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34화>
요동치는 땅을 보는 순간 느껴지는 기시감!
“……이거 분명히 얼마 전에 느꼈던 감각인데?”
천문석이 기억을 되짚을 때 광장 중앙 자욱한 증기 속에서 피 끓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 어디 있냐!? 아직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
“응 아냐. 끝났어.”
피식 웃는 순간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
“깃발을 꽂았으니! 끝장을 보자!”
“아…….”
생각해 보니 그랬다.
깃발을 꽂았으니.
한 사람이 아작 나고 승패가 갈릴 때까지 싸워야 했다!
깃발을 꽂고 도망쳤다는 게 알려지면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한국 헌터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된다.
“……야. 그냥 도망쳐…… 절대 싸우면 안 된다.”
엠마가 덜덜 떨며 말할 때.
다시 한번 들려오는 피 끓는 외침!
“창천검 이세기! 와라! 끝장을 보자!”
천문석은 씨익 웃었다.
원래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돌아가서 마혁진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마혁진은 자신을 천문석이 아닌 ‘창천검 이세기‘라고 알고 있었다.
창천검 이세기가 한국 헌터 업계에서 매장돼도 자신에겐 아무 타격이 없다!
다행이다.
다람쥐 가면을 써서.
더욱 다행이다.
창천검 이세기라고 말해서!
카캬카카카-
천문석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는 순간.
콰아아아앙-
요동치던 광장 중앙부가 통째로 무너졌다!
웃음을 터트리던 천문석.
도와주러 왔던 엠마.
피 끓는 외침을 토하던 마혁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김태우.
네 사람은 순식간에 무너지는 땅속으로 굴러떨어졌다.
깜짝 놀랐으나 무너진 깊이는 3미터 정도.
이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다!
콰지지직-
이 순간 거대한 톱날 집게가 광장 중앙 분수대 흔적에서 솟아 올랐다!
단숨에 수십 미터를 솟아난 거대한 톱날 집게는 엄청난 속도로 진동했다.
부으으으으응-
이 초진동에 단단한 판석, 대리석 조각상, 다져진 흙 모든 게 박살 났다!
초진동하는 톱날 집게 주위에 생겨나는 거대한 구멍.
이 구멍으로 무너진 광장과 박살 난 잔해가 빨려 들어갔다.
빨려 드는 잔해에서 터지는 다급한 비명!
“이건 뭐야!? 으아악-“
“으어엇- 마수? 몬스터?!”
“시바! 너지! 너 도대체 뭐 한 거야!?”
세 사람이 정신없이 소리칠 때,
천문석은 이미 내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엠마를 빼내 단숨에 빠져나간다!
차르르륵-
강철 구렁이를 엠마에게 던지고 잔해를 밟고 달리려는 순간.
과아아아앙-
몸을 내리누르는 엄청난 지배력!
뻗어 나가던 강철 구렁이가 흐물흐물해지고,
경공을 펼치기 위해 끌어들인 외기와의 연결이 끊겼다.
천문석은 엄청난 지배력의 정체를 바로 파악했다.
반발장!
엄청난 몬스터 반발장이 몸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 순간 들려오는 진동!
쿵, 쿵, 쿵, 쿵-
거대한 구멍 속에서 거대한 괴수가 나오고 있었다.
집게와 머리 일부만 보였지만,
보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고블린 평야에 나타났던.
초거대 사슴벌레!
“아니,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너 남서쪽으로 갔잖아!?”
경악한 천문석이 외치는 순간 사방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지고.
“염동력이 안 통해!”
“순간이동! 당장 순간 이동해!”
“시바, 시바! 이럴 줄 알았어! 으아악“
네 사람은 초거대 사슴벌레의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 * *
광장 중앙에 뻥 뚫린 싱크홀은 엄청난 속도로 크기를 키웠다.
어느새 광장에는 직경 10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고 이 구멍에서 엄청난 진동이 퍼져 나왔다.
쿵, 쿵, 쿵, 쿵-
그리고 자욱한 증기 속에서 톱날 집게가 쑥쑥 솟아 올랐다.
증기를 뚫고 솟아오르는 거대한 톱날 집게!
경악한 사람들의 시선이 이 집게를 따라 하늘로 움직였다.
“저거 어디까지 올라오는 거야!?”
거대한 집게가 수십 미터 이상 치솟고 나서야 머리와 몸통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넘어질 듯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욱한 증기 속,
싱크홀 구멍을 짚고 몸을 일으킨 거대한 실루엣이 얼핏 보인다.
“저거! 저거?!”
“저 크기면? 거대 괴수!?”
“도시 기단부 몬스터 방벽을 어떻게 뚫은 거야!?”
사방에서 경악한 외침이 쏟아질 때.
거대 사슴벌레의 더듬이가 펼쳐졌다.
부우우웅-
하늘을 휘저으며 파르르- 진동하는 더듬이!
더듬이에서 전해지는 진동으로 거대 사슴벌레는 깨달았다.
수많은 인공 구조물!
리더가 설명했던 그곳이다!
꼬박 이틀이 넘도록 땅을 파서,
마침내 목적지인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지하세계의 채권 추심원 사슴벌레는 환희가 담긴 울음을 터트렸다.
구으으, 구으으으응-
갑각이 진동하며 터져 나온 울음소리가 천지를 울리고.
이 진동에 자욱하게 깔렸던 증기가 일순간에 흩어졌다.
이 순간 광장을 바라보던 헌터, 시민, 군인 신동대문의 모두는 똑똑히 봤다.
신동대문의 가장 높은 빌딩마저 내려다볼 정도로 거대한 곤충!
존재 자체가 경이로운 초거대 사슴벌레가 태양을 향해 수십 미터의 톱날 집게를 펼치고 울고 있었다.
수백 미터의 크기.
초진동하는 톱날 집게.
검은 키틴질 갑각을 둘러싼 일렁이는 엄청난 반발장.
위압감에 가슴이 옥죄고,
폭풍처럼 요동치는 마력장에 지배력이 짓눌린다.
모두는 깨달았다.
거대 괴수!
움직이는 군단,
거대 괴수가 신동대문의 최종 방어선을 뚫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참사가 일어날 거다!
* * *
거대 괴수가 나타난 순간 게이트 전쟁을 겪은 베테랑 헌터들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비상! 비상 걸어!”
“대물 저격총! 마탄 사수! 저격 포인트 잡아라!”
“마력 각성자! 광역 은폐 마법 뿌려라! 민간인부터 대피시켜야 한다!”
“장갑 버스 당장 빼내!”
“아니야! 장갑 버스는 움직이지 마라! 광장 밖으로 빠지면 끝장이다!”
“장갑 버스 위에 1차 저지선 만든다!”
“2차 저지선 시가지! 3차 저지선 성벽이다!”
“모두 빨리 움직여!”
“시간을 벌어야 한다!”
헌터들의 다급한 외침이 사방에서 쏟아지고.
거대 괴수 레이드의 필수 인력을 찾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탱커! 탱커 없냐!?”
“ 그냥 탱커는 안 된다!”
“메인 탱커 없냐?!”
“레이드 메인 탱커 서 본 사람 없어!?”
“시발! 레이드고 자시고! 거대 괴수 탱킹 가능한 건 한국에 열 명도 안 된다!”
작은 몸의 여성 헌터가 거칠게 외치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거기에 오늘부터 한 명이 추가될 거다!”
커다란 방패로 땅을 내려찍으며,
잇달아 외치는 여성 헌터!
쿵, 쿵, 쿵-
“야! 내가 맨탱 본다!”
“탱킹 방향 12시에서 3시!”
“당장 민간인부터 빼내고!”
“스플뎀에 뒤지기 싫으면 알아서 피해라!”
“마력 각성자 나한테 버프 집중해 주고!”
“어글 잡힐 때까지는 숨소리도 죽여라!”
“특히 마탄 사수! 씹새들!”
“먼저 갈겨서 머리 돌아가면. 끝나고 파워밤을 먹여 주마!”
하하하하-
순간적으로 사방에서 웃음이 터지고,
수많은 헌터들의 시선이 메인 탱커가 된 여성 헌터에게 모여들었다.
“그럼 가자!”
이 순간 메인 탱커는 외쳤고.
“가자!”
수많은 헌터들이 대답하듯 일제히 외쳤다!
단숨에 장갑 버스 위로 뛰어올라 달리기 시작하는 메인 탱커!
메인 탱커를 향해 사방에서 헌터들이 달려왔다.
“실드 마법 걸었다. 마법 깨지면 발로 땅을 세 번 두들겨라!”
“재금 제약 상급 포션이다. 뒤질 것 같으면 먹고 바로 튀어!”
“역장의 방패다. 시바- 개시도 안 한 건데. 조심해서 써라!”
“극검의 왕관이다. 어그로 잡는 데 도움이 될 거다.”
……
헌터들이 건네는 장비로 순식간에 무장하는 메인 탱커.
이때 광장 주위 건물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총 생겼어!”
“엄마! 나도! 나도! 다람쥐 오빠가 이 총 줬어!”
꼬맹이 남매가 테라스에 달라붙어 신나게 외치고 있었다.
깜짝 놀라 멈춰 서는 메인 탱커.
“너희들! 아직도 거기 있었어?! 아빠 어디 갔어?!”
장비를 착용하던 메인 탱커가 외치는 순간.
꼬맹이 남매는 서로를 봤다.
“오빠. 아빠 어디 갔는지 말해도 되는 거야?”
“바보야 당연히 안 되지!”
이 말만으로도 메인 탱커는 사정을 모두 짐작할 수 있었다.
단숨에 테라스로 뛰어오르려는 순간.
다급히 달려와 두 꼬맹이를 낚아채는 남자가 있었다.
“여보 나 여기 있어!! 너희들 위험하니까 얼른 피하자!!”
남자는 얼마나 다급히 달려왔는지 물고기가 매달린 낚싯대를 들고 있었다.
이 순간 메인 탱커는 거대 괴수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한 분노를 터트렸다.
“당신-!!”
* * *
“선배님-!!”
정소라 중위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선임 타격 대원을 노려봤다.
“당장 출동해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대참사가 일어납니다!”
“…….”
그러나 타격대 선임은 여전히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의 동료들만 봤다.
“저거 맞지?”
무거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타격대 대원들.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경력이 오래된 타격 대원들이었다.
“맞다.”
“분명해!”
“더 볼 것도 없어. 그 녀석과 같은 종족이다.”
정소라 중위가 다급한 마음에 말을 끊고 외쳤다.
“김 중령님이 현장을 맡기신 지금 제가 지휘관입니다. 당장 출동하세요!”
타격대 선임은 머리를 박박 문지르며 대답했다.
“하- 이거 보안 사항이라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미치겠네!”
“네?”
이때 마탄 총성이 들려왔다.
타다다당-
“누가 지금?!”
정소라 중위의 시선이 움직이는 순간.
깜짝 놀란 타격 대원, 헌터들의 시선도 거대 괴수에게로 모였다.
광장을 둘러싼 건물 옥상에서 출발한 녹색섬광이 거대 괴수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탄!
어그로도 잡히지 않은 지금,
거대 괴수를 자극하면 끝장이다!
“멈춰!”
“당장 멈춰라!”
모두가 식은땀을 흘리는 이 순간.
파아앙-
거대 괴수를 중심으로 황금빛이 폭발했다.
황금빛에 들어가는 순간 녹색섬광, 마탄의 마력광이 공중에서 멈췄다.
타다다다당-
마탄 사격이 계속 이어졌으나.
하나같이 황금빛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멈췄다.
어느새 거대 괴수 주위에는 수백 개의 녹색 마력광이 촛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거대 괴수의 반발장이 강력해도 마탄이 전혀 먹히지 않다니!
“이게 무슨……!?”
정소라 중위가 경악할 때.
타격대 선임이 재빨리 말했다.
“당장 공격중지 시켜야 한다!”
“네?”
순간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쏟아 내는 타격대 선임들.
“자세한 건 보안 사항이라 말해 줄 수 없지만, 저 녀석은 적이 아냐!”
“박찬석 준장도 알고 있어. 당장 공격중지 시켜야 해!”
“네?”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이어지자, 정소라 중위는 이들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진지한 얼굴로 외치는 이들 모두가 게이트 전쟁을 겪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다.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정소라 중위가 답답해 할 때.
이들도 답답해 하고 있었다.
이들은 초거대 사슴벌레를 보는 순간 한눈에 알아봤다.
낙동강 전선에 몇 번 나타났던 정체불명의 거대 괴수와 같은 종족이다!
거대 사슴벌레, 거대 집게벌레, 거대 하늘소.
저 곤충형 거대 괴수 종족은 가끔 땅을 뚫고 튀어나와 재앙급 마수, 고블린 주술사, 오우거 마법사 같은 특이 개체를 잡아 땅속으로 사라졌다.
적대 행위를 하지 않고 몬스터만 잡아가는 특이한 괴수!
당시 검은 폭풍은 이렇게 말했었다.
‘저 녀석들은 절대 건들면 안 된다는 감이 들어.’
‘그렇게 강한 종족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건들면 굉장히 빡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예지에 가까운 전투 감각을 지닌 검은 폭풍의 말에,
병사들은 저 특이한 곤충형 거대 괴수들이 나타나면 그냥 무시했다.
애초에 잘 나타나지도 않고 나타나도 금방 사라져서 문제가 생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검은 폭풍이 서울 수복 작전에 차출되고 신임 지휘관이 부임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곤충형 거대 괴수가 나타나자 신임 지휘관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당시 타격대 대원들이 막으려 했으나,
검은 폭풍이 없는 기회에 전공을 세우려던 신임 지휘관은 공격을 강행했다.
그리고 3개 포대 18문의 K9 자주포로 마력포탄 TOT 포격을 퍼붓는 순간.
당시 낙동강 전선의 타격 대원들은 검은 폭풍이 말했던 빡치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저 곤충형 거대 괴수 종족은 상상을 초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