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237화 (238/1,336)

<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37화>

산처럼 솟은 갑각 위를 구르는 네 사람!

그러나 수직으로 일어났던 등판은 곧 다시 내려와 수평으로 변했다.

“야! 일어나!”

천문석이 마혁진의 멱살을 잡은 채 다급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휘이이-

바람이 불어왔다.

미약한 온기를 담은 건조한 바람!

고블린 평야에서 한번 겪었던, 그때보다는 열기가 약해진 바람이 불어오는 순간.

쿠르르르릉-

진동이 울려 퍼지고 빛이 사라졌다.

천문석은 지금 상황을 바로 알아챘다.

거대 사슴벌레가 뚫어 놓은 지하 통로로 들어가고 있다!

문득 뒤로 고개를 돌리자 신동대문의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멀어지는 게 보인다.

천문석은 빛이 쏟아지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아직 늦지 않았다.

더 멀어지기 전에 지금 당장 여기서 뛰어내려야 한다!

이때 총성이 터졌다.

타아앙-

천문석은 재빨리 마혁진을 방패로 들어 올리고 외쳤다.

“야, 인질! 인질 있다니까! 그리고 지금 이럴 시간 없어! 지금 당장 빠져나가지 않으면! 이 녀석 어디로 갈지 몰라! 이제 우리 헤어지자!”

“창천검 이세기! 동료를 버릴 건가?”

천문석은 우뚝 멈춰 서서 몸을 돌렸다.

김 중령은 엠마를 붙잡아 총을 겨누고 있었다.

“…….”

이런 급박한 상황에 인질극이라니!

“야, 저 새끼 뭐야?  왜 이리 치사해?”

천문석은 분통을 터트렸으나.

끄억, 꺽, 꺽-

천문석에게 목이 졸린 마혁진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은 김 중령에게서 들려왔다.

“인질은 네가 먼저 잡은 거 아닌가?”

천문석과 김 중령의 눈이 마주치고.

뒤이어 천문석과 엠마의 눈이 마주쳤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짐작 갔다.

엠마 저 녀석 도와주겠다고 달려오다가.

등판이 기울어지는 바람에 데굴데굴 굴러서 잡혔겠지.

엠마 파리킨슈.

머리도 나쁘지 않고, 실력도 괜찮은데.

결정적인 순간에 꼭 한 번씩 삐끗한다.

천문석은 탄식했다.

“엠마…… 너 왜 이리 재수가 없냐? 원래 재수 없는 사람은 더 치밀하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니까.”

이 순간 엠마는 발끈했다.

“……너 위험한 줄 알았잖아!!”

“넌 아직도 나를 모르냐? 지금 이 상황. 이 모든 건 다 내 계획에 들어 있는 거야.”

“구라치고 있네! 이 거대 괴수 나온 것도 네 계획이라고!?”

“…….”

천문석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나 전투에서 지는 건 몰라도 말싸움에서 밀리는 건 참을 수 없다.

“당연히……!”

천문석이 반사적으로 구라를 치려고 할 때.

타아앙-

총성이 울리고,

김 중령이 외쳤다.

“장난은 그만하고 일부터 처리하자.”

엠마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야, 나 다람쥐 쟤랑 사실 원수 사이다! 날 구하겠다고 인질을 포기할 거 같냐?”

김 중령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할 거 없다. 내 조건은 다른 거니까.”

“…….”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천문석과 엠마, 마혁진의 시선이 모이는 순간.

김 중령은 총으로 마혁진을 가리켰다.

“내 조건은 이세기 네 손으로 마혁진을 끝장내는 거다.”

“……마혁진. 얘를 쓱싹하라고?”

천문석이 어이없어 하는 순간,

미친 듯이 몸을 흔드는 마혁진.

꺽, 끄어억-

이 순간 김 중령은 천문석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마혁진을 죽이면. 서로의 약점을 하나씩 잡는 거잖아? 파트너가 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그렇지 않나? 이세기?”

이제야 천문석은 김 중령의 생각이 짐작됐다.

서로 약점을 잡아 배신할 수 없는 파트너가 되자는 이야기!

전형적인 머리 좋은 악당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몇 개나 숨어 있었다.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제안이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엠마가 죽는다.

마혁진, 엠마.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상황.

그러나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함정이다.

언제나 다른 방법은 있고.

천문석에게는 이런 상황에 딱 맞는 기술이 하나 있었다.

문제 출제자 자체를 날려 버리는.

처음 당하는 사람은 99퍼센트 당하는 기술.

굉천수!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마혁진에게 말했다.

“야, 너 친구 좀 가려서 사귀어라! 하, 허술한 악당 녀석.”

마혁진이 발광하려는 순간.

재빨리 머리 뒤로 얼굴을 움직이며 속삭인다.

“눈뽕 준비해라. 비밀 창고 회합 때.”

마혁진의 몸이 굳는 순간.

천문석은 천천히 김 중령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야, 그건 내가 너무 손해를 보는 거잖아?”

“뭐? 손해라고?”

김 중령이 어이없어 하는 순간 바로 이어지는 천문석의 목소리.

“살인. 뇌물수수. 차이가 너무 크잖아? 이렇게 하면 계산이 안 맞지.”

“그럼 어떻게 해야 계산이 맞지?”

김 중령이 피식 웃는 순간.

천문석은 말했다.

“마혁진. 내가 잡고 있을게. 네가 끝장내라. 범죄의 정범과 종범으로 하자.”

하하하-

김 중령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생각 이상으로 머리가 좋은 놈이다.’

그러나 사실 어떻게 진행되든 상관없었다.

이곳에서 살아나갈 사람은 자신 한 명뿐이니까!

“좋아. 그렇게 하지.”

김 중령이 대답하는 순간.

네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마탄을 겨누고 각성력을 끌어올리는 김 중령.

김 중령 개새끼에게 한 방 먹일 준비를 하는 마혁진.

재빨리 수신호를 보내고 굉천수를 준비하는 천문석.

천문석의 수신호를 보며 굉천수의 눈뽕을 대비하는 엠마.

김 중령, 마혁진.

천문석, 엠마.

네 사람이 거대 사슴벌레의 등판 위에서 마지막 승부를 준비하고 있을 때.

열심히 땅을 파고 벽을 만드는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는 몰래 더듬이를 맞대고 있었다.

*   *   *

부으으-

부으, 부으응-

더듬이 진동을 통해 은밀히 대화한두 채권 추심원은 슬쩍 파티 리더의 눈치를 살폈다.

파티 리더,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는 사슴벌레 등을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케페니안 황금 다람쥐는 갑각 위에 올라온 인간들을 보고 있었다.

킥, 키킥-?

‘이상하네…… 뭔가를 깜빡한 거 같은데?’

문득 리더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

-……!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는 눈을 반짝였다.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렸다.

어디로 땅을 파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리고 엄청난 길치인 리더는 직접 보더라도 전혀 알지 못할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이 순간 둘은 결정했다.

명령과는 다른 곳으로 땅을 파기로!

거대 사슴벌레의 톱날 집게에 황금빛 마력광이 생겨나고.

황금 풍뎅이가 쏟아지는 흙을 압착해 만들어 내는 벽돌의 종류를 바꿨다.

통로는 여전히 신서울 방향으로 뻗어 나갔지만,

천장과 좌우 벽, 바닥에 깔리는 벽돌에서는 희미한 황금빛 마력광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어느새 거대 사슴벌레는 은은한 황금빛이 뿜어지는 지하 통로를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통로가 뻗어 나가는 방향, 신서울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통로는 신서울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빛나는 지하 통로는 시공간의 경계를 넘는 길을 내는 긴급 탈출용 ‘대마법 통로’이었다.

탈출용으로 단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대마법 통로는 ‘세계의 나무‘의 뿌리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뿌리에는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 두 채권 추심원의 고향.

스카라베 왕국이 있었다.

무시무시한 폭군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사이.

거대 사슴벌레와 황금 풍뎅이는 스카라베 왕국으로 이어지는 대마법 통로를 뚫고 있었다!

*   *   *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김태우 중령에게 다가가는 천문석.

천문석은 은근슬쩍 마혁진의 멱살을 잡은 손에서 내력을 거뒀다.

눈치가 빠른 마혁진은 조르기가 풀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10여 걸음 앞.

김 중령이 외쳤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거기 멈춰라!”

천문석과 마혁진이 멈춘 순간

김 중령은 다시 외쳤다.

“이세기. 잘 잡고 있어라. 셋에 발사하겠다!”

“알았다!”

그리고 김태우 중령이 마혁진의 얼굴에 권총을 겨누고 외치는 순간.

“하나!”

네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타아앙-

김 중령이 총구 방향을 돌려 이세기를 향해 마탄을 쏘고!

“김태우 이 개새끼야!”

분노한 마혁진은 눈을 감은 채 염동력장을 폭발시키며 돌진했다.

이야아악-

이 순간 엠마가 온 힘을 다해 몸을 날리고.

짝, 짝, 짝, 짝-

커다란 박수 소리가 연신 터졌다!

타앙, 타앙, 타앙-

뒤이어 잇달아 터지는 총성!

으아앗-

천문석은 마탄을 피해 바닥을 구르며 엄청난 속도로 손을 마주쳤다.

짝, 짝, 짝, 짝-

데굴데굴 구르면서 미친 듯이 박수를 치는 천문석!

그러나 파슥, 파슥- 장난감 폭죽 같은 불빛만 번쩍일 뿐.

굉천수의 엄청난 섬광과 굉음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뭐야! 장난치지 말고! 굉천수! 빨리 터트려!”

멀리 바닥을 구르는 엠마가 외치는 순간.

구르면서도 연신 박수를 치던 천문석이 다급히 외쳤다.

“안 터져! 반발장? 저 빛? 무슨 이유 때문인지! 굉천수가 임계점을 안 넘어!!”

“뭐?! 아니 이게 무슨 병신 같은 소리야!!”

엠마가 분통을 터트릴 때.

천문석은 어느새 몸을 일으켜 달리며 팔을 뻗었다.

“야! 이거 잡아!”

휘이익-

엠마가 힘없이 날아온 강철 구렁이를 잡는 순간.

이야압-

천문석은 기합을 지르며 달렸다.

텅텅텅텅텅-

스르르르륵-

내력을 끌어올려 갑각 위를 달리는 천문석과 강철 구렁이를 잡고 미끄러지는 엠마!

“으아앗- 야, 뭐 하는 거야!?”

“이대로 빠져나간다! 지금 뭔가 이상해! 통로의 황금빛! 저거 엄청 불길하다!!”

천문석이 다급히 외칠 때.

으아아아악-

처절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마혁진이 폭발하는 염동력장을 두른 채 마탄 사격을 뚫고 김 중령과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뒤엉켜 갑각 위를 구르며 공격을 퍼붓는 마혁진!

“김태우 이 개새끼가! 날 제끼려고 해!?”

쾅, 쾅, 쾅-

염동력을 휘감은 주먹이 김 중령의 얼굴로 떨어지는 순간.

김 중령은 목만 움직여 주먹을 피하고 브릿지로 마혁진을 튕겨 냈다.

쾅-

이 순간 염동력장이 터지고 두 사람은 공중으로 나뒹굴었다.

김 중령은 번개같이 권총으로 마혁진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콰직-

머리를 찍힌 마혁진의 주춤 물러서는 번개 같은 로우킥이 날아갔다.

마혁진이 염동력장으로 막아 내려는 타이밍.

타아앙-

마탄이 쏘아졌다.

다급히 염동력을 집중해 마탄을 막아 내려는 순간.

휘이익-

엉뚱하게도 허공을 지나가는 마탄과 빙글 회전해 마혁진의 몸통을 가볍게 밀어내는 로우킥.

“이게 무슨?”

마혁진이 당황하는 순간.

김 중령은 재빨리 외쳤다.

“멍청한 새끼야! 정신 차려! 아까 일! 이세기! 저놈을 노린 거였다!”

“뭐……?”

마혁진이 반문하는 순간.

김 중령은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아까 이세기가 널 잡았을 때. 내가 어디로 총을 쐈냐? 네가 아니라 이세기한테 쐈다! 처음부터 이세기를 노린 거였다!”

“……!”

마혁진은 어떻게 된 일인지 단숨에 깨달았다.

“급하다! 빨리 움직여!”

“무슨……?”

마혁진이 멍청한 목소리로 묻는 순간,

김 중령은 외쳤다.

“이세기 처리해야지! 멍청한 새끼야!?”

그러나 몸을 돌려 이세기를 보는 순간 김 중령의 얼굴도 멍청하게 변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짧은 시간 동안.

이세기는 엄청난 속도로 반발장을 뚫고 어느새 사슴벌레 꽁무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혁진, 김 중령 두 사람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세기의 전투력과 도망치는 솜씨.

여기서 놓치면 잡지 못한다!

아니, 잡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세기의 진가는 머리.

저놈은 계략과 모략, 군중 선동의 천재다!

이세기가 여기서 빠져나가 신동대문에 도착하면 모든 게 끝장난다!

“이세기부터 처리한다! 딜?”

“딜!”

김 중령은 마혁진은 모든 힘을 끌어내 이세기를 쫓았다.

이세기, 엠마, 마혁진, 김태우.

네 사람이 미친 듯이 거대 사슴벌레 꽁무니로 전력 질주할 때.

새끼 다람쥐 한 마리도 연신 고개를 갸웃하며 홀린 듯 이들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킥, 키킥-?

킥, 키-?

거대 괴수의 반발장 속을 아무 저항 없이 움직이는 새끼 다람쥐.

니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