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38화>
텅텅텅, 텅-
천문석은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 거대 사슴벌레 갑각 위를 달리고 있었다.
목적지는 거대 사슴벌레 꼬리 부위!
파스스슥-
쏟아 내는 내력에 반발장이 불타며 섬광이 번뜩이고.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전기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 왔다.
그러나 고통은 관념일 뿐.
천문석은 마음을 하나로 모아 달린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쓰르르르-
텅텅텅, 텅텅-
이때 강철 구렁이 밧줄을 잡은 채 끌려 오던 엠마가 외쳤다.
“야, 천천히! 이제 거리 충분해! 잠깐 멈춰!”
그러나 천문석은 멈출 수 없었다.
천장, 벽, 바닥, 지하통로 전체에서 뿜어지는 황금빛 마력광.
이 황금빛 마력광이 마치 고운 모래처럼 흩어져 지하통로 전체에 휘몰아친다!
휘이이잉-
황금빛 마력광을 흩날리는 건 뜨겁고 건조한 열풍!
처음 통로에 들어왔을 때 미약한 온기가 느껴지던 바람이 어느새 완전히 변했다.
지하라고는 믿기지 않는 개방감이 느껴지는 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바람이 육체를 스치는 순간, 천문석의 육감이 미친 듯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불길함!
지금 이곳 지하통로에서 엄청나게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당장 이 지하통로에서 벗어나야 했다!
“엠마! 참아! 지금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
천문석이 외친 순간.
완만한 경사를 그리는 갑각 끝, 거대 사슴벌레의 꽁무니 돌기가 보였다!
쿵, 쿵, 쿵-
통로를 달리는 사슴벌레의 진동이 천지를 울리고, 돌기 너머 빠르게 밀려나는 황금빛 통로가 보인다!
생각 이상으로 빠른 속도, 높이도 수십 미터가 넘는다!
그냥 뛰어내렸다가는 아작이 난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저기서 뛰어내리는 것뿐이다!
천문석은 바로 외쳤다.
“엠마! 준비해! 밧줄 절대 놓으면 안 된다! 바로 저 뒤로! 던질게!”
“뭐!? 야, 뭐 하는 거야! 기다려! 잠깐 멈추라니까!”
엠마가 다급히 외쳤지만, 천문석은 바로 움직였다.
돌기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둔보를 펼쳐 몸을 무겁게 한다.
그리고 내력을 실어 강철 구렁이 밧줄을 낚아챘다!
“이야얍- 간다!”
천문석이 기합을 지르는 동시에.
휘이이잉-
엠마가 강철 구렁이 밧줄을 잡은 채 사슴벌레 뒤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엠마가 비명을 지르며 거대 사슴벌레 뒤로 떨어지는 순간.
촤르르륵-
강철 구렁이 밧줄에 내력을 쏟아부었다.
그르르르륵-
갑각을 긁으며 끌려가는 동안 쏟아부은 내력은 엠마에게로 움직였다.
강철 구렁이 밧줄을 타고 흐른 내력이 엠마의 전신을 감싸고, 부드러운 내력에 휩싸인 엠마가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는 타이밍!
천문석은 재빨리 사슴벌레 꽁무니 돌기에 강철 구렁이 밧줄을 묶고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이 순간.
콰아아아-
염동력이 날아오고.
타다당-
마탄 총성이 터졌다.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던 천문석은.
내력에 싸여 바닥에 닿는 엠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 순간 강철 구렁이 밧줄을 녹색 마력광, 마탄이 맞췄다.
고등급 마탄은 괴수 반발장으로 극도로 위축된 강철 구렁이의 단단한 몸을 단숨에 꿰뚫었다!
툭, 툭, 툭-
구멍이 세 개 뚫렸을 때.
콰드득-
강철 구렁이는 뚝 끊어지고.
“야! 빨리 뛰어…….”
엠마는 부드러운 내력에 싸여 지하통로를 데굴데굴 굴렀다.
* * *
텅 ,텅, 텅, 텅-
순식간에 멀어지는 거대 사슴벌레!
엠마는 일어나자마자 전력 질주로 사슴벌레를 쫓았다.
거대 사슴벌레의 꽁무니 돌기.
까마득한 높이에 엎드린 천문석이 보였다!
“야! 빨리 뛰어!”
엠마가 다급히 외친 순간.
끊어진 강철 구렁이를 들어 보이는 천문석.
“하- 시바! 저 불운!”
쿵, 쿵, 쿵, 쿵-
이 순간 통로를 울리는 진동이 거세지고, 거대 사슴벌레가 달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으아아악-
엠마는 악을 쓰며 미친 듯이 달렸으나 점점 멀어지는 거대 사슴벌레!
이때 사슴벌레 꽁무니 돌기에 붙은 천문석이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들며 외쳤다.
“……!”
쿵, 쿵, 쿵, 쿵-
통로를 울리는 엄청난 진동에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입 모양만으로도 엠마는 천문석이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ㅁㅁㅁ. ㅁㅁ. ㅁㅁㅁ. ㅁㅁㅁ.”
“걱정 마. 모두. 내 계획. 대로다.”
엠마는 천문석의 입 모양을 따라 말한 후 탄식했다.
“너, 이런 상황에도…… 하-.”
이 순간 엠마는 상황에 맞지 않게 어이없고 웃기고 허탈하고 뭉클했다.
천문석 저 불운한 녀석은 자신을 안전하게 내려 주고는 거대 괴수 위에 홀로 남았다.
그래 놓고는 계획대로라니…….
엠마는 천문석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동료를 위해서 희생하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농담을 던지는 저 모습!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엠마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대로 두 발로 뛰어 쫓는 건 불가능하다.
저 녀석을 구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거라면!?”
이때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엠마는 방법을 찾는 순간 천문석에게 외쳤다!
“기다려! 내가 꼭! 구하러 올게!”
엠마가 외치는 순간.
천문석은 알겠다는 듯 크게 손을 흔들며 연신 외쳤다.
“ㅁㅁㅁ!”
“ㅁㅁㅁ!”
……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엠마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먼저가…….”
“……하- 저 미친 새끼…… 기다려라! 반드시 구하러 돌아올게!”
엠마는 크게 소리치고 바로 몸을 돌려 신동대문 방향으로 전력 질주했다.
다행히 지하통로는 갈림길 없는 일방통행로!
거대 괴수라도 생명체, 결국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마력 엔진 화물차라면 뒤를 잡을 수 있다!
신동대문의 헌터 부대와 치안청. 헌터들을 데려오리라!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엠마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 * *
툭, 투득, 뚝-
마탄 사격에 강철 구렁이 밧줄이 끊어지고.
“야! 빨리 뛰어…….”
엠마가 외친 순간.
천문석은 엠마에게 끊어진 강철 구렁이를 보여 주고 재빨리 돌기 뒤로 숨었다.
타다당-
계속 날아오는 마탄!
그러나 거대 괴수의 키틴질 돌기는 마탄을 장난처럼 튕겨 냈다.
다행히 시간을 벌었다!
강철 구렁이가 끊어진 건 아쉽지만.
괜찮다!
언제나 잡낭에 예비밧줄을 넣어서 다니니까!
“하하하- 이제 안녕이다! 이 지긋지긋한 놈들아!”
천문석은 크게 외치고 재빨리 잡낭을 열었다. 그리고 얼굴이 굳었다.
밧줄이 없다!
“밧줄! 밧줄 어디로 갔어!?”
이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얼굴.
고블린 평야의 헌터들!
나무에 오르는 헌터들에게 밧줄을 모두 넘기고, 강철 구렁이가 너무 편해서 밧줄 재보급을 깜빡했다!
하지만 여전히 방법은 있다!
천문석은 재빨리 일어나 사슴벌레를 향해 달려오는 엠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엠마아! 밧줄! 화살로! 밧줄 좀!”
엠마의 ‘볼텍스’ 화살이라면 밧줄을 이 위로 떨궈줄 수 있다!
“볼텍스! 밧줄! 볼텍스! 밧줄 좀!”
천문석은 엄청난 진동 속에서 연신 외쳤다!
쿵, 쿵, 쿵-
엠마는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이제야 알아챘구나! 빨리! 밧줄 날려 줘!”
이때 엠마는 비장한 표정으로 뭐라 외쳤다!
“ㅁㅁㅁ! ㅁㅁ ㅁ! ㅁㅁㅁ ㅁㅁ!”
전혀 들리지 않는 엠마의 목소리.
“뭐라는 거야!?”
천문석은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한 단어만 내력을 실어 집중적으로 외쳤다!
“볼텍스!”
“볼텍스!”
……
그러나 엠마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통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
경악하기도 잠시, 천문석은 미친 듯 손을 흔들며 외쳤다!
“볼텍스!”
“밧줄! 볼텍스! 밧줄!”
“엠마! 어디 가는 거야!?”
“야, 볼텍스로 밧줄 떨궈주고 가야지!”
쿵, 쿵, 쿵, 쿵-
그러나 거대 사슴벌레가 달리며 일어나는 엄청난 진동에 천문석의 외침은 삼켜져 버렸고.
엠마의 모습은 곧 통로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이세기. 끝장을 보자!”
“끝장을 보자. 이세기!”
마혁진과 김태우 중령이 거대 사슴벌레 꽁무니에 나타났다.
* * *
하, 하, 하-
천문석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왔냐?”
“헉, 헉- 넌 이제…….”
“헉- 이제 끝이…….”
마혁진과 김 중령이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여는 타이밍.
천문석은 몸을 숨긴 돌기에서 번개같이 뛰어나가며 굉천수를 터트렸다.
짝-
파스슥-
터지려다 마는 불발탄 같은 섬광과 소리!
그러나 이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뭐 하는……?”
굉천수에 한 번도 당하지 않은 김 중령이 의아해하는 순간.
으아악-
굉천수에 당했던 마혁진은 깜짝 놀라 팔로 두 눈을 가리고 뒤로 물러나며 염동력을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상이한 반응.
천문석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텅-
단숨에 진각을 밟고 미끄러지듯 김 중령에게 달라붙어 주먹을 뻗었다.
“나한테 근접전을 건다고? 하-.”
헌터용 실전 격투기의 달인, 김 중령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번개같이 로우킥을 갈기는 순간.
마혁진은 다급히 외쳤다.
“야! 붙으면 안 돼! 이세기! 근접전…….”
그러나 한발 늦었다.
김 중령의 로우킥이 다리를 때리는 순간.
타앗-
천문석의 다리뿐 아니라 몸 전체가 아무 저항 없이 밀려 나갔다.
휘리릭-
힘없는 나뭇가지처럼 빙글 180도 회전해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김 중령의 방검 조끼를 낚아채는 천문석!
콰드득-
천문석이 땅으로 떨어지며 손을 비틀어 당기는 순간.
거짓말처럼 반대로 빙글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 김 중령!
권총을 겨누나 사선이 나오지 않고.
바로 권총으로 내려찍어 보지만.
탁, 탁, 탁-
닿기도 전에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 타점을 죽인다!
휘이잉-
그리고 김 중령은 엄청난 속도로 갑각 위로 내려꽂혔다!
헌터용 실전 격투기 무에타이, 유도의 달인인 김 중령이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체술!
이때 마혁진이 돌진했다.
으아악-
단단히 압착된 염동력장이 천문석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천문석은 몸을 돌려 김 중령을 마혁진에게 던졌다.
부우우웅-
염동력장을 거두는 순간 같이 뭉쳐서 구르는 김 중령과 마혁진!
기회!
천문석이 재빨리 달라붙어 개싸움을 펼치려는 순간.
타아앙-
파아앙-
마탄이 쏟아지고 염동력장이 폭발한다!
마혁진은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잇달아 외쳤다.
“절대 이세기, 저놈이 몸에 붙게 하면 안 된다!”
“붙는 순간 계통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술을 쓴다!”
“저기 허리에 나뭇가지! 저걸 특히 조심해라!”
“감각 자체를 지워서 무력화시키는 엄청난 아이템이다!”
적의 스타일을 파악한 김태우 중령은 거리를 벌리고 신중히 권총을 겨눴다.
“마혁진! 네가 견제를 해라! 내가 결정타를 넣겠다!”
120도 부채꼴로 펼쳐져 거리를 벌리는 마혁진과 김태우 중령.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머리에 열이 뻗었다.
“와! 마혁진 치사하게 이게 뭐야! 2:1인데! 공략법 설명하는 NPC도 아니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어차피 끝장을 볼 사이!
바로 공격이 쏟아졌다.
으아악-
마혁진은 악을 쓰며 끌어올린 염동력으로 발을 잡고.
타다당-
김 중령이 시야의 사각에서 마탄을 쏘아냈다.
파스스슥-
반발장을 불태우며 날아오는 마탄!
천문석은 어렵지 않게 강화 해머로 느려진 마탄을 쳐 냈지만.
강화 해머는 애초에 마탄을 막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게다가 김 중령이 사용하는 마탄은 특임대에 보급된 고등급 특수 마탄!
마탄의 녹색 마력광에 담긴 마력이 강화 해머를 타고 몸으로 스며들었다.
팔이 저릿저릿해지고, 마탄의 마력이 쐐기처럼 내력에 스며들었다.
“야! 치사하게 총 쏘지 말고! 우리 정정당당하게 주먹으로 붙자!”
“일대일! 아니 이 대 일로 싸워 줄게! 너희는 무기 들어! 난 맨손으로 할게!”
천문석이 연신 외쳤으나 마혁진은 오히려 더 거리를 벌리며 김 중령에게 경고했다.
“절대 도발에 말려들면 안 돼! 저 녀석 잔머리가 엄청난 놈이다!”
하, 시바-
천문석은 난감했다.
절대 거리를 주지 않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마혁진과 김 중령.
방패 겸 원거리 무기로 사용한 강철 구렁이는 끊어졌다.
강화 해머가 있지만, 이걸 던졌다가 피하면 몇 배로 암울한 싸움을 해야 한다.
타아앙-
이때 다시 한 번 쏘아지는 마탄!
“하, 시바! 빌어먹을 마탄!”
천문석이 분통을 터트리며 마탄을 쳐 내는 순간.
김태우 중령이 비웃듯이 외쳤다.
“그러기에 총을 가지고 다녔어야지? 하하하-.”
순간 번개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
리볼버!
마탄을 채운 리볼버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
마탄 값이 아까워서 단 한 번도 쓰지 않고, 광장에서 난장판을 만들 때는 숨겨 둬서 까먹었다!
자신에게도 총이 있다!
하하하하-
천문석은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번개같이 방검 조끼 안쪽, 히든 포켓에 넣어 둔 리볼버를 꺼내 김 중령을 겨눴다.
김 중령이 반사적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탕, 탕-
연사로 쏘아지는 리볼버!
바닥을 구르는 김 중령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지고.
톡, 톡, 또르르-
‘미친놈! 총이 있으면서도 안 썼다고!?’
김 중령이 경악하는 순간,
시차를 두고 다시 한 번 쏘아지는 마탄!
탕, 탕. 탕-
바닥을 구르던 김 중령은 깨달았다.
타이밍을 완벽히 뺏겼다!
이건 맞는다!
급히 강화 전투복의 방어 기능을 활성화할 때.
파스스슥-
반발장을 태우며 날아오는 마탄의 마력광!
그러나 김 중령에게 닿기도 전에.
픽, 픽, 픽-
마탄의 마력광은 촛불 꺼지듯 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