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44화>
천문석, 눈표범 무리, 다람쥐 니케.
셋은 같은 방향으로 지하통로를 달렸다.
그리고 곧 천문석은 깨달았다.
‘지하통로 이쪽은 막혔다!’
결국, 눈표범 저놈들을 뚫어야 하는 거야!?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생각지도 않은 광경이 눈앞에 보였다.
비스듬히 하늘을 향해 뚫려 있는 통로!
막혀 있어야 할 통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통로 안으로 들어가자 어떻게 된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절한 듯 쓰러져 있던 거대 사슴벌레!
이 녀석이 어느새 깨어나 비스듬히 대각선 위로 조심조심 땅을 파고 있었다.
이렇게 운이 좋다니!
천문석은 재빨리 거대 사슴벌레가 뚫고 있는 통로를 달렸다.
그리고 천문석을 따라 달리던 새끼 다람쥐 니케도 이 모습을 봤다.
킥, 키킼킼-!
니케가 우는 순간, 지하통로를 울리는 거대한 울음소리!
구으으으으응-
띠디디딛띠띠-
도망가기 위해서 몰래 지상으로 땅을 파던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는 깜짝 놀랐다.
폭군이 돌아왔다!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는 더는 소음은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터널을 뚫었다.
콰르르릉-
거대한 톱날 집게가 단단한 땅에 박히고.
부르르르-
거칠게 진동하는 순간 단단한 흙과 바위가 와르르 부서져서 쏟아졌다.
이 순간 황금 풍뎅이의 황금빛 마력광이 터져 나오고.
쏟아지던 흙과 바위가 그대로 단단한 벽돌이 되어 통로 사방에 고정됐다.
쿠르르르릉-
거침없이 땅을 뚫고 올라가는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통로를 달리는 천문석과 눈표범 무리, 니케는 깨달았다.
“지상으로 통로가 뚫리는구나!”
크아, 크아앙-
킥, 킥킼-!
‘부하들이 도망친다!’
다음 순간 셋은 동시에 움직였다.
핫-
천문석이 내력을 끌어올려 미끄러지듯 쏘아지고.
크아, 크아앙-
눈표범 무리가 안간힘을 다해 경사로를 뛰었다.
타다닥, 타다닥-
그리고 니케가 펄쩍 뛰어 벽을 밟고 순식간에 치고 나갔다.
이렇게 모두가 마지막 힘을 끌어내어 달릴 때.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스카라베 왕국의 두 채권 추심원도 사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단 한 번 사용 가능한 고향으로 길을 여는 대마법 통로가 실패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저 폭군에게서 도망칠 방법이 없었다!
당장 지상으로 길을 뚫고 폭군에게서 도망쳐야 한다!
구으, 구으으-
띠딛디디디디-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 일족에게 ‘빛‘이 있다면, 스카라베 왕국에는 ‘금력(金力)‘이 있었다.
이 순간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두 채권 추심원은 외근을 나오면서 받은 스카라베의 금력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의 몸에서 황금빛 모래알갱이, 금력이 흩날렸다.
스카라베의 금력이 사라지면서 둘의 모습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그 거대한 몸이 조금씩 작아지는 거대 사슴벌레, 찬란하게 빛나던 황금빛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황금 풍뎅이.
이걸 본 니케가 다급히 외쳤다.
키키킼킼키키킼-
‘안 돼! 더 작아지면 복수를 못하잖아!’
‘내 부하 하늘 고래! 부하 찾아야 해!’
‘도토리 도둑놈! 내 보물 도토리!’
‘나뭇가지! 그거 주고 가야지!’
니케는 안절부절주위를 살피며 엉망진창인 외침을 쏟아 냈다.
이때 비스듬히 뚫리는 통로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마력광과는 다른 자연의 빛!
경사로를 달리는 모두는 직감했다.
‘지상! 밖으로 길이 뚫렸다!’
이 순간 커다란 진동과 함께 대지의 마지막 한 꺼풀이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릉-
천문석은 무너지는 토사를 피해 빛이 쏟아지는 구멍으로 뛰었고, 니케는 눈을 번뜩이며 달리던 벽에서 펄쩍 뛰어 천문석에게 달려들었다!
앗-
천문석이 본능적으로 피하는 순간.
킼-
니케는 천문석의 검대에 걸린 나뭇가지를 물었다.
“어!?”
이 순간 다시 한 번 몸을 날리는 니케!
탁, 타다다탁-
니케는 번개같이 천장을 달려 빠르게 작아지는 거대 사슴벌레 위로 뚝 떨어졌다!
구으으-
띧띠띧-
깜짝 놀란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가 울부짖는 순간.
킥, 키키키킼-
니케가 분노한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이 분노에 담긴 갈망에 나뭇가지에 담긴 하늘 고래의 힘, 념(念)이 응답했다.
간절한 바람은 인과를 잇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렇기에 바람을 현상에 구현하는 하늘 고래의 념은 대마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돼! 더 작아지면 복수를 못하잖아!’
‘내 부하 하늘 고래! 부하 찾아야 해!’
‘도토리 도둑놈! 내 보물 도토리!’
‘복수, 하늘 고래, 보물 도토리.’
니케의 간절한 바람에 나뭇가지, 퐁퐁검에 남겨진 하늘 고래의 념이 반응했고.
마침 퐁퐁검에는 니케가 불어넣은 케페니안의 빛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늘 고래의 념‘과 ‘케페니안의 빛‘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파아아앙-
퐁퐁검에서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오는 순간.
하늘 고래의 념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니케의 갈망을 해결할 수 있도록 인과를 이었다.
그 결과 케페니안의 빛과 스카라베의 금력을 모두 잃은 셋.
니케.
황금 풍뎅이.
거대 사슴벌레.
3인조 파티는 ‘복수, 하늘 고래, 보물 도토리.’ 니케의 이 모든 갈망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으로 연결됐다.
파아아앙-
섬광이 터져 나오고 섬광이 사라졌을 때.
3인조 파티는 지하통로가 아닌 다른 공간에 있었다.
휘이이이-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오는 화분이 가득한 곳.
그르르르-
바퀴 굴러 가는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킥-?
구으-?
띠딛디-?
니케, 작아진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셋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살필 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압- 엄청난 힘이 솟는다! 내가 특급 헌터다!”
키킼-!?
* * *
지상으로 나오는 타이밍에 번개같이 몸을 던진 새끼 다람쥐!
천문석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으나, 이 새끼 다람쥐가 노린 건 자신이 아니었다.
검대에 걸린 나뭇가지, 퐁퐁검!
다급히 손을 움직였으나 손은 허공을 가르고.
탁, 탁-
새끼 다람쥐는 몸을 박차고 뛰어 거대 사슴벌레 위로 도망쳤다.
“야, 그거 가져가면 안 돼!”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킥, 키키키킼-
새끼 다람쥐가 분노한 울음소리를 냈고.
파아아아앙-
엄청난 섬광이 터졌다.
섬광이 사라졌을 때 무시무시한 새끼 다람쥐는 보이지 않았다.
다람쥐뿐만이 아니었다.
거대 사슴벌레, 황금 풍뎅이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하터널에서 빠져나온 천문석 주위에는 나무와 수풀만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어이없어하는데 문득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있었다.
끼잉, 끼이잉-
며칠 만에 지하터널에서 빠져나온 삼십여 마리의 눈표범 무리가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이 순간 천문석과 눈표범 무리는 서로를 봤다.
천문석이 흠칫 놀라는 순간.
눈표범 무리도 흠칫 놀랐다.
수십 마리의 마수!
천문석이 전투를 대비해 내력을 끌어올릴 때.
눈표범 무리의 시선이 천문석에게서 숲에 뚫린 지하터널로 움직였다.
천문석, 지하 터널을 번갈아 보던 눈표범 무리는 재빨리 몸을 돌려 숲 속으로 도망쳤다.
“……뭐야?”
천문석이 생각지 못한 상황에 당황할 때.
크아, 크아앙-
도망치던 새끼 눈표범이 문득 천문석을 향해 포효했다.
그러자 우두머리 눈표범이 재빨리 달려와 새끼의 목덜미를 물고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갔다.
깨에엥-
“……이 녀석들 뭐야. 왜 그냥 가지?”
모든 눈표범이 순식간에 숲 속으로 사라졌다.
공격성이 엄청난 마수 무리가 혼자 있는 인간을 두고 도망치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30마리가 넘는 눈표범 무리와 싸우지 않고 끝났으니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눈표범 무리는 자신이 두려워서 도망친 게 아닌 것 같았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닌 더러워서 피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
천문석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기분은 좀 이상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지구와 마찬가지로 해가 지는 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초거대 사슴벌레가 뚫은 지하터널은 신동대문 광장에서 서쪽 방향으로 뚫렸다.
신동대문에서 서쪽으로 가면 신서울이 나온다.
거대 사슴벌레의 속도를 생각하면 2, 3일 길어도 5일 안에는 신서울이 나올 것이다.
“하, 언제 돌아가냐.”
천문석은 한숨을 내쉬며 숲을 걸었다.
그리고 숲에서 나오는 순간 봤다.
높게 솟은 성벽과 이 위에 깔린 수많은 헌터들.
그리고 숲을 향해 겨눠진 대형 마력건!
“……성벽? 헌터? 마력건!?”
천문석은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여전히 성벽이 있었다.
그것도 눈에 익은 성벽!
지하통로를 달린 건 길어야 4, 5시간 남짓!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면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성벽이 바로 앞에 있었다!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성벽 위 확성기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서울 치안청이다! 땅을 뚫고 나온 신원 미상자는 정체를 밝혀라!”
이 순간 천문석은 이곳이 진짜 신서울이라는 걸 깨달았다.
확성기!
목소리가 성벽 위에 설치된 확성기에서 나왔다!
전자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게이트 안정화 권역.
이곳은 광화문 게이트가 있는 거점 도시 신서울이 맞았다!
“……이거 설마!”
천문석은 고개를 돌려 숲 속에 뚫린 구멍을 봤다.
지하터널!
헌터 부대, 대형길드 연합.
헌터부, 해외 자본.
수많은 세력이 힘을 합쳐 뚫으려고 했던 이세계 도로.
그 첫 번째 단계 신서울에서 신동대문을 잇는 도로가 방금 뚫렸다!
위험한 지상이 아닌 안전한 지하 터널, 게다가 25톤 덤프트럭 8대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넓은 폭으로!
“와- 이게 이렇게 뚫린다고!? 어, 이거!”
탄성을 터트리던 천문석의 뇌리를 스치는 한 가지 사실!
“하- 시바! 신동대문에 대출을 껴서라도 상가를 샀어야 했는데!”
신서울과 지하 터널로 연결된 이상 신동대문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기정사실이었다!
“으아아아악- 젠장!”
천문석이 참을 수 없는 아쉬움에 괴성을 지르는 순간.
신서울의 성벽 위에서 깜짝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거기! 헌터! 찬호 맞지! 내 제자! 이찬호!”
“……!”
이 확신 어린 헛다리!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감이 왔다.
바로 고개를 들어 성벽 위를 봤고, 그곳에는 생각했던 그분이 계셨다.
작은 몸, 새하얀 머리카락.
얼굴에 가득한 너무나 환한 미소.
신나게 손을 흔드시는.
이세영 선생님.
“……아니, 선생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이세영 전 교장 선생님은 군용 강화 전투복을 입은 채 신서울의 성벽 위에 있었다.
그리고 이세영 선생님 주위에 가득한 군인과 헌터들!
이들을 보는 순간.
천문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나하나가 대단한 강자들!
장비한 마력 무구와 아이템, 풍기는 기세에서 이들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마경을 밀어 버리기 위해서 모였다는 헌터 부대와 대형길드의 연합 레이드 팀이다!
이때 이들 가장자리, 어쩐지 낯익은 분위기의 헌터 두 명이 보였다.
파스스슥-
형태가 뭉개지는 카멜레온 은신 망토를 입은 헌터.
한번 봤던 극검의 왕관, 이지스의 방패를 착용한 탱커로 보이는 헌터.
둘은 천문석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다람쥐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천문석은 얼굴을 가린 두 사람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리온 길드의 암살검 한경석 그리고 탱커 최후식이었다.
“이렇게 만나네. 하-.”
천문석이 웃을 때.
이세영 선생님의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내 제자. 찬호는 내가 보증해! 당장 문 열어!”
선생님.
가면을 썼는데 어떻게 알아보신 건가요?
게다가 찬호라니요? 그분은 누구신가요?
전에 학교에서는 이인임이라고 하시더니…….
“이세영 선생님…… 여전하시군요.”
다시 만난 이세영 선생님은 예전과 똑같으셨다.
언제나 헛다리를 짚으시면서도 학생들에게 끝없는 믿음을 보여 주시던 선생님.
천문석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선생님. 전직 교장 선생님이 보증할 테니 문을 열라고 한다고 게이트 거점 도시의 문이 열릴 리가…….”
있었다!
구으으으응-
마력 엔진 구동 음과 함께 겹겹이 발동된 마력회로가 해제되고 신서울 성문이 열렸다!
“아니, 이게 왜 열려!”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열린 성문 너머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군용 장갑 차량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선두 차량에는.
“찬호! 수류탄 잘 던지던, 내 제자 이찬호!”
신나게 손을 흔드는 이세영 선생님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