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29화>
수십 대의 장갑 버스가 출동 대기 중인 시청 주차장.
장갑 버스 지붕 위에서 난장판이 된 광장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치안청의 수석 보안관과 헌터 부대의 현장 책임자 정소라 중위였다.
수석 보안관은 광장을 주시한 채 정소라 중위에게 물었다.
“정소라 중위? 자네가 이번 현장 책임자라고?”
“네 맞습니다!”
“…….”
수석 보안관은 힐끗 정소라 중위를 살폈다.
어째선지 김 중령이 뒤로 빠지고 앞세운 현장 책임자.
고등급의 각성자.
20대의 젊은 나이.
엘리트 특임대 중위.
보는 순간 감이 왔다.
군에서 차세대로 키우는 인재다!
‘젠장!’
감이 오는 순간 터지는 탄식!
정소라 중위는 이런 난장판, 진흙탕 싸움의 진압에는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엘리트 장교였다.
수석 보안관은 난장판이 된 광장을 훑어봤다.
광장의 난장판, 패싸움은 점입가경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지만.
사실 겉보기와 달리 아무 문제가 없었다.
누가 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헌터들은 하나로 어우러져 칠성파, 규슈 야쿠자와 싸우고 있었다.
총성은 울리지 않고, 치명적인 도검류, 마력 무구도 사용되지 않는다.
각성력은 느껴지지만, 마력 각성자의 광범위 마법 사용의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기절하고 팔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자가 곳곳에서 나오지만, 이 정도 부상자는 사냥제 같은 축제에서도 흔했다.
부상자가 조직력이 약한 일반 헌터 쪽에서 좀 많이 나온다는 게 문제지만.
결국, 전투의 승패는 머릿수에 달렸다.
조만간 칠성파와 규슈 야쿠자는 끝없이 몰려 오는 신동대문 헌터들에게 아작이 날 거다.
그렇게 되면 승리라는 강렬한 쾌감에 취한 신동대문의 모든 헌터들은 그간의 악감정을 단숨에 털어 낼 거다.
그리고 며칠 동안 신동대문의 모든 술집이 들썩이겠지.
바랄 수 있는 최상의 결과였다!
수석 보안관은 그냥 이 싸움을 끝날 때까지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헌터 부대 현장 지휘관, 정소라 중위의 협조가 필수였다.
‘하, 시바- 차라리 뇌물을 밝히는 김 중령 그 새끼가 낫지. 이 난장판을 그냥 놔두자고 하면 난리를 피울 것 같은데…….’
수석 보안관이 내심 한탄할 때.
정소라 중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수석 보안관님……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의도적으로 상황을 방기하던 수석 보안관은 가슴이 뜨끔했다.
“움직인다면?”
수석 보안관이 조심스럽게 묻는 순간.
정소라 중위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레 대답했다.
“제 사견인데…… 이 장갑 버스들로 광장을 둘러싸는 게 어떨까요?”
“뭐……?”
생각과 다른 이야기에 반문하는 순간.
정소라 중위는 더욱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헌터들이 광장에서 싸우고는 있지만,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싸움이 일반인이 많은 시가지로만 번지지 않으면. 무리한 진압을 할 필요는…….”
“……!”
순간 수석 보안관은 느낌이 왔다.
바로 옆에 있는 정소라 중위 이 젊은 엘리트 군인에게서 오래전 잠시 모신 상관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현실적인 대응과 재빠른 임기응변!
수석 보안관은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광장을 버스로 둘러싸고 헌터들이 칠성파, 야쿠자들을 아작낼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자고?”
“……!”
정소라 중위가 움찔하는 순간.
수석 보안관은 씨익 웃으며 바로 대답했다.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인데!”
“네……?”
수석 보안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정소라 중위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나 이찬호다. 예비역 준장.”
깜짝 놀란 정소라 중위가 경례할 때.
“충성! 만나서 영광입니다! 장군님!”
“충성! 그냥 선배님이라고 불러라 후배님.”
이찬호 수석 보안관은 마주 경례를 하고 재빨리 말했다.
“후배님. 자네 아주 마음에 들어! 어쩐지 전에 모시던 상관분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더니. 이렇게 대국을 제대로 보는 장교라니! 훌륭해! 아주 훌륭해!”
“저도 선배님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순간 정소라 중위와 이찬호 수석 보안관은 똑같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움직일까?”
“네. 바로 움직이죠. 혹시 조폭 놈들이 시가지로 도망치면 큰일입니다.”
“왜 큰일이지?”
웃으며 묻는 이찬호 수석 보안관에게 정소라 중위도 마찬가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신동대문 화합을 위한 제물이 도망가면 안 되니까요.”
“맞아! 그렇지! 하하하-.”
두 사람은 재빨리 치안청 기동대와 헌터 부대 진압 부대에 명령했다.
“기동대 출동한다! 기마 기동대 선두! 도로를 틔워라! 장갑 버스 기동로를 만든다!”
“진압 부대! 광장 외곽에 전개한다! 싸움이 밖으로 번지지 않게 막는다! 일반 헌터의 광장 진입은 막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명령했다.
“장갑 버스로 광장에 성벽을 쌓는다!”
“장갑 버스로 광장에 성벽을 쌓는다!”
“광장으로 진입로를 열어 두고!”
“밖으로 나오는 헌터들은 막는다!”
“부상자만 밖으로 빼낸다!”
“부상자는 셋으로 구분하도록!”
기동대와 진압 부대는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바로 움직였다.
기마 기동대가 움직여 도로에 길을 열고, 진압 부대가 방패 벽으로 공간을 틔웠다.
구으으응-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십 대의 장갑 버스.
장갑 버스가 도로로 전개되어 천천히 성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순간 테라스에 앉아 광장을 바라보던 천문석은 벌떡 일어났다.
마침내 치안청과 헌터부 대가 움직였다!
광장 주위 도로에 전개되는 장갑 버스의 형태만 봐도, 치안청과 헌터 부대가 선택한 대응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수석 보안관. 헌터 부대 지휘관. 모두 현실적인 사람인데.”
천문석은 씨익 웃으며 광장을 훑었다.
난장판 개싸움이 벌어지는 광장.
이제 저 난장판 개싸움에 화려한 피날레, 마무리를 지을 때였다.
천문석의 시선이 마혁진에게 향했다.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마침내 무언가 결정을 했는지 부하들을 사방으로 보내는 마혁진.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를 시작할 때였다.
개선문.
전승 기념일.
이오지마의 성조기.
……
모든 승리에는 상징이 필요하다.
칠성 길드 길드장이자 칠성파 보스.
마혁진.
마혁진의 패배가 이번 난장판의 마무리, 승리의 상징이 될 것이다!
* * *
“나, 간다. 구경 잘하고 둘 다 조심해라.”
“잘 가요! 형!”
“다람쥐 오빠! 잘 가! 또 놀러 와!”
물총을 흔들며 신나게 외치는 두 꼬맹이.
천문석은 강철 구렁이를 걸고 테라스에서 단숨에 뛰어내렸다.
차르르르륵-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땅.
탁-
가볍게 땅에 내려선 천문석은 강철 구렁이를 회수해서 팔에 감고 마혁진을 향해 움직였다.
천문석은 염동력자 마혁진과 어떻게 싸울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이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
‘혹시 마혁진이 1세대 헌터라면?’
생각과 동시에 헛웃음이 나왔다.
헌터업 인프라가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각성자라면 조폭은 하지 않는다.
각성자를 원하는 대기업, 대형 길드, 국가기관은 수두룩했으니까.
게다가 그 각성자가 게이트 전쟁의 전설 1세대 헌터들이라면 그 홍보 효과만으로도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엄청난 염동력을 지녔지만, 마혁진은 조폭 길드의 보스일 뿐이다.
천문석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마혁진과의 승부에서 질 리가 없었다!
천문석은 잡생각을 지우고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때 호텔이 보였다.
최설을 통해 쪽지를 전한 엠마!
엠마가 아직도 안 왔다.
“엠마, 얘는 왜 아직도 안 온 거야?”
천문석은 호텔을 보며 어이없어하다가 피식 웃었다.
‘도를아십니까‘처럼 엠마도 꼭 필요해서 부른 건 아니었다.
사실은 그냥 혼자 구르기 허전에서 같이 구르자고 부른 거였다.
그러나 필요하진 않았지만, 일개 사원이 부사장님이 불렀는데 오지 않다니!
이 순간 천문석은 결정했다.
다음 임무도 엠마 투입이다!
크크크-
천문석은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기세를 끌어올렸다.
마혁진! 내가 간다!
* * *
난장판이 된 광장.
칠성파 보스 마혁진은 난장판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형세에 지금 상황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협상장에서 홀로 나타나 섬광을 터트린 이세기.
이세기를 쫓아 광장으로 달려왔을 때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됐다!
단지 이세기를 잡으라고 명령한 것뿐인데.
어느새 칠성파와 규슈 야쿠자 모두가 뒤엉켜 헌터들과 싸우고 있었다.
중간보스들을 보내 어떻게든 부하들을 빼내려 했으나.
갑자기 정체를 폭로하는 외침이 곳곳에서 터졌다.
그 순간 사방에서 밀려들어온 헌터들!
으하하하-
크아아악-
환호와 비명이 뒤섞이고, 탄성과 절규가 어우러진다.
광장은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생각과 동시에.
악어 가면을 쓴 한 헌터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세기.
이 모든 일의 시작, 공고문 사건을 조작한 이세기!
지금 난장판이 된 광장도 이세기가 만들었다는 너무나 강렬한 직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난장판은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신동대문의 헌터들이 어우러져 칠성파와 규슈 야쿠자를 쥐어패다니!
어떻게 이런 구도를 만들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 이런 난장판을 만들어서 이세기가 얻을 이익이 없었다.
이세기.
그의 진정한 의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도대체 왜!?”
마혁진이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
김기철 팀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한데…….”
마혁진은 김기철 팀장이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지금이라도 몸을 피하자고 말하는 거다.
그러나 칠성 길드의 평판은 이번 일로 바닥을 쳤다.
눈앞에 있는 부하들을 잃으면 길드원을 새로 충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하지?’
스스로 묻는 순간, 김기철 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그때랑 상황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비슷하다고……?”
이 순간 마혁진은 소스라치게 놀라 주위를 훑었다.
없다!
야쿠자 중간보스들만 남겨 둔 채 대리인 케이코가 사라졌다!
“야, 케이코! 어디 갔어!?”
“네? 케이코라면?”
“규슈 야쿠자! 대리인 말야!”
마혁진이 버럭 소리치자 부하는 바로 대답했다.
“아- 조금 전에 급한 일이 있는지 혼자 떠났습니다.”
이 순간 등골을 달리는 소름과 전율 그리고 기시감!
그때도 이랬다.
고블린 사냥터 점유 문제로 경고를 받았을 때, 칠성 길드는 끝까지 고블린 광산을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그리고 아작이 났다!
담합을 하고 버티기로 약속했는데.
어느새 모두 항복하고 혼자 버티다가 아작이 난 상황!
그때와 같은 상황이다!
‘하, 시바 어느새!’
마혁진은 바로 결정했다.
“철수한다! 바로 차량 준비해라! 너희들 광장을 달리면서 애들한테 알아서 서문으로 모이라고 전해라! 2시간 후에 서문에서 출발해 신동대문에서 빠져나간다!”
부하들이 다급히 흩어질 때 마혁진은 혼자 남게 한 김기철 팀장에게 은밀히 명령했다.
“넌 애들 모아서. 바로 거기 들이쳐라. 야쿠자 비밀 사무실 알지?”
“네?”
“야쿠자 놈들 몸을 뺄 생각이다. 애들 데리고 사무실 가서 쓸만한 건 모조리 챙겨 와라. 혹시 모르니 얼굴 제대로 가리고.”
김기철 팀장은 마혁진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규슈 야쿠자를 털어먹자는 이야기!
어차피 신동대문을 완전히 떠날 마당, 더는 가릴 것도 없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김기철 팀장이 떠나간 후, 홀로 남겨진 마혁진은 재빨리 광장을 가로질렀다.
이 정도 규모로 일이 터지면, 이제 일개 헌터 부대 중령이 수습할 범위를 벗어났다.
헌터부, 행안부가 움직이고 정밀 조사가 나오면 모든 일의 전모가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재수 없으면 모든걸 뒤집어쓴다!
한국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예전에도 처벌이 강했지만, 게이트가 열린 후에는 처벌 강도가 끔찍할 정도로 강해졌다.
게이트 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은 더는 중범죄자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몬스터 광산, 던전 감옥, 마경의 노역형.
중범죄자들에겐 이제 교도소가 아닌 게이트 노역형이 선고된다.
같은 징역이어도 교도소 수감과 게이트 노역형은 차원이 다르다.
마혁진은 발걸음을 빨리했다.
목적지는 안전가옥!
핵심 심복에게도 알리지 않은 안가에 숨겨 둔 비밀 장부와 증거들을 회수해야 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수사기관의 추적을 무마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기름칠을 한 증거, 이 비밀장부가 꼭 필요했다!
타다다다닥-
이때 광장의 환호성 사이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문득 고개를 돌린 순간 치안청 기마 기동대가 달리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