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47화>
“이걸 비밀로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천문석의 의문에 박찬석 준장과 이세영 선생님이 번갈아 대답했다.
“처음 접촉했을 때는 게이트 전쟁 중이라 정신이 없었고. 다음에는 이 종족의 존재를 비밀로 하고 거래할 생각이었다.”
“내가 손해배상금으로 받아온 금속의 물성이 엄청났거든.”
“맞습니다. 소장님이 받아오신 금속들 지금도 연구 중입니다.”
박찬석 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문석에게 말했다.
“그 금속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나이트 아머 기갑사단을 미국에서 도입할 수 있었거든.”
나이트 아머!
미국의 세계 패권을 상징하는 규격 외 마도구다!
박찬석 준장은 천문석의 놀란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성과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바로 두 번째 사절을 보내서 거래했는데. 이게 엉망진창이 됐다.”
“이 녀석들 철저한 자본 주의 신봉자들 같은데…… 가치판단 기준이 종잡을 수가 없어.”
피식 웃는 이세영 선생님.
“여러 종류의 돌과 금, 은, 보석, 온갖 종류의 상품을 가져갔는데…… 갑자기 평범한 사암 덩어리에 가장 큰 가치를 부여하는 거야.”
“그래서 다음에는 비슷한 사암 덩어리를 잔뜩 가져갔더니. 이번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천문석은 뒤에 일어났을 일은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나간다고 했다.
손실과 이득이 가늠이 안 되는 거래를 계속할 수는 없었을 거다.
“지금도 꾸준히 접촉은 하는데 이게 완전 로또라 매년 적자가 엄청나다. 정부에서도 기대는 접었는데…….”
“들어간 비용이 너무 크고. 혹시나 이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면 구조비용이 엄청나게 들어서…… 이 종족의 존재 자체를 비밀로 유지 중이다.”
박찬석 준장이 말을 마치자, 이세영 선생님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이것 말고도 많아. 게이트 전쟁 이후 몇 번 이세계 문명과 만났는데 항상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어서 발표하지 못했지.”
“…….”
역시 현실에 낭만이라고는 없었다.
이세계의 문명을 발견했는데 비용문제 때문에 발표를 못하다니!
이때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잇는 이세영 선생님.
“그중 가장 어이없으면서도 대단한 건 ‘제국 군단’이다. 얘네들 누군가를 찾고…….”
“……소장님! 그거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경악한 박찬석 준장이 다급히 말을 끊었다.
“왜? 이거 비밀 아니잖아?”
“그거 얼마 전에 특급 비밀로 지정됐습니다!”
“뭐, 이게 왜? 걔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못하잖아? 쓸모없는 가십거리 아니었어?”
이세영이 어이없어할 때, 박찬석 준장은 바로 천문석에게 말했다.
“이거 혹시라도 발설하면 외교 문제 된다! 이 사항 진짜 예민한 사항이다. 절대 절대로 어디서든 말해서는 안 돼!”
-제국 군단.
-이세계 문명.
-누군가를 찾는다.
별것 아닌 정보였는데도 박찬석 준장은 바짝 긴장해 몇 번이나 강조했다.
어차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바로 약속했다.
“여기서 잊겠습니다.”
삐이이이-
이때 차음벽 너머에서 신호가 들어왔다.
박찬석 준장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소장님. 이거 말했다는 것도 비밀입니다! 이거 그쪽 애들이 광범위 감청장비까지 돌리고 있습니다. 절대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걔들도 별나네. 왜 이걸 특급 비밀로 지정했지? 알았어.”
박찬석 준장은 이세영 선생님의 다짐을 받고 나서야 통신기를 잡았다.
“무슨 일인가?”
-신동대문에서 출발한 구조대가 나타났습니다.
* * *
정체불명의 거대 괴수가 신동대문 광장에 뚫은 수직 통로.
거대 괴수가 나타났을 때처럼 뜬금없이 사라졌을 때, 신동대문의 헌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거대 괴수가 최종 방어막을 뚫고 도시 안에 나타났는데 별다른 인명 피해가 없다니!
하늘이 도왔다!
신동대문의 헌터 부대는 바로 광장에 뚫린 수직 통로 주위에 장갑 버스 차벽을 설치하고 지하로 뚫린 통로 안을 조사했다.
수직 통로 안에는 북쪽과 서쪽, 두 방향으로 터널이 뚫려 있었다.
그냥 터널도 아닌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마력장을 품은 단단한 벽돌로 포장된 터널이!
“우선 입구를 막고 수색대를 보내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지하 터널에 들어온 헌터 부대 정소라 중위가 명령하려 할 때, 특임대의 선임들이 정소라 중위를 말렸다.
“이거 혹시 거기로 연결됐을지도 모른다! 우선 조사는 뒤로 미루자.”
“네? 거기라뇨?”
“있어. 아주 무서운 곳. 거기 잘못 가면 엄청난 청구서가 날아온다.”
“……청구서라고요?”
정소라 중위가 어이없어하는 눈으로 쳐다보자.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특임대 선임들.
“이거 절대 장난 아냐!”
“이놈들 엄청 무서운 놈들이야.”
“하- 보안 사항만 아니면 단숨에 이해시킬 수 있는데…….”
특임대 선임들이 답답해하며 다시 한 번 에둘러 설명하려 할 때.
지하통로를 멀리서 힘겨운 외침이 들려왔다.
“으아악- 드디어 도착했다!”
서쪽으로 이어지는 통로 방향.
어둠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헌터가 나타났다!
“뭐야!? 왜 저기서 사람이 나와!?”
헌터 부대 사람들이 깜짝 놀랄 때, 어둠 속에서 나타난 헌터가 다급히 외쳤다!
“거기, 허억! 신동대문! 헌터 부대 맞죠!? 거대 괴수! 허어억! 헌터가 거대 괴수한테 끌려 갔습니다! 당장 쫓아가야 합니다!”
이 순간 정소라 중위와 특임대 선임의 머리에 광장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김태우 중령.
마혁진 길드장.
다람쥐 가면을 쓴 헌터!
광장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거대 사슴벌레에게 끌려 갔다고!?
“아니, 얘네들이 아무나 끌고 가는 그런 놈들이 아닌데!?”
“맞아. 이놈들은 목표가 아니면 안 건들어.”
낙동강 전선에서 이 거대 곤충종족을 겪었던 특임대 선임들이 고개를 갸웃할 때.
각성력을 끌어올려 몇 시간 동안 달린 엠마는 모든 진심을 담아서 외쳤다.
“이 녀석은 진짜 더럽게 재수가 없어요!”
“당장 구하러 가지 않으면 어떤 대형사고가 터질지 모릅니다!”
* * *
“……그렇게 설득해서 이렇게 신동대문에서 너를 구하러 온 거야.”
신동대문으로 나아가는 마력 엔진 화물차 운전석.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끝낸 엠마는 주위에 가득한 장갑 SUV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야, 그게 말이 되냐! 더럽게 재수 없는 놈이라니까! 바로 구하러 출발했다고? 구라치고 있네!”
천문석이 어이없어하자, 엠마는 즉시 반박했다.
“고블린 잡다가 눈표범한테 습격당하고. 그걸 피해 도망치다가 몬스터 웨이브 만나고. 그걸 피하니까 거대 괴수까지 나왔다니까. 그 살벌한 특임대 군인들도 감탄하더라!”
“뭐, 감탄? 무슨 소리야?”
흠, 흠-
이 순간 엠마는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걸걸한 특임대 군인의 음성을 흉내 냈다.
“와 그 헌터 뭐가 그렇게 재수 없어!? 그러고도 살아 있다고?”
엠마는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빵 터져서 연신 핸들을 내리치며 웃었다.
탁, 탁, 탁-
흐흨흨크킄-
“…….”
이 순간 화물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천문석은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신동대문에 와서 여러 일 거리를 처리할 때는 평범했다.
그런데 마지막 일 거리, 고블린 마비독을 수집할 때 사건이 터졌다.
분명 시작은 최약체 몬스터 고블린을 잡아 마비독을 수집하는 거였는데…….
스노우볼이 구르고 굴러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고블린 사냥 -> 붉은 화살 발견 -> 눈표범 등장 -> 몬스터 웨이브 발생 -> 거대 괴수 출현 -> 몬스터 웨이브 돌파
고블린 평야를 떠나며 스노우볼이 멈추는가 했는데.
신동대문에 와서도 스노우볼은 굴렀다.
-신동대문 도착 -> 붉은 화살 범인 추적 -> 분노한 헌터들 -> 삼합회 망함 -> 칠성파, 야쿠자 망함 -> 광장에서의 깃발전 -> 거대 괴수 또 출현 -> 거대 괴수 등 위에서의 2차전 -> 다람쥐 마수 등장 -> 김 중령, 마혁진 아작남 -> 우주로 뻗은 빛의 길 -> 일기일원공의 극의, 천원검 -> 열사의 모래사막 등장 -> 지하터널 개통 -> 신서울 도착
지난 며칠간을 되짚은 순간 천문석은 어이가 없었다.
‘뭐야? 뭐가! 이따위로 얽혔어!?’
분명 시작은 평범한 고블린 사냥이었는데, 상상조차 하지 못한 온갖 사건·사고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그 결과.
고블린 평야에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고, 신동대문의 삼합회, 칠성파, 규슈 야쿠자가 망했다.
김태우 중령과 마혁진은 이세계의 사막에 떨어지고, 신서울과 신동대문을 잇는 지하터널이 뚫렸다.
적예의 나뭇가지 검이 사라지고, 일기일원공의 극의를 미리 보고, 다람쥐 마수에게서 깨진 마안을 받았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어이없게도 고블린을 사냥하면서 발견한 ‘붉은 화살’이었다!
직접 사건에 휘말려 구를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뒤돌아보니…….
진짜 어이없을 정도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엉망진창 난장판이 됐다!
몸 성히 이 난장판에서 빠져나온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
천문석이 한참이나 말없이 있자, 엠마는 피식 웃으며 천문석의 어깨를 툭 쳤다.
“어이 부사장님! 이제 슬슬 운 없는 거 인정해라. 너 헌터 부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거야. 더럽게 운 없는 헌터로. 크크킄-.”
순간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헛웃음부터 터트렸다.
하-
“……내가 운이 없다고?”
천문석은 웃으며 잡낭에 손을 넣었다.
두 가지가 손에 잡혔다.
매끄러운 동전과 표면이 깨진 구슬.
이번 난장판에서 거둔 수확.
검은 동전과 마안(魔眼)이다!
검은 동전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별 가치가 없어 보이니 기각.
천문석은 잡낭에서 손을 꺼내 엠마 앞에 붉은빛을 품은 구슬, 마안을 내밀었다.
“야, 이게 뭔지 알아? 이거 엄청 귀한 거야! 내가 정말로 운이 없으면 이런 걸 얻었겠냐?”
“그게 뭔데? 상급 마석이라도 되냐?”
엠마는 문득 고개를 돌렸다가 유리구슬 안에 담긴 붉은빛 눈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야!? 이거 나랑 눈이 마주쳤어!”
하하하-
천문석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 눈 보면서 말 걸면 더 놀랄걸!?”
“뭐?”
엠마는 바로 천문석이 말한 대로 하고 경악했다!
“……!”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
‘ㅁㅁ ㅁㅁㅁ.’
이 섬뜩한 소리를 듣는 순간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전신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엠마는 깜짝 놀라 외쳤다.
“야, 이거 뭐야? 아이템? 마력 도구? 이거 정체가 뭐야!?”
깜짝 놀란 엠마의 모습에, 천문석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거 마안이라고 하는데, 엄청나게 귀한 거다.”
“마안? 이게 그렇게 귀한 거야?”
엠마는 놀란 얼굴로 연신 마안을 힐끗거렸다.
천문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이건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귀한 물건이다!”
요마괴이의 정수, 마안은 그냥도 귀하지만, 지금 천문석의 손에 있는 마안은 더욱 희귀한 물건이었다.
천문석은 손에 들린 마안을 자랑스레 들어 올렸다.
마안은 엄청난 강도를 지녀 부서트리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혹시 손상되면 그 순간 정수가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군데군데 깨진 상태로 존재하는 마안은 천문석도 처음 봤다.
게다가 이 마안에 담긴 사념도 보통의 마안과는 달랐다.
이 사념은 완전히 맛이 간 상태다!
원래대로라면 마음을 통해 말을 거는 순간, 마안에서 전해진 사념이 정신을 오염시킨다.
그런데 이 마안의 사념은 말을 걸면 섬뜩한 심상으로 몸을 시원하게 해 준다!
끊임없이 주위 존재를 홀리는 마안의 사념이 이렇게 맛이 가다니 이것 또한 처음이었다.
이 유니크한 마안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과 비슷했다.
슈프림 벽돌.
샤넬 부메랑.
금가루 화장지.
프라다 종이 클립.
……
가격은 비싼데 사용가치는 보통의 물건과 다를 것 없는.
이 마안은 이런 물건들과 비슷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마안이었다!
정수를 담은 그릇이 깨지고, 담긴 심상이 맛이 가서 쓸모가 없는 마안!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엠마는 마안의 신기한 모습에 혹한 표정이 됐다.
“신기하긴 한데…… 이게 그렇게 귀한 거라고?”
“당연하지! 이런 마안은 두 번 살아도 보기 힘들어!”
천문석은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건 100% 사실이었다!
이 마안은 전생과 현생, 두 번의 삶을 사는 자신도 처음 보는.
‘무가치한‘마안이었으니까.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