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43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던 새끼 다람쥐가 무언가에 깜짝 놀라서 도망치고 한참 후.
마혁진과 김태우 중령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 사막의 모래 산을 오르고 있었다.
“헉, 허헉-”
“허억, 헉-”
숨을 몰아쉬며 무작정 달리던 두 사람은 모래 산이 무너지며 데굴데굴 굴렀다.
으아악-
흐어어-
액상화된 모래 위를 구른 두 사람이 떨어진 곳은 거대한 나무가 줄줄이 그늘을 드리운 커다란 오아시스였다.
첨벙.
오아시스에 떨어지는 순간 정신을 차린 두 사람.
마혁진과 김 중령은 이제야 제대로 주위를 살피고 깜짝 놀랐다.
"여긴 어디야?!"
"사막? 오아시스?!"
지하통로를 달리는 거대 사슴벌레 위에 있었는데….
무작정 달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사막의 오아시스에 있다!
이 순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외침.
"균열?!"
"던전!?"
두 사람의 얼굴에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된 거야? 너 기억나는 거 없냐?"
김 중령의 물음에 고개를 젓는 마혁진.
"아까 지하통로에서 그 다람쥐 마수에게 물린 게 마지막 기억이다."
김 중령은 흠칫 놀라 전신을 덜덜 떨었다.
다람쥐 마수!
상상조차 하지 못한 엄청난 고통을 준 마수!
그 마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공포에 떨렸다.
김 중령은 애써 두려움을 떨치고 말했다.
"아마도 아까 지하통로에 균열이 생겨서 마경으로 이어진 거 같다. 구조대를 부르겠다."
김 중령은 재금 그룹에서 납품받은 헌터용 무전기의 채널을 구조 채널로 바꾸고 눌렀다.
궁-
순간 하늘로 쏘아지는 구조 신호를 담은 마력 파동!
"다행히 오아시스가 있으니.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거다."
마혁진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동대문에서 일어난 혼란의 결말은 알 수 없는 마경에 떨어지는 거로 끝났다.
구조대가 와도 돌아간다면 긴 재판이 시작되리라.
그러나 어떻게든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무마할 방법은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꼭 나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
칠성 길드를 박살낸 그놈을 아작내야 한다!
마혁진이 이를 가는 순간, 김 중령도 이를 갈았다.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동시에 한 이름을 말했다.
"이세기!"
"이세기!"
"돌아가서 그 새끼를 조져놓을 때까지."
"우리는 같은 편이다."
탁-
가볍게 주먹을 맞부딪히는 마혁진과 김태우 중령.
...
이 순간 김 중령이 쏜 구조 신호를 담은 파력 파동이 스카라베 왕국, 사막의 주민들에게 포착됐다.
사막의 거상부터 가장 아래 일용직 주민들까지 모두는 깨달았다.
손님이 왔다!
악소문이 퍼질 때로 퍼져 새로운 손님이 오지 않은 지 오래된 스카라베 왕국.
그중에서도 악평이 자자한 열사의 사막에 새로운 손님들이 왔다!
사막의 주민들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부우우웅-
하늘을 날아가는 황금 풍뎅이와 하늘소.
쓱, 쓱, 쓱-
가볍게 모래 위를 달리는 사슴벌레, 집게벌레.
쏴아아아-
돛을 펼친 모래배를 타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차원 유랑민들.
세계의 나무의 뿌리에 존재하는 스카라베 왕국에는 토착 종족 말고도 수많은 차원에서 흘러들어온 다양한 종족이 있었다.
이들 모두는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신선한 음식과 시원한 공기, 뜨거운 햇볕을 가릴 차양과 천막, 담요를 가득 짊어지고 한곳에 모였다.
그리고 '신호'가 오길 기다렸다.
이때 오아시스의 김태우 중령과 마혁진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어느새 반딧불이가 한 마리씩 움직이고 있었다.
반딧불이들은 두 사람을 살펴 평균적인 소비량을 계산했다.
흐읍, 후-
숨 쉬는 공기를 계산하고.
벌컥, 벌컥-
마시는 오아시스의 물을 확인하고.
콰직, 콰지직-
잘라내는 나무, 짓밟는 풀 하나하나를 모두 기록했다.
스카라베 왕국의 악명높은 세리, 반딧불이들은 기록을 끝내자.
두 손님이 여왕 폐하께서 애타게 찾고 있는 친구인지 확인했다.
툭, 투툭-
김 중령과 마혁진의 머리 위에서 비처럼 떨어지는 바짝 마른 약초 잎.
"뭐야, 풀?"
"풀이 갑자기 하늘에서 왜 떨어져?"
두 사람은 쏟아진 약초 잎을 털어냈다.
이 약초를 엄청 좋아하는 여왕 폐하의 친구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친구가 아니란 걸 확인한 반딧불이들은 ‘신호’를 보냈다.
깜빡, 깜빡-
신호가 오는 순간 대기 중이던 수많은 사막의 주민들이 일제히 출발했다.
신선한 음식과 시원하고 값싼 공기, 뜨거운 햇볕을 가릴 차양과 천막, 담요.
광석을 캐낼 곡괭이와 뜰채. 낚시 도구와 의복까지.
손님에게 필요한 수많은 물품을 가득 짊어지고 앞다퉈 손님에게 달려오는 스카라베 왕국, 사막의 주민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유료'였다.
스카라베 왕국은 숨 쉬는 것마저 돈을 받는,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였으니까.
* * *
"하- 언제 돌아가냐?"
천문석은 신동대문 방향으로 뚫린 끝이 보이지 않는 지하통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디 한군데 다친 곳 없이 무사하고, 너무나 불길했던 열사의 사막에서도 재빨리 빠져나왔다.
신동대문으로 돌아가려면 이 길고 긴 통로를 다시 지나야 하지만, 다행히 이 통로에는 마수도 몬스터도 없었다.
거대 사슴벌레가 달린 속도로 봐서 2, 3일은 뛰어야 신동대문이 나오겠지만, 그 전에 신동대문에서 출발한 구조대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대에는 자신의 부하직원 엠마가 있을 거라는 감이 왔다.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신동대문을 향해 출발했다.
이 순간 은밀히 움직이는 새끼 다람쥐가 있었다.
니케!
니케는 천문석의 검대에 걸린 나뭇가지를 뚫어지게 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조심조심 움직였다.
‘방심한 지금이 기회다!’
펄쩍 뛰어 아프게 물어서 재빨리 케페니안의 빛과 친구의 힘이 담긴 나뭇가지를 되찾아야 한다!
이때 지하통로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크아아앙-
천문석이 깜짝 놀라 멈춰설 때.
니케는 펄쩍 뛰어 재빨리 물었다!
딱-
그러나 본능적으로 움직여 니케의 공격을 피해낸 천문석!
"뭐야?!"
천문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귀여운 새끼 다람쥐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귀여운 외모와 달리 무시무시한 마수!
마혁진과 김 중령을 한방에 제정신이 아니게 만든 그 다람쥐다!
천문석은 재빨리 일기일원공을 끌어 올리고 생사팔문의 보법을 펼쳤다.
이 순간 다시 한번 번쩍 뛰어오르는 니케!
천문석은 생사팔문의 보법으로 꺼지듯 공간을 뛰어넘어 이 공격을 피했다.
딱-
니케의 이빨은 다시 한번 허공을 갈랐다.
이 순간 주르륵- 등 뒤로 흘러내리는 식은땀!
어이없게도 이 다람쥐의 공격은 마치 자연체를 이룬 고수의 일수처럼 예측이 안 됐다!
천문석은 싸울 생각을 버리고 지하통로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니케도 천문석과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두 번이나 공격이 실패하다니!
삼색 고양이와 싸울 때 말고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깜짝 놀란 니케는 타다닥 바닥을 달려 펄쩍 뛰어올랐다.
휘이이이잉-
아직 지하통로에 남아있는 스카라베 왕국의 열풍!
니케는 순식간에 열풍을 타고 날아올라 천문석을 향해 날아갔다.
킥, 키킥-
'내 부하! 내 빛! 그 나뭇가지 주고 가! 그냥 가면 안 돼!'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다람쥐 울음소리에 천문석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야! 왜 따라오는데!"
이때 섬광이 터지고 니케가 공간을 뛰어넘었다.
파슥-
천문석의 앞에 뚝 떨어지는 니케!
천문석이 다시 한번 생사팔문의 보법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킼키킼, 키키킼-
다급한 울음소리가 터지고 새끼 다람쥐가 손을 들어 연신 굽신거렸다.
"..."
천문석이 자신도 모르게 멈칫하자, 니케는 재빨리 두 팔을 번쩍 들었다.
파슥, 파스슥-
순간 팔 아래 생겨 날락말락 하는 빛의 날개막!
킥, 키킼-
니케가 안간힘을 쓰자 이 빛의 날개막에서 여러 물건이 튀어나왔다.
툭, 두두둑-
니케는 재빨리 떨어진 물건을 손으로 주워 건네는 시늉을 했다.
천문석은 새끼 다람쥐가 원하는 걸 바로 알아챘다.
"...교환하자고?"
순간 새끼 다람쥐는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꼬리로 검대에 걸린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이거랑 바꾸자고? 퐁퐁검?"
킥-!
새끼 다람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천문석은 문득 고개를 내려 새끼 다람쥐가 꺼내 놓은 물건들을 살폈다.
한입 먹은 나무 열매, 작은 씨앗 한 무더기.
반짝이는 조약돌.
동글동글한 씨앗.
깨지고 금 간 유리구슬.
...하나같이 잡동사니 같았다.
이때 천문석의 눈치를 보던 새끼 다람쥐가 꼬리를 움직였다.
킥, 킼키-
잡동사니를 밀어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새끼 다람쥐.
'뭐지, 이 앵벌이 같은 모습은?'
천문석은 어이없어하며 문득 유리구슬을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유리구슬.
이 투명한 구슬 안에 타원형의 붉은 빛이 들어있었다!
“이거 설마!”
천문석은 재빨리 이 붉은빛을 향해 심상으로 말을 걸었다.
‘야, 너 이름이 뭐냐?’
‘ㅁㅁㅁ!’
이 순간 타원형의 붉은 빛 가운데가 반으로 쪼개지고, 이 안에서 요기어린 청록색 안광(眼光)이 쏟아졌다!
순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섬뜩한 심상!
'ㅁㅁ ㅁㅁㅁ.'
그러나 심상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천문석은 유리구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유리구슬은 경지에 오른 요마괴이의 사념이 담긴 정수.
마안(魔眼)이다!
사공, 마공, 주술공을 익힌 이들에게는 보물 중의 보물.
마안은 여기서 이렇게 잡동사니처럼 굴러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엄청난 내구성을 지닌 마안 곳곳이 누가 깨문 것처럼 파여 있고, 안에 담긴 사념은 어떻게 된 건지 완전히 맛이 가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건가?'
천문석이 유리구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자 니케는 안도했다.
킥, 키킥-
'역시 인간은 희한하다니까. 맛없는 사탕을 좋아하다니!'
니케는 공손히 두 손을 내밀고 울었다.
킥, 키키킥-
'이제 나뭇가지 줘!'
이때 지하통로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
크아아아-
어쩐지 힘겨운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오고.
쓰윽, 쓰으윽-
거대 사슴벌레가 뚫어놓은 지하통로.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마수가 나타났다.
"어…?"
천문석은 이 마수들을 본 순간 어이가 없었다.
꼬질꼬질 흙과 먼지로 뒤덮인 새하얀 몸.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지 침이 말라붙은 입과 축 늘어진 꼬리.
걷는 게 아니라 쓰윽, 쓰윽- 기듯이 다가오는 눈에 익은 삼십여 마리의 마수 무리는.
눈표범이었다.
선두의 덩치가 큰 놈과 그 옆의 작은놈, 둘은 특히 눈에 익었다.
끈질기게 따라붙은 우두머리 눈표범.
그리고 방패에 묶어서 미끼 삼아 끌고 달린 새끼 눈표범이다.
“...”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멀고 먼 고블린 평야에서 만났던 눈표범 무리.
그놈들이 고블린 평야, 커다란 강, 넓은 황야를 지나 신서울 방향으로 뚫린 지하통로에 나타났다!
천문석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와- 너희들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
지하통로에 들어온 후 처음 듣는 다른 생물의 소리.
눈표범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깜빡, 깜빡-
킁킁, 킁킁-
눈을 깜빡이고 코를 킁킁거려 냄새를 맡는 순간.
이 삼십여 마리의 눈표범 무리는 깨달았다.
그 인간이다!
자신들이 이 지하 깊은 곳, 이상한 동굴에 떨어지게 만든 그놈!
크아아앙-
이 순간 며칠 동안의 울분과 고통,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인 포효가 터져 나왔다.
눈표범 무리는 일제히 천문석에게 달려들었다!
천문석은 반사적으로 눈뽕부터 먹이려다가 깨달았다.
‘아, 이놈들 굉천수 면역이었지….’
천문석은 바로 몸을 돌려 달렸다.
타다다닥-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는 천문석.
크아아앙-
광기에 물들어 뒤를 쫓는 눈표범 무리.
그리고 이 둘을 바라보는 새끼 다람쥐, 니케.
킥-?
멍한 얼굴로 도망치는 천문석을 바라보던 니케는 깨달았다.
인간 놈이 사탕만 가지고 도망쳤다!
눈앞에서 먹튀를 당한 상황!
키키킼키-
'야야! 나뭇가지 주고 가야지!'
분노한 니케가 천문석을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