이 이어졌다.

그러나 강대한 비늘 코뿔소가 장난처럼 픽픽 쓰러지고, 수백의 랩터 무리가 겁먹은 들개무리처럼 갈려 나갔다.

신동대문 헌터들은 엄청난 전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수와 몬스터들은 반발장이 사라진 것처럼 산발적인 마탄 사격에도 무너지고 있었다.

게이트 전쟁을 겪은 이들은 경험으로, 고등급 각성자들은 각성자 특유의 감으로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하나로 합쳐진 수많은 헌터와 군사들의 기세와 각성력이 마수와 몬스터의 기세를 내리찍고 반발장을 억누르고 있었다.

고대 전장의 기세와 현대의 무기가 합쳐진 압도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전투는 전장을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광활한 고블린 평야의 극히 일부러 한정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 웨이브!

말 그대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 무리에 한 줌의 병력과 헌터들이 파묻히는 순간.

지금의 우세는 간단히 뒤집히고 헌터들과 병사들은 순식간에 박살 난다!

그러나 지금 이 전장에서 큰 그림을 그린 것은 이세영 소장이었다.

10년의 넘는 시간 동안 열세에서도 끝까지 낙동강 전선을 지켜 낸 검은 폭풍.

노화마저 역행했던 각성력은 잃었지만, 예지에 달했던 전투 감각은 여전했다.

역대 최고의 레이드 커맨더, 이세영 소장은 빠르게 지도를 짚었다.

탁, 탁, 탁, 탁-

“이곳에 5분 간격으로 순차 포격을 한다.”

이세영 소장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정소라 중위는 바로 포대에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3개 포대 18문의 K9 자주포의 마력 포탄 TOT 포격이 시작됐다.

쿠으응-

쿠으으응-

대지를 뒤흔드는 진동이 터지고, 36발의 마력 포탄이 하늘로 쏘아졌다.

그리고 이세영 소장이 지정한 지점에 동시에 떨어져 폭발하는 순간.

콰아아아앙-

마력 포탄에 새겨진 엄청난 마력이 폭풍처럼 주위를 휩쓸었다.

랩터, 고블린, 늑대 마수 같은 자잘한 놈부터 검치호, 비늘 코뿔소 같은 강대한 놈들까지.

마수와 몬스터의 반발장이 단숨에 날아가 버리고 강철의 폭풍이 마수와 몬스터의 육체를 짓이겼다.

TOT 포격이 떨어진 장소마다 뻥 구멍이 뚫리듯 마수와 몬스터가 지워졌다!

광활한 고블린 평야에 가득한 마수와 몬스터를 생각하면 포격으로 많은 마수와 몬스터가 죽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포격이 몬스터 웨이브, 이 거친 흐름의 맥을 끊어 버렸다!

마력 포탄 포격이 이어질 수록 맥이 끊긴 몬스터 웨이브의 기세는 누그러지고.

사방에서 밀려 오는 마수와 몬스터의 흐름이 뚝뚝 끊겼다.

이때 동쪽으로 돌진하던 헌터 부대와 연합 레이드 팀.

서쪽으로 밀고 나오던 신동대문의 병사들과 헌터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이 순간 하나로 이어진 헌터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일제히 신호용 마력탄과 마탄, 각성력이 담긴 빛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우와아아아아-

파아아앙, 팡 팡 팡-

이들이 쏘아 올린 빛이 고블린 평야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선이 되었을 때.

이세영 소장은 마지막 명령을 했다.

“시계방향으로 움직여 모조리 갈아버린다!”

헌터 부대와 연합 레이드 팀, 신동대문의 헌터들.

수천의 헌터와 군인들이 만들어 낸 선이 시계 초침처럼 회전해 고블린 평야의 마수와 몬스터를 명령 그대로 갈아버렸다.

수천 발 마탄의 마력광이 전장을 밝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격이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전장을 때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수와 몬스터 무리가 와르르 무너질 때.

마수와 몬스터의 피어마저 지워 버리는 피 끓는 함성이 터지고 반발장마저 억누를 정도로 사기가 끓어올랐다.

전투의 기세가 폭발하듯 끓어오른 순간.

대형길드의 레이드 팀들이 돌진하고 그 뒤를 수천의 헌터들과 헌터 부대의 장갑 차량이 받혔다.

끼이이익-

고블린, 랩터 같은 개체는 약하지만 하나로 모이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몬스터들이 수천 발 마탄에 갈려 나갔다.

크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돌진하는 수백의 오크 무리를 레이드 팀이 정면으로 밀어붙였다.

콰아아앙-

충돌 순간 거대한 공성추가 되어 메인 탱커가 전진하고 그 뒤 한 몸처럼 움직이는 딜러들이 수백 오크를 박살 냈다.

그리고 산산이 흩어진 마수와 몬스터 무리에 쏟아지는 중화기 사격!

수많은 헌터와 병사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마력 포탄 포격에 북처럼 요동치는 고블린 평야를 달리고 달렸다.

쿵, 쿵, 쿵, 쿵-

어느새 몬스터 웨이브의 흐름은 완전히 멈추고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웨이브의 광기에서 벗어난 마수와 몬스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완전히 해가 떴을 때, 이세영 소장이 선언한 대로 고블린 평야의 몬스터 웨이브는 끝났다!

그리고 천문석은 수많은 마수와 몬스터의 사체 한가운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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