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30화>
타다다다닥-
기마 기동대가 도로를 달리고.
탕, 탕, 탕-
진압 부대가 광장 가장자리에 방패벽을 세웠다.
“물러나세요!”
“거기 뒤로 물러나세요!”
그리고 뒤이어 들려오는 육중한 마력 엔진음!
구으으으응-
장갑 버스가 줄줄이 나타나 도로 위에 하나둘 멈춰 섰다.
마혁진은 장갑 버스를 보는 순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성벽.
장갑 버스로 성벽을 쌓아 광장을 분리하고 있다!
치안청과 진압 부대가 움직였다!
마혁진은 다급히 장갑 버스가 아직 막지 않은 방향으로 달려갔다.
“엇! 이게 뭐야!?”
“몸이 왜 밀려나?”
염동력으로 광장 가득한 사람들을 밀어내고 길을 여는 마혁진!
마혁진은 열린 길을 달리며 순간이동으로 빠져나갈 공간 좌표를 땄다.
그러나 광장과 도로 할 것 없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들로 공간 좌표가 나오지 않는다.
이때 문득 보이는 광장 주위 건물들!
마혁진의 시선이 건물들을 훑었다.
유리로 막힌 창.
너무 좁은 창문 턱.
사람들이 가득한 테라스.
……
이때 아슬아슬하게 순간이동 거리에 걸쳐진 테라스가 보였다.
5층 건물, 꼬맹이 둘만 있는 테라스!
마혁진은 필사적으로 공간 좌표를 땄다.
슬롯머신이 돌아가듯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숫자!
‘빨리! 더 빨리!’
필사적으로 각성력을 쏟아붓자.
머릿속에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나는 숫자, 공간 좌표!
마혁진은 재빨리 염동력을 거두고 순간이동 능력을 발동했다.
이 순간 들려오는 이질적인 소리!
촤르르륵-
공간을 뛰어넘기 직전, 마혁진의 발을 휘감는 새하얀 무언가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공간 좌표가 흐트러지고.
피이잇-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마혁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혁진은 발을 휘감은 강철 구렁이와 함께.
난장판이 된 광장 중앙으로 떨어졌다.
* * *
피이잇-
순간이동이 이뤄지는 순간.
마혁진은 엉뚱한 곳으로 이동했다는 걸 깨달았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조각상과 솟구치는 물.
광장 중앙에 있는 분수대다.
마혁진은 재빨리 주위를 훑으며 공간 좌표를 다시 땄다.
촤르르르륵-
이때 다시 한 번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오고, 섬뜩한 예기가 등 뒤에서 쏘아졌다.
방금 순간이동을 방해한 적!
마혁진은 반사적으로 염동력을 폭발시켰다!
콰아아앙-
촤아아악-
폭발하는 염동력에 흩날리는 분수대의 물!
“으엇! 이거 뭐야!?”
“초능력 각성자!?”
“갑자기 웬 물이 쏟아져!?”
쏟아지는 물에 깜짝 놀란 헌터들이 분분히 물러설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내력이 실린 외침!
“칠성파 보스가 나타났다!”
난장판으로 뒤섞여 패싸움 중이던 헌터들과 칠성파 조폭들의 시선이 일순간에 광장 중앙 분수대로 모였다.
마혁진은 바로 순간이동으로 빠지려 했으나, 어느새 발에 감겨 있는 새하얀 무언가!
이 순간 마혁진을 본 칠성파 조폭들이 격정에 휩싸여 외쳤다.
“보스가 오셨다!”
“보스! 구하러 오셨군요!”
“너희들 다 죽었다! 하하하-.”
……
그리고 이들과 마혁진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일반 헌터들.
“저 저 녀석이 칠성파 보스라고?”
“초능력 각성자 같은데?”
“똘마니들 구하러 온 건가?”
“그런가 본데…….”
“그런데 쟤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냐?”
“초능력 각성자…… 초능력 각성자……?”
이 순간 마혁진은 낭패한 기색을 재빨리 지우고 눈앞의 헌터를 노려봤다.
다람쥐 가면을 쓴 헌터.
얼굴을 가렸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이세기!
“이세기. 무슨 짓이냐?”
마혁진이 애써 분노를 가라앉히며 묻는 순간, 천문석은 어깨를 으쓱하고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무슨 짓은? 공고문 사건 피날레 중이지.”
천문석은 목소리에 내력을 실어 광장 전체가 울려 퍼지도록 외쳤다.
“어이 헌터 친구들!”
“여기 칠성파 보스, ‘마혁진’이 있다!”
“지금 내가 마혁진이랑 깃발을 꽂으려는…….”
천문석이 칠성파 보스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고개를 갸웃하던 헌터의 깜짝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1세대 헌터! 마혁진!”
“저 녀석! 1세대 헌터! 염동력자 마혁진이잖아!”
1세대 헌터!
게이트 전쟁의 전설들!
경악한 헌터들의 시선이 마혁진에게 몰리고, 곧 마혁진을 알아본 사람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1세대 헌터! 마혁진이다!”
“염동력자 마혁진!? 마혁진이 살아 있었다고?”
“마혁진은 이태성 길드장한테 찍혀서 마경에 묻혔다고 들었는데!?”
“칠성파 보스? 하- 1세대 헌터 마혁진이 조폭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더니……!”
“역시! 이태성 길드장이 괜히 사람을 묻을 분이 아니시지!”
……
사방에서 쏟아지는 외침에, 마혁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지 5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알아보는 헌터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환한 얼굴로 달려가는 헌터들!
이들이 무슨 생각이 보는 순간 짐작됐다.
대한민국, 길드 랭킹 부동의 1위.
태성 길드, 이태성 길드장에게 자신의 정보를 전하러 달려가는 거다.
자신과 이태성의 관계는 최악.
지금 상황에서 이태성까지 움직이면 끝장이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순간.
불현듯 치솟는 분노!
마혁진은 고개를 돌려 다람쥐 가면을 쓴 이세기를 노려봤다.
모든 건 이세기, 저 새끼 때문이다!
가면을 썼는데도 느껴지는 의기양양한 모습.
함정을 파 놓고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했구나!
그러나 이 순간 다람쥐 가면을 쓴 천문석도 놀라고 있었다.
1세대 헌터!?
마혁진이 1세대 헌터라고!?
그것도 모르고 ‘깃발 꽂자‘라고 할 뻔했다!
계획 긴급 변경이다!
칠성파, 야쿠자, 삼합회 모두 망했다.
생각해 보니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에 화려한 피날레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때때로 두리뭉실 끝나는 이야기도 있는 법.
천문석은 재빨리 마혁진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마 선생님.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사람을 잘 못 본 거 같네요. 전 이만…….”
이때 천문석이 굴린 스노우볼이 터졌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던 도를 아십니까 길드원들.
그러나 이들은 이미 광장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은 이세기의 협박을 받았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나 광장의 분위기가 변하는 순간, 이세기가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하고 사방에서 외쳤다.
“칠성 길드 마혁진이 공고문 도난 사건의 진짜 범인이다!”
“칠성 길드 마혁진이 공고문 도난 사건의 진짜 범인이다!”
……
메아리치듯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외침!
헌터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사방에서 의혹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칠성 길드 마혁진이 범인이라고?”
“1세대 헌터가 그럴 리가……?”
“어? 마혁진. 초능력 계열 각성자잖아?”
“염동력을 주로 쓰지.”
“순간이동도 수준급일걸.”
“공고문을 초능력으로 쓱싹한 건가?
“염동력으로 뗐으면 진작에 걸렸지.”
“공고문을 순간이동으로 빼내려고 해도 접촉해야 공간 좌표가 나오잖아?”
“설마, 1세대 헌터가 그런 짓을 했겠냐?”
이때 한 헌터가 말했다.
“염동력으로 원거리에서 공고문에 접촉하면 공간 좌표 나오는 거 아냐?”
순간 광장 가득한 헌터들의 시선이 마혁진에게 모이고.
헌터들의 머리에는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1세대 헌터 마혁진은 염동력과 순간이동 능력을 모두 가진 다중 각성자다.
그리고 누군가 다시 한 번 외치는 순간.
“염동력과 순간이동을 모두 쓰는 다중 각성자면 감쪽같이 공고문을 훔칠 수 있잖아!”
거대한 깨달음의 파도가 광장의 헌터들을 휩쓸었다!
지난 한 달여, 헌터들을 빡치게 만들었던 공고문 도난 사건의 범행 방법이 드디어 밝혀졌다!
이 순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한 외침들!
“너였구나!”
“마혁진! 이 시바…….”
“저런 미친 새끼를 봤나!”
“하- 1세대 헌터라는 새끼가 그런 장난을 쳐!?”
“또라이 새끼 같으니라고!”
“당장 잡아서 던전 노역장에 처박아 버리자!”
“거기 치안청 기동대! 헌터 부대! 저 범인 새끼! 안 잡아가냐!?”
……
그리고 사방에서 던져지는 잡동사니!
마혁진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음식물과 쓰레기 온갖 잡동사니를 염동력으로 멈춰 세웠다.
점점 커지는 잡동사니만큼 마혁진의 분노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광장의 헌터들은 제대로 느끼지 못했지만, 마혁진 앞에서 선 천문석은 이 모든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희박해진 공기와 강해진 중력.
예상을 몇 배나 초월하는 염동력!
마혁진은 1세대 헌터다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천문석은 조용히 뒤로 한걸음 걸었다.
다행히 마혁진은 쏟아지는 잡동사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황.
이대로 은근슬쩍 군중 속으로 스며들면 된다.
이때 누군가 말했다.
“……그런데 아까 누가 깃발 꽂는다고 하지 않았냐?”
천문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
곳곳에서 터지는 외침들.
“야! 그만. 그만 던지고 기다려 봐!”
“깃발 꽂는다잖아!”
“야 멈춰! 잠깐 멈추라니까!”
“누가 깃발을 꽂는다고?”
“와- 어떤 미친놈이 1세대 헌터한테 깃발을 꽂아!?”
“저기 분수대 저 헌터!”
“아, 다람쥐 가면 쓴 헌터! 와 배짱 장난 아니네?”
“깃발 꽂는 게 뭔데요?”
“요즘은 그거 안 배워? 예전에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헌터들의 시선이 하나둘 천문석에게 모이고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헌터들이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헌터 길드 시스템 온라인 게임에서 나온 거 알지?”
“그거 헛소문 아니에요? 우리나라 1세대 헌터 대다수가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던 게임 폐인 출신이라니…….”
신입 헌터가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사방에서 급박한 외침이 들려왔다.
“야, 멈춰!”
“그거 금기야!”
다급히 말문을 막아버린 베테랑 헌터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재빨리 설명했다.
“하여튼 우리나라 헌터 길드 시스템은 같은 온라인 게임을 하던 1세대 헌터들이 만들었다.”
“그래서 당시 온라인 게임에서 유래한 수많은 관습이 남아 있다.”
“던전 아이템 선 입찰. 클리어 후 골드 경매. 탱커, 딜러, 격수, 원딜 같은 직업 세분화.”
“깃발 꽂는 것도 그거다.”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일대일 승부!”
“한 사람이 완전히 아작날 때까지 싸운다!”
베테랑 헌터들의 설명이 끝난 순간.
광장에는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그러나 곧 사방에서 탄성이 터졌다.
“1세대 헌터한테 깃발을 꽂는다고!?”
“와! 저 다람쥐 헌터 깡이 아주 그냥!”
“마혁진! 받아들여라!”
“야, 너도 1세대 헌터면 당연히 응해야지!”
“빨리 대답해라 마혁진!”
“1세대 헌터 이름 더럽히지 말고. 관행대로 깔끔히 싸워라!”
……
다람쥐 가면을 쓴 천문석에게 쏟아지는 엄청난 환호.
마혁진에게 쏟아지는 야유.
환호와 야유가 극명히 대비되는 순간.
천문석은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만, 제발 그만해! 미친놈들아!’
이 순간 엄청난 살기가 느껴졌다.
마혁진.
염동력장을 펼쳐 잡동사니의 별을 몸에 두른 1세대 헌터는 어느새 천문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혁진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이세기. 여기서 끝장을 보자.”
“선생님! 잠시만 진정을…….”
천문석이 다급히 끼어들었으나, 마혁진은 각성력을 실어 외쳤다.
“깃발 꽂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