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내가 해봤는데 별거 없더라 225화>
천문석은 성큼성큼 광장으로 들어가며 웃음을 터트렸다.
카캬카-
이 순간 반사적으로 뒤를 따르던 최설은 흠칫 놀라 멈춰 섰다.
최설은 눈을 비비고 앞서 걷는 이세기를 다시 봤다.
방금 이세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느껴지는 기이한 현기증.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이 기울어지는 것만 같았다.
팔과 목에 솟은 소름과 여름인데도 으슬으슬 떨리는 몸!
불길하다.
너무나 불길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세기는 그 심계가 헤아릴 수 없이 깊었다.
최설은 말 몇 마디만으로 헌터들의 분노를 칠성파와 야쿠자에게 돌리던 그 놀라운 모습을 바로 앞에서 봤다!
이세기가 칠성파, 야쿠자들과 홀로 만나면 무슨 계략을 쓸지 몰랐다.
어떻게든 끝까지 붙어 있어야 한다!
최설은 마음을 다잡고 천문석을 따라 달렸다.
* * *
단숨에 헌터들로 붐비는 광장을 지나, 칠성파의 비밀 창고로 다가서는 천문석.
천문석은 수많은 인파로 차량이 멈춰 선 도로를 가로질렀다.
비밀 창고는 바로 코앞.
“오신 걸 알릴까요?”
최설의 물음에 천문석은 바로 대답했다.
“됐어. 알릴 필요 없어.”
“네?”
최설은 순간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자신을 인질로 데려온 것은 협상의 중개를 맡기려는 게 아닌가?
이때 천문석이 최설의 어깨를 툭 쳤다.
“안내 고맙다. 이제 얼른 튀어라.”
“네?”
최설이 다시 한 번 반문하는 순간.
천문석은 기세를 끌어올리고 보법을 펼쳤다.
천지간에 흐르는 기의 흐름, 영맥에 마음을 두고 스치듯 땅을 밟는다.
가벼운 발걸음에 지기가 호응하고 그 반발력에 일기일원공의 내력이 움직인다.
쿵, 쿵, 쿵-
발걸음 소리가 땅을 울리고, 내력에 실린 기세가 폭발적으로 자라난다.
이 순간 최설은 느낄수 있었다.
전신을 달리는 소름과 가슴을 옥죄는 위압감!
이세기는 전장에 나서는 무사처럼 살벌한 기세를 뿜어냈다.
‘뭐지? 협상하러 와서는 왜!?’
의문을 품는 순간 최설은 깨달았다.
이세기는 처음부터 협상할 생각 같은 건 없었다.
협상을 제의한 건 단지 칠성파와 야쿠자를 하나로 모을 수단일 뿐이었다.
이세기는 하나로 모인 칠성파와 야쿠자를 박살 낼 생각이다!
‘못해도 수백 명은 될 적을 홀로 박살 내겠다고!?’
순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전율!
최설은 홀린 듯 기세를 끌어올리는 이세기를 바라봤다.
비밀 창고 입구 바로 앞 한걸음 거리.
이세기는 어느새 낯익은 보법을 밟고 있었다.
자신과 아버지를 단숨에 무릎 꿇린 그 보법!
너무나 느리게 움직이는 이 보법에는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그으으윽-
보법이 땅을 긁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가고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움푹 우그러져 종처럼 울리며 진동을 흘리는 문!
콰아아아-
움푹 우그러진 문은 진동하고, 진동하고, 진동했다.
콰아아-
계속 진동만 했다…….
“…….”
갑자기 주먹을 들어 문 곳곳을 두들겨 보는 이세기.
쿵, 쿵, 쿵-
잠시 후 악어 가면을 쓴 이세기가 몸을 돌려 최설을 봤다.
“……이거 혹시 마력회로가 들어간 강화 철문?”
“……당연하죠.”
“…….”
짧은 침묵 후 최설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안에 연락해서 문을 열라고 할까요?”
“…….”
* * *
천문석은 어이가 없었다.
강화 철판이 이렇게 흔한 게 말이 돼!?
그것도 그냥 강화 철판이 아닌, 마력회로까지 깔린 보안등급 강화 철판이다!
이때 문득 보이는 붉은 벽돌로 된 벽.
하- 이 벽도 겉은 벽돌이지만, 당연히 안에는 강화 철판을 깔아 놨겠지…….
천문석이 어이없어하며 벽을 두들긴 순간.
턱-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어? 이거 뭐야!?”
턱, 턱, 턱-
천문석은 곳곳의 벽을 두들긴 순간 깨달았다!
이건 그냥 벽돌 벽이다!
칠성파 이 미친놈들이 문에는 보안등급 강화 철판을 깔아 놓고 정작 벽은 그냥 벽돌로 만들었다!
이때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최설의 목소리.
“……지금이라도 제가 문을 열라고 전화하는 게……?”
천문석은 재빨리 위엄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모든 건 내 생각대로 진행 중이다.”
천문석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재빨리 벽을 두들겨 기감을 퍼트리며 달렸다.
갑자기 터진 굉음에 건물 안의 칠성파와 야쿠자들이 바짝 긴장했다.
이들 모두가 지금도 진동하는 입구 방향으로 모여들고 있다!
오히려 잘됐다!
성동격서.
이때 뒤를 친다!
천문석은 곧 뚫고 들어갈 곳을 찾았다.
골목 안 30미터에 있는 벽!
이 벽 바로 뒤에는 사람이 없었다.
천문석은 이 벽을 향해 둔보를 펼쳤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와르르 벽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천문석은 단숨에 벽 안으로 들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확 치솟는 땀 냄새와 사방에서 쏟아지는 살기 어린 외침!
“뭐야!?”
“뒤다! 뒤야!”
“뒤가 뚫렸다!?”
“바로 대응합니까!?”
“야 모두! 손 내려!”
“광장이 코앞이다! 미친놈들아!? 손 내려!”
헌터용 통역기를 통해 들려오는 낯선 억양의 한국어 들!
천문석은 재빨리 기감을 펼치며 동시에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장애물 하나 없이 텅 빈 창고 1층.
이곳을 2층 3층 4층 5층 난간에 자리한 수많은 헌터들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국계와 일본계 헌터들!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칠성파!
그리고 규슈 야쿠자!
자신의 계획대로 수백 명의 적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천문석은 개의치 않고 바로 외쳤다.
“내가 창천검 이세기다!”
“뭐!? 이세기?”
“저 새끼가 이세기라고!?”
“이 난장판을 만든 놈이라고!?”
……
사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고, 수많은 헌터들의 시선이 창고 안으로 모였다.
명령을 기다리는 듯한 시선이 향한 곳에는.
40대 한국계로 보이는 차가운 인상의 헌터와 30대 일본계로 보이는 피곤한 인상의 헌터가 있었다.
천문석은 직감했다.
칠성파의 보스 마혁진, 규슈 야쿠자의 중간 보스 케이코.
만나기로 한 협상 상대들이다.
“협상하기로 한 이세기라고?”
“왜 벽을 부수고 들어와……? 그 가면은 또 뭐고?”
마혁진과 케이코는 벽을 뚫고 나타난 천문석을 내려다보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
천문석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원래 계획은 벽을 부수고 들어와 굉천수로 눈뽕을 먹이고 난장판을 만드는 거였는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수백 명의 조폭과 야쿠자들.
이 미친놈들이 모두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 * *
‘하, 시바- 빌어먹을 이세계 총기 자유화!’
수백 개의 총구 아래 천문석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저거 그냥 공갈용 아닐까?’
사람에게 마탄을 쏘는 건 중범죄다.
도시 안에서 총성이 울리는 순간, 치안청 기동대와 헌터 부대 특임대가 출동해 끝까지 추적 몬스터 광산에 처박을 거다.
바로 옆에 치안청과 헌터 부대가 있는데, 아무리 조폭이라도 진짜 마탄을 쏠까?
그러나 모험을 했다가 저게 진짜면 수백 발의 마탄을 맞는 거다.
현대 마도 기술의 정화 마탄은 몬스터 반발장보다 헌터의 각성력을 깎아내는데 더 효과적이다.
자신이 지금 입은 강화 전투복이 마탄 몇 발은 막아도 수백 발이 쏟아지면 순식간에 걸레짝이 된다.
혹시 내력으로 마탄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천문석은 내력으로 마탄을 막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실패하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니까!
이때 마혁진이 입을 열었다.
“진짜 이세기면 그 가면을 벗어 보시죠.”
의혹 어린 표정이지만 생각외로 정중한 목소리.
게다가 얼굴을 보면 이세기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뭐지?’
순간 가면 속 천문석의 시선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이때 멀리 의자에 묶여 있는 한 헌터가 보였다.
광장에서 만났던 호객꾼 헌터!
그리고 자신이 뚫었던 벽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최설이다!’
천문석은 재빨리 계획을 수정하고 외쳤다.
“내가 이세기가 맞다!”
이때 뒤늦게 구멍으로 들어온 최설이 다급히 외쳤다.
“이 분이 이세기가 맞습니다!”
칠성파 마혁진과 야쿠자 케이코의 시선이 최설에게 닿았다.
삼합회 최 선생의 비서 최설이다.
“최 비서? 이 분이 이세기가 맞습니까?”
마혁진이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낼 때, 천문석은 재빨리 대답했다.
“지금 광장에 모인 헌터들 봤겠지? 우리 협상 정보가 누설됐다. 당연히 얼굴을 가려야 했다.”
천문석은 문득 드는 생각에 재빨리 말을 더했다.
“이 벽도 그래서 뚫은 거다. 정문에는 눈이 너무 많더군.”
마혁진과 케이코의 시선이 서로에게 닿았고 이들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상황변화에 당황하던 중이라 어이없는지만 이해가 되는 대답이었다.
“위로 모셔라!”
마혁진은 명령했고 천문석과 최설은 5층 마혁진과 케이코 앞으로 이동했다.
칠성파, 야쿠자, 삼합회. 그리고 이세기.
마침내 넷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선 신분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그 가면 좀 벗어 주시죠.”
천문석은 서슴없이 악어 가면을 벗었다.
순간 마혁진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맞냐?”
의자에 묶여 있던 호객꾼 헌터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쏟아 냈다.
“맞습니다! 이 사람이 붉은 화살을 준 이세기입니다! 그때 만났을 때 꼭 해 줄 일이 있다고…….”
“입이 싸군.”
천문석은 피식 웃으며 일어나 천천히 호객꾼 헌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번개같이 딱밤을 갈겼다.
따악-
장난 같은 딱밤에 말을 쏟아 내던 호객꾼 헌터가 파르르 전신을 떨었다.
그러나 이 자리의 누구도 호객꾼 헌터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세기의 신분을 확인한 이상 호객꾼 헌터의 쓸모는 다했다.
마혁진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럼 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이세기 당신의 계획 때문에 이곳 신동대문 상황이 개판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무얼 해 줄 수 있습니까? 이 모든걸 정상으로 돌릴 수 있습니까?”
순간 협상을 위해 모인 모두의 시선이 천문석에게 모였다.
마혁진의 예리한 눈, 케이코의 피곤한 눈, 최설의 불안한 눈.
이들을 한 명 한 명 보며 천문석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손.
“빈손? 지금 해 줄 게 없다는 겁니까?”
마혁진이 어이없어하는 순간.
천문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손을 잘 봐라.”
너무나 뜬금없는 말.
그러나 지금 앞에 있는 이세기는 도시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든 계략을 꾸민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그런 거물이 허튼소리를 할 리는 없었다.
마혁진과 케이코, 최설 모두가 이세기의 두 손에 집중했다.
“잘 봐…… 아주 잘 봐야 해…….”
이세기의 두 손이 천천히 위로 움직였고, 세 사람의 눈동자가 이 손을 따라 움직였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비밀 창고에 가득한 칠성파와 규슈 야쿠자들 이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곳을 보고 있었다.
이 순간 천천히 움직이던 손이 번개같이 부딪혔다!
콰아아아앙-
굉천수의 섬광과 굉음이 폭발했다.
엄청난 섬광에 순간적으로 시야와 청력이 사라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빼는 마혁진과 케이코, 최설!
흐어억-
쿵, 쿵, 쾅-
사방에서 비명이 터지고 충돌음이 들려왔다.
굉천수의 섬광에 무력화된 조폭과 야쿠자들.
그러나 직접 눈앞에서 때려 박은 게 아니라 지속 시간이 짧다.
정신을 차리고 마탄을 갈기면 끝장!
천문석은 재빨리 바뀐 계획대로 움직였다.
번개같이 묶은 줄을 끊고 파르르 떠는 호객꾼 헌터를 어깨에 걸친다.
“으아악! 이세기 이 새끼!”
마혁진의 분노한 외침이 터지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무형의 힘!
천문석은 마혁진에게 의자를 집어던지고 잽싸게 달렸다.
휘이이익-
쏟아지던 힘이 날아가는 의자에 집중되는 순간.
날아가던 철제 의자가 공중에 멈춰 서고 단숨에 우그러진다!
꽈드드득-
염동력!
칠성파의 마혁진은 초능력 각성자였다!
천문석은 손에 잡히는 걸 모조리 던지며 달려 최설의 손을 낚아챘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으려는 최설을 당기며 외친다.
“나야!”
“이게 무슨? 갑자기 왜!?”
“설명할 시간이 없어! 우선 달려!”
천문석은 호객꾼 헌터를 업고 시야를 상실한 최설을 끌고 달렸다.
5층 통로를 달려 구멍을 뚫고 들어왔던 골목 방향으로 달리는 천문석!
“으아! 눈 내 눈!”
“총! 총구 조심해!”
통로 곳곳 눈뽕을 맞은 조폭과 야쿠자를 피해 벽에 도착하는 순간!
쒜에에엑-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문석은 달리던 힘 그대로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주르르륵-
바닥을 미끄러질 때 머리 위로 지나가는 물체!
철제 의자와 책상, 캐비닛이 우그러져 하나로 뭉쳐진 염동력 포탄이었다!
동시에 마혁진의 분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세기! 서라!”
순간 미끄러지던 천문석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염동력 포탄을 내력을 실어 때렸다.
콰아아앙-
염동력 포탄은 단숨에 벽을 박살 내고 커다란 구멍을 냈다.
뻥 뚫린 구멍으로 뜨거운 햇살과 바람이 쏟아질 때.
“빠져나간다!”
천문석은 최설과 호객꾼 헌터를 잡은 채 단숨에 구멍으로 뛰어내렸다.
어느새 말문이 트인 호객꾼 헌터가 비명을 지르고.
으아아아-
최설이 돌아오는 시야에 눈을 깜빡일 때.
“지금 뭐를……!?”
천문석은 외쳤다.
“야! 꽉 잡아! 떨어진다!”
천문석은 염동력 포탄을 밟고 5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